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아웃]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은 책 BEST 3
『나무 속의 자동차』, 『슬픈 인간』, 『매니큐어 하는 남자』
‘책임’감을 가지고 ‘어떤 책’을 소개하는 시간이죠. ‘어떤,책임’ 시간입니다. (2019. 01. 17)
불현듯 : 오늘은 ‘천천히 읽어도 좋아요!’라는 주제로 이야기 나눠보려고 해요. 왠지 이 주제를 받고 가장 먼저 책을 고르신 분이 캘리님이었을 것 같아요. 어떠셨어요?
캘리 : 네, 이번에는 딱 눈에 들어온 게 있었고요. 요시타케 신스케의 『있으려나 서점』 을 보다가 ‘천천히 넘기는 책’이라는 부분을 읽고 이 주제로 이야기하면 좋겠다 생각했어요. 천천히 책 읽는 것도 정말 재미있으니까요.
프랑소와엄 : 저는 소개하고 싶은 책을 이미 정해놓았었는데요. 캘리님이 이 주제를 딱 말씀하시는데 제가 생각했던 책과 연결이 돼서 좋았어요.
불현듯이 추천하는 책
『나무 속의 자동차』
오규원 저/오정택 그림 | 문학과지성사
동시집 읽는 걸 좋아해요. 동시를 읽을 때면 어릴 때의 오은을 소환하게 돼서 참 좋거든요. 그래서 가져온 책이고요. 이 책은 오규원 시인의 유일무이한 동시집입니다. 저는 오규원 시인을 늦게 알았어요. 2007년 즈음 해서 오규원 시인의 시집을 열심히 읽었는데요. 어느 날 부고 기사가 뜬 거예요. 그러던 와중에 오규원 시인이 생전에 낸 시집을 다 읽은 거죠. 무슨 책이 더 있을까 싶어 봤더니 동시집이 하나 있었어요. 반갑게 읽기 시작했는데 좀 놀랐어요. 제가 아는 오규원 시인은 자본주의를 비판하고, 그 안에서 인간들이 어떻게 살아갈 수밖에 없는지 본질을 파헤친, 문제의식이 높은 시인이었거든요. 굉장히 모던한 시인으로 인식하고 있었는데 동시는 또 다르더라고요. 이 동시집은 봄, 여름, 가을, 겨울, 자연 등이 많이 등장해요. 도시를 노래하던 시인인데 동시에서는 자연을 노래한다는 점이 새롭고 좋았어요.
동시는 표현과 이미지가 풍부한 시들이 많아요. 읽으면서 상상을 많이 하게 되거든요. 옛날로 거슬러 올라가는 거죠. 그러다보면 당연히 시간이 걸리잖아요. 시 한 편을 다 읽고 나서 소화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려요. 그러니까 동시집은 천천히 읽으면 좋은 거죠. 또 여기 사계절이 다 등장하니까 봄에는 봄에 맞는 시를 골라 읽고, 여름에는 여름에 걸맞은 시를 골라 읽었어요. 목차를 보고 골라 읽어도 좋았어요. 먼저 첫 번째 수록된 시를 읽어드릴게요. 제가 동시는 좀 잘 읽습니다.(웃음)
꽃 속에 있는
층층계를 딛고
뿌리들이 일하는
방에 가 보면
꽃나무가 가진
쬐그만
펌프
작아서
너무 작아서
얄미운 펌프
꽃 속에 있는 층층계를 딛고
꽃씨들이 잠들고 있는
방에 가 보면
꽃씨들의
쬐그만 밥그릇
작아서
작아서
간지러운 밥그릇
(오규원, 「방」 전문)
이 한 편을 읽는데도 머릿속으로는 꽃 하나를 떠올리고, 그 꽃에 뿌리를 달아주고 줄기를 올려주고 물을 올려주고, 또 꽃 안에 방을 만들어주고, 하는 것들을 상상하게 돼요. 천천히, 천천히 책을 봐야겠다고 마음 먹게 해준 책이었어요.
캘리가 추천하는 책
『슬픈 인간』
정수윤 엮고 옮김 | 봄날의책
천천히 읽을 때 적격인 것은 목차에서 그날, 그 기분에 딱 맞는 어떤 글 하나를 읽는 것일 것 같아요. 이 책에도 재미있는 목차들이 많거든요. 가령 ‘따뜻한 물두부’. 너무 궁금해지죠?(웃음) ‘쇠락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라거나 ‘나의 고독은 습관입니다’ 같은 목차만 보고도 계속 머물게 됐어요. 다자이 오사무, 미야자와 겐지, 고바야시 타키지, 나쓰메 소세키, 하야시 후미코 같은 일본 작가들이 근현대 시기에 쓴 산문을 담은 책인데요. 이 산문을 정수윤 번역가가 선별해서 구성한 책입니다. 재미있었던 게 정수윤 번역가가 다자이 오사무의 고교 시절 산문이 좋았다고 뒤에 적었는데요. 저도 여기 수록된 「온천」이라는 글이 정말 좋았거든요. 1909년생인 다자이 오사무가 1925년에 쓴 글이고, 고교시절 문집에 수록된 글이에요. 정말 천천히 읽어야 해요. 읽어드릴게요.
