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함의 탁월함
아마추어가 할 수 있는 일
자기의 부족함을 겸허히 받아들인 채로 최선을 다하는 것이 평범함의 탁월성이라면, 탁월함은 꼭 숙련의 과정과 비례할 필요가 없다. 범부의 탁월함은 ‘꾸역꾸역’에서 나온다. (2019. 02. 01)
언스플래쉬
댄스학원에 다니고 있다. 매주 두 번, 한 번에 한 시간씩 생판 모르는 사람들과 어색하게 퍼스널 스페이스를 지키려고 애쓰면서 최신 가요에 맞춰 땀을 흘린다. 학원에는 10대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참 많다. 어려 보이는 친구가 골반을 돌리는 걸 보면서 감탄하고는 한다. 재능이 넘치는 사람들이 넘쳐나서 신곡이 발표된 지 몇 시간 만에 안무를 따서 인터넷에 커버 영상을 올리니, 학원에 다니고 남은 날은 올라오는 영상만 봐도 하루가 다 간다.
잘 추는 사람들을 보고 나서, 학원에 가기 위해 어떤 용기를 낼 때가 있다. 기술이나 기예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4가지 단계가 필요하다. 무의식적 미숙련 단계, 의식적 미숙련 단계, 의식적 숙련 단계, 무의식적 숙련 단계. 첫 번째 무의식적 미숙련 단계에서는 뭐든 즐겁다. 늘어나는 실력이 가파르다. 내가 천재인 것 같다. 미숙련 단계임을 의식하는 단계로 들어서는 순간부터 재미가 덜하다. 알지 못하는 영역을 채워 넣으려면 까마득하다. 부족한 부분도 알고 그걸 어떻게 채워야 하는지도 아는 상태에서는 더욱 힘이 든다. 새로운 지식을 배울 때마다 높은 집중력이 필요하다. 첫 번째 단계는 순식간에 지나간다. 1단계에서 신나게 달려갈수록 2단계에서 호되게 무릎을 부딪친다. 아차, 난 아마추어였지! 좌절은 금방 사람을 시무룩하게 만든다. 세 번째 단계에 이르기 전 대부분 사람은 두 번째 단계에서 부딪친 무릎을 문지르면서 계단을 내려간다. 마지막 단계는 차마 쳐다볼 용기도 없이 곁눈질로 슬금슬금 비켜준다.
숙련의 4단계 또는 학습의 4단계. 학습 경험이 시작되기 전부터 무의식적인 능력의 단계에 도달할 때까지의 네 가지 심리적 상태를 가리킨다.
한때 '일반인의 소름 돋는~'으로 시작하는 제목의 동영상이 유행했다. 일반인의 기준은 점점 더 높아져서 누구든 대단한 유명인이 아니면 다 일반인이라고 나왔다. 저렇게 연습하고 오래 했던 사람이 어떻게 일반인이냐고 투덜거리는 댓글이 달리곤 했다. 일반인과 비일반인을 가르는 기준은 무엇이었나, 아마추어리즘이 아름다울 수 있는가. 잊을 만 하면 늘 떠오르는 의문이다. 자기 재능이 비록 200원짜리 유리구슬의 반짝거림에 불과하더라도, 그 반짝임을 계속 유지할 수 있는가? 옆에 루비나 다이아몬드가 있는데도? 저기 전문가의 완성된 작품이 있는데 왜 아마추어는 자기 걸 만들고자 하는가? 이 물음 또한 어렸을 때부터 계속되었다. 즐거워지자고 하는 일에 더는 즐겁지 못하고 과업처럼 낑낑대는 병이다. 취미반에서 골반이 안 돌아가 고생하는 주제에 재능을 고민할 때와 장소와 각인가?
새로 시작하는 모든 일에 평범함의 완벽성(master of mediocrity)을 꿈꾸던 시기가 있었다. 이 완벽성은 용이나 봉황처럼 허구에 가깝다. 완벽의 네 번째 단계를 밟기 위해서는 누구 말마따나 1만 시간이나, 그에 준하는 대가를 바쳐야 가능하다. 1만 시간을 채우는 사람은 이미 평범함의 단계를 넘어섰기 때문에, 나는 그들을 평범함의 완벽성 카테고리 안에 넣지 않는다. 그만한 대가를 치르지 않고 마지막 단계에 오른 사람 또한 평범하지 않기에 그들은 완벽한 재능의 카테고리 안에 넣는다. 결국 내 기준에서 평범하면서 완벽한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와 관련해 친구가 나에게 해준 말이 생각난다. 예전에도 오르지 못할 나무를 번갈아 가며 깨작댈 때가 많았는데, 그때마다 해줬던 말이 "송충아 솔잎 먹어"였다. 평범한 사람에게 재능이란 먹지 못할 식자재다. 차라리 그 시간에 두 번째 단계에서 내려와 적극적 무지의 영역 안에서 자기가 먹을(할) 수 있는 걸 먹으(하)면 된다.
"중요한 건 열심히 하는 게 아니라 잘하는 것"이라는 말도 있긴 하다. 나 역시 이 말을 좋아한다. 이 말은 돈 받고 일하는 모두에게 적용되는 이야기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잘하는 게 아니라 계속 하는 게 중요하다"라는 말이 틀린 것은 아니다. 계속 하는 것과 열심히 하는 것은 다른 종류의 문제다. 계속 하다 보면(언제나 열심히는 아니더라도) 그것만으로 이르게 되는 어떤 경지가 있다. 당장의 '잘함'으로 환산되지 않더라도 꾸역꾸역 들인 시간이 그냥 사라져버리지는 않는다(고 믿고 싶다).
- 『일하는 마음』 , 127쪽
그렇다면 말을 조금 바꿔서, 평범함의 탁월함(excellence of mediocrity)은 어떨까? 자기의 부족함을 겸허히 받아들인 채로 최선을 다하는 것이 평범함의 탁월성이라면, 탁월함은 꼭 숙련의 과정과 비례할 필요가 없다. 열심히 솔잎을 먹으면 된다. 범부의 탁월함은 ‘꾸역꾸역’에서 나온다.
미숙련 단계에서도 물론 즐거울 수 있다. 그러나 잘하면 더 즐겁다. 기왕 학원에 등록했으니 잘 했으면 좋겠다. 이것저것 깨작대다 두 번째 단계에서 포기하는 일은 그만하고 싶다.
한 TV 프로그램에서 유노윤호와 최강창민의 성격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유노윤호가 모든 일에 열정을 외치며 열심히 하는 스타일이라면, 최강창민은 ‘꼭 그렇게까지 해야 할까요…’ 라면서도 지친 몸을 일으켜 조금만 더 하고 자자는 모습을 보여줬다. 최강창민이 될 수는 없어도 그의 마음으로 조금씩만 앞으로 가겠다고, 송충이는 다짐하며 오늘도 솔잎을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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