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석제의 근엄한 역사를 뒤집는 이야기 한판
『왕은 안녕하시다』 성석제 작가 인터뷰
과거는 이미 화석이 되었지만 더이상 퇴행할 수 없는 것이지요. 가까이 두고 바라보면 바라볼수록, 시간이 가면 갈수록 가치가 올라갈 겁니다. (2019. 02. 08)
ⓒ이천희
따를 자가 없는 천하무적의 입담과 해학으로 고수의 반열에 오른 이야기꾼 성석제가 신작 『왕은 안녕하시다』 로 돌아왔다. 『투명인간』 이후 5년 만의 본격 대작 역사소설로, 문학동네 네이버 카페에서 전반부를 연재한 뒤 오랜 시간을 들여 후반부를 새로 쓰고 전체를 대폭 개고해 완성했다. 조선 숙종 대를 배경으로 우연히 왕과 의형제를 맺게 된 주인공이 시대의 격랑 속에서 왕을 지키기 위해 종횡무진하는 모험담이 특유의 흥겹고 유장한 달변으로 펼쳐진다. 묵직한 역사소설과 날렵한 무협소설을 넘나드는 분방한 이야기 속에 역사의 흐름과 권력의 맨얼굴, 당대를 살아간 보통 사람들의 희로애락이 손에 잡힐 듯 생생하다. 인간과 역사, 웃음과 눈물이 어우러진 한바탕 신나는 놀이, 그야말로 ‘성석제만이 쓸 수 있는 역사소설’(문학평론가 권희철)이다.
『왕은 안녕하시다』 는 『투명인간』 이후 5년 만의 장편소설이자 원고지 3천 매에 달하는 대작 역사소설입니다. 오랜만에 새 장편으로 독자들을 만나게 되신 소감이 어떠신지요.
저도 이렇게 길어질 줄은 몰랐습니다. (어떤 소설을 쓸 때나 비슷하지만) 처음에는 가볍고 자유롭고 재미있게 써보자는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제가 이전까지 써왔던 소설 가운데 맘에 들고 비슷한 시기에 살았던 인물들을 한 무대에 올려보고 싶다는 욕심이 좀 들었던가봐요. 쓰다보니 저 자신이 깊이 몰입되기도 하고, 또 역사를 다루다보니 설명이 필요한 부분도 있고 해서 다소 길어진 것 같습니다. 그 대신 적어도 쓰는 제게라도 지겨워지지 말자, 지겨워지면 언제든 그만두자고 약속을 했고, 그 약속을 대체로 지켜왔던 거 같아요. 그러니까 그 약속을 지킬 수 있겠다 싶으면 쓰기를 재개하고, 또 중단하고 재개하고 했던 거지요. 저부터 지겨워지지 않아야 길든 짧든 끝까지 쓸 수 있을 테니까요. 어쨌든 쓰는 동안 세상의 온갖 희로애락애오욕이 제 안이비설신의를 통과하면서 즐겁게 하고 슬퍼하게 하고 오래도록 깔깔대다가 결국 딱정벌레처럼 뒤집어지게도 만들었습니다. 이제 제 손을 떠났으니 독자들께서 즐겨주실 차례이겠네요.
그동안 많은 작품을 써오셨지만 역사소설은 드물었습니다. 이처럼 본격적인 역사소설을 쓰려고 생각하신 특별한 계기가 있었을까요? 작품을 쓰는 과정도 현대를 배경으로 한 소설을 쓸 때와 많이 달랐을 것 같은데 어떠셨나요.
처음에는 그저 일반적인 소설을 쓰려고 했지요(소설 서장과 종장에 나오는 액자 형식의 ‘소설을 쓰게 된 계기’에 대한 설명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그런데 역사 속 인물이 소설에 워낙 자주 등장하게 되니 이들을 몰아서 한 무대에 출연시키는 편이 효율적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제까지 없던(적어도 제가 아는 한) 방식을 생각해내려다보니 여러 가지로 고민을 하긴 했지요. 타임 슬립도 생각해봤고 제 18촌인가 하는(확실치는 않습니다) 벽초 홍명희의 『임꺽정』처럼 써볼까 하는 생각도 했었고(그러면 나는 어디에 있는 거지, 하는 생각에 포기) 눈 딱 감고 역사의 한 장면을 현재의 궁궐에서 하룻밤 동안 연출하고 사라지게 할까 하는 생각도 했는데 이런저런 생각이 지금의 소설이 되게 한 것 같습니다.
