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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아웃] 제철이 없어지니 부지런히 드시라! (G. 박찬일 셰프)

김하나의 측면돌파 (87회) 『오늘의 메뉴는 제철 음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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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욕망이 제철을 자꾸 무너뜨리는 거죠. 그게 꼭 나쁜 것만은 아니에요. 어쩔 수 없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들죠. (2019. 06.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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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에 차진 방어 살 몇 점은 생선에 오른 기름이 무엇인지 알게 해준다. 소주라도 한잔 곁들이면 “한 시절 잘 살고 있네” 하는 말이 절로 나온다. 봄에 조갯국 한 대접을 마시다보면 한숨이 또 나온다. 이걸 천년 동안 먹을 수 없어서 나오는 탄식이다. 달아서 혀가 녹는다. 개나리 진달래가 피면 조갯국을 먹어야지 한다. 가을에 구워 씁쓸한 내장으로 술안주를 하면 그만인 꽁치는 어떤가. 목포까지 가서 먹는 겨울 홍어의 맛은 또 얼마나 쩌릿한가. 우리는 잘 모르고 살았지만, 제철의 순환으로 살찌고 미각을 응원했으며 그 힘으로 살아왔을 것이다. 그것이 우주의 일이기도 하다.

 

박찬일 셰프의 에세이  『오늘의 메뉴는 제철 음식입니다』 속의 한 구절이었습니다.


오늘 모신 분은 “글 쓰는 셰프”, “요리로 미학하는 셰프”입니다. ‘맛’과 ‘사람’을 기억하고, 그 둘이 버무려져 완성되는 ‘추억’을 이야기하는 작가죠. 『어쨌든 잇태리』 ,  『추억의 절반은 맛이다』 , 『백년식당』  ,  『뜨거운 한입』 ,  『노포의 장사법』 ,  『오사카는 기꺼이 서서 마신다』  등 푸짐한 음식 이야기를 내어주시는 분입니다. 박찬일 셰프님 모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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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하나 : 책을 열어보면 ‘봄날의 맛’, ‘여름날의 맛’, ‘가을날의 맛’, ‘겨울날의 맛’으로 각종 음식들이 나와요. 생선들도 있고, 산나물, 과일에 대한 이야기도 있는데...


박찬일 : 사실 고기도 제철이 있는데...


김하나 : 육고기요?


박찬일 : 예, 육고기도 제철이 다 있죠. 겨울이 맛있죠.


김하나 : 책에 육고기 이야기는 ‘돼지 김장’ 한 가지 빼고는 없죠?


박찬일 : 네, 안 썼어요. 지금은 고기도 계절감이 별로 의미가 없어져서 그렇죠. 사실 제철이라고 써놨지만 ‘제철이 점점 없어지니 얼른 부지런히 드시라’는 게 책에서 하고 싶은 이야기이기도 했어요(웃음).


김하나 : 제철이 별로 의미가 없어진 데에는 여러 요인이 있을 텐데요.


박찬일 : 음... 더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려는 많은 사람들의 노력이라고 할까요(웃음). 여름 딸기도 있잖아요. 그런데 딸기는 너무 더우면 안 되거든요. 그러니까 냉장고 이용해서 만들 수밖에 없어요. 우리들의 욕망이 제철을 자꾸 무너뜨리는 거죠. 그게 꼭 나쁜 것만은 아니에요. 어쩔 수 없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들죠.

 

김하나 : 이 책을 읽어 보면 묘사의 향연이에요. 입맛이 꼴딱꼴딱 넘어갑니다.


박찬일 : 별로 음식 맛을 기억하는 게 없으니까 자꾸 수사를 동원하는 거예요. 진짜 선수는 수사 없이 음식을 잘 전달한다고 생각하는데, 제가 좋은 음식을 많이 먹고 자라지 못해서 유년이나 소년기의 미각이 그렇게 좋지 않아요.


김하나 : 맛도 맛이지만, 질감 같은 걸 묘사하는 건 ‘어쩜 이렇게 표현을 하셨나’ 싶은 생각이 들어요. 특히나 외양 같은 걸 묘사할 때 멸치를 말리느라 바위들이 반짝반짝하다든가, 갈치에 은분이 쫘악 발려있어서 비춰보면 이마에 난 뾰루지가 보일 정도라든가, 그런 표현들이 있잖아요.


