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랑주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 전, 읽어주세요”
40개 나라, 200개 기업, 1000개 가게에서 발견한 오래 사랑 받는 법칙, 『오래가는 것들의 비밀』
‘한국에 100년 가는 기업 100개 만들고 죽자!’라고 다짐하면서 책을 썼어요(웃음). 골목골목마다 100년 이상 된 가게들이 있고, 우리가 죽고 난 뒤에도 이 책을 읽은 사람들이 오래가는 것들을 만들어 나가는 풍경을 상상하면서요. (2019. 05. 16)
바나나 우유를 생각하면 ‘단지’ 모양 용기가 절로 떠오르고, 민트색 상자를 보면 티파니앤코가 연상된다. 시대를 넘나들며 오래 사랑받는 것들에게는 특별한 이미지가 있다.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그 이미지들은 수시로 바뀌는 유행에도 흔들리지 않고 세대를 이어간다.
상품의 운명을 바꾸는 비주얼 전략가, 이랑주는 지난 27년간 좋은 제품을 좋아 보이게 하는 일을 하면서 만난 수많은 사람에게 늘 이러한 질문을 들었다고 한다. ‘어떻게 하면 이 제품이 오래 사랑받을 수 있을까요? 오래도록 성공할 수 있는 비결이 있나요?’
자기 일에 애정을 가지고 삶을 개척해나가는 사람들, 새로운 사업을 구상하는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일의 ‘지속성’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다.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수십 개의 나라, 수백 개의 기업, 수천 개의 가게를 들여다본 그녀가 발견한 비법은 ‘다른 사람이 가는 길에 한 눈 팔지 않고, 나만의 본질에 집중하는 것.’ 그렇다면 어떻게 나만의 본질을 찾고, 그 가치를 고객에게 드러낼 수 있을까? 『오래가는 것들의 비밀』 에 이를 실현시킬 수 있는 법칙을 담았다.
100년 기업, 100개 만들고 죽자!
『좋아 보이는 것들의 비밀』 출간 이후 3년 만이에요. 그동안 어떻게 지냈나요?
책을 출간하고 2016년부터 2017년까지 되게 열심히 일했어요. 어려운 상황에 놓인 소상공인의 자활을 돕는 프로그램인 KTV <으랏차차 잘나가게>를 2년간 진행했거든요. 일주일에 한 편씩 촬영을 했고, 각 점포의 철학에 맞게끔 컨설팅을 해주는 작업이었는데 방송은 한국방송통신대상 우수상을 받았지만 저는 완전히 번아웃이 됐어요. 그동안의 에너지를 전부 쏟아냈던 거 같아요. 그래서 지난 한 해 동안은 휴식을 취하면서 내가 누군지,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지 고민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스스로에 대해 깊이 고민하다 보니 자기 자신에 대해 잘 알고, 자기다운 일을 오래 하는 게 중요하다는 깨달음을 얻어 『오래가는 것들의 비밀』 을 쓰게 됐죠. 이왕이면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사람들이 이러한 생각을 가지면 더 오래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어요.
우리나라에는 오랜 기간 같은 가치를 추구해 온 기업이나 브랜드, 노포 등이 무척 적은 편인데요. 왜 이렇게 오래가는 게 힘든 걸까요?
한국에는 100년 이상 된 곳이 8개 정도밖에 없어요. 가까운 일본은 3만 개가 넘거든요.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날까 생각해봤는데요. 전쟁을 겪으면서 많은 점포들이 사라지는 현실적 문제가 있었고, 무엇보다 애초에 오래가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인 것 같아요. 어떤 일을 오래 해 온 사람뿐 아니라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사람들도 반짝이는 트렌드나 타인의 경험을 쫓아가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러니 대부분의 가게와 상품들이 찍어내듯 비슷해질 수밖에 없는 거죠. 이제 사회적 분위기가 바뀌어야 할 때라고 생각해요. 그 바람을 담아서 27년간 쌓아온 제 노하우를 이 책에 다 풀어냈어요. 그러다보니 제가 운영하는 아카데미의 핵심 콘텐츠를 전부 넣어야 해서 처음에는 출판사 대표님께 “이거 다 나가면 전 뭐 먹고 살아요”라며 하소연하기도 했는데(웃음) 생각해보면 제가 배운 것을 타인에게 전해줬을 때, 그게 오히려 저에게 좋은 일로 돌아왔던 것이 그동안의 제 삶이었던 거 같아요. 그래서 아낌없이 모든 노하우를 방출했습니다. 이 책이 우리나라에도 100년 가는 것들을 만드는 데 보탬이 되길 바랄 뿐이에요.
