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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 출판하는 마음

<월간 채널예스> 2019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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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가 전문적으로 하는 일들을 혼자 직접 하려니 서툴고 버겁기도 하지만 난 이런 일들을 배우는 게 좋다. (2019. 01. 04)

일러스트 손은경.JPG

                           일러스트_손은경

 


아빠의 트럭에 나의 수필집 1000권을 처음으로 실어 오던 날, 출판사에는 있고 내게는 없는 게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바로 창고였다. 대부분의 출판사에는 수많은 책을 보관해둘 공간이 있었다. 웹으로만 글을 연재해온 데다가 출판 경험도 없는 나는 책이 공간을 차지하는 물건이란 것에 대해 별생각이 없었다. 지게차에서 트럭 짐칸으로 옮겨지는 커다란 책 더미를 직접 보고 나서야 좀 심란한 마음으로 재고를 쌓을 장소를 걱정했던 것이다. 걱정을 언제 하든 달라지는 건 없었다. 어차피 내가 가진 장소라곤 아담한 월셋집이 전부였기 때문이다.


트럭을 집 앞에 대고 계단을 낑낑 오르내리며 책을 날랐다. 나랑 엄마는 한 번에 이십 권씩, 아빠랑 동생이랑 애인은 한 번에 사십 권씩 들었다. 600페이지에 달하는 책이라 아주 무거웠다. 왜 이렇게 두꺼운 책을 만든 거냐며 다들 불평했다. 나는 그들처럼 땀에 젖은 얼굴로 “그러게!”라고 말했다. 1000권의 책은 서재와 옷방과 침실과 복도 구석구석을 가득 채웠다. ‘독립 출판업자의 집’이라고 이름 붙여야 할 같았다. 못 보던 물건이 벽처럼 쌓이자 나의 고양이는 꼬리를 낮추고 경계했다. 책의 냄새를 킁킁 맡고 여기저기를 살폈다. 그러더니 며칠 뒤부터는 책 더미를 캣타워 삼아 놀았다. 책은 천장에 닿을 만큼 높이 쌓여서 고양이가 도달하지 못한 높이까지 데려다줄 수 있었다.  


다음으로 할 일은 판매였다. 10월 말에 열린 언리미티드 에디션에 『일간 이슬아 수필집』을 들고 나갔다. <일간 이슬아>의 연재물들을 책으로 선보이는 최초의 자리였다. 이틀 동안 무려 600권이 팔렸다. 그 자리에서 나는 처음으로 독자들의 실체를 확인했다. 물성을 가진 책을 만드니까 실체를 믿을 수 없던 인터넷 독자들을 오프라인에서도 직접 만날 수 있었다. 아주 소중한 순간들이었다.


직거래 행사를 마치고 나서는 곧장 인쇄소에 발주를 넣고 온라인 판매를 시작했다. 지방에 사는 독자들이나 해외 독자들은 언리미티드 에디션에 오기 어려울 테니 말이다. 온라인에서도 책 주문이 아주 많이 들어왔다. 엄마와 아빠와 나는 집에서 1000권 넘는 책을 포장했다. 택배 발송을 위한 안전 봉투와 '뽁뽁이'와 박스와 테이프와 송장 등으로 내 집은 난리가 났다.


그다음으로 할 일은 독립 서점에 입고였다. 가까운 편집자님들과 독립 서점 주인분들께 자문을 구하며 거래 조건을 결정했다. 모든 독립 서점과 똑같은 약속을 하고 싶어서 동일한 공급률을 고집했다. 이메일로 여러 점장님께 입고 안내 메일을 보냈고, 열심히 영업하며 전국 방방곡곡에 책을 배달했다. 현재 80여 개의 독립 서점에서 『일간 이슬아 수필집』이 판매되고 있다. 여기저기에 저마다 다른 이름과 사연을 가진 서점이 아주 많다는 걸 알게 되었다. 지방일수록 더 열심히 입고했다. 내 책을 사려고 독립 서점이라는 곳에 처음 가본 이들도 있다고 했다.


책을 출간한 지 두 달이 지났다. 『일간 이슬아 수필집』은 12월 15일에 5쇄를 찍었다. 집에 쌓아둘 수 있는 최대 재고가 1000권이라서 늘 그만큼씩 주문한다. 출판사나 유통사나 대형 서점 없이 가내 수공업만으로 5000부를 판매하는 중이다. 자려고 누울 때마다 그런 걱정이 든다. 아무래도 평생 써야 할 운을 올해 다 쓰는 것이 아닌가. 한편으로는 요즘이, 봄과 여름에 열심히 농사지어놓은 것을 추수하는 계절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2018년 상반기에는 스스로를 연재 노동자라고 소개했는데 하반기부터는 독립 출판업자 혹은 가내 수공업자라고 말하게 된다. 요즘 내가 일어나서 밥 먹고 하는 일은 독립 서점과의 거래, 점장님들과 연락, 입고 조건 합의, 택배 포장, 배송, 재고 관리, 수금, 장부 정리, 독자 문의 회신, 강연과 인터뷰, 굿즈 제작, 홍보 같은 것들이다. 출판사가 전문적으로 하는 일들을 혼자 직접 하려니 서툴고 버겁기도 하지만 난 이런 일들을 배우는 게 좋다. 책의 출발 지점부터 독자에게 도착하기까지의 모든 과정을 직접 감당하는 동안 내가 아는 편집자님들을 조금 더 존경하게 되었다. 


이 시기가 지나고 봄이 오면 다시 일간 연재를 시작할 것이다. 부풀었던 마음도 가라앉고 익숙한 두려움 속에서 매일 뭔가를 쓸 것이다. 파는 시간보다 쓰는 시간이 더 길 것이다. 어려워도 그 일이 나에게 제일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며 용기를 낼 것이다. 그때 더 잘해보기 위해 지금은 많은 책을 파는 동시에 많은 책을 사고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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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슬아(작가)

연재노동자 (1992~). 서울에서 태어나 살아가고 있다. <이슬아 수필집>, <나는 울 때마다 엄마 얼굴이 된다>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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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아> 저15,300원(10% + 5%)

어느 날 이슬아는 아무도 청탁하지 않은 연재를 시작했다. 시리즈의 제목은 '일간 이슬아' 하루에 한 편씩 이슬아가 쓴 글을 메일로 보내는 프로젝트다. 그는 자신의 글을 읽어줄 구독자를 SNS로 모집했다. 한 달치 구독료인 만 원을 내면 월화수목금요일 동안 매일 그의 수필이 독자의 메일함에 도착한다. 주말에는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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