박찬일 : 뾰루지가 크면 정말 보입니다.


김하나 : 저는 그런 갈치는 본 적이 없는데, 수산 시장으로 막 올라온 갈치를 봤을 때는 감동이 있겠어요.


박찬일 : 제주 성산이나 한림, 서귀포항에 갈치배가 들어오는데, 배가 들어올 때는 이미 갈치가 죽어있거든요. 그래도 비춰봤을 때 뾰루지 큰 건 보일 정도의 선도라고 생각이 들어요. 배에서 막 잡았을 때는 정말 거울이 올라오는 것 같아요. 완벽하게 반짝거리는데...


김하나 : 갈치 부분의 묘사를 잠깐 읽어볼게요. 갈치 낚시하는데 따라갔다가, 남들은 부산스럽게 있는데 셰프님은 선실 앞에 들어가서 이불 덮고 자고(웃음), 그러다 소란스러워서 밖을 내다보셨잖아요.

 

이런 장관이 있나! 달빛이 교교한데, 낚싯대에 번쩍이는 불들이 매달려 하늘로 치솟는 게 아닌가. 바로 갈치였다. 얼굴이 비칠 듯한, 갓 포장을 벗긴 알루미늄 포일, 아니 거울 같은 비늘의 은갈치! 갈치는 오직 낚싯대에 매달려 있으면서 이미 생명의 마지막 순간에 가까이 다다르게 되는데, 거무스름한 내장이 비칠 듯 크리스털 같은 몸뚱아리가 퍼뜩인다. (190~191쪽)

 

김하나 : 저는 이 장면이 진짜, 갈치배를 같이 타고 있는 것처럼 눈앞에 보이는 것 같았어요.


박찬일 : 갈치가 비싸요(웃음). 저렇게 낚시로 잡으니까.


김하나 : 그러게요. 그물로 잡는 게 아니라 낚시로 한 마리씩 잡아야 될 테니까요.


박찬일 : 그물로는 큰 바다에 나가서 잡는데, 그걸 보통 먹갈치라고 합니다. 은분이 비늘의 일종인데 강하지 않으니까 그물에 치대면 쉽게 벗겨져요. 그래서 색깔이 조금 회색을 띄니까 먹갈치라고 불렀어요. 은갈치와 같은 종입니다.


김하나 : 그렇군요. 그런 생물들, 생선이라고 치면 어획을 하고 손보고 수확하고, 이런 여러 가지 과정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으신가요? 아니면 그런 기회들이 점점 생기니까 구경도 많이 하시게 된 건가요?


박찬 : 요리를 하고 음식을 먹다 보면 이것이 도대체 어디에서 왔는지 궁금하거든요. 그래서 공부를 하는 거고요. 공부가 깊지는 않아요. 제가 할 수 있는 선에서 겪어보는 거죠. 그런데 남들보다는 더 많은 기회를 가지고 있고 유통 같은 것에 대해서도 더 알게 되고요. 그런 이야기들이 유통보고서나 다큐멘터리 같은 데에는 건조하게 나오겠지만, 글로 푸는 경우는 적지 않나 싶어서 제가 쓰고 싶었어요. 우리 입에 들어오는 것들이 어떻게 들어오는지, 사람들이 조금 편한 방법으로 사람들이 알 수 있는 글을 써보자 생각했고 거기에 묘사들이 더해지는 거죠.


김하나 : 멸치는 정말 우리가 일상에서 쉽게 접하는, 너무 친근한 어종인데 누구 손에 잡혀서 어떤 경로를 거쳐서 오게 되는지 생각을 안 해봤어요. 그런데 이 책에 보면 지금은 외국인 노동자들이 어획을 하고 있고, 멸치 털기는 옛날에는 노동요 없이는 하기 힘든 작업이었다는 거잖아요.


