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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 “소중한 것을 알고 싶어 역사를 공부한다”

『역사의 역사』 2018 올해의 책 1위 선정 기념 송년특강 ‘나는 왜 역사를 공부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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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살다 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 제 마음에 어떤 것이 남아요. 여러분들도 역사에서 사람을 들여다보면 각자에게 남는 게 있을 거예요. 역사를 공부하면 우리에게 정말 소중한 것과, 별로 소중하지 않은 것을 구별하는 눈이 생겨요. 저는 그걸 찾기 위해 역사를 공부해요. (2018. 12.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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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월 21일, 대학로 공공그라운드에서 유시민 작가의 송년특강이 열렸다. 이번 행사는 예스24 독자들이 뽑은 2018 올해의 책 1위에 유시민 작가의  『역사의 역사』 가 선정된 기념으로 마련된 시간이었다. 추첨을 통해 뽑힌 120여 명의 독자는 행사가 시작되기 훨씬 전부터 자리를 빼곡하게 메우며 실로 오랜만에 열린 유시민 작가의 특강을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는 모습이었다.


독자들 앞에 선 유시민 작가는 올해의 책 1위 선정에 대해 언급하면서 “출간할 때 걱정이 많았는데, 책이 형편없었다는 뜻은 아닌 것 같아 안심이 된다”며 웃었다. 더불어 “독자들에게 감사를 표하는 자리인 만큼, 혼자 이야기하는 특강이 아닌 독자와 대화를 나누는 시간을 가지고 싶다”는 마음을 전했다. 그의 뜻대로 이날 특강은 유시민 작가가 역사를 공부해 온 소회와 이유를 짤막하게 전한 뒤, 독자의 질문에 답하며 함께 대화하는 시간으로 가득 채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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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모르는 사이, 역사를 보는 눈이 달라졌다


유시민 작가는 먼저 ‘나는 왜 역사를 공부하는가’라는 제목으로 이야기를 펼쳐나갔다. 그에게 역사 공부란 세상을 이해하고, 궁금증을 해결하는 데 필요한 도구 중 하나다. 우리가 살면서 마주치는 많은 것들에서 역사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여행을 다니다 보면 역사를 알게 돼요. ‘저 건물은 왜 지었지? 누가 지었지? 언제 허물어졌지?’ 이런 의문이 들 때, 그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역사를 알아야 하죠. 요즘은 역사 정보가 거의 다 개방돼 있기 때문에 궁금하면 언제든 현장에서 바로 찾아볼 수 있어요. 로마에 여행을 갔을 때, 팔라티노 언덕 위에 ‘마르코 루리치’라는 예술가가 만든 설치미술작품이 있었어요. ‘Death of the monument(기념비의 죽음)’이라는 문구가 적힌 작품이었는데, 그런 걸 마주하면 바로 검색해보죠.(웃음) 찾다 보니 마르코 루리치가 쓴 같은 제목의 책이 있고, 올해 부산 비엔날레에서 작품을 낸 작가더라고요. 요즘은 검색엔진에 역사 정보가 사실상 무제한으로 널려 있는 시대입니다. 생각해보면 이렇게 역사 정보를 검색하고, 해석하고, 처리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내가 살면서 또는 어딜 다니면서 마주치는 것들을 이해하려면 그 발생사를 알아볼 수밖에 없어요. 그러다 보니 자꾸 역사를 들여다보게 되는 것 같아요.”

 

유시민 작가는 나이를 먹으며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와 역사를 바라보는 눈이 점차 달라지는 것을 느낀다고 했다. 그가 청춘 시절 매달렸던 역사 공부는 부조리한 세상을 바꾸기 위한 투쟁이었다면, 환갑을 앞둔 지금의 역사 공부는 삶에서 꼭 붙들고 가야 할 소중한 것들을 찾는 여정이다. 

 

