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아웃] 서울에서 ‘소다드(saudade)’를 느껴요 (G. 로버트 파우저 작가)
김하나의 측면돌파 (101회) 『로버트 파우저의 도시 탐구기』
오랫동안 살았기 때문에 옛날 생각 날 때도 있어요. 그리고 서울의 변화가 심하기 때문에 없어진 공간이라든가, 약간의 독특한 불안감 때문에 ‘소다드’를 느낄 때도 있고요. (2019. 09. 19)
나이가 들면서 나는 변하고, 그 변화에 맞는 도시와의 만남이 이어질 것이다. 오래된 친구 서울에서 살 수도 있고, 지금까지 전혀 인연이 없는 새로운 도시에서 살 수도 있으며 지금 살고 있는 프로비던스에서 계속 살 수도 있다. 어떻게 될지 누가 알겠는가. 사람들은 내게 자주 묻는다. “어디에서 왔나요?” 글쎄, 나는 어디에서 왔을까? 내가 아는 건 이것이다. 그동안 거쳐온 수많은 도시들이 바로 내가 온 곳이다.
로버트 파우저 저자의 책 『로버트 파우저의 도시 탐구기』 속의 한 구절이었습니다.
<인터뷰 - 로버트 파우저 작가 편>
오늘 모신 분은 ‘각국 도시 생활자’입니다. 여행지가 아닌 일상의 터전으로서 도시를 탐구하신 분이에요. 우리에게는 『외국어 전파담』 을 쓴 언어 능력자, 『서촌 홀릭』 을 쓴 한옥 지킴이로 친숙한 분이기도 하죠. 이번에는 열 네 도시의 이면을 담아 『도시 탐구기』 를 쓰셨습니다. 로버트 파우저 작가님입니다.
김하나 : 저는 예전에 서촌에 살 때 교수님을 뵌 적이 있어요. 그때는 동네에서 ‘파 교수님’으로 불렀었는데, 제가 그게 더 편할 것 같아서 ‘파 교수님’으로 불러도 될까요?
로버트 파우저 : 그렇게 하셔도 됩니다.
김하나 : 그야말로 ‘언어 능력자’이시죠. 어떤 언어들을 하시나요?
로버트 파우저 : 한국어도 하고, 물론 영어도 하고, 일본어는 편하게 매일매일 생활을 위해서 사용할 수 있고 글도 읽고 쓰고, 독일어 조금 배웠고, 스페인어도 배웠고, 불어는 말은 잘 못하지만 독해를 하고, 라틴어도 배웠습니다.
김하나 : 제일 처음 한국에 오신 게 1982년이잖아요. ‘88올림픽’도 있기 전에 한국에 오시게 된 인연은 어떤 거였나요?
로버트 파우저 : 그때는 일본 여행하고 있었는데 이웃나라 보고 싶어서 일주일, 10일 정도 한국을 여행했고요. 한국에 처음 살게 된 것은 1983년에 한국어 공부를 하면서 1년 동안 살았죠. 인연이라고 하면 일본어 공부하면서 이웃 나라에 대한 관심이 생겼고, 그 다음에는 한국어에 대한 관심도 생겼어요. 왜냐하면 (일본어와) 유사한 부분은 흥미롭기도 하고, 일어 잘하는 한국 사람한테 시간 투자하면 한국어는 쉽게 배울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당시에 중국은 개방되지 않아서 여행하기 어려운 정도였는데, 대신에 1년 동안 한국어 배우면 조금 잘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김하나 : 말을 배우고 써보고 듣는 것 자체가 교수님에게는 참 즐거움인 것 같아요.
로버트 파우저 : 네, 즐거움이죠.
김하나 : 예전에 서촌에서 한옥을 지으셨잖아요. 그 집 이름이 ‘어락당(語樂堂)’, 말의 즐거움을 뜻하는 집이었죠.
로버트 파우저 : 네, 맞습니다.
김하나 : 정말 신기해요. 어쩜 이렇게 다양한 언어를 구사하시는지. 제가 『로버트 파우저의 도시 탐구기』 를 보면서 정말 피식피식 웃음이 터졌어요. 이를테면 ‘나와 그 분의 대화는 서태지와 아이들 세대와 386세대 운동권 형이 대화를 나누는 것 같았다’라는 식의 비유라든가(웃음), 저는 2호선이 개통되기 전의 서울을 모르는데 교수님이 ‘그때는 아직 2호선이 개통이 안 됐었다’라고 쓰시고(웃음)...
