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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상> 당신에게 한국 사회의 우상은 무엇인가요?

사실 이 뒤에 말이 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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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이들 각자가 품고 있는 비밀이란 것은 한국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벌이는 온갖 비상식과 비윤리와 비도덕이 함축된 사정이라 할 만하다. (2019. 03.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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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우상>의 한 장면

 


* 영화의 관람을 방해할 몇 가지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한국 사회에서 숭배의 대상, 즉 우상의 지위는 어떻게 획득되나? 수동형으로 마무리한 이유는 이수진 감독의 <우상>이 다루는 우상의 실체가 한국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의 개념과 맞닿아 있어서다. 너를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고 만다는 절박한 심정에서 나온 생존. 살아남아야 한다는 적극적 의지 이전에 그런 사고(思考)를 등 떠밀리듯 하게 하는 한국 사회의 절벽의 상황들. 그래서 생존이 우상이 될 수밖에 없는 비극. 발단은 교통사고다. 더 정확히는 뺑소니다.

 

구명회(한석규)는 도의원이다. 곧 치러질 도지사 선거에서 강력한 당선자로 주목받고 있다. 청렴한 이미지로 도민들에게 어필한 까닭이다.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지지 않을 일에만 연루되지 않으면 미래는 탄탄대로. 근데 뒤로 넘어져 코 깨질 사건이 터졌다. 아들이 교통사고를 내고 엄마와 합심해 이를 은폐하려 한 상황에 직면한다. 지금이라도 아들을 자수시키지 않으면 도지사가 다 뭐야, 한 개인으로서 한국 사회에 살아남기 힘든 처지다.

 

유중식(설경구)은 구명회 아들의 운전으로 목숨을 잃은 아들의 죽음을 이해할 수 없다. 받아들이기도 힘들 뿐 아니라 아들과 함께 있어야 했던 며느리 최련화(천우희)의 행방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이 사건에는 단순 교통사고 사망 외의 무언가가 이면에 더 있다. 그런 유중식의 의문에는 아랑곳없이 경찰은 구명회의 아들이 자수한 사실을 들어 사건을 마무리하려 든다. 유중식은 직접 최련화를 찾아 나선다.

 

그리고 최련화의 사연은… ‘사건 당일 비밀을 거머쥔 채 사라진 여자’라고 설명한 보도자료처럼 비밀(?)이다. 이수진 감독은 “강요하는 게 아니라 사유할 수 있는 영화로 다가갔으면 좋겠다.”는 의도를 밝히면서 “과연 이 영화 안에 있는 인물 중 나는 누구와 유사한가? 만약에 나라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를 생각해” 봤으면 하는 바람을 드러냈다. 그러면서 최련화에 대해서는 이렇게 얘기했다. “련화는 우상조차 가질 수 없는 인물이다.”

 

사실 이 뒤에 말이 더 있다. “련화의 우상을 찾자면 생존이다.” 여기서 이수진 감독이 언급한 련화의 ‘생존’은 유중식이나 구명회와는 좀 다른 개념이기는 해도 어떤 방식으로든 살아남기 위한 의미라는 점에서는 상통한다. 최련화는 구명회와 유중식과 달리 중국 연변(에서 온 것 같지만, 실은 하얼빈!)에서 한국으로 넘어온 불법체류자였다. 그녀에게 생존은 어떻게든 한국에서 살아남기 위해 사람들 눈에 띄어서는 안 되는 의미를 갖는다. 그래서 자취를 감출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유중식이 최련화를 찾으려고 하는 건 며느리이기도 하지만, 아들과의 결혼을 성사시키기 위한 모종의 행위가 바탕에 깔려서다. 중식의 아들은 중매나 연애와 같은 방법으로는 결혼이 쉽지 않은 어떤 약점이 있다. 유중식은 아들이 성인으로 생존할 수 있는 사회적 토대를 마련해줘야 한다는 부모의 의무감으로 한국에서 합법적으로 체류하기를 원하는 최련화가 필요했다. 의문은 아들이 목숨을 잃은 상황에서 유중식은 왜 사라진 최련화에게 집착할까. 단순히 아들이 어떻게 죽었는지를 밝히기 위해서일까. 유중식과 최련화 사이에 어떤 비밀이 있는 건 아닐까.

