[책읽아웃] 세상 끝에 있는 너에게 보내는 편지
『세상 끝에 있는 너에게』, 『눈과 사람과 눈사람』,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시작은 책이었으나 끝은 어디로 갈지 모르는 코너, 삼천포책방입니다. (2019. 09. 19)
그리움의 편지가 담긴 그림책 『세상 끝에 있는 너에게』 , 정상성에서 벗어난 열여덟 스물다섯의 이야기 『눈과 사람과 눈사람』 , 톨콩이 꼽은 올해 읽어야 할 소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를 준비했습니다.
그냥의 선택 - 『세상 끝에 있는 너에게』
마리 꼬드리, 고티에 다비드 글그림/이경혜 역 | 모래알
이 그림책은 새에게 보내는 곰의 편지로 채워져 있어요. 곰은 북쪽에 사는데 새는 겨울이 오면 남쪽으로 가요. 그래서 매해 겨울에 떨어져서 지내는데요. 곰이 새를 너무 사랑해서, 새가 떠나고 나니까 겨울잠 잘 준비를 할 의욕이 없는 거예요. 그래서 ‘너를 만나러 가기로 결심했어’라고 하면서 세상 끝에 있는 새를 향해 가는 이야기입니다. 바다도 건너고, 사막도 지나고, 으슥해 보이는 숲길도 지나면서 새를 만나러 가는데요. 떠나기 전부터 도착할 때까지 새에게 계속 편지를 써요. “바람이 내 편지를 날라다 줄 거야”라고 하면서요.
세상 끝에 있는 새를 만나러 가는 곰의 마음은 어떤 걸까, 이렇게 지극히 누군가를 애정하고 그리워하는 건 어떤 마음일까, 생각하면서 읽게 됐는데요. 새삼 편지의 매력에 빠지게 됐어요. 읽는 동안 정갈함이 느껴지는 것 같았거든요. 그리고 너무 다정해요. 사실 곰이 쓰는 내용이 별다르지는 않아요. ‘오늘은 사막을 지났어, 오늘은 바다에 빠져서 그물에 갇혔어, 고양이 친구를 만났어’ 등등 곰의 일상에서 벌어지는 일들이에요. 그런데 그게 편지에 담기면, 우리가 카톡이나 전화로 이야기하는 것과는 사뭇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더라고요. 정말 오랜만에 편지를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이 책을 읽으시는 분들도 다시 한 번 편지의 매력에 빠지시지 않을까 싶습니다.
곰이 편지에 적는 내용들은 일상의 소소한 일이기도 하지만, 사실은 엄청난 모험의 과정이기도 한데요. 어쩌면 우리가 소울메이트를 만나기 전까지 살아가는 삶 자체가 모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그리고 이 그림책은 잔잔하기만 할 것 같지만, 뒷부분에는 ‘반전의 반전’이 있습니다. 곰이 남쪽에 도착했을 때 반전이 일어나고, 그 상황을 전환시키기 위해 또 한 번의 반전이 일어나요. 결말도 참 좋은데요. 책에서 직접 확인하시길 바랍니다.
단호박의 선택 - 『눈과 사람과 눈사람』
임솔아 저 | 문학동네
이 소설집에는 18살부터 25살까지의 인물이 나오는데 ‘이 인물들은 여태껏 작가님이 겪어온 것들을 함께 겪은 동지’라고 해요. 작가님의 말을 인용하면 “당연한 이야기 같겠지만 나는 이 당연함이 내 손끝에서 구현되는 것 때문에 겨우 살아왔다. 나는 이 인물들의 경험으로부터 출발된 인간이다”라고 합니다.
18살부터 25살까지의 주인공이 나온다는 게, 어떻게 보면 우리나라의 가장 젊은 사람들이 나온다는 뜻이잖아요. 이 존재들이 정상에서 약간 벗어나 있어요. 그냥 못 살고 힘들고 그런 문제가 아니고 ‘일반적으로 힘들면 이럴 것이다’라는 게 있는데, 그 일반적으로 힘든 것에서도 약간 벗어난 느낌이 있어요. 그리고 ‘내가 청춘이라서 너무 아파’라고 이야기하는 존재들이 아니에요.
예를 들면 「줄 게 있어」라는 작품에 ‘영후’라는 아이가 나와요. 불꽃축제 하는 날에 ‘기열’이라는 친구가 ‘줄 게 있어’ 하면서 사라지는데 그 날 기열이가 죽어요. 사람들이 ‘기열이가 죽었대’ 하고 관심을 가지면서 ‘영후가 그 날 기열이를 만났대, 마지막으로 본 사람이래’ 하면서 영후한테도 관심을 가지는 거예요. 영후의 아버지는 계속 영후의 상처에 관심을 가지면서 ‘네 잘못이 아니야’ 하면서 돌봐주는데, 영후는 오히려 그게 이상한 거예요. ‘나는 내 탓이라고 생각한 적이 한 번도 없는데, 나한테 왜 이러는 거지?’ 생각하는데, 아버지는 영후가 당연히 기열이의 죽음 때문에 아파하고 슬퍼할 거라고 지레짐작하는 거죠.
