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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충> 산수경석으로 굳어버린 신(新) 계급사회

인물의 계급 위치를 드러내는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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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충>에서 살기 위해 벌이는 투쟁은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즉 박 사장과 기택의 구도가 아닌 못 가진 자 기택 가족과 더 못 가진 자 근세 부부 사이에서 벌어진다. (2019. 06. 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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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기생충> 포스터


 

(* 결말을 포함해 영화 관람을 방해할 스포일러가 잔뜩 담겨 있습니다!)

 

주변뿐 아니라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도, SNS에서도 영화 관련이라면 온통 <기생충> 얘기다.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 프리미엄은 차치하고 극 중 특정 설정과 묘사의 어떤 부분들이 관객 개인의 사연과 공명하는 데가 있어 호응하는 글들이 다수를 차지한다. 박 사장(이선균)의 저택과 김 기사(송강호)의 다세대주택 반지하를 ‘선’으로 그어 계급을 구획해 풀어가는 이야기가 한국 사회를 적확하게 반영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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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기생충>의 한장면

 

 

실은 <기생충>에 등장하는 계급은 박 사장과 김 기사 외에 하나가 더 있다. 영화 개봉 전 봉준호 감독은 ‘부탁합니다’로 시작하는 편지를 보도자료로 공개하며 이 부분에 대한 스포일러 노출 자제를 당부했다. 개봉 이후 2주가 지났고 많은 관객이 보았기 때문에 이제는 밝혀도 괜찮을 것 같다. 그래도 아직 못 본 분들을 위해 ‘결정적인 스포일러들’이 있음을 알려드리면서 또 하나의 계급을 공개하면, 문광(이정은)과 근세(박명훈) 부부다.

 

글로벌 IT 기업 박 사장의 집에 운전기사로, 가정부로, 영어와 미술 과외 교사로 취업에 성공한 아빠 기택과 엄마 충숙(이정은)과 아들 기우(최우식)와 딸 기정(박소담)은 이 저택의 지하 벙커에서 4년 넘게 숨어 살아온 근세의 사연을 문광을 통해 목격하고는 경악한다. 기택과 근세는 대만 대왕 카스텔라 사업에 실패한 공통의 경험을 갖고 있어도, 기택은 박 사장을 위해 일을 하고, 근세는 빚쟁이를 피해 몰래 잠적하고 있다는 점에서 밑바닥 인생에서도 이들의 위치는 갈린다. 그러니까, <기생충>에는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와 더 못 가진 자의 계급이 등장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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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기생충>의 한장면

 

 

<기생충>은 창(窓)의 크기와 창의 있고 없음으로 극 중 인물의 계급 위치를 드러낸다. 김기영 감독의 <하녀>(1960)가 한국의 후배 감독들에게 미친 영향과 극 중 계단 이미지가 두드러진 까닭에 ‘계단 시네마’로 불리기도 한다. 난 이 영화의 메시지 상 ‘창문 시네마’가 더 적합하다고 보는 쪽이다. 실제로 <기생충>의 화면비는 창을 연상하는 2.35:1이면서 기택네 가족의 반지하 방에서 바라보는 좁고 긴 창문 이미지로 오프닝을 연다. 그와 다르게, 박 사장의 저택 창은 마당의 초록 풍경이 바로 눈앞에 보일 정도로 시원하게 나 있는 구조다. 기택보다 더 밑바닥인 근세는 지하에서 창은커녕 신선한 바깥 공기 한 번 맡아보는 것도 거의 목숨을 걸어야 할 형편이다.

 

창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다. 박 사장의 ‘넓은’ 창으로는 잘 가꿔진 정원이 햇빛 찬란한 위용을 드러낼 뿐 아니라 ‘상징적으로다가’ 미국의 역사까지 담아낼 정도로 쭉 뻗어있다. 정원 한가운데 아메리칸 원주민 텐트를 설치한 ‘인디언 오타쿠’이자 박 사장의 어린 아들 다송(정현준)이 이후 겪게 될 ‘피의 파티’까지 고려하면 박 사장의 저택 창문은 한국 내 계급 지위뿐 아니라 미국 건국 신화의 폭력의 역사까지 유추할 수 있다. 이렇게 스케일이 넓고 많은 정보를 획득할 수 있는 위치에 선 박 사장 부류는 아무래도 ‘좁은’ 창을 가진 세상의 기택들과 비교해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양도, 그럼으로써 갖게 될 기회의 폭도, 결과적으로 부와 명예를 획득할 확률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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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기생충>의 한장면

 

 

기택의 반지하 창으로 보이는 풍경은 시쳇말로 가관이다. 식사라도 할라 치면 취객이 창으로 다가와 방뇨를 해 식욕을 떨어뜨리지를 않나, 폭우라도 내리면 창을 때리는 빗소리 운운의 낭만이 다 뭐야, 침수된 집안에서 똥물을 역류하는 변기 위에 앉아 담배 한개비 꼬나물며 이놈의 집구석 신세 한탄 하는 수밖에는 없다. 그나마 방역차의 소독약 연기가 새어들어 집 안을 소독할 수 있는 창이 있는 걸 다행이라 여겨야 할까. 지하 벙커의 근세는 세상 돌아가는 사정과 연을 끊고 빚쟁이라도 피할 수 있는 걸 행운이라 생각한다. 퇴근하는 박 사장의 발소리에 맞춰 머리 위의 전등이 켜지도록 지하에서 스위치를 수동으로 조작해 ‘리스펙트!’ 나름의 감사와 존경의 표시를 해 보인다.

