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제주 궷물오름에서 우주 속으로

땅속으로 패인 바위굴 궷물오름

  • 페이스북
  • 트위터
  • 복사

겨울이면 이곳은 이색 공간으로 변신한다. 눈이 내리면 이 넓은 지대와 주변 나무가 모두 하얗게 변신하면서 일본 삿포로나 유럽의 알프스 같은 분위기로 거듭난다. (2019. 04. 24)

KakaoTalk_20190416_133148346.jpg

            겨울철 궷물오름의 환상적인 설경

 

 

국제 블랙홀 연구 협력 집단인 ‘사건 지평선 망원경’(EHT) 연구팀이 사상 첫 블랙홀 관측에 성공했다. 이 소식을 접한 순간, 오름 하나가 떠올랐다. 궷물오름. 이곳에 가면 많은 별을 볼 수 있지 않을까? 오름 정상에 오르면 별이 잘 보일 거라 생각하기 쉽지만, 의외로 어렵다. 가로등도 없는 늦은 밤에 오름 입구에 접근하는 자체부터 힘들고, 어두운 산길을 걸어 올라가기는 위험하며, 때로는 어디선가 들려오는 야생동물 울음소리에 소름이 돋는다. 상당수의 오름 정상은 나무가 시야를 가려서 밤하늘 조망을 방해한다. 하지만 궷물오름은 정상을 지나 분화구 안 초목지로 들어서면 주변이 탁 트이고 인공적인 조명이 전혀 없어서 밤하늘을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다.

 

궷물오름의 남남동쪽에는 큰노꼬메오름이 자리 잡고, 동남동쪽에는 족은노꼬메오름(조근노꼬메오름 또는 작은노꼬메오름이라 부르기도 한다)이 있다. 대부분의 여행객은 궷물오름 하나만 오르지만, 시간이 허락된다면 궷물오름과 큰노꼬메오름, 조근노꼬메오름으로 이어지는 트레킹 코스를 추천한다. 제주에서 가장 박진감 넘치는 풍경을 연달아 만나게 될 것이다. 3시간 정도 소요된다.

 

 

20190411_143913.jpg

           족은 노꼬메 오름과 궷물오름 갈림길

 

 

원래 큰노꼬메오름이 이 부근에서는 가장 유명했다. 큰노꼬메오름은 경사가 꽤 커서 제주에서 가장 오르기 힘든 오름 중 하나이다. 정상에 오르면 동쪽으로는 한라산 백록담이 훤히 보이고, 주변으로는 전깃줄 하나 없는 울창한 숲이 사방으로 펼쳐져 있다. 고개를 반대로 돌리면 애월 바다가 멀지 않은 곳에 있는데 해가 질 무렵이면 제주도 산야를 붉게 물들이는 모습이 장관이다.

 

궷물오름 주차장에서 트레킹을 시작한다. 가을에는 억새꽃이 물결을 이루는 아름다운 길이다. 5분 정도 오르면 좌우로 길이 나뉜다. 표지판에는 좌측으로 조근노꼬메오름, 우측으로는 궷물오름 방향이라고 표시되어 있다. 하지만 좌측으로 가더라도 궷물오름으로 갈 수 있고 오히려 난이도는 더 쉽다.

 

 

IMG_20190411_235911_573.jpg

                          오름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동화 속을 걷는 기분이 든다

 

 

우측을 선택해서 50여미터 걷다 보면 다시 우측으로 좁은 오솔길이 나온다. 이곳으로 들어서면 본격적으로 가파른 오르막이 나온다. 오르기 편한 오름으로 알고 온 사람들에게는 무척 당황스러운 구간이다. 잠시 후 잘 정비된 테우리 막사가 나온다. '테우리'란 주로 말과 소를 들에 풀어놓아 먹이는 일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이나 목동을 일컫는 제주 말이다. 테우리는 마소를 관리하는 일 외에도 조밭을 밟는 일과 바령팟을 만드는 일 등 농사일도 했다. 이 테우리들의 거처를 '우막집'이라고 하는데, 도롱담(둥그렇게 쌓아 올린 담)을 쌓아 올린 후 지붕용 나뭇가지를 걸치고 그 위에 새(띠풀)나 어욱(억새)으로 덮어 만들었다. 주로 테우리들의 쉼터로 비가 오거나 날씨가 추워질 때 피난처로 이용했다.

 

힘을 내서 조금만 더 오르면 작지만 탁 트인 지대가 나온다. 외로운 나무 한 그루가 서 있고, 주변에는 억새가 바람에 춤을 춘다. 바로 앞에 큰노꼬메오름과 조근노꼬메오름이 완만한 경사를 이루며 우뚝 서 있다. 고개를 반대로 돌리면 렛츠런파크와 저 멀리 바다가 보인다.

