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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터 2-10] 33화 : 투탄 춤이 시작되는 것이다

『마터 2-10』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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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에서의 대기 시간까지 합치면 서울 대전 화물열차의 소요시간은 여섯 시간이었다. 화물이 집중되는 성수기에 기관수는 대전에서 교대하지 않고 내쳐 부산까지 달리면 대개 열 두 시간에 주파할 수 있었다. (2019. 07.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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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널예스>에서 황석영 소설가의 신작 『마터 2-10』을 매주 월/수요일 연재합니다.

 

 

기차가 속력을 내기 시작하며 달려갈 때에 조수는 역원이 내주는 통패를 잡아채야 한다. 화부가 삽질부터 시작한다면 기관조수는 통패 낚아채기부터 일이 시작되었다. 아직도 일철은 통패를 팔뚝으로 받았는데 휘리릭 감기면서 날아든 원형 가죽 테가 팔뚝을 호되게 때렸다. 그때마다 가죽 채찍에 맞은 것처럼 벌겋게 상처가 나서 기관수들 사이에서는 고참이 되었느냐는 농담으로 ‘팔뚝에 줄기 섰냐’고 물었다. 일철이도 일 년이 못가서 통패를 손으로 날쌔게 낚아채게는 되었지만.


통패에서 허용된 구간은 일단 천안역까지이며 속칭 천안삼거리에서 충청도 내포평야 방향으로 갈리는 충남선 지선이 있어서 한숨을 돌리며 대기를 해야 하였다. 여객열차와 달리 심야의 화물열차는 일정한 속도로 내달리면서 작은 역마다 일일이 정차할 필요가 없었다. 오늘 미카 기관차가 달고 가는 화물차는 18량을 달고 있어서 좋은 속도를 유지할 수가 있었다. 화물차의 평균속도는 시속 20마일을 유지하니까 한 시간에 팔십 리 정도의 거리를 달려간다. 야근인데도 정거와 출발이 잦은 여객열차에 비해서 기관수의 피로도가 훨씬 덜한 것도 어찌 보면 단조로운 화물열차의 근무 조건 덕분이었다. 세 시간 반이면 천안에 도착할 것이다.


새로운 조원으로 편성하여 첫 운행을 시작하고 한 달쯤 지나자, 야마구치는 경성과 영등포 지역을 벗어나 안양 수원 지점에 당도하면 운전석에서 물러나 뒤쪽에 푹신한 방석을 얹은 낮은 의자를 놓고 차벽에 머리를 기대고 쉬었다. 그 대신 일철이 기관수 석에 앉아 운전대를 잡았다. 여객열차와 대륙행 기관차들은 거의 자동 급탄 시설이 된 신형 기관차들이었지만 간선의 화물기관차는 거의가 탄부와 화부가 직접 삽으로 석탄을 퍼서 불을 때는 구형 기관차들이었다. 탄부 김 군은 뒷전의 저탄고에 있지 않고 앞으로 나와 화구 앞에서 삽질을 했다. 대개 구간마다 연료의 량이 정해져 있어서 저탄고에서 갈탄을 퍼서 쌓아 두고 가끔씩 화구 안으로 던져 넣었다. 보일러의 증기압력을 일정한 수준으로 유지하려면 화력을 떨어트리면 안 된다.


화구 안은 마치 접시처럼 가운데가 평평하고 좌우 가장자리가 올라와 있어서 삽질을 할 때 오른쪽에 한번 뿌리고 왼쪽에 다시 뿌리고는 가운데로 깊숙이 삽을 밀치듯 흩뿌려 넣었다. 철도국에서는 견습 화부 탄부들에게 투탄 대회도 열어 상을 주고 격려하기도 했는데 인부의 대부분이 조선 사람이라 역시 노동에도 흥이 중요했다. 즉 춤동작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측면으로 서서 뒷전의 탄을 한 삽 푹 떠서 몸을 돌리며 왼쪽 오른쪽으로 넣은 뒤 화구 앞 정면으로 서며 깊숙이 흩뿌려 넣는데 한둘, 셋 넷, 다섯 여섯의 동작이 끈에 매인 듯이 일사 분란해야 되었다. 팔 다리에 힘을 빼고 어깨를 들썩이며 타령조의 장단을 맞추는 것이다. 오산 지경부터 서정리 지나 평택에 이르는 구간까지 완만한 비탈이 시작되는데 고개가 두 군데요 커브길이 두 군데였다. 그 다음 평택에서 천안까지는 철길이 곧장 직선으로 뻗어나가는 들판을 달리는 구간이라 다시 한숨 돌리는 것이다.