“지난주에 나온 통계청 발표를 보니 60세 남자의 기대 여명이 약 22년이라고 해요. 그 기사를 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죠. 이제 몇 달 후면 봄이 올텐데, ”봄이다!“를 22번하면 죽는구나.(웃음) 확률상으로 보면 죽어야 하죠. 이런 상황이 되니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달라져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젊었을 때는 어떻게 하면 이 사회를 바꿀 수 있을지 알고 싶어서 역사를 공부했거든요. 그러니 주로 혁명사를 많이 봤죠.(웃음) 역사에서 반복되는 어떤 패턴, 법칙을 안다면 내가 사는 세상을 바꾸는 방법을 찾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달라요. 과거의 정보를 보다 보면, 그 안에 있는 사람을 만나게 돼요. 각기 다른 시대에서, 각기 다른 색깔로 살았던 사람들 생애에서 공통점과 차이점이 있더라고요. 지금도 여전히 같은 것과, 시대나 사회마다 다른 것이 있다고 표현해도 좋겠네요. 어쨌든 시간과 공간의 차이를 건너뛰어서 여전히 존재하는 것들이 있어요. 이게 결국 중요한 게 아닐까 생각해요. 스물두 번의 봄을 남긴 입장에서, 꼭 붙들고 가야할 어떤 게 역사에 있지 않을까 싶은 거죠. 이게 요즘 제가 역사를 볼 때 얻는 즐거움이에요.”

 

역사에서 법칙이나 패턴을 분석하려 했던 과거에서 벗어나 그 안에 있는 ‘사람’에 집중하자 같은 역사도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가 변하게 된 까닭은 여기에 있다. 관점이 달라지니 해석도 달라질 수 있는 것. 유시민 작가는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는 수시로 변할 수 있다”며 독자들도 역사를 공부하는 즐거움을 느껴보길 바란다고 말했다.

 

“석가모니가 돌아가시고 나서 화장을 했어요. 시신이 타고 뭐가 남았겠죠. 유품도 있었을 테고요. 그때 석가모니를 추종했던 열 그룹 정도의 사람들이 타고 남은 것을 가져가려고 아귀다툼을 벌입니다. 거의 난투극을 방불케 한 싸움이 끝난 후 각자 자기가 움켜쥔 것을 들고 흩어져요. 그걸로 절을 만들고 그 위에 부처님을 모시고 승려제도를 만들죠. 그 역사를 보면서 ‘석가모니의 가르침이 무슨 소용 있지? 도대체 그들은 따라다니면서 뭘 배운 거지? 어쩌면 부처님은 괜한 일을 한 지 몰라’라고 생각했어요. 그런 거 하지 말라고 가르쳤는데, 가장 가까운 추종자들이 그런 짓을 했잖아요.


역사는 사람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여러분들에게 어떤 문제의식이 있을 때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답을 찾을 순 없겠지만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참고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 무궁무진할 거예요. 저는 그 재미로 역사를 공부하고요. 이미 살다 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 제 마음에 어떤 것이 남아요. 여러분들도 역사에서 사람을 들여다보면 각자에게 남는 게 있을 거예요. 역사를 공부하면 우리에게 정말 소중한 것과, 별로 소중하지 않은 것을 구별하는 눈이 생겨요. 저는 그걸 찾기 위해 역사를 공부해요.“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에 대한 짧은 강연을 끝으로 유시민 작가는 독자와의 질의응답을 갖고 소통하며 남은 시간을 마무리했다. 다음은 유시민 작가와 독자들의 대화를 옮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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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 작가와의 Q&A 


나이가 들면서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가 변했다고 말씀했는데, 같은 역사적 사실에 대해 젊을 때와 현재를 비교해 다르게 보이는 게 있는지 궁금합니다.


아주 많죠. 오스트리아 빈을 수도로 두고 있던 합스부르크 제국,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의 황제 중 가장 유명한 사람이 ‘요제프 황제’예요. 빈에 가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빈의 관광지는 모두 ‘링 스트리트’ 안에 있거든요. 그 자리가 과거에는 성벽이었는데, 요제프 황제가 그 성벽을 허물어버렸어요. 그가 어느 날, “짐은 결심했노라. 저 성벽을 헐겠다”고 했을 때 수많은 신하들이 반대했죠. 성벽 덕분에 오스만튀르크 제국의 공격을 두 번이나 견뎠고, 서유럽이 오스만튀르크 지배 아래로 들어가지 않을 수 있었거든요. 그렇게 중요한 성벽이 요제프 황제의 결심으로 허물어지면서 도시가 확장되고 오늘날 빈의 모습이 만들어졌습니다. 제가 젊어서 프랑스 혁명을 공부할 때 요제프 황제는 수구반동 신성동맹의 후예였어요. 19세기, 20세기 초까지 반동적인 정책을 유지하며 막강한 군주정을 유지하고 50년이 넘는 기간을 재위한 독재자였고요. 그런데 지금은 그가 괜찮은 사람이었다고 생각해요. 세상의 변화를 볼 줄 알았거든요. 그 당시 무기체계가 발달해서 성벽은 더 이상 방어수단이 되지 않았으니까요. 웅크리고 고립돼서는 세상에 뒤떨어진다는 판단에 신하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성벽을 허물었고, 그밖에도 헝가리를 독립시켜서 오스트리아와 이중제국을 만들기도 했어요. 그의 생애를 공부하고 어떤 판단과 근거에 입각해 그러한 결정을 내렸는지 자세히 들여다보고 나니 그가 괜찮은 사람이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사람의 생애를 들여다보면 같은 역사적 사건도 다르게 보여요. 제가 공부하는 방식으로 역사를 보는 게 무조건 좋다고 말할 순 없겠지만, 적어도 제가 과거에 했던 방식보단 사람을 들여다보려는 지금의 방식이 개인적으로 훨씬 좋은 것 같아요.