로버트 파우저 : 네, 이대 앞에서 공사하는 장면도 기억하고요(웃음).
김하나 : 그리고 ‘미도파 백화점 안에는 ‘로사’라는 식당이 있었다’고 하셨죠(웃음).
로버트 파우저 : 네, 거기에 돈까스 먹으러 갔습니다(웃음).
김하나 : 그런 게 너무 재밌는 거예요. 대전에 갔을 때는 ‘문경서적’이 있었고, 전주에 가면 ‘일산서림’이 있고... 저도 가본 곳인데도, 거기에서 교수님의 취향을 따라서 발견한 곳들에 대한 이야기도 읽는 게 되게 재밌었어요. 특히나 ‘풍년제과의 초코파이를 빼놓을 수 없다’라는 말씀을 하실 때, 또 ‘성심당’이 전국적으로 유명해지기 전에 이미 1987년에 가셨었다고...(웃음)
로버트 파우저 : 네, 단골이었어요. 유명한 빵을 먹으러 가는 거 아니었고 유럽식 딱딱한 빵을 팔았기 때문에 단골이 됐어요.
김하나 : 참 다른 사람과 다른 지점이, 교수님에게는 일단 ‘외국어’라는 게 있고 그리고 ‘도시’인 것 같아요. 그러니까 『외국어 전파담』 에 이어서 『로버트 파우저의 도시 탐구기』 가 나올 수 있었을 텐데, 이 둘 사이에 아주 긴밀한 관계가 있을 것 같아요.
로버트 파우저 : 저한테는 긴밀한 관계가 있는 것보다, 만약에 있다면, 도시하고 언어는 구조나 문법이 있기 때문에 그걸 풀어나가면 이해한다는 것. (도시의) 문법은 말하고 완전히 다르지만 ‘왜 이런 길에 이런 빌딩이 있는지’, ‘왜 이 길이 다른 길보다 넓은 건지’ 이게 문법이거든요. 그것을 도시로 보면 사회적인 구조가 보이기도 하고. 그래서 재밌습니다. 약간 질서가 있는, 구조가 있는, 문법이 있는 것은 공통점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김하나 : 교수님은 또 각국 도시에서 많이 살아보셨으니까, 그 경험이 어떤 구조를 파악하는 데까지 연결돼서 느끼시는 것 같아요.
로버트 파우저 : 그렇죠. 아마 여러 도시 살아보면서 질문이 생기죠, 왜 그렇게 되어 있는지. 그러면 그 도시에 대해서 알아보고 읽고 대화도 하고, 그러면 문법이 보이기 시작하는 거죠. 공부해야 돼요. 그냥 딱 보고 산책하고 이해하는 것과 조금 다른 거죠.
김하나 : 그러니까 자연발생적으로 생긴다 하더라도 그것이 생겨나는 이치 같은 것을...
로버트 파우저 : 네. 역사적인 이유도 있고, 현재의 도시를 관리하는 건축법이라든가 도시계획적인 법률 같은 것도 있고. 예를 들어서 왜 미국 동네에는 편의점이 여기저기 없는지 생각해 보면 결국에는 도시계획상으로 여기저기 편의점을 짓지 못하는 법적인 이유가 있죠. 또 일본의 어떤 성이 있는 도시의 구조를 보면 그것도 역사상의 이유가 있고, 그 역사 속에서 관리하는 법도 있었고 성의 권력에 따라서 어떤 사람들은 가까이 살지 못하는 부분도 있었고. 그런 여러 가지 역사적인 이유, 법률적인 이유가 아주 흥미롭습니다. 그런 걸 공부하면 도시가 조금 깊이 있게 보이기 시작합니다.
김하나 : 아주 중요하게 나오는 단어가 ‘소다드(saudade)’죠. 예전에 존 버거 작가의 책에서도 이 단어에 대한 부분이 있었어요. 책 안에서의 그 단어가 너무 아름답게 느껴졌는데, 설명을 하기가 조금 어려운 단어이지만, 파 교수님이 설명을 해주신다면요?
로버트 파우저 : 이 책을 준비하면서 사실 유튜브에서 설명을 봤는데, 한 유튜버가 ‘소다드’가 무엇인지 질문을 받았더니 ‘엄마, 아빠’라는 이야기도 하고...