신간을 출간할 때마다 반응이 좋아요. 책의 비주얼이나 구성 등의 작업에도 참여를 하는 편인가요?
『오래가는 것들의 비밀』 을 기획할 당시에 출판사 대표님과 함께 책에 등장하는 ‘6가지 질문으로 만드는 개념설계(115쪽)’를 해봤어요. 이게 어떤 일을 구체화시키는 데 정말 도움이 되거든요. ‘1. 이 책은 어떤 책인가? 2. 우리의 독자는 어떤 사람들인가? 3. 우리의 독자는 무엇을 불편해하는가? 4. 그럼 우리는 무엇을 책에 담아야 하는가? 5. 그 불편함을 해결하는, 우리는 무엇을 하는 사람들인가? 6. 앞으로 우리는 어떤 이름으로 불리고 싶은가?’라는 6가지 질문에 대한 대답을 찾아나가는 과정을 거쳐 책의 구성을 완성했죠. 그래서 구체적인 저의 노하우를 담을 수밖에 없었어요. 시중에 출간된 수많은 경제경영서에서 ‘공간은 경험을 파는 곳이다’ ‘본질을 찾아야 한다’는 이야기들을 하고 있는데, ‘그걸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는 독자의 고민에 대한 답은 빠져있었거든요. 이걸 채워 넣지 않으면 다음 질문으로 넘어갈 수가 없고, 결국 이랑주다운 책을 만들 수 없겠다 싶더라고요. 그래서 ‘한국에 100년 가는 기업 100개 만들고 죽자!’라고 다짐하면서 책을 썼어요(웃음). 골목골목마다 100년 이상 된 가게들이 있고, 우리가 죽고 난 뒤에도 이 책을 읽은 사람들이 오래가는 것들을 만들어 나가는 풍경을 상상하면서요.
‘나’를 알아야 오래 갈 수 있어요
나만의 가치를 가지고 오래 성공하는 비법으로 ‘7가지 법칙(1000개를 상상하기, 시간을 빨리 쌓기, 자기를 표현하는 상징 찾기, 무의식까지 설계하기, 내 제품의 고향을 찾기, 처음 본 이들을 환호하게 하기, 촘촘하게 스며들기)’을 공개했는데 이중 가장 강조하고 싶은 법칙이 있다면요?
‘자기를 표현하는 상징 찾기’의 비법인 ‘복숭아에 대해 30초 동안 30가지 말하기’ 부분이에요. 생각해본 적이 없는 것에 대해 자신의 시각으로 무언가를 관찰하고 표현하는 동안 뇌가 말랑말랑해지거든요. 그 이후에 자신의 일을 대입해 보고, 그 일에 관련된 언어가 마를 때까지 한 번 적어보세요. 그 과정에서 나와 내 일에 대해 제대로 알게 되고, 오래갈 수 있는 방법을 깨닫게 돼요.
얼마 전에 남편 친구가 시장에 국수가게를 열었거든요. 그런데 그분은 아침에 일찍 못 일어나는 스타일인 거예요. 국수가게는 꼭두새벽부터 나가서 일을 해야 하는데, 그런 고민 없이 재료비가 적게 들고 쉽게 할 수 있을 거라는 말만 듣고 쉽게 가게를 차린 거죠(웃음). 스스로에 대해 잘 모르는 채 어떤 일을 시작하면 이런 문제가 생겨요. 그래서 퇴사를 마음먹었거나, 새로운 일을 구상하고 있는 분들이 계시다면 먼저 이 책을 꼭 읽어보시면 좋겠어요. 나는 어떤 사람인지, 내가 진짜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 파악한 다음 앞으로의 길을 계획하는 것과 무작정 새로 시작하는 것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으니까요.
