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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이랑 “식물이 저를 세상으로 끄집어내는 역할을 했어요”

『아무튼, 식물』 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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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제 곁을 떠나더라도 죽기 전까지는 최선을 다해 돌보고 죽이겠다는 마음을 먹게 됐어요. 설렁설렁 죽이는 것보다는 최선을 다해 죽이는 게 식물 입장에서도 좋겠죠. (2019. 04.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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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이랑은 밴드 ‘디어클라우드’에서 베이스를 연주하고 노래를 만드는 음악가이다. 4집 작업 중이던 몇 해 전, 덫에 걸린 기분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 그는 식물에 깊게 매료되었다. 식물 앞에서만큼은 자신을 소개할 필요도 없고 스스로 치장하거나 즐거운 표정을 짓지 않아도 괜찮았다. 애정을 쏟은 만큼 정직하게 자라나는 식물의 건강한 방식이 그를 우울과 무기력에서 해방했다.


화분 개수가 100개가 넘어가면서 양팔이 새까맣게 타고 바쁜 날에는 잠을 줄여야 할 정도지만, 한 번 즐거움을 아는 사람은 그 뒤로 돌아가지 않는다. 스스로 혐오하는 밤을 견딜 경험은 죽고 싶다는 생각을 최선을 다해 죽여야겠다는 생각을 바뀌게 했다. 물과 흙과 햇빛을 바꾸는 것만으로도 새롭게 바뀌는 식물에 경탄하고, 모두에게 각자 맞는 식물과 키우는 방법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

 

식물의 세계에 들어서면 누구도 나를 괴롭히지 않는다. 안전하고 커다란 초록색 원이 생긴다. 그 안에 들어간다. 불안은 나를 쥐고 흔들지만 식물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통해 나는 조금씩 평화를 얻는다. 아무것도 할 수 없던 시기가 자연스럽게 스르륵 지나간다. 물론 언제고 다시 돌아올 수 있겠지만 적어도 이번엔 무사히 지나간다. 지옥을 맛보고 연옥의 문턱에 서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나는 계속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 그냥 하루하루 살아지는 것보다 더 능동적으로 살고 싶어지기 시작했다.

『아무튼, 식물』  7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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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라도 열심히 해야겠다는 마음


책을 내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식물 사진만 올리는 SNS 계정을 운영했었어요. 거기에 식물일기를 올리기 시작했는데, 사람들에게 식물 이야기가 필요했던 시기였던 것 같아요. 신기하게도 꽤 여러 출판사에서 두세 달 사이에 출판 제안이 왔었어요.


처음에는 흔쾌히 책을 내자고 하진 않았다고요.


음악 하는 사람이고, 식물을 기르는 게 취미인데 이걸 전적으로 계속 홍보하는 게 제게 결국 도움이 되는 일일까 고민했었죠. 결국 그때그때 재밌는 거 하면서 살자는 마음으로 승낙했어요.


‘디어클라우드’의 음악과 100가지 넘는 식물과는 결이 좀 다르죠. (웃음)


제 음악만 들으면 집에 차갑게 돌만 있을 것 같은 느낌이죠? 새가 지저귀고 흙이 깔려 있고 햇빛이 들어오는 것과는 상관이 없는 느낌이랄까요. 하지만 식물 키우기는 개인적인 취미니까요. 밴드의 결과 다르게 가도 괜찮을 것 같아요.

작가님이 직접 찍은 사진으로 표지를 만들었어요.


사진 속 식물은 ‘디온 에둘레’라는 아이예요. 한 줄 나는 데 정말 오래 걸리는 소철 종류죠. 작년 말부터 올해 초까지 한국의 가드너들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어요.


‘이 식물은 뭐예요’ 라고 묻기보다 ‘이 친구는 누구예요’라고 묻게 되네요. 식물마다 이름을 붙이나요?

 

너무 많아서 이름을 붙일 순 없고, 큰 몬스테라 작은 몬스테라 이런 식으로 분류를 하긴 해요. 같은 종이 여러 개 있어서요.


세보진 않았다고 하는데 대략 지금 식물이 어느 정도나 있나요?


정말 세지 않아요. 일부러라도 안 세려고 해요. 만약 190개의 화분이 있다는 걸 알게 되면 191개로 늘리는 게 고민이 될 것 같아요. 친구들이 분갈이해달라고 자기 식물을 맡기는 경우도 많아서 다 제 건 아니고 작게 들여서 크면 방출해요. 친구들이 늘 ‘이 친구는 뭐야?’ 물어보면서 호시탐탐 도사리고 있거든요. 저는 키우는 재미가 더 커서 엄청 많이 곁에 두기보다는 계속 순환을 시키고 있어요.


