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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욱의 담담함 : 혼자 먼저 타올랐다 혼자 먼저 식는 일 따위 없는

우리에게도 이렇게 내 억울함을 지긋이 들어주는 조진갑이 있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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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잘못 아니야.” 누군가 그 말을 해주기를 기다렸던 선우가 서러움에 한숨을 몰아쉬자, 진갑은 다시 한번 확인해주듯 담담한 표정으로 말한다. “네 잘못 아니야.” (2019. 04.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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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BC 드라마 <특별근로감독관 조장풍>의 한 장면

 


쫄딱 비에 젖은 승객에게 잔돈을 거슬러주느라 받은 만원짜리 지폐를 잠시 호주머니에 넣어두곤 그 사실을 잊었다는 이유로, 상도여객 소속 버스운전사 선우(김민규)는 해고당한다. 운송수입비 부정 착복 행위.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이 3,100원 때문에 잘렸다는 사실을 납득하기 어려웠던 선우는 울먹이며 다른 이유가 있진 않을까 고심한다. “3,100원, 그거 떼먹었다고 해고래요. 이해가 가세요? 그래서 한번 생각해봤어요. 진짜 이유가 뭘까? 내가 뭘 밉보였나, 아님 내가 뭘 잘못했지? 그, 파업하는 기사들 간식 갖다 준 것 때문인가? 아니면 박기사하고 부장 욕한 걸 들었나? 아니면 부장 딸 결혼식 안 가서? 그때 다들 얼마씩 냈다고 했는데, 제가 그건 못 냈습니다. 그것 때문에 그런가? 그것도 아니면…” 선우의 옛 고등학교 선생이자 이젠 고용노동부 소속 근로감독관이 된 조진갑(김동욱)은 말한다. “네 잘못 아니야.” 누군가 그 말을 해주기를 기다렸던 선우가 서러움에 한숨을 몰아쉬자, 진갑은 다시 한번 확인해주듯 담담한 표정으로 말한다. “네 잘못 아니야.”
 
심장을 끄집어 내는 듯 엄청난 감정의 진폭을 펼쳐 보여야 비로소 연기를 잘 하는 거라는 식의 편견은 여전히 공고하지만, 그 속에서도 김동욱은 늘 담담한 톤을 잃지 않았다. 일평생 악령 박일도를 쫓으며 살아온 영매인 OCN <손 the Guest>의 윤화평이나, 오발사고로 목숨을 잃고는 악귀가 된 <신과 함께> 시리즈의 김수홍은 넘나들어야 하는 마음의 파고가 굉장히 높은 캐릭터들이었다. 그러나 김동욱은 인물의 감정을 받아들일 준비도 안 된 관객들에게 터져 나오는 연기를 끼얹으며 얼을 빼놓는 대신, 절제된 연기 톤 안에 미세한 디테일들을 쌓아 올려 관객들로 하여금 자연스레 인물의 감정변화를 눈치채고 따라올 수 있게 유도한다. 그렇게 여러 차례 검증된 김동욱 특유의 담담한 톤은 MBC 월화드라마 <특별근로감독관 조장풍>에서 빛을 발한다. ‘회사 말고 내 편에 서서 내 이야기를 들어줄 누군가가 있었으면’ 하는 판타지로 가득 찬 <특별근로감독관 조장풍>에서, 김동욱이 연기하는 조진갑은 상대방이 아무리 억울한 사연을 들려줘도 먼저 흥분하거나 화를 내지 않는다. 그저 선우와 같은 억울한 이들이 온전히 제 이야기를 털어놓을 수 있도록, 담담한 표정으로 그 모든 고통스러운 이야기를 묵묵히 듣는다.
 
대놓고 만화 같은 연출이 난무하는 코믹 판타지 장르임을 감안하면, <특별근로감독관 조장풍> 속 김동욱의 연기톤은 다소 의외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진갑은 건물 창문에서 날아오르듯 뛰어내려 콘크리트 바닥에 금을 내며 착지하고, 혈혈단신으로 조직폭력배들이 득시글거리는 범죄집단의 본부에 쳐들어가는 히어로 캐릭터니까. 얼핏 생각하면 <불꽃전학생>(1983-1985) 속 노보루처럼 두 눈에 불꽃이 일렁거리는 열혈 캐릭터로 그려지는 게 맞지 않나? 하지만 김동욱이 그려 보이는 진갑은, 결코 애달픈 사연을 토로하는 당신 앞에서는 그런 모습을 보여주지 않을 것이다. 그 모든 열혈 행보는 결국, 나와 당신의 억울함을 충분히 들어주고 해소해주기 위한 것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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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승한(TV 칼럼니스트)

TV를 보고 글을 썼습니다. 한때 '땡땡'이란 이름으로 <채널예스>에서 첫 칼럼인 '땡땡의 요주의 인물'을 연재했고, <텐아시아>와 <한겨레>, <시사인> 등에 글을 썼습니다. 고향에 돌아오니 좋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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