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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직이면, 단단해져요

탄력 있는 마음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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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인하단 말이 어울리는 나로 만들어 가기를, 언제까지나 움직이는 데 두려움이 없기를. (2019. 05.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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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ixabay

 

 

땀냄새가 나는 체육관에 들어선다. 거울 속의 내 모습을 응시하면서 섀도우 복싱을 하고, 샌드백에 힘껏 펀치와 킥을 날린다. 글러브를 끼고 있으면 감히 설렌다. 누구를 때리고 싶다거나 무언가를 잊기 위한 움직임은 아니다. 그저 내가 좀 더 단단해지는 것 같아서, 내가 생각지도 못했던 모습을 마주하고 있는 게 신기해서다.


킥복싱을 시작했다. 지인들은 의아해했다. 나도 어색해서 등록하기까지 꽤나 시간이 걸렸다. 스스로에게 변화를 주고 싶었던 게 가장 컸다. 퇴근 후 내 삶은 이 넷 중 하나다. 수영장에 가거나, 바이올린을 들고 연습을 가거나, 장을 보고 저녁을 만들거나, 누군가를 만난다. 이것만으로도 바쁘지만, 무언가 색다른 자극으로 나를 채우고 싶었다. 이제껏 내가 알아온 나라면 하지 않았을 것을 하는 건 어떨까 하고.


한 달이 지난 지금, 실은 매일 저녁 체육관으로 가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킥복싱이 재미있다. 거울 속의 나를 노려보는 게 아직 어색하지만, 그걸 보면서 원 투 펀치를 뻗어낼 줄 알게 되었고, 샌드백에 뻗어낸 킥은 빗맞기보다는 잘 맞는 때가 더 많아졌다. 몸도 마음도 강인한 사람이 되겠다는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자라난다. 스스로를 지킬 수 있겠다는 자신감도. 그것이 외부로부터든 내 마음으로부터든. 이상하게도 몸을 움직이고 단련할수록 마음도 단단해지는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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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카모메 식당’을 좋아한다. 식당의 주인 사치에가 하는 말들과 그녀의 일상을 보고 있으면 괜히 나를 다잡게 된다. 특히 저녁마다 무릎을 꿇고 기이한 합기도 체조를 하는 그녀의 모습에 반했다. “좋아 보여요. 하고 싶은 일 하고 사는 게.”라고 말하는 손님 마사코의 말에 “하기 싫은 일을 안 할 뿐이에요.”라고 답하면서 접시를 닦는 사치에. 이런 그녀의 강단은 저녁마다 단단한 마음으로 임하는 합기도 체조 덕분이 아니었을까. 영화 속 그녀의 행동들은 절제 되었지만, 주저함이 없다. 긴장이 되어 있다거나 힘을 주지도 않는다. 손님이 없어도 기죽지 않는다.


어떤 것에도 무너지지 않을 탄탄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 되고 싶다고 늘 생각해왔다. 하지만 나는 내 아픔이 가장 큰 아픔이었고, 그때마다 무너졌다. 그렇게 무너진 후에는 다른 사람들은 이런 날 뭐라고 볼지를 걱정했다. 나 자신이 무너져 있는데도 다른 사람들이 신경 쓰였다. 그건 내 마음도 물러 터졌기 때문이었다고, 이제서야 생각이 든다.


‘카모메 식당’의 사치에가 한 것처럼 나도 몸을 움직이는 단련의 시간을 거치게 되자 점점 내 마음에도 탄력이 생겨났다. 몸에 새로운 자극이 오면 이건 어제의 어떤 시간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라고 기뻐하게 되었고, 설사 부상을 입더라도 다음에는 이 자세는 조심해야겠다고 반추해본다. 근육의 움직임을 느낄 줄 알게 되었다. 이 생경한 느낌은 앞으로 더 발전해갈 나의 모습을 스스로 기대하게 만들기도 했다. 앞으로 닥칠 무엇에 대한 걱정일랑 미래의 내가 하겠지, 지금의 나는 내 몸에 집중할 테니까 하고. 그런 걱정이 줄어들자, 어떤 것에서 행복을 느끼는지 좀 더 자주 깨닫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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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곰곰이 생각해보면, 새에게는 즐거움이 가장 중요한 것 같다. 고뇌 같은 건 내던진 채 지금 당장 얻을 수 있는 행복을 찾아간다.


새들이 전혀 신경 쓰지 않는 '삶의 지혜'가 있다면 바로 금욕이다. 자연스러운 욕망을 따르며, 자신을 통제하지 않고, 욕구를 포기하는 데에는 관심도 없다.


우리가 아는 진실은 하나다. 새는 행복에 대한 질문을 던지지 않는다는 것. 새는 그저 행복을 경험할 뿐이다. 걱정하지 않을 줄 아는 것, 여기서 행복은 시작되는 게 아닐까?


-필리프 J. 뒤부아, 엘리즈 루소,  『새들에 관한 짧은 철학』  중

 

이제는 상처 받을 일이 생기더라도 마음의 탄성이 생겨 덜 힘들 거라는 확신이 든다. 잊어내야 할 일은 땀을 흘리면서 튕겨내면 그만일 테다. 내 마음은 내가 지키지 않으면 아무도 지켜내지 못한다. 그건 엄마도, 아빠도, 심지어 신도 할 수 없는 영역이다. 위로를 받고 치유 받는 것에도 한계가 있다. 단단한 몸이 되지는 못했지만, 땀 흘릴 줄 아는 몸을 만드는 건 털어내는 법을 아는 것과 같다는 걸 늦게나마 깨닫기 시작했다.


단단한 내가 되면, 나는 누구도 될 수 있고, 누구에게도 내 자리를 내어주지 않으면서도 스스로를 지켜낼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나의 모습을 잘 알게 된 사람이 되어서, 누군가가 필요로 할 때 그 곳에 서 있을 수 있다면 좋겠다. 안과 밖이 탄탄한 사람으로 어디서든 든든하게 있을 수 있도록. 강인하단 말이 어울리는 나로 만들어 가기를, 언제까지나 움직이는 데 두려움이 없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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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그림자로 인해 나는 나를 구경 할 수 있다. 그물처럼 서로의 그림자가 겹쳐 질 때 그곳은 우리의 집 이 된다. 아무나 밟고 지나갔으나 아무리 밟아도 무사해지는 집이 느리게 방바닥에서 움직인다.

 

구름 그림자가 방 안으로 들어오면 창 밖의 먼 곳에서 바람이 분다. 구름 그림자는 발끝부터 나를 지나간다. 날벌레 한 마리가 구름 그림자를 드나들고 먼 것들이 틈틈이 나를 뒤덮는다.

 

나는 오랫동안 있다.


그림자는 목숨보다 목숨 같다. 나는 아무것에나 그림자를 나눠 준다.
아무와 나는 겹쳐 살고 아무도 나를 만진 적은 없다.


-임솔아, ‘나를’, 『괴괴한 날씨와 착한 사람들』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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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나영(도서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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