‘역사’에 방점을 찍은 소설은 확실히 아녜요. 결국 ‘소설’에 방점이 찍히지요. ‘역사’와 ‘소설’ 사이에 space가 있어요. 띄어쓰기라고도 하고 ‘우주’라는 뜻도 가지고 있죠. 결국 역사와 소설은 서로에게 평행우주가 되어주는 게 아닐까요? 역사와 소설은 공히 ‘말의 예술’이고, 제가 좋아하고 꼭 소설 속에 등장시키려고 했던 조선시대 선비들, 그들의 글과 상소 등도 말의 예술의 범주에 들어가기 때문에 서로 이화되기보다는 동화되기 쉬운 거죠.
지금의 말과 글은 익명으로 부패하고 부글부글 끓어올라 세상을 오염시키면서도 무책임하죠. 그렇게 만드는 세상의 현실 또한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에게 아무런 책임을 지려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고요. 이런 시대에 조선시대의 선비들이 목숨 걸고 상소를 올릴 때(그전에 이걸 쓰면 내 목숨과 명예와 벼슬과 집안과 재산과 사문이 날아갈 수도 있겠구나 하면서 한숨을 쉬는 쪽이 더 인간적이긴 하지만요)를 생각해보는 건 어떨까…… 타산지석이라는 말처럼 먼 곳에 있어서 참고가 되고, 객관적으로 볼 수도 있겠지요. 중요한 건 그 조상들의 서슬 푸른 결기와 외유내강, 굴신이 자재한 처신으로 우리가 지금 여기에 있다는 것이지요.
이번 작품은 전반부를 문학동네 인터넷 카페에 연재하고 후반부를 새로 쓰셨는데요, 연재하실 때 특별히 기억에 남는 경험이나 에피소드가 있으셨는지요.
인터넷 카페에 올리면 피드백이 오지요. 쓰는 동안에 그게 많은 자극을 주었습니다(동시에 인간은 자극을 받으면 반응하는 기계라는 생각도 했고요). 배운 것도 많죠. 뭔지 모르게 근질거리는 것도 있고요. 인터넷의 언어와 바깥의 말, 카페의 대화, 술자리의 감성적이고 자기 노출적인 대사, 문장 등의 언어는 확실히 다른 것 같습니다. 둘 사이의 우주에서 새로운 양태의 소설이 나타날 수도 있을 것 같고요.
『왕은 안녕하시다』 는 숙종 시대를 배경으로 당대의 정세와 경제, 문화뿐 아니라 보통 사람들의 생활상까지 생생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무척 많은 자료를 찾아보고 공부하셨을 텐데, 그중에는 소설에 쓰지 못해 아쉬웠던 소재나 이야기도 있었을 것 같습니다. 하나만 소개해주신다면요?
과거에 “있지, 소설은 재미와 정보가 같이 있어야 하는 거라네”라는 말을 누군가에게서 듣고부터 재미는 그렇다 치고 ‘정보가 왜 소설에 들어가지, 정보통신부도 아닌데’ 하는 생각을 하기는 했어요. 그렇지만 나도 모르게 정보가 소설을 읽는 독자에게 소설의 행간을 넓혀주기도 하고 아주 가끔 실생활에 도움을 주기도 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 같기도 해요. 이번 소설에는 정보는 어떤지 몰라도 우리 역사 가운데서도 가장 복잡한 ‘예송’ 당시의 정황과 분당, 환국 등에 관해서 약간의 ‘교양’은 들어 있으니까 그게 독자에게 또다른 즐거움을 줄 수 있을지도(상관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소설을 쓰면서 읽고 알게 된 것(농경제사학, 병장기학, 예론, 해어화사, 풍수, 한문 시가, 남의 집안에 내려오는 수많은 일화 등등등)을 모조리 넣지 못한 게 원통했…… 아니, 전혀 그러고 싶지 않았는데도 다른 소설에 비해서는 어쨌든 교양(정보?)의 함량이 좀 높은 소설이 되었지 않나 합니다만(하나만 소개하랬는데ㅎㅎㅎ)……
『왕은 안녕하시다』 에는 주인공 ‘성형’을 비롯해 매력 넘치는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합니다. 덕분에 나라면 어떤 인물처럼 살았을까 생각해보면서 읽게 되기도 했습니다. 작가님께서 이 시대에 태어나셨다면 어떤 인물처럼 살아가셨을지도 궁금한데요, 역시 주인공인 성형일까요?