 

 

20190411_144415.jpg

               잘 정비된 테우리 막사

 

 

IMG_20190411_235603_188.jpg

                               정상 부근에서 만나는 홀로 서 있는 나무

 

 

가던 방향으로 조금 더 오르면 무릎 높이만 한 정상 표지석이 보인다. 이곳을 지나쳐 내리막길로 들어서면 잠시 후 우측으로 길이 하나 뚫려 있다. 그곳에는 드넓은 목초지가 펼쳐져 있다. 목초지 둘레에는 키 높은 나무가 둘러싸고 있고, 정면에는 큰노꼬메오름이 이 부근의 중심을 잡아준다. 여행객이 돗자리를 들고 와서 소풍을 즐긴다. 간만에 드넓은 공간에서 사방으로 뛰어 다니는 반려견도 많다. 야생 노루가 뛰어다니는 모습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많은 사람이 이곳을 찾지만, 워낙 넓어서 마치 혼자 온 것처럼 사진 찍기에도 좋다.

 

안타깝게도 이 목초지는 2019년 4월 20일부터 출입이 통제된 상태다. 너무 많은 사람이 몰리다 보니 목초지가 무참히 짓밟히고 쓰레기 문제도 심각했기 때문이다. 모처럼 이곳을 찾은 여행객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지만, 목장의 당연한 결정이자 권리이며, 한두 사람이 아닌 모두가 좌초한 일이다. 작물 재배가 끝나는 늦가을에는 출입이 재개되길 바랄 뿐이다.

 

겨울이면 이곳은 이색 공간으로 변신한다. 눈이 내리면 이 넓은 지대와 주변 나무가 모두 하얗게 변신하면서 일본 삿포로나 유럽의 알프스 같은 분위기로 거듭난다. 단, 궷물오름으로 오는 도로가 빙판길이 될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정상에서 가져온 책

 

 

『유혹하는 우주』
게르하르트 슈타군 지음 / 이민용 옮김

 

1952년 바이에른에서 태어나 독문학과 종교학을 공부한 저자는 전분야의 지식을 두루 섭렵한 '백과사전 작가'로 유명하다. 저자는 『유혹하는 우주』에서 우리가 '상식'이라고 생각하는 천문 현상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볼 것을 권한다. 상대성 이론이나 만유인력처럼 지금까지 알려진 기본원리도 우주의 기원과 성장을 충분히 설명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과학과 수학 나아가 신의 흔적까지 더듬으며 우주의 신비를 풀어나가는 방식이 매우 흥미롭다. 이 책을 읽고 늦은 밤, 궷물오름 목초지에 가면 우주가 더 가깝게 느껴질 것이다.

 

20190411_145926.jpg

 

 

 

 

궷물 오름

 

 

궷물오름은 오름 북동쪽 분화구의 바위틈에서 물이 솟아났는데 이 샘을 '궷물'이라 부른 것에서 유래된다. 궷물은 '궤'는 제주방언으로 땅속으로 패인 바위굴을 뜻한다. 물이 바위에 괴어 있는 것은 아니고 숲속의 바위 옆 샘구멍에서 샘물이 흘러나온다. 오름의 표고는 597m, 비고는 57m, 둘레는 1,388m, 면적은 138,366㎡이다. 궷물오름 주변은 조선 초기인 1492년(세종11)에 제주마 관립목장 조성 당시 5소장이 위치했던 곳으로 지금도 상잣성 원형이 일부 남아 있다. 오름 정상에서는 매년 음력 7월 보름에 무사 방목을 기원하는 백중고사를 지냈다. 선조들의 목축 문화의 발자취를 알 수 있는 부분이다. 1937년 일제강점기에 장전공동목장조합원들이 모래와 자갈을 바닷가에서 등짐으로 운반하여 궷물에서 흘러 나오는 물을 가두어 목축에 필요한 급수장을 조성했다. 궷물오름을 중심으로 장전리 마을목장(장전공동목장조합)이 형성되어 근래까지도 말과 소를 방목했다.

 

◇ 접근성 ★
◇ 난이도 ★★
◇ 정상 전망 ★★★

 

 

 

찾아가는 방법

 

 

지도 앱이나 내비게이션에서 '궷물오름 주차장'으로 검색해서 찾아오면 된다. 대중교통으로는 이동이 어렵다. 차량이 있다면 평화로에서 제1어음교를 만나면 산록서로(1117)로 빠지거나, 1100도로 어승생 삼거리에서 애월 방면 산록서로(1117)를 타고 오면 궷물오름 주차장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주차장에는 '궤물오름'이라고 적혀 있지만, 옛 지명이니 당황할지 말자. 주차장은 넓지만 최근 유명세를 타면서 주말은 물론 평일에도 주차가 쉽지 않다. JTBC <효리네민박> 방송 영향으로 주차장에 관광객 차량이 빼곡하니 되도록 이른 아침에 가는 게 여유롭다.