사업을 통해 자신이 추구하고 싶은 가치, 본질은 찾았지만 이를 효과적으로 시각화하는 데 서툰 이들도 많을 것 같아요. 비주얼에 대한 고민은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요?
자신이 정의하는 가치 그대로를 비주얼로 만들면 쉬워요. 예를 들어 ‘나는 없는 책이 없는 서점을 만들 거야’라고 생각한다면 빈틈없이 책이 빽빽한 풍경을 만들면 되겠죠. 지금 인터뷰를 하고 있는 장소인 ‘아크앤북’은 아트와 북을 결합한 공간이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그 컨셉에 맞는 고풍스럽고 오래된 서점의 감성이 아치형 북터널이나 짙은 고동색 서고 등의 인테리어에서 드러나고 있어요. 만약 ‘로맨틱한 서점’을 만드는 게 꿈이라면 이런 비주얼로 공간을 구성하는 건 어울리지 않을 거예요. 그땐 핑크, 골드, 블링블링한 POP 등을 활용해야겠죠. 이렇게 자신이 추구하는 본질을 한 줄로 적으면 그게 바로 비주얼과도 연결돼요. 그래서 저는 디자이너들에게 항상 그림을 그리기 전에 쓰는 일부터 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보통 디자이너들이 디자인을 할 때, 핀터레스트 같은 이미지 저장창고에서 예쁘고 감각적인 이미지를 골라내는 일부터 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런데 추구하고자 하는 비주얼을 글로 정의할 수 없다면 결국 유행하는 것을 따라갈 수밖에 없어요. 구체적이고 일관적인 비주얼을 완성하려면 일단 쓰는 작업부터 해야 해요.
그래서인지 우리나라는 어떤 풍의 비주얼이 유행하면 금세 비슷비슷한 모습을 띤 수많은 것들이 생겨나요. 브랜드 이미지, 상품, 공간 등 모든 분야에서 그렇죠.
맞아요. 책에도 ‘가짜 빈티지를 만들지 마라(53쪽)’고 쓴 것처럼, 우리는 복고풍까지 흉내를 내죠. 레트로가 각광받는 건 긴 세월 동안 쌓인 그만의 특별한 가치가 있기 때문이에요. 오래된 것들을 아무리 흉내 내서 잘 만든다 하더라도, 결국 외면 받을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어요. 진정으로 좋은 비주얼은 본질을 드러내는 데서 나오거든요. 그게 사람들 뇌리에 오래 남는 것이고요. 외국에 여행을 가면 큰 점포와 작은 점포가 촘촘히 맞물려 하나의 거리가 완성되는 모습이 무척 아름다운데 우리나라는 커다란 프랜차이즈만 가득한 곳이 많아요. 큰 인기를 끌었던 가로수길이 이렇게 침체된 것도 그 때문이죠. 기업 운영도 마찬가지예요. CEO가 바뀌면 이전에 가지고 있던 기업의 좋은 역사와 전통까지 싹 바뀌곤 하잖아요. 또 CEO가 조찬모임 등에서 좋은 내용을 듣고 오면 회사가 추구하는 가치와 상관없이 직원들에게 이를 적용해보라고 지시하곤 하죠. 그럼 직원들은 혼란스러워져요(웃음). 누군가의 좋은 철학, 방법을 찾아 따라하는 것보다 본인이 어떤 철학을 가지고 회사를 운영할지 구체적으로 생각하는 게 선행되어야 오래갈 수 있어요.
직접 컨설팅했던 곳 중, 자신의 가치를 찾아 성공한 변화가 돋보이는 사례가 있나요?