아름다운 물이다, 그래, 흡사 수정을 녹인 듯 아름답다, 나의 몸을 담그기에 어쩐지 과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만히 탕으로 들어간다, 졸졸 물이 넘쳤다, 아까운 짓을 했구나, 탕 안에 찰랑찰랑 잔잔한 물결이 일었다. 기분 좋다, 햇살이 불투명 유리 너머로 쏟아져 물 밑까지 비추었다. 물은 다시 잠잠해져 나의 몸을 감쌌다. 정말로 밝다, 밖에서 참새가 짹짹 울었다.
이 책을 읽던 시기가 한창 캘리그라피를 배웠을 때예요. 그때 캘리로 썼던 문장이 여기에 있는데요. 오카모토 가노코의 작가의 「복숭아가 있는 풍경」이라는 글의 한 부분이에요. “눈 딱 감고 복사꽃 안으로 들어가자 모든 게 잊혔다.(중략) 나는 아하하 소리를 내 웃었다.”인데요. 저는 이 문장이 너무 좋아서 캘리로 써두고 액자에 걸어두었어요.(웃음)
책 제목이 『슬픈 인간』 이잖아요. 저는 그 중에서도 여성 작가들의 슬픔에 더 마음이 갔어요. 남성 중심의 문단과 문화 안에서 자신의 작업을 부수적인 것으로 평가 받으면서도 끝까지 살아낸 여성 작가들의 모습이 엿보였거든요. 그 점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됐어요. 여러 방향에서 천천히 읽을 수 있는 좋은 책입니다.
프랑소와엄이 추천하는 책
『매니큐어 하는 남자』
강남순 저 | 한길사
최초로 소개한 적이 있는 저자의 다른 책을 가져왔어요. 이번에 강남순 선생님의 철학 에세이가 새로 나와서 읽다가 마침 주제와 맞아서요. 이 책은 강남순 선생님을 안 읽어본 분들이 처음으로 읽으면 좋을 것 같은데요. 가장 대중적으로 읽힐 수 있는 책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선생님의 예전 책 제목들을 보면 『배움에 관하여』 , 『용서에 대하여』 , 『정의를 위하여』 처럼 좀 어려운 것들이 많거든요. 그런데 이번 책 제목은 한 번 들으면 잊히지 않을 것 같아요. 실제 이 제목의 글이 책에 수록되어 있고요. 선생님이 대학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데요. 어느 날 남학생 한 명이 열 손가락에 청록색 매니큐어를 하고 온 거예요. 이에 대해 ‘어? 이 학생이 개성을 드러냈네?’로 끝나지 않고요. 주변 친구들이 그 모습을 보고도 전혀 어색해하거나 의아해하지 않는 장면을 보고 글을 쓰신 거예요. 매니큐어를 한 남자를 보고도 주변 사람들이 그걸 이상하거나 독특하다고 생각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그 장면을 보면서 말이에요. 우리 주변에도 독특한 개성을 가진 사람들이 있잖아요. 그 사람들의 성격이나 취향을 존중하고, 내가 마음 속으로 어떤 생각을 하든 드러내지는 않으려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전혀 그런 건 생각하지 않고 말해버리는 사람들도 있죠. 그런 것을 생각하게 됐어요.
또 소개하고 싶은 게 ‘자신만의 필독서’라는 글이에요. 선생님이 가끔 책을 추천해달라는 이야기를 듣는대요. 이때 선생님은 ‘무엇을’ 읽느냐보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읽느냐에 대한 문제라고 말합니다. 같은 책을 읽어도 개인이 지닌 가치관이나 세계관에 따라 신음하고 있는 문제가 다르잖아요. 자기의 질문에 따른 책을 읽어야 한다는 것이 핵심 이야기고요. 저희 청취자 분들도 다 읽겠다는 부담감 조금 버리시고, 방송을 듣다가 어떤 책이 지금 나의 고민이나 질문에 연결되는 책을 읽으시면 좋겠어요.
문제의식을 가지고 자신에게 통찰을 주는 책을 찾으려고 하는 것은 마음을 울리는 음악을 찾아서 인내심 있게, 열정을 가지고 여행길에 나서는 것과 같다. 자신이 아닌 타자가 제시하는 것은 언제나 참고용일 뿐 그것이 자신에게 진정한 의미를 구성하게 하는 필독서로 자동적으로 저장되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이 삶의 여정에서 우리는 자신만의 필독서를 만들기 위해 다양한 모험도 하고, 길을 잃는 경험도 하면서 책의 세계를 탐구하는 순례자가 되어야 하는지 모른다.
*오디오클립 바로듣기 //audioclip.naver.com/channels/391/clips/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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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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