박찬일 : 네, 멸치를 잡는 것보다 터는 게 훨씬 더 힘들다고 했어요. 잡는 거야 산란철이 돼서 떼로 오니까, 또는 방어나 돌고래한테 쫓겨서 오면 흐름이 다 보이고요. 오영수의 소설 『갯마을』에도 멸치 잡는 장면이 나옵니다. 시력이 아주 뛰어나고 오랜 경험을 가진 분들이 바닷가의 산에 올라가서 봅니다. 그리고 멸치가 온다고 소리치면...


김하나 : 진짜요(웃음)? 인디언 이야기가 아니고요?


박찬일 : 네, 동해에서도 멸치가 많이 잡혔거든요. 지금은 잘 안 잡히는 것 같은데, 남해 동해에서 다 그렇게 했어요. 지금은 멸치가 점점 가까이 오기 전에 미리 다 잡아버리죠. 그런데 예전에는 바닷가에서도 많이 잡았어요. 멸치를 해변으로 몰아서 그물에 걸고 끌어올려서 털죠. 그렇게도 많이 했었습니다. 기록 필름도 있고 글도 있어요.


김하나 : 상상만 해봐도, 마치 멀리서 먹구름이 오는 것처럼, 산 위에 올라가서 저기 멸치가 온다고 알려주는 거잖아요.


박찬일 : 네, 그렇게 합니다. 또는 배를 타고도 그렇게 해요. 요즘은 멸치를 잡을 때 어군탐지기를 많이 쓰지만 그 전에는 물의 흐름이나 바다색이 변하는 걸 봤어요. 고기떼들이 움직이면 바다색이 변하거든요. 또는 갈매기나 큰 고기들의 움직임, 돌고래가 치솟는 걸 보고 느낌으로 ‘아, 멸치가 이쯤으로 이동하겠구나’ 하고 멸치를 많이 잡고 그랬죠. 떼로 움직이는 고기들은 그런 감각들이 다 필요하죠.

 

김하나 : 멸치로 안초비를 만드는 것에 대한 이야기도 하셨죠.


박찬일 : 그건 제가 시실리의 식당에서 일할 때 배운 거예요. 그곳의 멸치는 한국보다 지방이 조금 적어요. 그래서 부패가 더디고 더 싱싱합니다. 시실리 사람들이 멸치, 정어리 요리를 진짜 좋아합니다. 흔하니까 많이 먹어서 좋아하는 거예요. 실은 소고기를 더 좋아할지도 모릅니다. 어쨌든 많이 먹고 흔한 음식인데 당연히 그걸로 안초비도 담그고요. 멸치젓갈 담그는 것하고 조금 다른 게, 필레를 떠서 담그는 경우가 많아요. 소금을 쳐서 나중에 간이 들면 기름에 재우고요. 아니면 내장을 제거하고 씻어서 통째로 소금에 재서 담그는 것도 있어요. 우리나라처럼요. 안초비라고 하면 예쁜 필레가 오일에 담겨있다고 생각하지만 우리나라의 멸치젓 같은 것도 있습니다. 그냥 멸치가 소금에 통째로 잠겨있어요. 실은 그걸 더 많이 써요. 모양 나는 건 요리로 많이 쓰고 양념으로는 조금 덜 쓰고요. 양념으로 쓸 때는 멸치 젓갈이 있어서 그걸 쓰죠.

 

김하나 : 그렇게 만든 안초비라도 요리 이름만 잘 지으면 된다고 하면서 예시를 써두셨어요.

 

‘어부가 오늘 새벽에 잡아온 싱싱한 멸치로 만든 수제 안초비 스파게티 2만 5천 원.’

정확히 말하면 이렇다.

‘외국인 노동자들이 남해바다에서 잡아서 트럭으로 수송한 후 주방장이 요리사들 닦달해서 담근 안초비……’ (37쪽)

 

박찬일 : 예, 그게 유머인데요. 아무도 안 웃더라고요(웃음).


김하나 : 저는 웃었는데요? 제가 뭐가 됩니까(웃음).

 

 

*오디오클립 바로듣기 //audioclip.naver.com/channels/391/clips/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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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 임나리

    그저 우리 사는 이야기면 족합니다.

    오늘의 메뉴는 제철 음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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