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하필 을인가요?
『을의 철학』 송수진 저자
사실 인생 전체를 볼 때 내 삶의 주인은 나입니다. 모두 각자의 삶에서 갑이지요. 다만 사회 구조 속에서 탄생하는 을이 있습니다. (2019. 04. 09)
무명 저자의 투고를 출간하겠다는 출판사가 10곳이 넘었다. 150년이 더 지난 마르크스의 『자본론』 이나 니체의 말이 ‘을乙의 언어’로 다시 태어난 순간, 철학은 시간과 학문이라는 장벽을 훌쩍 넘어 2019년의 대한민국을 사는 이들의 마음을 열어젖혔다. 저자가 성산대교 대신 도서관을 택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이 이야기를 만날 수 없었을지 모른다. 그만큼 책에는 절망적인 현실과 끝없는 자기 검열이 이어진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읽다 보면 자꾸만 희망이 생겨난다. 지금 ‘나는 왜 이토록 힘겨운 삶을 살아내는가’를 고민하고 있다면, 이 뜨거운 위안을 당신께도 권하고 싶다.
『을의 철학』 을 쓴 송수진 저자는 식품회사의 판매 사원으로 길거리에서 시음을 권하고, 본사에서 파견한 영업 사원으로 점주에게 밀어내기를 강권하며 지옥 같은 ‘을’의 삶을 살았다. 저자에게 철학은 목숨과도 같은 희망이었다. 낮에는 철학을 공부하고, 밤에는 그 시절 자신과 지독히 닮은 청소년들의 고통을 나누는 철학 상담가로 일하고 있다.
왜 하필 ‘을’인가요?
사실 인생 전체를 볼 때 내 삶의 주인은 나입니다. 모두 각자의 삶에서 갑이지요. 다만 사회 구조 속에서 탄생하는 을이 있습니다. 그 을들을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어요. 자본주의에서 생산 수단 없이 노동소외를 경험하는 다수가 을이고요. 감정적으로 반응적이고 수동적이어서 자발적 삶을 못살고 있다면 니체의 입장에서 을인 거고요. 생의 충동보다 죽음 충동을 느낀다면 프롬 입장에서도 을입니다.
작가에게 철학이란 무엇인가요?
철학은 인간을 위한, 인간에 의한 인간의 학문입니다. 그게 제가 철학을 사람으로 배우는 이유입니다. 방점은 인간이에요. 철학자들 역시 다 인간이었습니다. 그들이 왜 그런 사유를 할 수밖에 없었는지 공부하다 보면 인간에 대해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고, 곧 나를 공부할 수 있습니다.
철학이 작가의 실제 생활에도 영향을 미쳤나요?
아주 많이요. 철학은 제 일상에 균열을 내기 시작했어요. 과연 정규직이 정답일까? 비정규직이지만 삶을 완전하게 살 수 있다면 시간을 내 편으로 끌어당길 수 있다면 내 삶의 정답은 비정규직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선택한 불안을 온전히 끌어안을 수 있는 용기도 얻었죠. 철학자들의 단독적인 삶에서 얻은 그 확신들을 내 삶에 조금씩 응용시키면 세상을 향한 두려움이 반으로 줄어요. 밤중부터 새벽까지 4시간 동안 모바일로 청소년 상담을 하고 있어요. 비정규직이고 불안하지만 누군가의 실존적 언어를 듣는 지금의 일이 좋습니다. 남는 시간에 글도 쓸 수 있고요. 그리고 무엇보다 흉내 내는 삶을 거부하게 되었어요. 그동안은 부모의 기대, 타인의 기대에 따라 반응적으로 살아왔다면 이제는 내 이야기를 하겠다, 나를 표현하면서 살겠다, 이렇게 바뀌었습니다.