책에 등장하는 내용인데, 꽃집을 운영하는 분이 있었어요. 본인은 프로방스 풍 꽃집을 운영하고 싶은데, 주변의 말에 휩쓸려 정체성을 잃어버린 상태였죠. 요즘 토분이 유행이라고 하니 토분을 몇 개 가져다 놓고, 라탄이 유행이라고 하니 라탄바구니를 몇 개 가져다 놓고 해서 작은 가게 안에 물건은 넘쳐나지만 특색은 전혀 없었어요. 내가 누군지 알고, 추구하고 자 하는 게 명확해지면 주변의 조언에도 흔들리지 않을 용기와 자신감이 생기는 데 ‘어떤 꽃집을 하겠다’는 구체적인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어려움을 겪었던 거예요. 지금은 프로방스풍의 꽃집으로 완연히 바뀌어서 장사가 아주 잘되고 있어요. 스타일이 확고해졌기 때문에 이를 좋아하는 고객들이 계속해서 가게를 찾아오니까요.
실패하는 이들이 공통적으로 저지르는 실수가 무엇인가요?
사실 이 책을 쓰는 직접적인 계기가 된 친구가 있어요. 작년 10월쯤 큰 박람회가 있어서 몇몇 지인들과 함께 프랑스 파리에 갔는데, 일행 중 우리와 어울리지 못하는 친구가 한 명 있었어요. 말 한 마디 없이 늘 구석에 앉아있던 친구였는데, 일정의 마지막 날 펑펑 울면서 “누나 덕분에 내가 실패한 이유를 알았다”며 고맙다고 하더라고요. 사업을 하다가 퇴직금은 물론이고 결혼자금까지 몽땅 잃은 상태였는데, 그동안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몰랐고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쉽게 돈을 벌려고 했었다는 거예요. 그런데 10일간 저와 함께 다니면서 제가 하는 이야기를 듣고 깨달음을 얻었다고 하더라고요. 실제로 이렇게 사업을 시작해서 실패한 사람들이 너무 많아요. 덕분에 27년간 쌓인 내 노하우를 사람들에게 꼭 나누어야겠다고 생각하게 됐죠. 그 친구가 만약 지난 3년간 착실히 사업을 다졌다면 앞으로 30년간 무탈하게 일을 할 수 있었을 거예요. 그런데 3개월도 고민하지 않고 자기 사업을 시작했기 때문에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게 됐어요. 결국 자기를 제대로 알고 시작하는 것만이 오래 성공하는 유일한 비법이에요. 초반에 빨리 가려고 하는 건, 오히려 느리게 가는 길인 거죠.
당장 장사가 되지 않으면 주변 이야기에 흔들릴 수밖에 없을 텐데요. 이런 분들에게 조언해 주실 말이 있을까요?
앞서 제가 책을 기획하면서 했던 ‘6가지 질문으로 만드는 개념설계(115쪽)’를 해보시길 추천해요(웃음). 그럼 ‘내가 처음에 이 마음으로 장사를 시작했지’라는 걸 다시 깨닫게 될 거예요. 오늘 아침에 소상공인들을 돕는 한 센터의 센터장님이 『오래가는 것들의 비밀』 을 읽고 장문의 문자를 주셨어요. 소상공인들에게 빛이 되는 사람으로 살고 싶어서 20년간 이 일을 했는데, 최근 매너리즘에 빠졌다가 책을 읽고 정신이 번쩍 드셨대요. 그러면서 소상공인들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 지 다시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다고 하시더라고요. 이렇게 20년간 한 길을 걸어온 사람들도 때로는 흔들려요. 그게 당연한 거예요. 흔들리는 진통이 있어야 흔들리지 않는 전통을 낳을 수 있거든요.
기억에 남는 독자의 피드백이 있나요?
엄마가 빵집을 운영하고 있는데, 그 가게를 물려받고 싶은 딸이 보내준 메시지가 있어요. 제 책을 읽고 난 뒤 손님들에게 우리 엄마의 빵집이 얼마나 좋은 빵집인지, 어떤 재료를 쓰고 얼마나 정성껏 만드는 빵인지 알려주는 게 부족했기 때문에 장사가 잘 안 되고 있었다는 걸 알았대요. 그래서 책에 쓰인 노하우를 보며 빵 진열을 바꾸고, 빵에 대해 안내한 메모 등을 직접 사진으로 찍어 보냈더라고요. 그분의 노력이 담긴 사진을 보고 정말 감동받았어요. 책 쓰길 정말 잘했구나 싶었어요.