 

역사를 보는 관점이 ‘법칙’에서 ‘소중한 것을 찾아내는 것’으로 바뀌게 된 계기가 있나요?


크게 두 가지인 것 같습니다. 젊었을 때는 혁명적인 방법이 아니고는 이 사회를 바꿀 수 없다는 생각이 굉장히 강했어요. 그런데 5.18 민주화운동, 6월 항쟁, 촛불 집회 등 사실상 혁명적 결과를 낸 대중행동이 여러 차례 우리나라에서 진행되면서 국민들이 마음만 먹는다면 사회를 바꿀 수 있는 시대가 왔죠. 그래서 지금은 역사적 격변이 일어난 시대나 사회, 그 격변이 일어나게 된 원인이나 과정 등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 수밖에 없었어요. 대신 지금은 어느 나라에 좋은 제도가 있다고 하면 그 제도가 언제 생겼고 누가 도입했는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그 제도 변경을 뒷받침했던 논리는 무엇인지 등을 보게 되죠. 한꺼번에 개혁이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야금야금 조금씩 개혁이 이루어지는 시대라고 할까요? 민주주의가 절차적으로 보장된 이후에는 어느 나라나 그렇게 흘러가는 것 같아요. 이처럼 환경이 바뀌었다는 게 첫 번째 이유고, 두 번째는 제가 나이를 먹었어요. 이제 더 이상 20-30대가 아니잖아요. 스물두 번의 봄이 지나면 저는 가야 하기 때문에(웃음) 20년 이상 걸리는 일을 할 수가 없어요. ‘이제 내 인생의 황금기는 다 지나갔다. 뭔가를 하기 위해 발버둥 치는 인생의 국면은 끝이 났다. 그러니 내 남은 생은 더 밝고 따뜻하고 긍정적인 감정을 느끼면서 마무리 해야겠구나’라는 생각을 해요. 삶에 대한 인식이 달라진 거죠.

 

나이를 먹으면서 역사에 대한 느낌이 달라지고, 사람을 중심으로 역사를 보게 된다고 하시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 속에서 변하지 않는 것들, 우리에게 소중한 무언가가 공통적으로 있다고 말씀하셨어요. 그 공통점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우리는 누구인가, 어떤 존재인가, 이 세상에 왜 존재하는가 등의 질문에 대해 그동안 인문학이 대답을 해왔어요. 그런데 최근에 제가 방송하면서 만난 물리학자 선생님이 그 대답들은 과학과 무관하다고 하더라고요. 물질적 증거가 없으니까요. 우리는 우리가 어떤 존재이고 존재의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해 물질과 연관 없는 답을 들으며 20세기까지 살아온 거예요. 그런데 극히 최근에 들어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에 대한 과학적 분석이 나왔어요. 최근 과학자들이 밝힌 것에 의하면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는 같은 생물학적 언어로 쓰여 있다고 해요. 인간이 자연의 산물이고 자연의 일부라는 게 확실해진 거예요. 또 하나는 인종이에요. 우리는 민족이 실체가 있는 것인 양 생각해왔는데 현재까지의 연구를 보면 생물학적으로 호모사피엔스는 다 같은 종이라고 해요. 민족이나 인종은 가상의 공동체라는 거죠. 세 번째는 인간은 자기중심적 동물이지만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존속을 위해 개체의 생존 가능성을 포기하는 행동 양태가 나타나는 진사회성동물의 본능까지 가지고 있다고 해요. 뇌의 어느 부위가 활성화되어 그런 행동을 한다는 것까지 뇌 과학자들이 일부 밝혀냈어요. 자기중심성과 이타성이 인간의 본성이라는 발견은 굉장히 중요한 사실이죠. 인간에 대한 이 세 가지 과학적 검증을 토대로 생각해보면 우리가 어떤 방식으로 살아가야 할 것인지에 대한 답이 나와요. 그런데 그렇게 살고 있나요? 그렇지 않죠. 우리가 우리 자신에 대해 알게 된 과학적 사실들을 토대로 도덕 규범, 행동 준칙 등을 다듬어 나가고, 공유하고, 그것이 대세가 된다면 인류는 구원받을 수 있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제게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 해를 덜 끼치는 생각, 그러한 행동을 할 때 느끼는 감정 등이 굉장히 중요한데 역사 속에서 이걸 발견할 수 있어요. 물질적 증거를 알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직관적 도덕관념에 의거해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주장한 분들이 있어요. 혹은 주장하지 않았지만 그렇게 살아내신 분들이 있어요. 저는 그런 분들을 좋아해요.

