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연재종료 > 노명우의 니은서점 이야기
니은서점의 봄여름가을겨울
최소한 동일한 출발점에 설 수 있도록 해주는 것
책은 분명 상품이지만, 상품적 속성만으로 환원시킬 수 없는 문화적 가치를 갖고 있는 ‘문화적 예외’가 적용되는 가장 대표적인 상품이다. (2019. 06. 12)
기록적인 더위가 연일 기승을 부리던 2018년 7월 28일 도매상에 처음으로 주문한 책이 도착했다. 그 날 우리는 청소를 마무리했고, 도착한 책으로 빈 서가를 채운 후 맥주 파티를 하며 축하했다. 7월 30일 책 포장용 봉투가 도착하자, 재생용지 갈색 봉투에 정성스럽게 스탬프를 찍어 책 포장 봉투를 만들었다. 8월 3일 니은서점은 가오픈을 하며 손님을 맞이하면서 책의 생태계에 발을 들여 놓았고, 뜨거운 여름과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을 보낸 후 이제 두 번째 여름을 맞이하고 있다. 니은서점의 마지막 이야기는 서점을 열고 난 후에야 알게 된 책 생태계의 숨은 모습이다.
어떤 서점은 10% 할인 가격으로 책을 판다. 5%에 달하는 적립금도 지급된다. 그런데 동일한 책을 어떤 곳에서는 정가로 판매한다. 소비자는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지 내막은 모르지만, 본능대로 더 싸게 파는 곳에서 책을 사고 싶어 한다. 겉으로 보면 정가로 책을 판매하는 서점이 탐욕스러워 보인다. 하지만 내막을 들여다보면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독자는 소매점에서 책을 산다. 소매점은 도매상으로부터 물건을 공급받고, 출판사는 서점과의 직거래가 아닌 이상 도매상과 거래 한다. 소매상이 도매상으로부터 물건을 사오는 가격, 즉 정가 대비 도매가의 비율을 공급율이라고 한다. 정가 1만 원짜리 책을 도매상이 7천 원에 공급하면 이 책의 공급율은 70%이다. 정가와 도매가의 차액이 소매상이 기대할 수 있는 이윤이다. 즉 공급율이 70%일 경우 소매서점은 1만 원짜리 책을 정가에 판매하면 3천 원의 이윤이 생긴다. 만약 도서정가제가 허용하는 범위인 10% 할인 가격으로 판매하면 이윤은 2천 원으로 줄어들고, 5% 적립금을 적용하면 이윤은 1천 5백 원으로 감소한다. 온라인서점은 단 한권을 주문해도 무료배송을 해준다. 만약 어떤 작은 소매점이 정가의 70%에 물건을 도매상으로부터 공급받아서 10% 할인 판매하고, 5% 적립하고, 무료로 배송을 한다면 정가 1만 원짜리 책을 팔아서 소매점이 얻을 수 있는 이윤은 제로가 아니라 마이너스가 된다. 이래서 작은 동네서점은 하나둘 다 사라진 것이다.
어느 날의 일이다. 판매 장부를 정리하다가 그저 껄껄대며 웃을 수밖에 없었다. 처음엔 장부에 잘못 기입했는 줄 알았다. 정가 1만 4천 원짜리 책이었는데, 판매 이윤이 7백 원인 것이다. 당연히 그럴 리 없다고 생각했다. 계산 착오라고 여기고 장부를 검토하다가 뒤늦게 기막힌 사실을 발견했다. 워낙 좋아하는 작가의 신간이었기에, 도매상에 주문할 때 공급율을 확인하지 않고 그저 반가운 마음에 냉큼 주문했던 것이다. 뒤늦게 확인한 그 책의 공급율은 85%였다. 14,000원짜리 책을 니은서점은 도매상으로부터 11,900원에 사왔다. 그런데 10%를 할인하면 판매 가격은 12,600원이었다. 11,900원에 사온 책을 12,600원에 판매했더니 이윤은 그 차액인 700원에 불과했던 것이다. 조금은 허탈하고 조금은 어이없어 하며 껄껄대다가 대체 이 책을 온라인서점에선 얼마에 판매하는지 궁금해졌다.
온라인서점은 이 책을 12,600원에 판매하고 있었다. 그리고 어김없이 5%에 해당되는 적립금도 지급하고 있었다. 만약 온라인서점에 공급되는 공급율이 니은서점 공급율과 동일하다면, 온라인 서점의 이 책 판매이윤은 0원이 된다. 별도의 배송료도 받지 않는데, 이 책을 발송하는데 들어가는 배송 비용까지 감안하면 온라인서점은 손해를 보면서 이 책을 파는 것일까? 동일한 책에 대한 공급율이 다를 것이라고 합리적 의심을 할 수밖에 없다.
아마 출판사의 입장에서는 책이 많이 판매되는 온라인서점에는 보다 낮은 공급율을, 그리고 하루에 몇 권 팔지 못하는 니은서점과 같은 곳에는 높은 공급율을 적용하는 게 시장원리에 맞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책은 분명 상품이지만, 상품적 속성만으로 환원시킬 수 없는 문화적 가치를 갖고 있는 ‘문화적 예외’가 적용되는 가장 대표적인 상품이다. 책의 생태계는 시장 경쟁력이라는 원리만큼이나 ‘문화적 예외’에 대한 존중이 균형을 이룰 때 파괴되지 않고 지속가능할 수 있다.
한국어 시장은 소수의 작가를 제외하면 인세로 밥벌이를 할 수 없을 정도로 작은 시장이다. 그럼에도 수많은 작가들이 글을 쓴다. 베스트셀러 작가는 출판 시장을 만들지만, 베스트셀러 작가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좌절하지 않고 책을 쓰는 저자는 한국의 출판 시장의 다양성을 수호하는 소중한 존재이다. 대형 출판사는 시장을 주도하고 출판 산업을 성장시키는 동력이지만, 작은 출판사의 책들이 없다면 출판 생태계는 황량해진다. 니은서점과 같은 작은 서점이 전체 책의 판매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미약하다. 아니 보잘 것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시장적 역할은 미약하다 하더라도, 전국의 작은 서점이 각종 어려움 속에서도 수행하고 있는 문화적 기능이 과소평가될 이유는 없다.
한 가지 꽃만 가득한 들판은 전체주의를 연상시키지만, 다양한 꽃이 만발한 꽃밭은 아름답다. 책의 생태계는 종다양성이 유지될 때 건강할 수 있다. 책의 생태계를 지속가능하게 만드는 원리는 간단할 수 있다. 최소한 동일한 출발점에 설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다. 그 시작은 동일 공급율이었으면 한다.
베를린 자유대학교에서 사회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아주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로 일하고 있다. 이론이 이론을 낳고 이론에 대한 해석에 또 다른 해석이 덧칠되면서 사회로부터 고립되어 가는 폐쇄적인 학문보다는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에서 연구 동기를 찾는 사회학을 지향한다. 『세상물정의 사회학』, 『인생극장』 등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