<빅이슈>에 식물 칼럼을 쓰기도 했죠? 칼럼으로 글 쓰는 연습이 됐나요?


식물에 대해서 글을 처음 쓴 게 <빅이슈> 지면이었어요. 단발성으로 쓰려고 하다가 지금 거의 2년 가까이 쓰고 있어요. 확실히 연습이 됐던 것 같아요. 하지만 <빅이슈>에서 말하는 저의 자아와 <아무튼, 식물>의 자아는 조금 달라요. 빅이슈에서는 훨씬 더 친절하고 경어체를 썼다면 <아무튼, 식물>에서는 편하게 나는 지금 이게 좋다고 말하는 느낌으로 썼어요.


4집 앨범을 준비하면서 힘들 때 식물이 많이 의지가 됐다고요.


돌이켜 보면 정말 심각한 무기력증 상태였던 것 같아요. 제가 아무리 곡을 지어도 앨범에 실리지 못하고, 방향성을 제대로 잡지 못해서 계속 기획을 엎다 보니 무기력과 우울함이 같이 왔어요. 뭘 해도 힘들고 어딜 가지도 못하겠고, 원하는 게 없는 상황이 되더라고요. 유독 식물을 만지는 것만이 즐거웠어요. 이거라도 열심히 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죠.


정서적 안정에 식물이 끼친 영향이 컸나 보네요.


이 정도까지 클 줄 몰랐어요. 식물이 그맘때 저를 세상으로 끄집어내주는 역할을 했어요. 그래도 그때로 돌아간다면 심리치료도 받을 거예요(웃음). 치료를 받으면서 좋아졌다면 더 빨랐을 텐데 하는 마음이 들어요.


식물을 키우면서 굳어진 규칙적인 생활이 우울을 떨치는데 도움을 줬을 것 같아요.


뭔가 더 움직이게 되죠. 요새도 오전에 일어나서 움직이려고 해요. 저는 계속 프리랜서로 살아서 사실 일찍 일어날 이유가 없어요. 하지만 식물에게 빨리 해를 보여줘야 하니까 처음에는 일어나서 문만 열고 자다가, 점점 생활이 바뀌더라고요.


돌봐야 하는 개체수가 늘면서 힘들진 않나요?


삶이 불규칙해서 스케줄이 비어있을 때는 텅텅 비어있고 바쁠 때는 정신이 하나도 없어요. 많이 바쁠 때는 힘에 부친다는 기분이 들 때가 있는데, 바쁘면 무조건 더 일찍 일어나요. 식물의 사이클을 바꾸는 건 제 리스트에는 없어요. 식물은 식물이 필요한 걸 갖춰야 하고, 그러면 저는 더 일찍 일어나면 돼요.


기존과 비교하면 놀라운 변화네요.


다들 깜짝 놀라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저도 이렇게까지 식물에 빠질 줄은 상상도 못했어요. 화분을 사오는 건 늘 좋아했어요. 스무 살 넘어서 내가 돈을 벌고 직접 뭔가를 살 수 있을 때부터 늘 화분을 사 왔지만, 무조건 사 와서 죽이는 걸 늘 반복했어요. 돌보기 시작한 건 최근 몇 년 사이에요.

 

 

돌보고 싶은 식물을 돌보고 싶을 때


식물을 기를 게 아니라, 역발상으로 ‘최선을 다해 죽이자’고 하셨어요.


식물들도 저희처럼 영원히 사는 존재가 아니잖아요. 1년생도 있고 다년생도 있지만 뭔가가 안 맞으면 쉽게 죽는 게 식물이에요. 어쨌든 제 손안에 온 이상은 죽더라도 최선을 다해 죽이자는 게 목표예요. 언젠가 제 곁을 떠나더라도 죽기 전까지는 최선을 다해 돌보고 죽이겠다는 마음을 먹게 됐어요. 설렁설렁 죽이는 것보다는 최선을 다해 죽이는 게 식물 입장에서도 좋겠죠.


“기르기 쉬운 식물은 없다. 천천히 죽는 식물과 빨리 죽는 식물이 있을 뿐”이라고 했어요. 그런 입장에서 보면 스투키는 기르기 쉬운 식물이 아니라 천천히 죽는 식물일 뿐이죠.


