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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더해져 더 행복한 '발레리나 김주원'
<월간 채널예스> 2019년 7월호
무대마다 마지막인 것처럼 서고 있어요. 저에게 주어진 축복 같은 시간, 그래서 지금 더 행복한 것 같아요. (2019. 07. 12)
여전히 춤을 추고 있는 발레리나 가운데 가장 친숙한 무용가는 김주원 씨가 아닐까 한다. 익숙한 무대는 물론이고 강단에서도, TV나 라디오에서도 다채로운 방식으로 발레를 비롯해 다양한 춤을 알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녀가 7월에는 ‘탱고발레 <3 Minutes>’ 으로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를 찾는다. ‘3 Minutes’은 한 곡의 탱고음악에 맞춰 남녀 파트너가 춤을 추게 되는 시간으로, 이번 무대에서는 여자들의 사랑과 이별 이야기를 열정적인 탱고음악과 춤, 노래로 표현한다. 연습으로 바쁜 일정에도 예스24와는 첫 인터뷰라 가장 먼저 만나고 싶었다는 김주원 씨를 서울 한남동의 한 카페에서 3분보다는 훨씬 길게 만나 보았다.
클래식 발레는 물론이고 서울시무용단의 춤극 <신시>, 댄스뮤지컬 <컨택트>, 뮤지컬 <팬텀>까지 다양한 무대에서 김주원 씨를 봐왔습니다. 다양한 장르의 춤을 추는 건 어떤 의미일까요?
춤은 몸의 언어를 가진 예술이잖아요. 몇 개 국어를 할 경우 자신을 표현하거나 다른 사람과 소통할 때 엄청난 무기인 것처럼 제 몸에 여러 언어가 담겨 있으면 관객들에게 훨씬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제가 춤을 추니까 연기할 때 손가락 하나로도 그 대사에 도움이 되는 몸짓을 할 수 있다면 뮤지컬이나 연극을 하고 나서는 클래식 무용을 하더라도 눈빛 하나까지 디테일하게 고민하게 되더라고요.
몸을 사용하는 데는 기본기가 탄탄하지만 각 춤의 특징 때문에 힘든 부분도 있을 텐데요.
탱고도 배워보고 한국무용, 현대무용도 하는데 가장 차이가 있는 건 한국무용인 것 같아요. 한국무용은 땅에 친숙한 춤이고, 발레는 중력을 거스르기 위해 만들어진 춤이잖아요. 하늘을 날고 싶은 욕망 때문에 토슈즈도 생겨났으니까요. 하지만 궁극적인 호흡은 같아요. 제가 15년 가까이 한국무용 하는 분들과 작업하고 있는데, 호흡이 긴 배우라는 말이 있잖아요. 춤도 끊고 맺는 부분이 거의 보이지 않게 하나의 동작처럼 끌고 가는 긴 호흡의 춤이 좋거든요. 탱고도 마찬가지고요. 어느 부분까지 가면 춤은 대부분 비슷한 것 같아요.
오래 전부터 탱고에 많은 관심을 보이셨잖아요. 발레와 탱고는 상당히 멀어 보이는데요.
중학교 때부터 탱고음악을 좋아했어요. 발레와 탱고가 직접적인 연결고리는 없겠지만, 탱고의 역사를 보면 그 안에 재즈도 있고 플라멩코나 왈츠, 발레 등 여러 장르의 춤이 담겨 있어요. 그리고 파트너십이 중요하죠. 탱고는 항상 두 사람이 추는데, 발레도 남녀 주인공은 항상 듀엣이 있거든요. 한국 사람들은 탱고를 싫어할 수가 없다고 생각해요. 이민자들의 설움과 한을 지닌 음악이고 춤이니까요.
그런데 몸을 사용하는 분들은 다른 직업군에 비해 신체적인 수명이 좀 짧잖아요.
많이 짧죠. 게다가 클래식 발레는 젊음의 예술이에요. 유리 그리가로비치 선생님이 그렇게 말씀하셨는데, 나이 드니까 정말 이해돼요. 물론 <지젤>이나 <로미오와 줄리엣> 등 드라마 발레는 어린 친구들이 표현하기 힘든 부분이 있지만, 어쨌든 발레는 수명이 매우 짧죠. 아주 특별한 발레리나들만 40대에도 춤을 추는 것 같아요. 저도 국내에서는 최고령이에요(웃음).
이미 닦인 길이 아니라 만들어가다 보니 굉장히 힘들고 외로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재밌어요. 이렇게 활동하는 것에 감사하고요. 나이 드는 게 좋아요.
무용하는 분이 나이 드는 게 좋다고요(웃음)? 날마다 한계를 경신하는 셈이고, 부상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감도 있을 텐데요.
물론 있죠. 그런데 해마다 느끼는 게 완전히 다르거든요. 서른다섯 살 즈음부터 현명하게 나이 드는 발레리나이고 싶었어요. 나이에 맞는 역할을 찾고 싶었고요. 2012년에 국립발레단을 퇴단했는데, 2010년부터는 <호두까기 인형>을 하지 않겠다고 했어요. 제가 빠지면 후배 3명은 키울 수 있으니까. 그렇게 키운 친구들이 신승원, 이은원이에요. 어린 친구들이 해야 할 예쁜 배역에서 빠진 대신 <마그리트와 아르망> 같은 작품을 만났죠. 새로운 안무가들을 만나면서 김주원만 출 수 있는 작품을 만들어 왔고요. 얼마나 좋아요. 발레단에 있을 때 1년에 150회씩 공연하다 보니 한순간도 최선을 다하지 않을 수가 없었어요. 최선을 다하면 자연스레 다음 스텝이 느껴져요. 모든 걸 쏟아 붓지 않으면 이 길이 맞는지 아닌지 모르는 것 같아요.
무대에서 춤을 추기 위해 포기한 부분, 후회되는 일도 있지 않을까요?
오히려 이기적이었던 것 같아요. 모든 걸 하고 싶은 일을 위한 컨디션으로 조절하고, 항상 제가 우선이었거든요. 하지만 사랑에서도 최선을 다해요. 최선을 다해 사랑하다 보니 누군가와 삶을 나눈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도 알았어요. 상대방을 충분히 배려하고 양보하고 많은 걸 할애해야 하는데, 저는 아직 일이 재밌고 즐거운 걸 보니 때가 아닌 것 같아요(웃음).
조심스러운 질문입니다만, 무대에서 내려오게 될 때는 언제일까요?
그건 모든 무용수들이 스스로 가장 잘 알 거예요. 더 이상 최상의 표현을 할 수 없고 제대로 된 감동을 전달할 수 없다면, 김주원에게서 볼 수 있는 춤을 더 이상 볼 수 없다면 저도, 관객들도 아실 거예요. 자기 관기를 열심히 하지 않는다면 당장 한 달 뒤가 될 수도 있죠. 사실 이제는 무대마다 마지막인 것처럼 서고 있어요. 언제 부상이나 사고가 있을지 모르니까요. 저에게 주어진 축복 같은 시간, 그래서 지금 더 행복한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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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태그: 발레리나 김주원, 탱고발레,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 무용
"공연 보느라 영화 볼 시간이 없다.."는 공연 칼럼니스트, 문화전문기자. 저서로는 <지금 당신의 무대는 어디입니까?>,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공연을 보러 떠나는 유럽> ,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축제를 즐기러 떠나는 유럽>,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예술이 좋아 떠나는 유럽> 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