 

사극이나 역사책을 보면 인물에 대한 관점이 자꾸 바뀝니다. 예컨대 어린 시절에 본 장희빈은 악녀였는데 지금은 아들을 지키기 위해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하는 면이 있거든요. 역사에 대해 이렇게 주관적으로 해석하는 것이 위험한 일은 아닌지 궁금합니다.


자연스러운 거예요. 어떤 사람도 하나의 얼굴만 가진 사람은 없습니다. 심리학자들은 이걸 ‘페르소나’라고 하죠. 우리 모두는 복수의 페르소나를 가지고 살아요. 사람의 성격은 단면이 아니라 입체죠. 단색이 아니라 여러 색이 섞여 있고요. 똑같은 사람이라도 환경이 바뀌면 다르게 행동해요. 우리의 삶, 자아, 인격은 완성되어 있거나 고정되어 있거나 하나의 면만 존재하지 않아요. 모든 개인의 삶은 입체적이기 때문에 보는 각도에 따라 다르게 보일 수밖에 없죠. 따라서 역사적 인물을 다면적으로 보는 것은 자신의 정신적 성장에도 도움이 되는 독법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흔히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를 일컬어 ‘과거에 범했던 잘못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라고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역사를 오랫동안 공부해 온 입장에서 앞으로 우리 사회의 큰 변화, 흐름 등을 예견하고 계신 부분이 있나요?


첫 번째는 과학 기술의 발전, 정보의 유통 등이 앞으로 더 빠른 속도로 가속 팽창할 거예요. 지식과 정보, 과학 기술 같은 것들은 인류 역사 전체를 놓고 보았을 때 항상 발전해왔거든요. 두 번째는 우리 삶에 큰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요소들이 갈수록 글로벌해지고 있어요. 과거에는 우리 동네, 우리 지역, 우리나라가 중요했다면 앞으로는 내 삶을 움직이는 요소들이 점점 더 세계와 연결되겠죠. 세 번째는 ‘스티븐 핑커’의 책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에 나오는 이야기인데요. 돌도끼를 들고 다니던 시절에서 오늘날에 이르기까지를 보면, 인간의 폭력성은 지속적으로 감소해왔다고 해요. 무기가 발달하면서 살상의 숫자가 많아졌을 수는 있지만 공격성의 정도나 폭력이 일상에 만연한 정도는 뚜렷이 감소했다는 거예요. 저는 이게 추세가 되리라고 봐요. 이 세 가지 흐름에 미루어 볼 때 앞으로 지구 제국이 만들어질 거라 생각해요. 개별 국가가 주권의 상당 부분을 지구제국에게 양도해 지구제국이 문제를 해결하고, 지역적인 문제들은 각 국가의 정부가 지방정부처럼 해결해나가는 방식으로 갈 수밖에 없지 않겠냐는 막연한 추정을 해보고 있어요. 

 

역사는 결국 사람이 사는 이야기잖아요. 그 의미에서 드리는 질문입니다. 지금 자녀를 키우는 부모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나요?  

