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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받지 못한 자신을 사랑하기 위해서
영화 <로켓맨>
사랑받지 못함을 극복하기까지 꽤 많이 돌아온 셈이나 그의 삶은 노래로 남았다. 그리고 사랑도.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배웠으니 모든 게 남은 셈이다. (2019. 06. 13)
영화 <로켓맨>의 포스터
어린 시절 사랑받지 못한 애정결핍으로 문제적 어른이 되는 사연은 현실적으로 흔한 편이다. 그런 사연을 들을 때마다 생각한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은 자신의 몫이나 사랑받지 못한 것은 자신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다. 이 사랑받지 못함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판타지 요소가 가득한 뮤지컬 영화 <로켓맨>은 세계적인 뮤지션 ‘엘튼 존’의 전기다. 그의 명곡들로 엮은 굴곡진 삶의 이야기가 펼쳐지는데, ‘사랑받지 못함’으로써 스스로를 사랑하지 못했던 엘튼 존의 고백록이기도 하다.
엘튼 존의 히트곡은 주연 배우 ‘태런 에저턴’이 뛰어난 가창력으로 재생했다. 태런 에저턴의 연기와 노래, 무대 장악력은 눈을 의심할 정도다. 아니, 저 정도라면 연기가 아니라 노래의 무대에서 살아야 하지 않을까. 엘튼 존의 무대를 재현하는 수준이 아니라 독창적이고 압도적인 힘으로 재창조한 셈이다. 피아노를 치다가 공중 부양하는 판타지 신에서는 내 몸이 따라 떠오르는 듯했다. 정말이지 그가 춤추면 몸이 들썩였고 그가 울면 울적함에 몸이 가라앉았다. 태런 에저턴, 엄청나구나.
<로켓맨>은 자연스럽게 <보헤미안 랩소디>를 떠올리게 한다. <보헤미안 랩소디>는 브라이언 싱어 감독이 중도 하차하고 덱스터 플레처 감독이 마무리했던 음악 영화. 바로 이 덱스터 플레처가 만든 영화가 <로켓맨>이고 엘튼 존도 제작에 참여했으니, 두 영화를 굳이 비교할 필요없이 훌륭한 뮤지션의 음악을 입체적으로 감상할 기회가 또 찾아왔으니 기쁘게 누리면 될 일이다. 20년 전 기획했으나 캐스팅이 변경되고 제작이 무산되기도 했던 <로켓맨>은 이렇게 무사히 내 앞에 당도했다.
‘로켓맨’은 1972년 엘튼 존이 작곡한 노래 제목이자 그의 별칭. 우주여행을 떠나 긴 시간 동안 외롭고 쓸쓸한 심정, 지구로 돌아올 날에 대한 불안과 그리움을 표현한 곡이다. 잦은 공연으로 각지를 떠돌아 뿌리를 잃은 듯한 뮤지션으로서의 삶을 녹여내 엘튼 존의 별칭이 되었다.
영화 초반부, 어린 엘튼 존(개명 전 ‘레지’라고 불렸다)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차이코프스키의 <백조의 호수>를 듣고 한 음 한 음 피아노를 친다. 피아노 신동이었던 것이다. 열한 살 때 왕립음악원에 장학생으로 입학했다.
영화 <로켓맨>의 한 장면
음악 천재의 유전자를 물려주었으나 차가운 아버지와 신경질적인 어머니의 애정을 갈구하며 ‘언제 나를 안아주나요?’를 읊조리던 어린 엘튼 존. 영국 뮤지션으로서 성공적으로 미국 무대에 데뷔하고 음반이 폭발적으로 팔리면서 20대에 이미 백만장자 청년이 된 엘튼 존. 그러나 내내 사랑 없는 삶의 공허를 견디지 못해 폭식증에 마약, 술, 쇼핑과 섹스 중독에 빠진다. 분노조절 장애도 겪는다. 동성애자로서의 자신을 어떻게 드러내야 할지도 모르는, 나약하고 불안한 정서는 분노의 불길에 기름을 붓는다.
뛰어난 피아노 실력과 작곡가로서의 면모, 소울 가득한 음색, 화려하고 특이한 무대 의상과 무대 연출력으로 엘튼 존은 세계의 음악 팬들에게 사랑을 받았으나, 그 사랑을 느낄 줄 모른다. 어린 시절의 애정결핍은 엘튼 존을 망가뜨렸다. 외로움과 온갖 중독에서 허우적대던 로켓맨, 엘튼 존은 치유시설에 들어오고 마침내 28년 만에 중독에서 자유로워진다.
연인이었던 매니저는 엘튼 존의 명성과 돈을 이용했고 이혼한 부모는 성공적인 뮤지션이 된 아들을 여전히 인정하지 않는다. 엘튼 존에게 형제애가 있다면 작사가 ‘버니 토핀’이다. <Your Song>부터 시작한 둘의 우정은 50년 넘게 지속된다. 각각 무명의 청년으로 음반기획사의 광고를 보고 만나 서로의 재능을 알아봤다. 그러나 버니 토핀은 점점 거물급이 되어가며 변해가는 엘튼 존을 감당하기 어려워한다. 그의 충고와 걱정은 엘튼 존에게 성가신 말들에 불과하고, 버니 토핀이 떠났다가 다시 엘튼 곁으로 돌아온 것은 역시 음악 때문이었다.
이 글을 쓰는 동안 엘튼 존의 노래를 반복해서 들었다. 좀처럼 질리지 않는 윤기 흐르는 음색은 영화 속의 나약하고 성질 고약한 엘튼 존의 모습을 지우기에 충분했다.
자살 시도까지 했던 엘튼 존이 중독을 극복한 것은 어린 시절의 자신을 끌어안으면서 가능했다. 그대로 끌어안기! 이후 에이즈재단을 설립하고 사회 공헌 활동을 시작했다. 동성애자 남편을 만났고 두 아들도 생겼다. 새로운 가족을 위해 공연에서는 은퇴했다. 자선 활동의 공헌을 인정받아 영국 여왕으로부터 기사 작위도 받았다.
사랑받지 못함을 극복하기까지 꽤 많이 돌아온 셈이나 그의 삶은 노래로 남았다. 그리고 사랑도.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배웠으니 모든 게 남은 셈이다.
‘로켓맨’은 우주여행을 마치고 자신의 삶으로, 좀더 나은 자신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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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태그: 영화 로켓맨, 사랑받지 못함, 내 자신, 애정결핍
<마음산책> 대표. 출판 편집자로 살 수밖에 없다고, 그런 운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일주일에 두세 번 영화관에서 마음을 세탁한다. 사소한 일에 감탄사 연발하여 ‘감동천하’란 별명을 얻었다. 몇 차례 예외를 빼고는 홀로 극장을 찾는다. 책 만들고 읽고 어루만지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