 

박 사장을 향한 근세의 태도는 가진 자를 바라보는 의외의, 아니 달라진, 아무튼, 기존의 통념과 배치하는 시선을 반영한다. <기생충>의 박 사장은 우리가 흔히 가진 자라고 할 때 못 가진 자를 안하무인으로 대하는 전통적인 재벌 이미지와는 다른 데가 있다. 무시의 태도가 없는 건 아니어도 선만 넘지 않으면 의식적으로라도 신사적으로 대하는 태도가 ‘신흥재벌’ 박 사장에게서 드러난다. 박 사장을 생각하는 근세의 찬양에 뒤질세라 기택과 충숙 또한 “박 사장네 사람들이 참 착해”, “응, 돈이 많으면 착해지는 거야” 그들 덕에 먹고 살 수 있는 걸, 영화의 제목대로라면 ‘기생’할 수 있는 걸 고마워하는 분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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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기생충>의 한장면

 

 

건강한 사회라는 건 못 가진 자가 가진 자에 의지해 품위나 격식과 관계없이 그저 생활을 이어가는 걸 감사히 여기며 살아가는 게 아닌 ‘공생’하는 가운데 모두가 존중과 인정 속에 만족하는 세상을 꾸려가는 것일 터. <기생충>에서 살기 위해 벌이는 투쟁은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즉 박 사장과 기택의 구도가 아닌 못 가진 자 기택 가족과 더 못 가진 자 근세 부부 사이에서 벌어진다. 이 구도가 지하 벙커에 숨어 사는 근세의 존재를 반전 효과로 삼은 영화의 터닝포인트보다 더 충격적으로 다가온다.

 

못 가진 자와 더 못 가진 자의 먹이사슬 구도는 봉준호 영화에서 익숙하다. <마더>(2009)에서 “항상 만만한 게 우리 도준이지” 몸은 어른이어도 말과 행동이 어눌한 아들 도준(원빈)의 살인죄 누명을 풀겠다며 엄마(김혜자)가 희생양 삼는 존재는 부모조차 없는 정신지체아였다. 못 가진 자와 더 못 가진 자를 위한 나라는 없다. 못 가진 자가 더 못 가진 자를 착취하려 드는 그들만의 혈투가 있을 뿐. 그래서 이들에게 주어지는 ‘산수경석 山水景石’이란 꿈을 꾼 대가로 선을 넘어 피를 봐야 하는, 현대 신(新) 계급사회를 단단한 돌에 압축한 고착된 풍경과 같다.

 

영화 초반, 기택의 반지하 집을 방문한 민혁(박서준)은 할아버지가 수집했다는 수석(水石) 산수경석을 친구 기우에게 선물하며 재운과 합격 운을 가져다준다고 덕담을 건넨다. 민혁의 말처럼 산수경석의 기운을 받은 덕분일까, 기택의 가족 전원이 박 사장 네 취업에 줄줄이 합격하며 재물(월급)까지 손에 쥐고 기우는 박 사장의 딸 다혜(현승민)와의 결혼을 꿈꾸기도 한다. 하지만 박 사장의 저택을 자기 집인 양 활개 친 대가로 ‘선을 넘으면서’ 기우는 사망 직전에 이르게 되고, 기택은 저택 지하벙커에서 숨어사는 신세로 전락한다.

 

기택 가족과 근세 부부 사이의 혈투 여파로 박 사장 네까지 피(해)를 보면서 저택은 잠시간 위치 변화, 아니 자리 변화의 시간을 갖는다. 박 사장 가족이 떠난 저택은 독일인 사업가의 소유로 넘어가고 근세의 자리는 밝힌바, 기택에게로 소유권(?)이 이전된다. 주인은 바뀌었어도 계급은 변한 게 없다! 오히려 근세와 문광 부부는 죽음으로 무의 존재가 되었고 기택의 반지하 주택은 기우와 충숙만이 남아 이전의 행복했던 가족의 모습은 사라져버렸다. 그 사이 산수경석은 한국 신 계급 사회의 ‘진경산수’를 선사하며 원래 있었던 (곳으로 추정되는) 자리로 돌아가 운명처럼 박혀버렸다. 그 위로 아빠를 위해 저택을 사고 싶다는 아들의 희망 고문 냄새만이 공기로 부유하며 이리저리 선을 넘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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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허남웅(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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