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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추남, 미녀>의 배우 데오다의 백석광, 트레미에르의 정인지
나다움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된 백석광, 정인지 배우
꼭 대답하고 싶은 질문이었는데, 나이가 더해지면서 외모보다는 사람이 아름답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2019. 05. 08)
프랑스 동화작가 샤를 페로의 ‘도가머리 리케’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아멜리 노통브의 소설 <추남, 미녀> 가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무대에 올랐습니다. 제목만 보면 전형적인 ‘미녀와 야수’ 이야기가 아닐까 싶지만, 이 작품의 남녀 주인공은 이야기가 끝날 무렵에야 얼굴을 맞댑니다. 굽은 등과 못생긴 외모로 괴롭힘을 당하면서도 뛰어난 지성으로 사람들을 사로잡은 데오다와 예쁜 얼굴만을 사랑한 남자들에게 멍청한 여자로 평가받아온 트레미에르는 ‘미추(美醜)’의 굴레를 뛰어넘어 있는 그대로의 서로를 발견하게 되는데요. 무대에서는 이 모든 과정을 남녀배우 2명이 소화합니다. 연극으로 처음 만들어진 데다 2인극에 원캐스트라 배우들의 부담이 컸을 텐데요. 공연이 끝난 뒤 데오다 역의 백석광, 트레미에르 역의 정인지 씨를 직접 만나봤습니다.
실제로 등장인물이 못생긴 외모의 데오다, 아름다운 외모의 트레미에르네요. 외적인 부분을 무대에서 어떻게 구현할까에 대한 고민이 많았을 것 같습니다.
정인지 : 초반에는 ‘외모가 뛰어난 여성이라는데 내가 등장하면 이상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작품을 접하고 매일 트레미에르라는 인물을 만나다 보니까 사람은 모두 아름답고, 아름다움을 규정할 수 있는 건 사람의 외모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됐어요. 그녀가 외적으로 예쁜 건 맞지만, 그녀를 더 아름답게 만들어주는 건 다른 것이라는 생각이 드니까, 그렇다면 내가 할 수 있겠다 싶었어요.
백석광 : 저는 처음 원작 소설을 받았을 때 연출님과 작가님이 과연 나를 어떻게 추남으로 만들어주실까 기대했던 것 같아요(웃음). 실제 작품을 접하면서는 못생겼다는 걸 분장으로 표현한다면 자칫 특정 외모에 대한 비하가 될 수 있어서 그런 부분은 피했고, 특정 장면은 신체연기로 대신했어요.
연극 제목이 <추남, 미녀>인데
처음 캐스팅 제의가 들어왔을 때 조금은 놀라거나 당황하지 않았을까요?
백석광, 정인지 씨의 속마음을 영상으로 직접 들어보시죠!
2인극인데 여러 인물이 등장합니다. 쉽지 않은 작업이었을 텐데요.
백석광 : 저 같은 경우는 일단 문화적인 차이가 커서 힘들었어요. 원작 동화에서 왕자는 많은 여성을 만나는데, 그걸 노통브가 소설로 옮겨오면서 15살의 데오다가 많은 여성과 잠자리를 하는 것으로 썼거든요. 이런 부분을 떼어 내고 우리 문화에 맞게 이야기를 구성해서 풀어내려고 하니까 어딘가 모르게 빈틈이 생겨서 완벽하게 표현하는 게 힘들었던 것 같아요.
정인지 : 데오다가 만나는 많은 인물을 제가 연기하는데, 그런 빈 부분 때문에 인물들이 조금은 정형화될 수밖에 없더라고요. 모두 입체적으로 표현하자면 너무 방대해지고. 그래서 인물들이 너무 가볍게 스쳐 지나가는 게 아닐까 고민이 있었어요. 또 너무 많은 인물을 연기하다 보니 트레미에르가 어떤 호흡이었는지 순간적으로 까먹을 때가 있어요(웃음). 실제로 퇴장하면서 의상을 벗고, 입으면서 등장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래서 저와 가장 비슷한 부분을 찾으려고 했어요. 그 링크만 맞추면 딱히 연기하지 않아도 되는 트레미에르의 호흡이 생기니까요.
데오다와 트레미에르는 극이 끝날 무렵에야 만나잖아요. 각 인물이 내레이션으로 표현되는 부분도 많고, 그럼에도 캐릭터는 가지고 가야 하니까 그 부분도 힘들 듯합니다.
백석광 : 맞아요. 데오다는 극에서 캐릭터가 성장하잖아요. 태어나면서부터 엄마가 못생겼다고 놀라고, 학교에서도 친구들이 놀리고. 그건 폭력일 수도 있거든요. 자기가 선택한 외모가 아닌데도 외부에서 지속적인 평가를 받으니까. 그 모든 상황을 차단하기 시작하는 개인의 심리를 무겁지 않게 다루려고 노력했어요. 데오다가 조류학자가 되는데, 자신의 몸은 중력에 의해 구부러지지만 새는 자유롭잖아요. 새는 열망할 수밖에 없는 대상이지 않았을까 싶어요.
정인지 : 트레미에르는 이야기가 거꾸로 진행돼요. 그녀에게 가장 중요한 일인 할머니의 죽음이 가장 처음에 나와서 관객들에게 이 캐릭터가 이해받을 수 있을까 궁금했어요. 그 사건이 트레미에르가 당당히 자신으로 서는 계기거든요. 또 하나는 ‘관조하는 눈’을 표현하는 게 어려워요. 관조라는 게 어떤 것인지 사람마다 느끼는 지점이 다를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백석광 : 관조를 그림이나 음악으로 표현하라고 해도 어려울 거예요.