밖에는 초겨울 비가 추적이며 내리기 시작했다. 그쯤에서 야마구치는 천천히 의자에서 일어나 기지개를 펴고는 일철이를 밀어내고 자기가 운전대를 잡는데 한 달여가 지나고 조수가 그 구간을 제법 능숙하게 통과해내는 걸 보고는 뒷전에서 그냥 자고 있는 날이 많았다. 일철은 비탈에 들어서기 전에 줄을 당겨 기적을 울렸다. 그 소리에 기관수가 깨어났을 법 한데도 그는 모른척하고 눈을 감고 앉아 있었다. 일철이 김군에게 주의를 주었다. 


 “투탄 계속!”


김군이 흥얼거리며 신고산타령을 부른다. 투탄 춤이 시작되는 것이다.

 

 신고산이 우루루루 석탄차 떠나는 소리에 

 고무공장 큰애기는 반봇짐을 싸누우나
 어랑 어랑 어허이야 에헤야 디어라아
 모두가 내 사랑이로다
 어랑 어랑 어허이야 에헤야 디어라아
 모두가 내 사랑이로다

 

기차는 칙칙폭폭 증기를 내뿜으며 비탈로 오르기 시작하고 차츰 늦춰지는 속도가 사람이 뛰어서 기차에 오를 수 있을만한 속도가 되어간다. 이때 그는 가감기를 당기며 가속하는 것과 동시에 모래상자의 살포관을 여는 장치를 누른다. 눈이나 비가 오는 날에 바퀴와 선로 사이의 마찰력을 높이기 위해서 모래를 뿌리며 달리는 것이다. 비탈을 올라가면 완만한 경사는 다시 내리막길이 되기 마련이고 그때에는 가감기를 밀어서 평속을 유지하도록 한다. 기차가 커브를 도는 곳에서는 철로의 폭이 차츰 넓어져서 1435밀리 폭에서 1445밀리로 거의 10밀리가 늘어난다. 커브 바깥쪽의 동륜이 철로와 마찰하면서 내는 소리가 날카롭게 들린다. 이때에 달려 나가는 기차의 바퀴에서 갈려 나온 쇳가루가 바람에 흩날려 운전석으로 날아들기도 하는데 기관수들은 ‘장님 된다’는 말을 한다. 쇳가루가 망막에 들어와 앉으면 따갑고 눈물이 나서 한동안 눈을 뜨지 못하는데 서로의 눈을 까고 입김으로 불어주기도 하고 손수건에 물을 적셔 씻어내기도 한다.


비탈과 커브길 각각 두 군데를 가까스로 지나고 나면 평택에서부터 천안까지 곧고 평탄한 철길이 주욱 뻗어 나간다. 일철은 다시 줄을 당겨 기적 소리를 냈다. 천안역의 화물차 구역 선로로 향할 때에야 야마구치는 일어나서 운전대를 잡았다. 천안역에 기차를 정지해 놓고 세 사람은 대기실로 향한다. 여기서 한 시간쯤 대기하는 동안에 다른 여객열차들이 지나가고 간선으로 나가는 화물열차가 지나간 뒤에 다시 출발한다. 이제부터는 차령산맥을 지나고 충청남북도의 사이로 달려 전의 조치원 신탄진 지나 대전에 이르는 구간인데 곳곳에 터널과 교량이 있고 경사로가 많아서 야마구치가 직접 운전대를 잡는다.


천안에서의 대기 시간까지 합치면 서울 대전 화물열차의 소요시간은 여섯 시간이었다. 화물이 집중되는 성수기에 기관수는 대전에서 교대하지 않고 내쳐 부산까지 달리면 대개 열 두 시간에 주파할 수 있었다. 기관수들은 비수기에 여섯 시간 근무하고 대전에서 숙박할 수 있지만 바쁘면 부산까지 가서 숙박하고 하루 낮 동안 휴식하고는 당일 심야에 부산을 출발하여 서울로 돌아온다. 한 달에 절반쯤을 대전에서 묵고 나머지 절반은 부산에서 숙박과 주간 휴식으로 비교적 긴 시간 체류를 했다. 김과 이일철 야마구치 조의 세 사람에게 대전과 부산은 익숙한 지역이 되었다. 몇 달 안 가서 그들은 한 식구처럼 가까워졌고 기관수들 사이에 전해 내려오는 관습이나 범칙 따위의 일도 그대로 물려받게 되었다.


