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를 맞아들이는 리스트
성숙한 어른이 되기 위하여
할부 누적액을 확인하고는 아뿔싸 이러다 서른 살에는 거지꼴이겠다 싶었다. 그리고 월급이 들어오자마자 카드 대금으로 빠져나가는, 소위 월급이 통장을 스쳐가는 일은 그만하고 싶었다. (2019. 06. 14)
언스플래쉬
한 번쯤 온다는 삶이 재미가 없는 ‘인생 노잼시기’ 가 도래했다. 그럴 땐 친구들과 모여 ‘서른 살이라...’라고 낮게 읊조리면 삶이 조금은 재밌어 진다. 친구들의 반응이 뜨겁기 때문인데, 누군가는 격렬히 왜 그런 쓸데없는 소리를 내뱉느냐는 식으로 부정하고, 누군가는 그게 뭐가 대수냐는 듯한 표정을 짓는다. 나와 같은 12월생들은 태어난 지 한 달 만에 두 살이 됐다면서 생일이 지나지 않아 만 27세임을 구구절절 설명한다. 한술 더 떠, 나는 10개월을 못 채우고 나온 팔삭둥이인데 제대로(?) 태어났으면 빠른년생으로, 그러니까 학교는 일찍 들어가고 나이는 한 살 정도 어리지 않았겠냐며 푸념한다. 참 구질구질한 대화가 아닐 수 없다.
나이의 앞자리가 바뀌는 경험은 한 자릿수에서 10살로 갔을 때가 처음이겠지만, 그 기억은 희미하다. 10대에서 20대로 넘어갔을 땐, 더 이상 개학식도 종업식도 없는 게 섭섭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했을 땐 기뻤는데, 대학교 1학년 여름방학 때는 담임 선생님이라는 울타리와 반 친구들이라는 동지들이 없는 허전함을 느꼈다. 다른 나라도 20대가 특별하겠지만, ‘한국식 나이’로 나이를 세는 우리나라에서는 20대가 ‘더’ 특별하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문화 속에서 나고 자라면서, 29살엔 기분이 어떨까? 라고 어릴 때 생각한 적이 있더랬다. (아마 39, 49살도 이런 종류의 궁금함 내지 불안함을 느낄지도 모르고 말이다) 아쉬워 하는게 비정상은 아니다. 어쩌면 늙어감을 받아들이는 과정 중 하나일 거라고 생각한다.
올 연말에는 꽤 마음이 복잡할 것 같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반기를 보내야 나의 노화를 겸허히 받아들일 수 있을까? 정신적으로 물질적으로 성숙한 어른이 되어야 하지 않나 싶다. 꾸준히 도움이 되는게 없을까 생각해본다. 리스트 중 몇 개만 TMI로 공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신용카드없애기
첫 번째로 생각한 게 ‘신용카드 자르기’ 이다. 진짜 힘들다. 신용카드 쓴 기간이 길수록, 하루 이틀만에 정리되지 않는다. 할부 누적액을 확인하고는 아뿔싸 이러다 서른 살에는 거지꼴이겠다 싶었다. 그리고 월급이 들어오자마자 카드 대금으로 빠져나가는, 소위 월급이 통장을 스쳐가는 일은 그만하고 싶었다. 만기된 적금으로 신용카드 대금을 결제해버리면서, 두 장 중 한 장은 없앴고 나머지는 9월 초에 이별할 예정이다. 체크카드 현금만 쓰는 직장인으로의 전환을 바라본다.
#운전면허
앞에서 장황하게 얘기하더니 웬 면허냐 싶을 수도 있다. 대개의 사람은 수능이 끝나고 면허를 취득하거나, 대학교 방학 때 취득하는 게 일반적이지만, 난 아직도 없다. 자전거도 못 타는데 무슨 면허냐 싶었다. 그런데 서른 살을 핑계 삼아 부랴부랴 면허학원에 77만원이라는 거금을 냈다. 필기 합격했다고 친구들에게 전하니, 20살 같다고 칭찬해줬다! (해맑) 다음주부터는 기능 연수도 받고 면허증을 한 번에 따겠다고 다짐해본다.
#겸손과측은지심
앞서 말한 현실적인 얘기 말고 정신적인 얘기를 해보자면, 소양에 대해서도 생각한다. 종종 공공장소에서 만나는 비정상적인 어른들을 보며, 겸손과 측은지심을 아는 노인이 되자고 얘기한다. 나이가 들면서 쌓이는 지식이나 경험과 비례하여 겸손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또 남들을 생각할 때는 측은지심의 마음, 즉 어찌하지 못하는 마음을 가지고 생각해보면 이해 못할 일이 없다. 별일 아닌데 두 가지를 다 한다는 건 쉽지가 않고 말이다.
이런 리스트를 적어두고, 하나하나 해결해가다 보면 좀 더 덤덤하게, 어른인 척 30대를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좋아하는 것에는 아끼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