정인지 : 그런데 트레미에르는 관조하는 눈을 갖고 있다는 말을 듣는 사람이라서 너무 어렵더라고요. 보통 무대에서 캐릭터를 표현할 때 타인의 입을 빌리는 게 하나의 방법이기도 해서 할머니를 비롯해 제가 연기하는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 표현하고 있어요.
메시지가 확실한 작품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오히려 <추남, 미녀> 라는 제목 때문에 메시지에 쉽게 닿기 힘든 것 같아요.
정인지 : 추남이나 미녀라는 단어도 고정관념으로 만들어진 말이라고 저희는 생각했어요. 타인의 입을 통해 정해지는, 기준점도 달라지고. 제목이 그런 오해를 불러일으킬 거라고 생각했지만, 작품을 보다 보면 고정관념이라는 걸 느끼게 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어요.
백석광 : 타인에 대해 평가를 너무 쉽게 내리는데, 외모로 인해 수난을 겪은 두 사람이 서로 만났을 때 그 고정관념을 걷어낼 수 있는 계기가 된다는 게 아름다운 것 같아요.
그런데 데오다에게는 높은 지성이 있잖아요. 굉장한 무기죠. 어쩌면 사람들은 지성과 미모에 본능적으로 끌리는 게 아닐까요?
백석광 : 그럴 수도 있어요. 그런데 외모가 추했기 때문에 지성이 생긴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선악이나 미추의 선택지가 아니라 자기방어적으로 생긴 것일 수도 있지 않을까.
사실 배우도 외적인 면을 무시할 수 없는 대표적인 직업군이잖아요.
정인지 : 그렇죠, 여자 배우는 외적인 부분에서 많은 기준이 있어요. 캐스팅에도 영향이 있고요. 그런 면에 신경을 안 쓰는 사람이더라도 배우라는 직업을 갖게 되면 그걸 놓칠 경우 자기 관리를 못하는 배우가 되니까요. 그런데 사실 무대 위에 서 있는 인물 중 완벽한 사람은 없어요. 어딘가 결핍이 있는 사람이 자신의 결핍을 알아가는 과정이잖아요. 그러니까 외모가 중요한 게 아닌데, 어쩌다 보니 배우들에게 많은 기대감을 갖게 되고 그 기대에 부응해야만 관객들이 실망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만들어진 것 같아요. 다행인 것은 그 안에서도 자신의 생각을 지켜나가는 배우들, 작품을 작품으로 보자는 움직임과 그런 환경이 최근 많이 일어나고 있어요. 여성 캐릭터에 대한 변화도 많아졌고요.
배우는 사실상 캐릭터를 통해 관객들을 만나는데, 그 이미지는 제작진이 선택해줘야 하는 거잖아요. 그런 면에서 많은 제작진이 두 분에게 갖고 있는 고정관념이 있었나요(웃음)?
정인지 : 저는 짙은 눈썹 때문인지 그동안 강하고 섹시하다고 할까요, 그런 인물을 맡았어요. 뮤지컬에서 대립되는 대표적인 여성 캐릭터가 <지킬 앤 하이드>의 엠마와 루시인데, 루시쪽이었던 거죠. 그런데 강한 캐릭터를 맡은 여성들 중에 실제 성격은 전혀 그렇지 않은 분들이 많거든요(웃음).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를 통해 이미지를 바꾸는 계기가 됐던 것 같아요.
백석광 : 저는 이번에 이미지 변신을 했으면 좋겠어요. 이제 그만 괴롭히세요(웃음).
정인지 : 오빠는 그동안 강한 역할을 많이 했더라고요. 정말 섬세하고 예민한 사람인데, 어떻게 저렇게 강한 역할을 할 수 있었을까. 그런 인물은 감정을 한 번에 분출해야 하는데, 쉽지 않았을 거예요.
백석광 : 제가 좀 심심한 성격이에요. 무용을 공부해서 신체를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역할도 들어오지만, 의욕이 없어진 아저씨 역할이 들어오기도 하더라고요(웃음). 이제는 나이에 맞는 배역들이 많이 들어왔으면 좋겠어요. 일상적인 연기를 할 수 있는.
이번 작품을 통해 진정한 아름다움, 나다움에 대해 많이 생각하실 것 같습니다.
정인지 : 꼭 대답하고 싶은 질문이었는데, 나이가 더해지면서 외모보다는 사람이 아름답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사람이 가지고 있는 이야기가 아름다울 때, 아름다운 선택을 했을 때 그 사람이 정말 아름다워지는 거죠. 그런 순간들이 모여서 아름다워지는 게 아닐까. 이런 순간들을 좀 더 신중하게 만나야겠다는 고민을 할 때 나다워지지 않을까 생각하고요.
백석광 : 나다움은 계몽적인 말인 것 같아요. 우리는 단 한 번도 나답지 않은 순간이 없다고 생각해요. 나답지 않다고 느끼는 순간도 나에서 벗어날 수는 없으니까. 나를 벗어날 수도 없고, 다른 것이 될 수도 없으니까 내가 가진 시간 속에서 잘 살아가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요.
참, 극은 나름 해피엔딩이잖아요. 원작 소설도 그런가요?
정인지 : 작가도 해피엔딩이라고 썼는데요. 두 사람이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그렇게 살지는 않아요.
백석광 : 서로가 적절히 거리를 유지해서, 더 자기답게 남을 수 있어서 해피엔딩인 것 같아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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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보느라 영화 볼 시간이 없다.."는 공연 칼럼니스트, 문화전문기자. 저서로는 <지금 당신의 무대는 어디입니까?>,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공연을 보러 떠나는 유럽> ,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축제를 즐기러 떠나는 유럽>,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예술이 좋아 떠나는 유럽> 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