요즘은 스스로가 상품이 되어 일하는 ‘1인 기업’이 무척 많은데, 일하는 사람으로서 오래 기억에 남고 강한 인상을 주고 싶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특정한 이미지를 가진 사람을 손꼽을 때 떠오르는 사람으로 ‘스티브 잡스’나 ‘앙드레 김’이 반드시 순위 안에 있어요. 두 사람의 공통점은 자신만의 스타일을 가졌다는 거예요. 그들은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정확히 알았고 이를 비주얼로 나타내는 데 전략적이었어요. 스티브 잡스와 앙드레 김은 살아있는 동안 계속 같은 스타일의 옷을 입었잖아요. 이렇게 자기가 추구하는 이미지를 찾았다면 일관성 있게 밀고 나가는 게 중요해요. 자신을 표현하는 데 적합한 컬러나 아이템을 먼저 찾은 뒤, 끊임없이 그걸 노출시키는 거죠. 예를 들어 ‘나는 따뜻한 영업사원이 되겠다’는 포부가 있다면 붉은색을 자신의 명함, 스카프, 고객에게 주는 선물의 리본 등에서 반복적으로 사용해 보세요. 그럼 사람들은 자연스레 그 이미지로 기억하게 되거든요.
상품의 운명을 바꾸는 여자
취직해 일을 하면서 비주얼머천다이징에 대한 공부를 시작했다고 알고 있어요. VMD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요?
처음 이랜드에 취직해서 이 분야에 대해 처음 알게 됐는데, 일을 하며 너무 재미있었어요. 이후 현대백화점에 입사해 일하면서 본격적으로 비주얼머천다이징을 공부해야겠다고 생각했죠. 백화점 하나를 짓고 오픈하는 데 7억여 원이 드는데, 보통 이걸 1년 안에 매출로 만들어야 해요. 그럼 층별, 브랜드별로 달성해야 할 하루 매출이 정해지는데 아무리 해도 매출이 안 오르는 거예요. 그래서 독일의 유명한 비주얼 전략가를 모신 적이 있어요. 그분이 일주일간 백화점을 돌면서 빛의 양을 체크하고, 동선을 파악하는 등의 작업을 거쳐 컨설팅을 해주는 데, 그 이야기를 듣는 게 너무 재미있더라고요. 그리고 조언에 따라 조금씩 요소를 바꾸어보니 고객들이 정말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했어요. 매출도 따라서 쑥쑥 올랐고요. 그 광경을 보며 ‘이게 앞으로 내가 해야할 일이다’라는 생각이 들었죠. 그때부터 공부를 시작해 비주얼 전략을 바꾸었을 때 매출에는 어떤 변화가 있는지 2년간의 테스트를 거쳐 석사논문을 발표했고, 비주얼전략가가 되기 위해 마케팅, 심리, 행동설계 등을 차례차례 공부했어요. 아마 디자이너로서 테크닉적인 부분만 배웠다면 이런 책을 쓰진 못했을 것 같아요.
국내 최초 VMD 박사로 업계를 개척해왔는데,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와 현재 시장의 변화를 몸소 느낄 것 같아요.
그럼요. 앞으로의 고객들은 제품 뒤에 숨은 기업의 철학이나 본질에 대해 더욱 관심이 커질 거예요. 결국 이를 비주얼로 잘 표현한 기업만 살아남을 테고요. 이제 제품의 성능 자체는 평준화가 됐거든요. 10만 원짜리 가전제품이나 100만 원짜리 가전제품이나 사용하는 데 큰 차이가 나는 건 아니에요. 과거에 물건이 ‘사치’였다면 이제 ‘가치’의 시대로 갈 수밖에 없는 거죠. 옛날에는 명품백을 드는 게 멋스럽고 나를 나타내는 수단 중 하나였다면, 요즘은 친환경 에코백이나 버려진 소재를 활용해 만드는 가방을 들며 자신이 추구하는 철학을 표현하는 이들이 늘고 있잖아요. 수많은 물건이 새로 만들어지고 버려지며 환경을 오염시키는 상황에서 소비자들이 자정작용을 하고 있는 것 같아요. 이왕 살 거라면, 더 가치 있고 좋은 의미의 제품을 선택하고 싶은 거죠. 특히 밀레니엄 세대로 갈수록 이런 현상은 더 두드러져요. 마치 기성세대들이 경제적 가치에만 기반해 만든 제품들에 경고를 주고 있는 것 같아요. 저는 이 변화가 너무 좋고, 앞으로도 이러한 소비가 더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일이 아닌 개인적으로 물건을 구입하거나 어떤 브랜드를 선택할 때도 신중을 기하는 편인가요?