전 아니죠. 전 아마도 앞쪽에 잠깐 언급되고 사라지는 성형의 스승 채동구 같은 인물이 되지 않았을까 싶은데요. 채동구는 제가 쓴 그전 소설( 『인간의 힘』 )에 주인공으로 나왔었고 제게는 익숙한 외가의 조상 중 한 분을 캐릭터로 빌려온 분이기도 합니다. 성형은 처음에는 별 볼 일 없는 파락호로 나오지만 갈수록 진흙 속의 보배처럼 진가가 드러나는 인물이지요(저는 시종일관하는 스타일!). 그의 가치를 미리 알아본 사람들도 대단하고요. 그렇게 상호작용하며 암중에, 명시적으로 역사를 바꿔나간 인물들은 존경스럽기까지 합니다. 그 덕분에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것이고요. 그렇다고 해서 채동구가 성형이나 숙종 임금보다 못한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우리 주변의 어떤 사람처럼 자신의 역할과 일을 충실히 해나가면서 뭔가 창조적이고 생산적인 것을 세상에 남긴다는 점에서 모든 인간은 평등한 것 같습니다. 저 또한 그런 유전자를 타고났고요.
작품 속에서도 언급되지만, 숙종 시대는 겉으로는 평안하지만 사회적으로는 변화의 물결이 거센 시대였습니다. 당시의 사회상과 그 시대를 살아간 인물들이 지금의 우리에게 시사하는 점은 무엇일까요?
사상 최악의 기후변화와 재난(경신대기근, 을병기근 등), 역경과 고난 속에서 살아남은 사람들, 그분들이 우리에게 소중하기 그지없는 유전자를 남겨주셨지요. 사실 조상의 은덕이라는 건, 물론 부모님과 조부모님처럼 우리를 직접적으로 양육해주신 분들을 빼고 보면, 그 정도로 충분하지 않나요. 우리가 무슨 왕실의 후계자거나 귀족의 적통 계승자로서 궁궐이나 영지, 성(城)을 물려받지 않은 다음에는요. 우리 또한 그럴 것이고요. 본인이 의식하든 의식하지 않든 역사는 티끌이 태산을 이루고 태산이 난데없이 큰 소리를 내며 무너지기도 하면서 이어지는 것이지요. 그 시대를 사는 사람들은 그 시대, 자신의 인생의 주역이고요. 흔히 ‘과거는 바꿀 수 없지만 현재와 미래는 마음먹기에 따라 바꿀 수 있다’고 하는데 현재와 미래의 잘못과 모순을 의식하고 바꿔나가게 해주는 기준점, 준거가 되어주는 것이 바로 ‘과거’라고 할 수 있죠. 과거는 우리가 지금 가지고 있는 것 가운데 가장 확실하고 오래된 자산 같은 것이예요. 그 과거가 국가적, 민족적 단위로 뭉쳐져 있는 것, 공동체의 기억으로 공유되고 있는 것이 역사라 할 수 있습니다. 과거는 이미 화석이 되었지만 더이상 퇴행할 수 없는 것이지요. 가까이 두고 바라보면 바라볼수록, 시간이 가면 갈수록 가치가 올라갈 겁니다. 지금의 우리 또한 언젠가는, 또 누군가에게는.
마지막으로, 앞으로 꼭 써보고 싶으신 소재가 있는지, 그리고 다음 작품은 언제쯤 만나볼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저도 언제가 될지 궁금합니다만 소설의 무대는 7세기, 비잔틴에서 신라에까지 이르는 광대한 지역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지금 기초적인 조사를 시작했고 당대의 인물들의 집 앞에 가서 나와라, 같이 놀자, 하고 부르면서 손으로는 흙장난을 하듯 뭔가를 매만지는 정도입니다.
왕은 안녕하시다성석제 저 | 문학동네
조선 숙종 대를 배경으로 우연히 왕과 의형제를 맺게 된 주인공이 시대의 격랑 속에서 왕을 지키기 위해 종횡무진하는 모험담이 특유의 흥겹고 유장한 달변으로 펼쳐진다.
관련태그: 왕은 안녕하시다, 성석제 작가, 역사, 과거
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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