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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저, 175년 만의 기회를 만난 여행자

『호모 아스트로룸』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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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년 8월, 토성은 그 거대한 중력으로 보이저 2호의 궤도를 바꿔서 다음 목적지로 향하게 했다. 아직 그 누구도 다가간 적이 없는 천왕성과 해왕성을 향한 여정이었다. (2019. 05.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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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SA/JPL 목성을 접근-통과(스윙바이)해 토성으로 향하는 보이저 상상도


 

1965년, 마침 매리너 4호의 화성 접근통과를 준비하느라 제트추진연구소는 아주 바빴을 무렵이었다. 근처에 있던 캘리포니아 공과대학 대학원생 게리 플랜드로Gary Flandro는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을 깨달았다. 바로 1983년에 목성, 토성, 천왕성, 해왕성이 전갈자리에서 사수자리에 걸친 대략 50도 범위에 늘어선다는 점이었다. 따라서 1976년부터 1978년 사이에 탐사선을 쏘아 올리면, 이 네 행성을 모두 순서대로 거쳐 갈 수 있었다.

 

열쇠는 ‘스윙바이swingby’라는 항법이었다. 스윙바이란 행성의 중력을 이용해서 우주선의 항로와 속도를 바꾸는 기술이다. 예를 들어 탐사선이 토성 뒤편을 스치듯이 지나가게 되면, 궤도가 앞쪽으로 휘어지면서 토성이 자전하는 운동에너지를 얻어 가속할 수 있다.


이렇게 스윙바이를 반복하며 목성, 토성, 천왕성, 해왕성을 순서대로 방문하면 된다. 플랜드로가 생각해 낸 이 여정은 ‘그랜드 투어Grand Tour’라고 불렸다. 한 번에 행성 네 군데를 거쳐 갈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직접 가려면 30년이나 걸리는 해왕성에까지 ‘고작’ 12년 만에 갈 수 있는 계획이었다.

 

플랜드로는 한 가지 더 흥미로운 사실을 알아냈다. 그랜드 투어는 행성 네 개가 거의 같은 방향으로 늘어설 때만 가능한 일인데, 이 기회는 무려 175년에 한 번뿐이었다! 1983년 이전에는 1800년경에 같은 기회가 있었다. 물론 그때는 탐사선을 쏘아 올릴 기술이 없었다. 다음 기회는 22세기에나 있었다다. 어쩜 이런 우연이 다 있을까? 마침 인류가 우주로 진출하고 행성 탐사선을 만드는 기술 수준에 도달했을 무렵에 175년에 한 번 있는 기회가 찾아오다니!

 

목성, 토성, 천왕성, 해왕성이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이 같은 방향에 늘어선 것은 물론 과학적으로 보면 그저 우연일 뿐이다. 하지만 나는 마치 행성이 인류를 부르고 있었던 것 같다. 어쩌면 우주는 인류가 우주를 더 깊게 이해하기를 바랐는지도 모른다. 행성은 고독하게 우주를 수십억 년이나 떠돌면서 계속 누군가가 찾아오기를 기다렸는지도 모른다. 고대인이 밤하늘의 별을 보며 느꼈던 ‘운명’이란 어쩌면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

 

 

태양계 너머로 향하는 보이저 2호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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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NASA/Caltech


 

지난해 말, 역사상 두 번째로 태양계를 벗어난 보이저 2호의 41년간의 탐사에 숨겨진 비밀이 있다?

 

1980년 11월에 보이저 1호는 토성과 타이탄의 조사를 성공적으로 마쳤으며, 보이저 2호는 토성 스윙바이까지 아직 9개월 정도 남은 상태였다. 이때 기술자들은 보이저 2호의 궤도에 관한 ‘비밀’을 밝혔다.

 

행성과 위성의 위치 관계상, 타이탄을 방문하면 천왕성과 해왕성으로는 갈 수 없다. 따라서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 1호의 궤도는 타이탄으로 가는 쪽이었다. 그런데 2호의 궤도는 둘 중 한 궤도를 택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토성에 접근하는 각도와 거리를 조정함으로써, 스윙바이 후 목적지를 변경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기술자들이 숨겼던 비밀이었다.

 

만약 보이저 1호가 타이탄 탐사에 실패했다면, 보이저 2호도 타이탄으로 향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1호가 타이탄을 충분히 탐사했으니, 보이저 계획의 본래 목적은 모두 달성한 셈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기술자들은 보이저 2호의 목적지를 천왕성과 해왕성으로 변경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밝혔다. 이미 보이저 1호가 이룬 압도적인 성과를 직접 확인한 상태였기에, 아무도 반대하지 않았다. 워싱턴의 관료들 또한 천왕성과 해왕성을 보고 싶어 했다. 그리하여 마침내 그랜드 투어로 가는 길이 열렸다. 아니, 보이저 1호가 2호를 위한 길을 열어 준 것이다.

 

보이저의 임무를 계획한 JPL의 기술자 로저 버크도 이 음모를 꾸민 사람 중 하나였다. 버크는 이렇게 말했다.


“이것은 관료주의에 맞선 기술자의 작은 승리라고 생각합니다. 전 인류의 영구적인 이익을 위한 일이었지요.”

 

1981년 8월, 토성은 그 거대한 중력으로 보이저 2호의 궤도를 바꿔서 다음 목적지로 향하게 했다. 아직 그 누구도 다가간 적이 없는 천왕성과 해왕성을 향한 여정이었다.



 

 

호모 아스트로룸오노 마사히로 저/이인호 역 | arte(아르테)
이 친절하고 호기심 넘치는 이야기꾼은 우주탐사 역사의 첫 장부터 아직 빈 종이로 남아 있는 미래의 우주탐사까지, 그 서사를 극적으로 그려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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