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오늘의 첫

‘당신의 관자놀이에 아직도 파닥이는 첫’

  • 페이스북
  • 트위터
  • 복사

누군가는 첫 고양이를 들였고, 누군가는 새로운 직장에 다니기 시작했다. 나는 최근 첫 클라이밍을 해냈다. 아직 첫이 남아있어서 기쁘다. (2019. 07. 19)

언스플래쉬.jpg
언스플래쉬

 

 

회사에 새로 인턴이 들어왔다.


다른 사람의 '첫'을 볼 때마다 나의 첫을 생각한다. 첫사랑, 첫 월급, 첫 술자리와 첫 모닝커피. 뭔가 두근거리는데 이 마음이 무엇인지 생각하기도 전에 도망가 버리는 것들. 빠르게 지나간 첫 들은 다른 처음으로 채워지고, 처음 만난 사람은 가끔 영영 만나지 못할 사람이 된다.   

 

당신은 사진첩을 열고 당신의 첫을 본다. 아마도 사진 속 첫이 당신을 생각한다. 생각한다고 생각한다.
김혜순,  『당신의 첫』  중 「첫」 일부

 

대학교 막학기 시절, 첫 면접은 지하철 종점에서 내려 버스를 타고 한참 들어간 가정집에서 이루어졌다. 나를 정희정 씨라고 발음하는 면접관을 만나 몇 마디를 나누다가, 인터뷰어인 면접관이나 인터뷰이인 나 둘 다 '아... 이놈(곳)은 글러 먹었다'라는 표정을 동시에 지었다. 암담했던 첫 면접의 추억.


첫 인턴을 지냈던 직장은 어땠는가. 면접 안내 메일에는 분명 정장이 아니어도 좋으니 단정하고 편한 차림으로 오라고 되어 있었는데, 면접장에 갔더니 모두 검은 H라인 스커트와 검은 정장 바지를 입은 채 구두코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정장 사이에 청바지가 끼면 아무리 깨끗한 청바지일지라도 금방 단정하지 못한 것으로 변한다. 누구도 나에게 뭐라고 하지 않았지만 면접 내내 안절부절못했다. 어떤 사람은 정장을 입고도 불안했는지 자기소개 시간에 "안녕하십니까! 생각은 빠르고 손발은 신중한 OOO입니다!"라고 했다. 아무래도 반대로 말하고 싶었던 것 같은데. 세상에는 준비하고 기다려도 안 되는 첫이 있다. 그다음 면접에는 그를 보지 못했다.


첫 직장의 기회는 어떻게 오나. 좋아하던 선배는 학교 교직원이 되는 게 꿈이어서 졸업한 뒤 대기업에 들어갔다. 교직원은 경력직만 뽑는다고 했다. 좋아하던 동기는 계약직을 전전하며 '안정적인 첫 정규직 직장'을 꿈꾸다 팀장 직책까지 올라갔다. 좋아하던 후배는 열심히 하면 정규직이 될 수 있을 거라고 믿었지만, 사실 나는 그 친구가 계약이 끝나면 떠나야 한다는 걸 미리 알고 있었다. 첫 자리가 늘 유지되지는 않았다. 처음 하는 사람에게 자리를 비워주는 사람이 되어야지, 말은 그렇게 하지만 늘, 여전히 다른 이보다 나의 첫이 첫 번째 자리를 차지한다.


'첫. 첫. 첫. 첫. 자판의 레일 위를 몸도 없이 혼자 달려가는'(「첫」 중) 손목으로 첫에 관해 생각한다. 김혜순의 시를 빌려 이야기를 꺼냈는데, 대학생 때 처음 만났던 시와 지금 시가 나에게 주는 형상이 달라져 있다. 흘려보낸 비관의 첫보다는 조금 더 환희의 첫에 발을 맞추고 싶어진다. 예전에는 첫이 ‘죽었다’는 것에 주목했으나, 지금은 ‘당신의 관자놀이에 아직도 파닥이는 첫’이 더 좋다.