이런 식의 세세한 불행들이 나오는데, 이 불행한 사람들이 자신을 불행하다고 이야기하는 경우가 거의 없어요. 그 이유가 「뻔한 세상의 아주 평범한 말투」라는 단편에 나오는데요. “아프다는 것은 나 자신이 나 자신을 지나치게 주장하는 것을 듣고 있어야만 하는 느낌”이라는 표현이 나와요. 이 사람들은 다 사회에 어느 정도 맞지 않는 사람들이고, 열심히 사는 걸 떠나서 약간 다 어긋나 있는 거예요. 그런데 그것을 직접적으로 이야기한다거나 ‘내가 이것 때문에 아프다’고 말하지 않아요. 그건 나 자신이 나 자신을 너무 지나치게 주장하는 거니까. ‘뭐, 다른 사람들도 이 정도는 다 아프게 살지’ 하면서 묵묵하게 사는 사람들이 나오는데요. 그게 견디고 있다는 느낌도 아니에요. 자신이 아픈데 그 아픔에 대한 원인을 잘 규명하지 못하는 상태의 등장인물들이 많이 나오거든요. 18살에서 25살의 등장인물이 나오는 소설이기 때문인 걸까, 라는 생각도 들고요. 어찌 보면 작가님이 이 사회에서 어느 정도는 정상성의 규범을 못 맞췄던 경험이 소설로 이루어지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들어요.
톨콩(김하나)의 선택 -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김초엽 저 | 허블
올해 나온 책 중에 두 권을 읽어야 된다면, 한 권은 이 책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나머지 한 권은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가 아닐까요(웃음). 이 책을 남해와 부산의 바닷가에서 계속 읽었어요. 바다가 출렁이고 파도 소리가 들리고 하늘이 열려있는 곳에서 읽었는데, 그게 더더욱 큰 감흥을 줬던 것 같아요. 바닷가에서 단편 소설집을 읽는 게 얼마나 즐거운 일입니까. 그런데 눈물이 줄줄줄 흘러서 정말 돗자리에 후두둑 눈물이 떨어지는 거예요. 이 책을 읽고 우신 분들이 많아요. 그런데 너무 슬퍼서 운 것도 아니고, 뭔가 이상하게 벅차고, 이 세상이 아닌 광경을 봤을 때의 경외감도 있고, ‘아, 너무 아름답다, 그런데 뭔가 덧없다’라고 느낄 때의 느낌도 있고요. 굉장히 다양한 층위의 감정을 느꼈어요.
이 책은 SF 소설집이지만 진입장벽이 아주 낮고, 하지만 완성도가 아주 높고, 감정의 진폭도 아주 커요. SF 소설만이 보여줄 수 있는 것-이 세상이 아닌 또는 있지 않은 것을 상상해서 꺼냈을 때 이 사고실험을 통해서 얻어질 수 있는 철학적 질문이나 굉장한 아름다움들-이 있다는 것을 그냥 이 책을 권하면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아요.
인아영 문학평론가의 작품해설에서 발췌된 부분도 이 책의 아주 중요한 부분을 드러내주는데요. “타자를 온전하게 이해할 수 없다는 불가능 속에서도 우리는 서로를 놀라워하고 또 아름다워 할 수 있다. 김초엽의 소설 세계 안에서 우리는 그간 역사 속에서 잊혀왔던 여성, 장애인, 이주민, 비혼모를 비롯한 소수자들이 서서히 제자리를 찾는 아름다운 광경을 본다.” 또 아름다운 점은, 우리는 차등을 둬서는 안 되고 차별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설득하는 식의 말하기가 아니에요. 그냥 세계들을 보여줘요.
첫 단편이 유토피아에 대한 이야기인데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라는 작품입니다. 어떤 완벽한, 누구도 서로를 폭력적으로 대하거나 차별하지 않는 세계가 나오는데요. 완전무결하지 않은 다른 세계를 발견하고, 그 세계 또는 그 세계의 누군가를 사랑하게 됨으로 인해서 유토피아를 떠나오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예요. 생각할 거리가 정말 많은 것 같아요. 거기에서 가치관이라고 하는 것도 비롯하는 것 같고요. 완전무결한 세계가 아닌 흠이 있을 수밖에 없는 한 개체와의 사랑, 그 사람을 무결하게 사랑하기 위해서 어떤 한 세계를 닫아버리는 거죠.
말씀드린 첫 단편에 이런 문장이 있어요. “아름답고 뛰어난 지성을 가진 신인류가 아니라 서로를 밟고 그 위에 서지 않는 신인류를 만들고 싶었을 것이다.” 인아영 문학평론가가 김초엽 작가의 소설에서 “소수자들이 서서히 제자리를 찾는 아름다운 광경”을 본다고 했던 것, 그리고 제가 이 소설은 그것을 설득하는 논조가 아니라 그런 마음을 갖게 만드는 글이라고 말씀을 드린 게 바로 이런 부분입니다.
*오디오클립 바로듣기 //audioclip.naver.com/channels/391/clips/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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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우리 사는 이야기면 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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