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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소녀, GILRS CAN DO ANYTHING

<월간 채널예스> 2019년 4월호 <Butterf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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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소녀는 데뷔 과정만 1년 6개월이 넘는 그룹이며 완전체가 나타나기 전에 발표한 싱글만 하더라도 4~5년차 아이돌 그룹의 발표 곡 숫자보다 많다. (2019. 04.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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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너무 복잡하다 생각했다. 더 솔직히 말하자면 잘 이해하지 못했다. 첫 만남은 신사동 가로수길 버스정류장의 광고판이었는데, 앳된 소녀의 얼굴을 별다른 설명 없이 크게 확대 출력해 놓고는 ‘이달의 소녀 - OO'이라고 써져 있을 뿐이어서, 동네가 동네인지라 성형외과 광고인가? 하는 부박한 착각까지 했더랬다. 이제와 돌이키자니 받아주는 누군가가 있다면 사과를 드리고 싶다. 미안합니다. 제가 잘 몰랐어요.

 

나와 같은 머글들의 거친 생각과 불안한 판단에 아랑곳없이 이달의 소녀는 차곡차곡 달려왔다. 2016년 9월 싱글 앨범 「ViVid」로 첫 번째 멤버가 희진이 공개된 이후로 2018년 3월까지 현진, 하슬, 여진, 비비, 김립, 진솔, 최리, 이브, 츄, 고원, 올리비아 혜 이렇게 12명의 멤버가 각기 다른 싱글 앨범과 뮤직비디오로 차례차례 나타난다. 각 멤버의 이름을 딴 싱글에는 다른 멤버와 함께 부른 노래가 함께 포함되어 있음은 물론 ‘이달의 소녀 1/3’, ‘이달의 소녀 오드아이써클’, ‘이달의 소녀 yyxy’라는 이름으로 유닛 활동을 겸했다. 2018년 8월에는 드디어 데뷔 콘서트(!)를 통해 완전체로서 모습을 드러낸다. 타이틀곡은 「Hi High」, 리드 싱글은 「favOriTe」이었다.

 

이달의 소녀는 데뷔 과정만 1년 6개월이 넘는 그룹이며 완전체가 나타나기 전에 발표한 싱글만 하더라도 4~5년차 아이돌 그룹의 발표 곡 숫자보다 많다. 세계 각지를 배경으로 촬영한 뮤직 비디오, 각 멤버가 흩어지고 다시 모이는 스토리, 뚝심 있게 밀어붙이고 있는 세계관은 방대하고 촘촘하다. 그리고 올해 2월 그들의 두 번째 활동 「Butterfly」로 이달의 소녀는 보다 명확한 방향성을 제시한다. 그들은 아마도 세상에 없던 K-POP ‘걸’그룹이 되려고 하는 것 같다. 정형화된 ‘girl’을 ‘소녀’로 대치하며 새롭게 정의 내린다. 순진하고 연약하며 대상화되기 쉬운 소녀가 아닌, 무엇이든 하고 싶은 대로 이룰 수 있는 강인한 소녀로. 또한 지구 반대편의 태풍을 일으킬 수 있는 날갯짓이 가능한 소녀로.

 

이 말이 과장이 아님은 「Butterfly」 뮤직 비디오로 명확하게 확인할 수 있다. 흔히 여성 아이돌 그룹, 특히 신인의 뮤직비디오는 멤버들의 외적인 매력을 최고조로 끌어올리기 위해 아기자기한 소품으로 채워진 스튜디오에서 촬영되는 경우가 많고, 이를 나쁘다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지만 거기에서 어떤 감명이나 영감을 받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Butterfly」 뮤직 비디오는 더 다양할 수 없는 배경으로 채워진다. 대부분의 화면이 해외 로케이션인 것도 놀라운데, 그 장소도 한두 곳이 아니다. 프랑스(파리), 중국(선전), 홍콩, 미국(LA), 아이슬란드 그리고 한국…… 현지 로컬 프로듀서를 따로 두고 촬영된 뮤직 비디오에는 다양한 인종의 소녀들이 등장한다. 그들은 무대가 아닌 도로와 다리 밑에서 스스로를 위해 춤추고, 고층 빌딩의 옥상에서 도시의 스카이라인을 바라보고, 꽉 막힌 벽을 향해 달리거나, 교실의 책상 위에 올라간다. 안대나 깁스를 했거나 히잡을 썼음에도 그들의 달리기와 날갯짓은 멈추지 않는다. 마지막 장면, 도로의 댄서가 카메라 앵글에서 이탈하며 뮤직비디오는 끝난다. 화면은 끝이 났지만 소녀들은 여전히 달리고 부수며 춤을 추고 있을 것만 같은 것이다.

 

카메라를 보고 잉크하지 않는 것, 짧은 치마 아래 속바지를 입고 괜한 안무를 소화하지 않는 것이 신인 여성 아이돌에게 가능할까. 더 나아가 이성(오빠)의 사랑을 갈구하는 노래를 불러야 하고, 무대에서는 섹시한 여성의 신체이지만 무대 아래에서는 청순 무구한 여동생이어야 하며, 훌륭한 인성(!)에 완벽한 퍼포먼스까지 그들에게 요구하는 게 맞는 일일까. 여성 K-POP 아티스트의 팬이 되는 일에는 적지 않은 딜레마가 함께한다. 이달의 소녀도 이 딜레마에서 완벽하게 벗어난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눈이 시원해지며 절로 감탄이 나오는 「Butterfly」 군무를 보고 있노라면 이 소녀들이 조만간 이전까지의 소녀들과는 다른 소녀가 될 것 같다는 강한 믿음이 생긴다.

 

처음에는 이상했다. 데뷔 초 여성 그룹의 스토리라고 해봐야 6년을 연습생으로 있었던 멤버랄지 유명 그룹의 데뷔조였던 과거를 지녔다거나 이제 갓 중학교 3학년이라거나 하는 게 전부였는데 이토록 긴 프로모션이라니. 멤버 각자의 솔로곡, 유닛 활동, 컴백 콘서트, 스토리, 콘셉트, 세계관…… 하지만 우리는 익히 봐왔지 않은가. 우주에서 온 아이돌, 초능력을 지닌 아이돌, 댄스와 보컬과 랩으로 유닛을 나눈 아이돌, 전 세계 청소년에게 자존감의 메시지를 던지는 아이돌, 월드 투어를 떠난 아이돌 등등. 이달의 소녀가 이와 같은 일을 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이달의 소녀는 노래할 수 있다. 춤추고, 달리고, 뛸 수 있다. (이달의) 소녀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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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서효인(시인, 문학편집자)

민음사에서 문학편집자로 일하며 동시에 시와 산문을 쓰는 사람. 1981년 목포에서 태어났다. 2006년 『시인세계』 신인상을 통해 등단했다. 시집 『소년 파르티잔 행동 지침』 『백 년 동안의 세계대전』 『여수』, 산문집 『이게 다 야구 때문이다』 『잘 왔어 우리 딸』 등을 펴냈다. 김수영문학상, 천상병시문학상, 대산문학상을 수상했다. 매일같이 여러 책을 만나고 붙들고 꿰어서 내보내는 삶을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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