철학 공부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시작은 마르크스였습니다. 저는 늘 자본주의가 폭력이라고 느꼈어요. 돈 벌 재간도 능력도 없이, 자본가들에게 팔릴 만한 공부도 못하는 나란 존재가 왜 자본주의에 태어나서 이 고생을 하고 살아야 하나 늘 궁금했어요. 다른 세계는 보이지도 않았어요. 그래서 죽기 전에 알고 싶었어요. ‘그래, 자본주의가 뭐고 자본주의가 돌아가는 경제 원리는 뭐고 자본의 역사는 뭔지 찾아보자.’ 그것들을 공부하다 보니 어느 순간 해방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마르크스를 공부하면서 해방감을 느꼈다고 했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해방감인가요?
제가 판단한 마르크스 철학의 핵심은 노동소외입니다. 노동소외란 말 그대로 내가 한 노동의 과정과 결과물에서 소외되는 것을 말합니다. 과거에 사적 생산과 사적 소유가 가능했던 봉건사회에서 구두 장인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노동을 본인 혼자 다 하고 결과물도 온전히 가졌습니다. 하지만 끊임없이 잉여가치를 창출해 자본을 확대, 재생산해야 하는 자본주의에서는 분업이 필수입니다. 그로 인해 우리는 쪼개졌죠. 회사에서는 주어진 일만 하고, 막상 회사를 나오면 할 줄 아는 게 없는 것 같아 불안하죠.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사람의 노동력도 상품이 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생산수단이 없어요. 우리가 회사 차릴 자본이 있나요? 기계나 공장이 있나요? 그러니 우리는 우리의 노동력이라는 상품을 자본가에게 팔기 위해 마르크스 표현대로라면 목숨을 건 도약을 합니다. 취업이 잘되는 공부, 돈이 되는 공부, 내 노동력이 잘 팔리는 공부만 하죠. 그렇게 우리의 노동력을 산 자본가는 생산 과정에서 노동자의 초과 노동시간을 잉여가치로 가져갑니다. 이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워요. 자본가가 인격적으로 악인이라서가 아니고 구조적으로 그렇습니다. 마르크스는 그것을 찾아냈어요. 자본가의 이윤이 유통이 아닌, 생산 과정의 잉여가치로 발생한다는 사실을요.
결론적으로 노동자들은 자신이 가진 노동력 이상의 가치를 만들지만 다 가져가지 못해요. 왜냐고요? 우리는 생산수단이 없고, 월급은 사회 평균적으로 계산된 노동 시간만큼만 주기 때문이죠. 노동자들은 이 과정을 모르고 익숙하게 받아들여요. 배운 적이 없으니까요. 자본주의가 폭력이라 생각했던 제게 제 생각이 맞았다며 노동소외 이전의 삶까지 알려준 사람이 마르크스였어요. 나의 힘든 회사 생활이 노동소외 때문이었고, 그걸 구조적인 관점에서 해석하니 그것만으로도 해방이었어요.
이렇게 구조적으로 주체를 해석하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보편적 질서를 통해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을 이해하려는 노력입니다. 이렇게 구조적으로 나를 해석하다 보면 이해의 지평이 넓어져요. 그리고 우연한 기회에 그 구조를 돌파하는 자기 혁명이 찾아옵니다. ‘돈이 안 되더라도 노동소외가 덜한 일을 해보자’라든지, ‘소비를 줄여서라도 나만의 생산과 창조를 할 시간을 벌어야겠다’는 인식의 변환을 가져다주었죠.
이 책을 읽었으면 하는 사람은 누구인가요?
철학은 허위를 비판하고 진리를 현실로 끄집어내요. 철학자들은 평생을 걸고 그 힘든 과업을 해내는 사람들이고요. 저는 그저 다 된 책으로 접하니 때로는 미안한 마음도 듭니다. 이렇게 편하게 알아도 되나 싶은 생각이 들거든요. 현대화된 불안은 시간을 평준화하고 사람을 거기에 순응하게 합니다. 이 시대에 관한 고민을 가진 분들이나 자신의 일상에 균열을 내고 싶으신 분들이 이 책을 보고 철학에 조금이라도 흥미를 가질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을의 철학송수진 저 | 한빛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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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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