 

아들의 자수로 위기를 정면 돌파하려는 구명회에게 최련화는 눈엣가시 같은 존재다. 최련화를 찾겠다며 유중식이 사건을 다시 들쑤시는 것도 구명회를 불편하게 한다. 아들의 자수로 일단락될 것 같은 사건에 구명회가 개입한 또 다른 비밀이 있다는 의미일 터다. (스포일러 주의!) 안 그래도 유중식은 아들의 시체가 있던 그 도로를 매일 같이 달리던 자동차의 블랙박스를 통해 시체가 며칠 사이에 형태를 달리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사고 당시에는 숨이 붙어 있었는데 어디선가 죽이고 다시 갖다 놓았다는 얘기다. 수사는 재개되고 구명회는 관련한 비밀을 감추려 직접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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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우상>의 한 장면

 

 

구명회의 비밀, 유중식의 비밀, 최련화의 비밀, 그리고도 더 이어지는 주변인들의 비밀과 비밀과 비밀. <우상>에서 이수진 감독이 보는 한국 사회는 무수한 검은 욕망이 촘촘하게 방사형으로 뻗어 종국에는 거미줄을 이루는 형태다. 여기서는 누구 하나 결백함을 증명할 수 없을 정도로 서로가 서로에게 행한 유죄 혹은 악행이 서로의 목덜미를 붙잡고 끈적한 형태를 이룬다. 누구 하나 빠져나가려고 하면 너 죽고 나 살자는 식으로 덤벼드는 통에 진실은 물리고 뜯기고 썩어 문드러져 형태를 알아볼 수 없는 지경에 몰린다.

 

결국, 이들 각자가 품고 있는 비밀이란 것은 한국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벌이는 온갖 비상식과 비윤리와 비도덕이 함축된 사정이라 할 만하다. 구명회는 어떻게든 정치인의 생명을 이어가기 위해서, 유중식은 아들이 어떻게 죽었는지를 밝히는 동시에 자신과 연관된 어떤 사실을 숨기기 위해, 최련화는 한국에서 체류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오직 각자가 생각하는 ‘생존’을 사수하면 된다는 일념으로 말이다. 이들 세 명으로 상징되는 한국 사회의 욕망, 즉 우상은 어쩌다 이 지경이 됐을까.

 

영화는 그에 대한 일종의 기원으로 초현실적인 이미지 하나를 관객에게 제시한다. 광화문 광장에 터줏대감처럼 서 있는 충무공 이순신 동상이다. 극 중에는 누군가의 테러로 목이 날아간 충격적인 이미지로 제시된다. 수호신 같은 존재, 그렇다면 이것이 수호하는 것은 무엇일까. 하지만 목이 날아간 형태에서 그것이 수호하는 어떤 가치의 몰락을 말하는 것일 텐데 이 동상은 1968년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로 건립되었다. 그로부터 파생된 한국 사회의 검은 욕망, 이를 ‘우상’으로 명명한 이수진 감독의 의도.

 

이수진 감독은 <우상>과 관련하여 해석의 여지가 많기 때문에 관객마다 나름의 해석이 분분할 것이라는 기대감을 드러냈다. 이 글 역시 여러 해석 중 하나일 텐데 제대로 읽은 건지는 모르겠다. 해석이야 나름이기는 해도 그 전에 <우상>의 이야기를 잘 따라갔는지 자신이 없어서다. 사전이 필요한 듯 보이는 극 중 최련화의 사투리. 무엇보다 해석의 여지를 넓히기 위해 공란으로 남겨둔 인물과 인물 사이의 사연이 의도적이든 그렇지 않든 너무 불친절한 까닭이다. 여러분들은 <우상>을 어떻게 이해하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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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허남웅(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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