김하나 : ‘당신의 소다드는 무엇이냐?’라고 물었을 때의 답변이었군요.
로버트 파우저 : 네, 아버지 어머니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그러면 ‘소다드’라는 게 너무 사랑해서 아끼고, 그런데 없으니까 추억하고 소통하고, 그것이 슬프면서 결국에는 그 소통 자체가 즐거운 거죠. 그 느낌인 것 같아요. 부모님이 다 돌아가셨다면 굉장히 슬프잖아요. 추억을 생각하면 안 계시니까 슬프기도 하고. 그런데 그 추억을 생각하는 것 자체가 굉장히 즐거움을 줄 수 있는, 복잡한 감정이죠.
김하나 : 책에서 다루신 14개의 도시 중에서도 ‘소다드’가 느껴지는 도시가 있고, 그렇지 않은 도시가 있을 것 같아요. 그 차이는 어떤 걸까요?
로버트 파우저 : 예를 들어서 서울은 ‘소다드’를 느낄 때도 있어요. 옛날에 종로2가 가면...
김하나 : 종로2가에서 만나면 늘 ‘종로서적’ 앞에서 만났다고 하셨죠(웃음).
로버트 파우저 : 그렇죠. 그러니까 옛날 생각도 나고, 오랫동안 살았기 때문에 옛날 생각 날 때도 있어요. 그리고 서울의 변화가 심하기 때문에 없어진 공간이라든가, 약간의 독특한 불안감 때문에 ‘소다드’를 느낄 때도 있고요. 물론 ‘앤아버’에는 가족들이 있었기 때문에 부모님 생각도 나죠. 그리고 ‘교토’에 갈 때 많이 느끼죠. 제가 교토에서 태어난 건 아니지만...
김하나 : 교토에서도 집을 수리해서 사셨었잖아요.
로버트 파우저 : 네. 그리고 어머니도 서너 번 교토에 오셔서 세 달씩 계셨으니까, 교토에서 어머니하고 같이 갔던 곳에 가면 ‘소다드’를 느끼죠. 옛날 생각도 나죠.
김하나 : 또 아주 인상적이었던 건, 대전의 ‘문경서적’ 이야기를 하시면서 『샘이깊은물』이라는 잡지를 언급하셨어요. 그 당시에 한국에서 아주 세련된 잡지였잖아요. 역사적인 것도 그렇고, 사람들의 평소 생각도 그렇고, 문화적으로 잡지 같은 게 어떤 흐름을 갖고 있는지도 다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게, 정말 국외자가 아니라 속에 들어가서 사신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너무 부러운 능력입니다.
로버트 파우저 : 특별한 능력이 없어요. 한 번 문경서적에 갔을 때 봤을 텐데 (『샘이깊은물』은) 표지가 예쁘고, 그리고 폰트가 너무 예뻐요. 그러면 호기심이 있고, 잡지가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고. 그것은 특별한 능력보다 호기심 가져야 돼요. 호기심이 중요해요.
김하나 : 그 말씀이 있었죠. 어떤 도시든 나에게 뭔가를 주는 게 아니라, 내가 그 도시에 대해서 호기심을 갖고 찾아내야 하는.
로버트 파우저 : 찾아내야 하는 거죠. 그러니까 호기심이 있어야 되고, 어떤 때는 호기심에 더해서 남의 이야기를 잘 들어야 돼요. 호기심이 있으면 질문해요. 옛날에는 모든 반찬에 대해서 질문한 적도 있었어요. 주의해서 호기심 갖고, 혼자서 공부할 수도 있고, 혼자서 보고 판단할 수 있는 경우도 있지만, 한국 친구한테 물어보기도 해요. 그게 중요해요. 거기에서 사는 사람에게서 정보 흡수하고 배우는 것이죠.
*오디오클립 바로듣기 //audioclip.naver.com/channels/391/clips/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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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우리 사는 이야기면 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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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를 도구 삼아, 수많은 도시의 이면을 살펴본 로버트 파우저의 새 책 우리에게 도시란 어떤 의미일까. 많은 사람이 삶의 터전이자 기반으로 삼는 곳이면서 동시에 ‘도시에서의 삶’이란 피곤하고 복잡한 일상의 상징이기도 하다. 그것뿐일까. 어떤 이들에게는 벗어나고 싶은 곳이면서 또 어떤 이들에게는 선망의 공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