대전에서 하룻밤 자려면 역 구내의 합숙소에 가서 숙박하는데 구조는 간이 여인숙 정도의 시설로 일개 조에 다다미방 한 칸씩 배정되었다. 출입구 현관 옆에 변소와 욕실이 있으며 군대 막사와 같은 긴 목조건물 좌우로 방들이 연달아 있다. 야마구치가 처음에는 그들과 합숙소에서 함께 자더니 얼마 안 가서 외박을 하고 출발 시간 삼십 분 전에야 화물 홈에 나타나곤 했다. 그는 다른 노선의 기관수들과 둘 셋씩 동행하여 외박을 했었는데 어느 날은 혼자 남았는지 일철에게 은근히 말했다.

 

 “이군 나하고 밖에 나가지 않겠나?”


 “밖이라뇨?”


일철이 모른척하고 되물으니 그가 말했다.


 “이봐 우리 기관수는 배 타는 마도로스나 같다. 놀 줄도 알아야지.”


 “뭐하고 노는데요?”


 “따라오면 가르쳐 주겠다.”


야마구치는 호탕하게 웃으며 일철의 어깨를 두드렸다. 역전 광장으로 나서니 허허벌판 가운데 일본식 목조 가옥들이 빼곡히 들어선 중심가가 보였다. 야마구치가 역사 앞에 서서 두리번거리자 한 사내가 다가와 인사를 하고는 그에게 봉투를 하나 내밀어주고는 바삐 사라졌다. 야마구치는 광장 건너 맞은편 거리를 향해 걸어갔고 일철은 그의 뒤를 묵묵히 따라갔다.


 “여기가 인력거 대기소인데 시간이 늦어 한 대두 없구만.”


일철이 회중시계를 꺼내어 들여다보니 새벽 두 시가 넘었다. 그는 휘파람을 불며 오른편 길로 휘어져 걸어갔다. 네거리를 서너 차례 지나서 양쪽에 시멘트 기둥을 새우고 등을 달아놓은 대문 같은 곳에 이르러 일철을 돌아보며 야마구치가 말했다. 


 “대전 하루히초오가 여기다.”


대문은 그저 길가에 구역을 표시하기 위해 세워놓은 것일 뿐 안쪽에도 거리가 계속되고 있었고 비슷한 생김새의 이층집 난간마다 등이 줄지어 걸려 있었다. 그는 중간쯤의 여관 비슷한 집으로 들어갔고 당직을 서는지 문간의 작은 차실에서 쪼그려 앉아 졸고 있던 기모노 차림의 중년 여자가 화들짝 깨어 고개를 들었다. 


 “어서 오십시오, 야마구치님.”


 “다들 잘 있었나? 우리 안내 좀 해주게.”


여자가 그들을 응접실로 안내했고 머뭇거리며 기다리자 야마구치가 일렀다.


 “나츠카를 불러주게, 손님이 없다면 말이지.”


여자가 고개를 까닥하고 나가더니 젊은 일본 여자가 쟁반에 데운 사케를 담은 자기 병과 도토리 잔에 안주접시를 받쳐 들고 나타났다. 


 “뭐야 오늘은 평일이라 한산하구나. 오늘은 내 조수 이군을 데리고 왔다.”


야마구치가 말하자 나츠카는 무릎 꿇고 앉은 채로 허리를 숙여 인사한다. 


 “잘 부탁합니다. 나츠카라고 합니다.” 


 “그래 인사를 나눴으면 누구 하나 불러주지 그래.”


야마구치의 말에 여자가 쟁반 아래 가져온 얇은 앨범을 꺼내어 상 위로 내밀었다. 야마구치가 그 사진첩을 일철의 앞으로 밀어주며 말했다. 


 “그중에서 골라 봐라.”


 일철은 머뭇거렸다.


 “저어, 저는 피곤해서 술 한 잔 대작해 드리고 숙소로 돌아가겠습니다.” 


 “뭐야 사내자식이. 상관으로서 명한다, 오늘 우리는 여기서 숙박하기로 한다.”


두 사람의 대화를 가만히 듣고 있던 나츠카가 웃으며 말했다.


 “조선 아이도 있습니다. 거기 맨 뒷장에 보십시오.”


야마구치가 제 맘대로 사진첩을 집어 들더니 뒷장을 들쳐보았다. 


 “응, 여기 다섯 명이나 있잖나. 이중에서 하나 골라.”

철도원 삼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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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황석영(소설가)

「객지」 「삼포 가는 길」 『무기의 그늘』 『장길산』… 소설의 제목만 들어도 역사가 그려지는 한국의 대표 작가. 1943년 만주에서 태어나 4.19와 5.18, 방북과 망명, 수감을 거쳐 한국의 현대사를 온 몸으로 받아낸 시대의 증인이다. 2000년대 이후 장편소설 『오래된 정원』 『손님』 『바리데기』 『개밥바라기별』 『강남몽』 『낯익은 세상』 『여울물 소리』 『해질 무렵』 등과 자전 『수인』을 잇달아 펴내고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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