 

◇ 주소 : 제주시 애월읍 유수암리 1191-2

 

 

 

 

주변에 갈만한 곳

 

 

렛츠런파크와 제주승마공원


산기슭에 자리 잡은 조용한 카페이다. 크고 작은 고양이들이 카페 안과 밖의 테이블과 의자, 또는 그 밑에서 조용히 잠을 자거나 손님들과 어울린다. 핫초코와 드립 커피의 맛이 일품이다. 책장에는 주인의 취향이 가미된 다양한 장르의 책들이 가득하다. 주변에는 한라산신제를 올리는 산천단이 있다. 이곳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노목으로 알려진 총 8그루의 곰솔(천연기념물 160호)이 있는데 무더운 여름날에 산책하기 좋다.


◇ 주소 : 제주시 애월읍 유수암리 1206
◇ 전화 : 064-786-8114

 

 

제주불빛정원 테마파크


수백만 개의 LED 전구로 다양한 조형작품을 만들어냈다. 장미빛축제와 인생사진관 테마를 겸비하고 있으며 야간에 가면 사진 찍기에 좋다. 생일 당일에 방문하면 무료 입장을 할 수 있다.


◇ 주소 : 제주시 애월읍 평화로 2346
◇ 전화 : 064-799-6996
◇ 시간 : 17:00~23:00 (동절기) / 18:30~24:00 (하절기) / 연중무휴
◇ 입장료 : 성인 12,000원 / 청소년: 10,000원 / 어린이, 경로우대, 제주도민, 장애인 : 8,000원

 

 

제주빅볼랜드


큰 공(조브, Zorb) 안에 사람이 들어가서 비탈길을 구르면서 내려오는 익스트림 스포츠이다.  키 140cm 이상이면 누구나 이용할 수 있다. 빅볼랜드 코스는 약 300m로 세계 최장 거리이다.


◇ 주소 : 제주시 애월읍 산록서로 15

◇ 전화 : 1588-6418
◇ 체험료 : 25,500~55,000원 사이
◇ 홈페이지 : //jejuprimeleisure.com/

 

 

 

배너_책읽아웃-띠배너.jpg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YES24 채널예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셨다면 아래 SNS 버튼을 눌러 추천해주세요.

독자 리뷰

(0개)

  • 독자 의견 이벤트

채널예스 독자 리뷰 혜택 안내

닫기

부분 인원 혜택 (YES포인트)
댓글왕 1 30,000원
우수 댓글상 11 10,000원
노력상 12 5,000원
 등록
더보기

글ㆍ사진 | 최경진

4년차 제주 이주민이다. 산과 오름을 좋아하여 거의 매일 제주 곳곳을 누빈다. 오름은 100여회 이상, 한라산은 70여회, 네팔 히말라야는 10여회 트레킹을 했다. 스마트폰으로 제주의 아름다운 자연을 담고 있으며(www.nepaljeju.com), 함덕 부근에서 에어비앤비 숙소를 운영 중이다.

오늘의 책

끝나지 않는 오월을 향한 간절한 노래

[2024 노벨문학상 수상] 1980년 5월 18일부터 열흘 간의 광주, 그리고 그 이후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작가의 철저한 노력으로 담아낸 역작. 열다섯 살 소년 동호의 죽음을 중심으로 그 당시 고통받았지만, 역사에서 기록되지 않은 인물들의 이야기를 꺼내 보이면서 그 시대를 증언한다.

고통 속에서도 타오르는, 어떤 사랑에 대하여

[2024 노벨문학상 수상] 2023 프랑스 메디치 외국문학상 수상작이자 가장 최근작. 말해지지 않는 지난 시간들이 수십 년을 건너 한 외딴집에서 되살아난다. 깊은 어둠 속에서도 “지극한 사랑”이 불꽃처럼 뜨겁게 피어오른다. 작가의 바람처럼 이 작품은 “지극한 사랑에 대한 소설”이다.

전세계가 주목한 한강의 대표작

[2024 노벨문학상 수상] 2016년 인터내셔널 부커상을 수상한 장편소설이자 한강 소설가의 대표작. 보이지 않는 영혼의 고통을 식물적 상상력으로 표현해낸 섬세한 문장과 파격적인 내용이 큰 울림을 만들어낸다. 폭력의 악순환을 끊고,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어 나무가 되고자 한 여성의 이야기.

더럽혀지지 않는 어떤 흰 것에 관한 이야기

[2024 노벨문학상 수상] 한강 소설가의 아름답고 고요한 문체가 돋보이는, 한 편의 시와 같은 작품. 삶과 죽음의 경계를 허물고, 그 사이를 넘나드는 소설이다. ‘흰’이라는 한 글자에서 시작한 소설은 모든 애도의 시간을 문장들로 표현해냈다. 한강만이 표현할 수 있는 깊은 사유가 돋보인다.


문화지원프로젝트
PYCHYESWEB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