 
자녀를 낳고 키운다는 건 굉장히 큰일이에요. 부부는 사랑이 없어지거나 서로를 책임지기 싫어지면 갈라설 수 있어요. 그런데 자녀는 그렇지 않거든요. 아이가 혼자 힘으로 사회에서 살아갈 때까지 부모에게 일방적인 책임이 따라요. 아이가 원해서 세상에 나온 게 아니기 때문이죠. 근본적으로 이 계약은 일방적이었어요. 그러니 부당한 대접을 받아도 자식한테는 꾹 참아야 해요. 그런데 제가 부모들에게 당부할 자격이 있나요?(웃음) 어쨌든 자녀들은 이 관계를 선택한 적이 없기 때문에 둘의 관계는 동등할 수가 없어요. 무조건 자녀에게 유리한 쪽으로 모든 것을 해줘야 한다고 봐요. 아이들이 제일 화가 날 때는 부모가 자기를 마음대로 하려고 한다고 느낄 때거든요. “다 너를 위해서 하는 말이야. 이게 옳아. 내가 너보다 더 잘 판단해.” 이런 건 절대 안 돼요. “엄마 아빠가 생각해봤는데 이렇게 하는 게 더 바람직하지 않을까?” 정도의 조언이 맥시멈이어야 하죠. DNA를 나누어줬다고 해서 자식이 자기의 뜻대로 움직이길 바란다는 건 과한 기대와 욕심이라 생각합니다. ‘아이들이 행복하면 나도 행복하다’고 생각하면 그만이지, 아이들이 행복해하지 않는 쪽으로 무언가를 요구하는 건 참는 게 좋지 않을까 싶어요. 제 경험담으로 말씀을 드립니다.(웃음)

 

최근 여론조사에서 문재인 정부에 대한 지지율이 나왔는데 유독 20대 남성의 지지율이 낮았어요. 이에 대한 여러 해석이 있는데, 20대 남성들의 삶이 힘들다는 것이겠죠. 작가님께서는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저도 언론에 보도된 것을 봤는데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젠더 이슈가 있다는 건 분명하죠. 그렇지 않고서는 이런 차이가 나올 수 없을 거예요. 취업의 어려움, 대학생활의 어려움, 고용불안정 문제 등은 남녀 공히 부딪히는 문제인데, 같은 사회에서 살아가는 또래에서 두 배 이상 지지율 차이가 난다는 것은 남녀가 각기 다르게 느끼는 부분이 있어서겠죠. 저는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해요. 다만 정치라는 건 올바른 일을 하려는 사람에게 굉장히 힘든 자리예요. 대중 민주주의는 욕망과 욕망이 충돌하고, 욕망이 욕망을 제어하는 시스템이거든요. 옳은 것이 이기는 게임이 아니라 다수의 욕망을 추종하고 대변하는 쪽이 이기는 게임이죠. 문재인 대통령은 적어도 자신의 욕망을 충족하기 위해 대중의 욕망을 추종하는 스타일이 아니에요. 지지율이 떨어지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고 봐요. 대통령이 이성적인 관점에서 올바른 방향으로 정부의 권한을 행사해나가는 데 있어 빚어진 일이라고 보고요. 20대가 화내는 것도 이해할 수 있어요. 우리 세대엔 여자는 대학을 안 가도 그만이라는 생각이 팽배했지만, 지금의 20대들은 초등학교에서부터 거의 여자선생님들을 만났고 말 잘 듣는 여자아이들이 예쁨 받고 나대는 남자아이들이 얼마나 차별 받았는지 몸으로 겪은 세대란 말이에요. 군대도 가야하고, 여자들보다 특별히 받은 것도 없는데. 게다가 아직 미혼이죠. 또래 집단에서 보면 여자들이 훨씬 유리하다고요. 사회에 성차별이 있는 건 우리 책임이 아니고 우린 역차별 받으며 살아왔다는 생각이 드니까 정서적으로 반발할 수 있다고 봐요.


지지율이 떨어지는 것은 예견된 거예요. 우리 국회의 선거 시스템, 대통령 중심제는 2,000년 전 로마 콜로세움에서 벌어진 검투 경기와 비슷하거든요. 검투사끼리 싸우다 한쪽이 쓰러져요. 다수의 관중이 환호하며 엄지손가락을 내리면 황제가 그 욕망을 추종해 검투사를 죽이죠. 저는 문재인 대통령이 최소한 ‘옳지 않다’라고 판단하기 어려운 일들부터, ‘옳다’고 확실히 판단을 할 수 있는 범위까지의 일들을 나름의 방식으로 해나가고 있다고 생각하고요. 지금은 잔혹하기 짝이 없는 검투 경기의 메커니즘이 가동되기 시작했다고 생각해요. 똑같은 국민이 때로는 이명박, 박근혜를 뽑았다가 문재인 대통령을 뽑고 미국도 같은 국민들이 오바마 대통령을 뽑았다가 지금은 트럼프 대통령을 뽑잖아요. 민주주의가 원래 그런 거예요. 저는 우리 국민들이 앞으로 어떤 선택을 해도 놀랍지 않아요.


 

 

역사의 역사유시민 저 | 돌베개
역사의 힘과 논리, 역사가의 생각과 감정, 역사 공부의 재미와 깨달음을 함께 나누는 가운데 저마다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나아가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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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성소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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