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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 공감하고 공유하고 기억한다는 것의 윤리

슬픔에 공감하는 작은 단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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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과 공유와 기억의 윤리가 전제하는 것은 큰일을 당한 이들이 상처와 아픔을 극복하는 것의 어려움이다. (2019. 03.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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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생일>의 한 장면

 

 

2014년 4월 16일 이후의 사연을 소재로 영화를 만들 때, 그것이 상업적으로 이용된다는 알리바이를 벗어나려면 “지우기 어려운 상처를 가진 모든 이들과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작품이어야 한다. 이 말을 한 이는 이종언 감독이다. 이종언 감독은 “더 많은 사람들이 그 아픔과 슬픔에 공감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여 <생일>을 만들었다.

 

<생일>에 나오는 이들은 우리와 같은 공간, 같은 시간을 공유하며 일상을 살아간다. 평범해 보여도 그 평범한 일상을 위해 마음속에 미안함과 죄책감과 억울함과 원망과 슬픔 등과 같은 감정을 담아둔 채 밖으로 한 방울이라도 넘치지 않도록 이를 꽉 깨물고 살아간다는 게 다르다.

 

‘수호 아빠’ 정일(설경구)은 오랫동안 가족과 떨어져 지내다가 한국으로 돌아왔다. 아들 수호가 하늘나라로 떠난 날 가족과 함께하지 못했다는 미안함이 죄책감으로 남아 있다. 다가오는 수호의 생일, 주변의 도움을 얻어 마련된 자리에 가족에게 미안한 마음을 전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갖는다.

 

‘수호 엄마’ 순남(전도연)은 수호의 생일을 챙겨준다는 주변 사람들에게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인다. 말이 생일이지 꼭 수호가 떠난 것을 인정하라는 의미인 것만 같아 억울하다. 갑자기 켜지는 집의 현관 등이 수호가 왔다는 것을 알린다고 생각하는 순남은 한편으로 오랫동안 부재했던 남편이 이제 와 가족을 찾는 것이 원망스럽기만 하다.

 

‘수호 동생’ 예솔(김보민)은 엄마에게 어리광 부려도 전혀 이상할 것 같지 않은 나이에 비해 성숙해 보인다. 늘 곁에 있어주던 오빠가 떠난 빈자리가 너무 크지만, 슬픈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건 안 그래도 힘든 엄마에게 짐을 덜 지우기 위함이다. 그래도 아빠가 돌아와 의지할 언덕이 생기니 한층 마음이 놓인다. 

 

,라고 써놓고서도 미안한 생각이 드는 건 복잡한 미로와 같은 인간의 마음을 단 몇 줄로 요약해 파악한다는 게 가당키나 한 것인가라는 심정에서다. 당사자가 아니면 헤아리기 힘든 일을 겪은 이들에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태도란 건 이들의 얘기에 귀 기울이고 나란히 할 수 있는 어깨를 내어주고 기다리는 것일 터.

 

이에 대해 <생일>의 제작진은 “이 영화가 기억을 공유하고 슬픔에 공감하는 작은 단서라도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드러냈다. 공감의 측면에서 <생일>의 카메라는 인물에 바짝 들이대어 감정을 소비하는 것을 배제한 채 어깨 정도의 눈높이로 관객이 ‘나란히’ 바라볼 수 있게끔 바스트 숏(bust shot, 인물의 머리부터 가슴까지 담는 숏)과 미디엄 숏(mediam shot, 클로즈업과 롱 숏의 중간 정도 거리에서 찍은 숏)을 주로 구사, 영화의 진심을 전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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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생일>의 한 장면

 

 

내가 주목한 건 ‘기억의 공유’와 관련한 이 영화의 캐스팅 방식이었다. 2016년 4월 16일을 전후한 이야기를 다룬다고 해서 그날의 사건을 재현하는 건 관련한 이들이 기억하고 싶지 않은 특정한 순간을 강제적으로 끄집어낼 수도 있다는 점에서 윤리의 문제와 부딪힌다. 대신 <생일>은 이 영화의 배우들이 참여했던 전작을 떠올리게 하는 캐스팅으로 영화적인 공유를 실현한다.


정일과 순남을 연기한 설경구와 전도연은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2000)에서 각각 은행원 봉수와 학원 강사 원주로 출연해 사랑을 맺었던 관계로 합을 맞춘 적이 있다. 영화의 개봉 연도를 기준으로 이들이 결혼했다면 <생일>의 수호와 예솔이 나이의 아이들을 가지지 않았을까 추측해 볼 수 있다.

 

수호의 친구 중 한 명으로 나오는 성준 역의 성유빈은 <살아남은 아이>(2017)에서 물에 빠져 죽은 친구의 도움으로 살아남은 고등학생 기현을 연기한 전례가 있다. <살아남은 아이>에서 기현은 친구 대신 살아남은 죄책감을 영화 끝까지 떨치지 못하는 것으로 나온다. 그의 연장선상에서 <생일>을 보게 되면 마음속 아픔이 여전할지라도 이를 극복하려 성실하게 잘 살아가고 있구나 하는 인상으로 관객의 마음을 놓이게 한다.

 

<생일>의 제작자 중 한 명은 이창동 감독이다. 이창동 감독의 <시>(2010)는 손자가 범한 잘못을 할머니가 시를 통해 속죄하는 사연으로 타인의 고통을 바라보고 성찰한다는 것의 의미를 캐물었다. <생일>의 수호 생일 장면에서는 수호가 남긴 그동안의 글과 사진으로 시를 만들어 그 자리에 참석한 이들과 함께 공유하는 자리가 있다. <시>에서처럼 고통과 진심을 이해하는 참회의 순간이면서 또한 성찰의 시간이기도 하다.

 

공감과 공유와 기억의 윤리가 전제하는 것은 큰일을 당한 이들이 상처와 아픔을 극복하는 것의 어려움이다. 우리는 타인의 아픔을 어설프게 헤아려서도 상처를 단정적으로 진단해서도 하물며 그 아픔과 상처를 조롱의 대상으로 삼아서도 안된다. 절대, 안된다. 극복을 위한 억겁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그 시간을 기다릴 줄 아는 의미에서 기억하는 태도를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 <생일>은 그와 같은 기다림의 시간에 관한 영화이고 이를 구성하는 시와 분과 초가 결국, 공감과 공유와 기억이라는 것을 호소하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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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허남웅(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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