저번 주에는 8년 만에 만난 친구와 8일 전 만난 것처럼 수다를 떨다 헤어졌다. "그럼, 40대 되어서 보자." 처음에는 지지고 볶던 사람들이 이렇게 담백하게 헤어지다니. 우리는 더이상 처음을 같이 보낸 사람들을 신경 쓰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8년 만에 누군가는 첫 고양이를 들였고, 누군가는 새로운 직장에 다니기 시작했다. 나는 최근 첫 클라이밍을 해냈다. 아직 첫이 남아있어서 기쁘다. 당신에게 나는 오래되었지만 여전히 새롭게 첫을 만들어내고 있다.

 

 

사진-두번째-1.jpg

첫 자세는 늘 우스꽝스러울 수밖에.

 

 

새삼스레 오늘의 첫을 도전한다. 모르는 사람에게 농담을 던지고, 처음 맞는 2019년의 여름밤을 보낸다. 다른 이들도 오늘의 첫을 맘껏 즐기길.

 

 

6126731.jpg

                                                              

 

 


배너_책읽아웃-띠배너.jpg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셨다면 아래 SNS 버튼을 눌러 추천해주세요.

독자 리뷰

(0개)

  • 독자 의견 이벤트

채널예스 독자 리뷰 혜택 안내

닫기

부분 인원 혜택 (YES포인트)
댓글왕 1 30,000원
우수 댓글상 11 10,000원
노력상 12 5,000원
 등록
더보기

글 | 정의정

uijungchung@yes24.com

당신의 첫

<김혜순> 저10,800원(10% + 1%)

80년대 이후 한국 시에서 강력한 미학적 동력으로 역할해온 김혜순 시인의 아홉번째 시집. 멈추지 않는 상상적 에너지로 자신을 비우고, 자기 몸으로부터 다른 몸들을 끊임없이 꺼내오는 시인의 시학은 독창적인 상상적 언술의 가능성을 극한으로 밀고 나가며, 언제나 자기 반복의 자리에서 저만치 떨어져 있다. 때로는..

  • 카트
  • 리스트
  • 바로구매

오늘의 책

나를 살리는 딥마인드

『김미경의 마흔 수업』 김미경 저자의 신작.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아왔지만 절망과 공허함에 빠진 이들에게 스스로를 치유하는 말인 '딥마인드'에 대해 이야기한다. 진정한 행복과 삶의 해답을 찾기 위해, 마음속 깊이 잠들어 있는 자신만의 딥마인드 스위치를 켜는 방법을 진솔하게 담았다.

화가들이 전하고 싶었던 사랑 이야기

이창용 도슨트와 함께 엿보는 명화 속 사랑의 이야기. 이중섭, 클림트, 에곤 실레, 뭉크, 프리다 칼로 등 강렬한 사랑의 기억을 남긴 화가 7인의 작품을 통해 이들이 남긴 감정을 살펴본다. 화가의 생애와 숨겨진 뒷이야기를 기반으로 한 현대적 해석은 작품 감상에 깊이를 더한다.

필사 열풍은 계속된다

2024년은 필사하는 해였다. 전작 『더 나은 문장을 쓰고 싶은 당신을 위한 필사책』에 이어 글쓰기 대가가 남긴 주옥같은 글을 실었다. 이번 편은 특히 표현력, 어휘력에 집중했다. 부록으로 문장에 품격을 더할 어휘 330을 실었으며, 사철제본으로 필사의 편리함을 더했다.

슈뻘맨과 함께 국어 완전 정복!

유쾌 발랄 슈뻘맨과 함께 국어 능력 레벨 업! 좌충우돌 웃음 가득한 일상 에피소드 속에 숨어 있는 어휘, 맞춤법, 사자성어, 속담 등을 찾으며 국어 지식을 배우는 학습 만화입니다. 숨은 국어 상식을 찾아 보는 정보 페이지와 국어 능력 시험을 통해 초등 국어를 재미있게 정복해보세요.


문화지원프로젝트
PYCHYESWEB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