제가 아는 식물 중에는 스투키가 제일 천천히 죽는 식물인 것 같아요.


다들 바쁘고 책임을 질 수 없기 때문에 무언가를 기르는 걸 주저하게 되는 것 같아요. 집에는 잠만 자러 들어가는 생활을 반복하기 때문에요.


저는 거꾸로 집에 있는 시간이 되게 긴 사람이어서 어떤 일이 있어서 밖에 나가더라도 최선을 다해 빠르게 집에 들어가는 사람이거든요. 그래서 더 집에서 식물을 키우는 게 가능했어요.


<아무튼, OO> 시리즈는 자기 취향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는데요. 자기에게 맞는 식물과 흙, 키우는 방법이 서로 다르고 키우는 방법에 따라 같은 종이어도 다르게 자란다는 이야기가 흥미로웠어요.


같은 식물을 사도 친구 집에서 크는 아이와 우리 집 아이가 정말 다르게 자라더라고요. 그런 거로부터 생각이 뻗어 나갔던 것 같아요. 흙을 조금만 다르게 써도, 해를 언제 쪼이고 물을 언제 주느냐에 따라 다 다르게 자라요. 모든 게 다 변수로 존재하는 게 가드닝 같아요.


인터넷에서 식물을 키우는 정보를 찾다가 유용한 식물 카페를 발견했다고요.


제 취미가 쿨한 취미는 아니더라고요. 식물 카페에서는 ‘OO어멈’ 같은 아이디를 쓰는 분들이 정보를 올려주시는데(웃음) 그러면서도 정말 감사했어요. 제가 원했던 것들이 다 인터넷에 있더라고요. 개인적으로 말이 통할 가능성은 거의 없는 분들이죠. 정모 사진이 올라오면 등산복 입고 전집에서 전 드시는 사진이에요. 그렇구나, 어르신들 좋은 시간 보내셨구나(웃음) 하고 다른 게시물을 클릭해요.


가드닝이 중년의 취미라고 생각하는 편견이 있었죠. 하지만 몇 년 사이 엄청나게 변했어요.


사실 한국에서는 중년의 취미라고 치부되어있지만 세계적으로는 중년의 취미만은 아니었잖아요. 플랜테리어라는 단어도 몇 년 전부터 유행했고요. 개인적으로는 미세먼지가 큰 이유가 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 적은 있어요. 공기가 정화되니까 들여야지 하다가 돌보는 법을 알게 되고, 차츰차츰 예쁜 것들이 눈에 들어오면서 이것저것 크게 키우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고요.


‘반려 식물’이라는 단어도 생겼어요. 정을 주고 키우고 싶어 하는 대상이 동물에서 식물로 확대되었다는 생각을 했어요.


저도 육아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어요. 빨리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아이를 대학에 보내야겠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죠. 하지만 제 식물이 꽃이 피고 씨앗을 맺는 거에 너무 감동하고 혼자서 난리였어요.


돌봄 자체가 본성이라서 그런 게 아닐까요?


그럴 수도 있죠. 하지만 제가 돌보고 싶은 걸, 제가 돌보고 싶을 때 돌보고 싶어요.


플랜테리어가 유행하면서 소모품으로 식물을 사용하는 카페에 대한 안타까움도 느껴졌어요.


식물을 사는 건 좋아요. 카페에서도 어쨌든 돌보려고 노력을 할 거예요. 하지만 약간 조화를 섞어서 죽이는 식물의 수를 줄여도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해요. 조금이라도 식물을 키워본 사람이 보면 절대로 거기서 살 수 없을 만한 장소에 식물이 놓여져 있는 걸 보거든요. 그런 것들은 조화로 대체해도 되지 않나 싶어요. 요새 조화 잘 나와요.


식물을 키우면서 세상을 보는 눈이 더 넓어졌을 것 같아요. 카페에 가면 보이는 풍경이 달라진다거나요.
원래 어떤 카페에 간다고 해서 그 카페에 있는 식물을 걱정하는 사람이 되고 싶진 않았어요. (웃음) 그런데 어느 순간 정신을 차려 보니 ‘어쩌자고 저렇게 빛이 안 드는 곳에 유칼립투스를 심어뒀을까, 2,3주면 죽겠구나’ 싶어서 걱정되고 괜히 미안하게 생각해요.