저 ‘아름다운 가게’ 자주 이용해요(웃음). 어떤 물건이 필요하면 남편과 꼭 이야기를 해서 ‘이게 우리에게 왜 필요한가’를 꼼꼼히 따져보고 진짜 있어야 하는 물건일 때만 구입하는 편이고요. 최근에도 아름다운 가게에서 3천 원짜리 스탠드를 사와서 아주 잘 쓰고 있어요. 제가 백화점에서 오래 근무를 했잖아요. 백화점은 8월이면, 매출이 없는 브랜드를 퇴출시키고 새 브랜드가 입점하는 리뉴얼 작업을 하는데요. 그때마다 인테리어를 새로 해요. 또 3년만 흘러도 유행이 지났다는 이유로 비싼 집기와 진열대들을 다 버리죠. 멀쩡하고 좋은 물건들이 쉽게 버려지는 걸 볼 때마다 너무 아까웠어요. 그래서 내 삶에서라도 물건을 오래, 소중히 쓰는 실천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죠. 물론 제가 정말 좋아하는 것을 할 때는 과감히 돈을 쓰는 편이에요. 옷이나 가방 같은 브랜드에는 큰 관심이 없지만, 좋은 음악을 듣거나 맛있는 커피를 마시는 걸 좋아하기 때문에 그런 부분에 대한 투자는 아끼지 않아요. 물건보다 경험에 더 소비를 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지금까지 수많은 기업, 소상공인들을 컨설팅 해왔는데, 앞으로의 목표가 무엇일지 궁금해요.
요즘 ‘인생에 목표가 있어야 할까?’라는 생각을 많이 해요. 목표를 정하니까 그대로 살게 되는 느낌이 들어서요. 예전엔 돈 많이 벌고, 해외여행도 종종 다녀야 행복한 줄 알았는데 그건 사회가 만들어 둔 목표가 아니었을까 싶어요. 지난 한 해 동안 제 자신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갖고 나니 이제 동네에서 커피 한 잔을 마셔도, 일을 크게 키우지 않아도 그냥 이 자리에서 행복하더라고요. 어떻게 보면 이 책은 제 자신에게 하는 이야기이기도 해요. 지난 2017년도에 제품을 만들고 싶었거든요. 주변에서 “그렇게 많은 노하우가 있는데, 직접 만들면 더 잘하지 않겠냐”고 하는 말에 저 또한 흔들렸던 거예요(웃음). 그래서 해봤는데 잘할 자신은 있었지만, 그 과정이 하나도 행복하지 않았어요. 저는 다른 사람들의 어려움을 돕고 그들이 성공하는 모습을 볼 때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더라고요. 그걸 알고 흔들리면서 제자리로 돌아왔어요. 정해둔 목표는 없어요. 그저 이 일을 적어도 80세까지는 하면서, 최장기간 비주얼 전략가로 살아가고 싶어요.
대표님이 추구하는 일의 가치를 한 줄로 표현한다면요?
전문가로서는 ‘온기 품은 전문가’고요. 직업적으로는 ‘상품의 운명을 바꾸는 여자’요(웃음). 세상이 더 따뜻해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좋은 물건을 좋아 보이게 만드는 일을 하고 있으니까요.
오래가는 것들의 비밀이랑주 저 | 지와인
남들은 흉내 낼 수 없는 ‘자기만의 상징 찾기’에서 어떤 유행에도 흔들리지 않는 ‘내 제품의 뿌리 만들기’까지, 팔리지 않는 시대에 필요한 7가지 방법을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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