심지어 영화 속 주인공이 물주는 화분에도 감정 이입을 하셨다고요.


제가 어떤 사람이 되는지는 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게 아니더라고요. 좋아하고 소중히 여기는 것이 생기면서 저 자신이 변하기는 하는데, 제 생각과는 다른 사람이 되는 거죠. 그렇게까지 신경 쓰는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았어요. 하지만 이미 그런 사람이 되어 버렸네요.


1인 가구에 햇빛이 잘 들어오지 않는 거주 환경에 사는 사람들은 어떻게 식물을 키울 수 있을까요?


정말 본격적으로 식물을 키우고 싶다는 생각이 있다면 집에 식물 등을 들이시라고 조언하고 싶어요. 잠깐이라도 켜놓으면 그 차이를 느껴요. 하지만 식물 등까지 들이고 싶진 않은데 식물을 키우고 싶다면 최대한 천천히 죽는 식물로 키우시라고 권해요. 스투키를 정말 많이 추천하는 편이에요. 적어도 3개월은 살아요. 1, 2만 원에 사서 3개월 동안 아름다운 걸 보는 건 대단한 거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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쁜 걸 같이 보고 싶은 마음


새순의 아름다움이나 잎이 시시각각 변하는 아름다움을 음악의 아름다움과 비교할 수 있을까요?


아름다움의 색깔이 정말 다른 것 같아요. 저에게는 음악이 되게 어두운 아름다움이라면 씨앗이나 새싹은 밝은 색이에요. 그래서 저에게는 밸런스를 맞춰주는 아름다움이에요. 어두운 쪽에 치우쳤던 시간이 길었던 사람인데, 반대쪽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게 되었어요.


『아무튼, 식물』 을 출간하고 식물 관련 SNS를 운영하는 건, 어떻게 보면 창작자로서 자신의 창작물을 보여주고 싶다는 마음이기도 했을 것 같아요.


SNS는 훨씬 단순한 이유에서 시작했어요. ‘우리 집 레몬 나무 예쁘니까 너도 한 번 볼래?’ 이런 마음이었죠. 사실 현실 친구 중에는 이런 시시콜콜한 즐거움을 공유하는 친구들이 많지 않아요. 하지만 인터넷 상에서는 같이 공감하는 가드너 친구들이 있죠. 그런 분들과 함께 보고 싶어하는 마음은 창작욕이나 과시욕과는 조금 다른 것 같아요. 책은 <빅이슈>에서 칼럼을 쓰기 시작하면서 식물에 대한 글을 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자연스럽게 이렇게 오게 됐네요.


가사를 써오기도 했지만, 책을 쓰면서 작가로서 지평이 넓어졌을 것 같아요.


그렇다면 고맙죠. 안 그래도 저희 팬분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궁금했는데, 제가 하도 식물 이야기를 하니까 다들 요즘 집에 식물을 들이고 제 덕질에 동참해주는 분이 생기더라고요. 너무 감사해요.


이 책을 선물하고 싶다는 리뷰를 보면 두 부류로 나뉘어요. 하나는 식물에 미쳐있는 사람들, 혹은 식물을 다 죽이는 식물 킬러에게 이 책을 주고 싶대요.


식물을 좋아하는 분들은 많이 공감해주실 거라고 생각했어요. 새순의 아름다움을 아는 사람들이니까요. 그런데 오히려 식물 킬러 분들이 재밌게 봐주시더라고요. 그런 걸 보고 기분이 좋았어요. 열심히 죽이자고 용기를 얻은 거잖아요. 식물 하나 죽이고 슬퍼하고 실연당한 것처럼 여길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최선을 다해 죽였으면 된 거예요.


앞으로 계획이 있나요? 작가로서, 뮤지션으로서 둘 다요.


일단 올해는 밴드의 노래하는 친구는 솔로 앨범을 준비하고 있고, 저는 책을 내서 각자 활동하는 시기를 가지기로 했어요. 책을 냈다는 게 너무 새로운 일이라서 책에 도움이 된다면 뭐든 해야지 싶어요.

 


 

 

아무튼, 식물임이랑 저 | 코난북스
죽었는지 살았는지 몰랐다가 겨울을 이겨내고 맺힌 새순을 발견한 호들갑스런 기쁨까지, 식물을, 무언가를 길러본 이들만이 알 수 있는 이야기들이 빼곡하게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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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정의정

uijungchung@ye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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