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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 오은 시인 그리고 올리버색스의 『고맙습니다』

올리버색스 『고맙습니다』 크리스마스 에디션 발매 기념 낭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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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버색스의 글은 끝내 유머를 잃지 않는다. 삶을 무작정 찬미하는 게 아니라 자신이 좋아하는 사물에 기대 과거를 떠올리고 삶을 투영한다는 점이 놀랍다. (2018. 12.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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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8월 30일. 뇌신경학자로, 아름다운 문장을 쓰는 작가로 사랑 받았던 올리버색스가 세상을 떠났다.  『고맙습니다』  는 죽음을 앞두고 작가가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네 편의 에세이를 모은 책이다. 2016년 5월, 한 손에 잡히는 단정한 모습으로 국내에 출간되어 많은 사랑을 받은 바 있던 『고맙습니다』  가 2018년 12월, 레드 버전과 블루 버전, 두 가지 장정의 크리스마스 에디션으로 다시 한 번 독자를 찾았다. 그리고 지난 12월 19일, 홍대 카페샌드박에서는 크리스마스 에디션 출간을 기념하며 김현 시인과 오은 시인이 함께 크리스마스 에디션에 수록된 그들의 헌시를 낭독하고, 자리를 꽉 채운 독자들과   『고맙습니다』 의 문장들을 읽었다. 이날 낭독회에서 오은 시인은 “(나도 학창시절 주기율표를 좋아했는데)나처럼 주기율표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반가웠다. 올리버색스처럼 그 즐거움을 글로 승화시키지는 못했겠지만 동질감을 갖게 되어서 올리버색스를 참 좋아한다.”고 말했고, 김현 시인은 “올리버색스는 삶과 사랑에 대한 에너지가 충만했던 사람이다. 올리버색스의 책상에 대한 짧은 영상이 있다. 글로 읽고, 사진으로만 봤을 때 올리버색스는 그냥 인상 좋은 할아버지 느낌이었는데 영상을 보니까 너무나 아이 같았다. 앞으로 어떻게 늙을 것인가, 생각할 때 상상한 얼굴이었다.”며 작가에 대한 애정을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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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공평하게 수소로 태어나지만

 

낭독회는 먼저 두 시인의 헌시 낭독으로 시작했다. 오은 시인이 김현 시인의 헌시 「O」를, 김현 시인이 오은 시인의 헌시 「고마워하겠습니다」를 낭독했다.

 

죽음을 앞장세우지 말자고
눈 쌓인 나뭇가지를 꺾어
내가 당신에게 줬지요
고마워요, 눈
당신은 침묵의 샴페인을 터뜨리고
흘러나온 걸 제가 다 마셨습니다
당신은 만년필로 적은 내 글씨를
기약도 없이 들여다보다가
고마워요, 눈이라고 말했습니다
-김현, 「O」일부

 

이 시는 올리버색스의 연인이었던 빌헤이스가 그들의 사랑과 올리버색스의 마지막을 담은 『인섬니악 시티』라는 책에 수록되기도 했다. 오은 시인이 낭독한 자신의 시를 듣고 김현 시인은 “이 시를 다른 자리에서 읽은 적이 있지만 남이 읽어주는 것을 처음 듣는다. 신기한 경험이다. 아주 좋았다.”며 감상 소감을 전했다. 이에 오은 시인은 “김현 시인의 시를 이 기회에 낭독하니 어떤 호흡으로 이 시를 썼는지 알 것 같아서 참 좋았다. 발음을 해서 시를 읽는 것이 좋은 것 같다. 여러분도 이 시를 소리 내 읽어보시면 좋겠다.”고 답했다.

 

저는 지금 브로민의 시기를 지나고 있습니다
브로민은 부식성이 매우 강하다고 합니다
악취가 난다고 합니다
숨을 참으며 숨을 고르며
녹슬지 않기 위해 하루하루를 견디고 있습니다

 

제 이름은 은銀입니다
마흔일곱 살이 되는 날,
저는 또다시 당신을 떠올릴 겁니다
-오은, 「고마워하겠습니다」일부

 

김현 시인의 낭독이 끝나자 오은 시인은 “고등학생 때 주기율표가 신기해 조금 외웠었다. 물론 지금은 다 잊어버렸다. 이 시를 쓸 때는 다시 찾아본 것이다. ‘아이오딘’, ‘텅스텐’ 같은 원소는 발음하기 괜찮아서(웃음) 인위적으로 넣었다. 이 시를 쓸 때 원소기호도 다시 보고, 발음할 때 기분 좋아지는 것을 찾느라 재미있었다. 우리는 공평하게 수소로 태어나지만 언제 무엇으로 떠나게 될지 모른다는 생각을 시 쓰며 했다. 운이 좋으면 아인시타이늄을 마주할 수도 있지만 말이다.”라며 시 뒷이야기를 전했다. 김현 시인은 “오은 시인 특유의 말투가 있어서 오은 시인이 직접 읽었으면 더 귀엽게 잘 들려주셨을 것 같다.(웃음) 또 이 시가   『고맙습니다』  와 잘 어울린다.   『고맙습니다』  가 올리버색스가 죽기 전 마지막으로 쓴 원고를 묶은 것인데 이 책 뒤에 담긴 오은 시인의 헌시는 계속해서 살아 있는 사람의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죽어가는 사람의 사람의 글에 생기 같은 것들을 불어넣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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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순간을 잘 기억해두고 싶다


이어 두 시인은 독자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자신의 시를 낭독했다. 김현 시인은 「두려움 없는 사랑」을, 오은 시인은 「나」를 낭독했다. 먼저 김현 시인은 “ 『글로리홀』 과  『입술을 열면』 이라는 두 권의 시집이 있다. 이 시는 거기에 수록되지 않은 시다. 「O」를 쓸 때도 그랬는데 이 시를 쓸 때도 두 동성연인을 생각하면서 썼다. 이 시가 오늘 이 자리에 어울릴 것 같아서 가지고 왔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게이들의 사랑시를 읽는다는 게 좋지 않나.”라며 이야기를 열었다. 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사랑을 외치고, 이야기 나누는 이 순간을 잘 기억해두고 싶다.”며 경청하는 독자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기도 했다.

 

어제였던가요?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말을 듣고
당신 배 위로 갔잖아요
우리 노를 저어 가요
넓은 바다로
두려움 없는 곳으로
-김현, 「두려움 없는 사랑」일부

 

이어 오은 시인은 “원래는 「우리」라는 시를 읽으려고 했는데 김현 시인의 시에 ‘우리’라는 이야기가 나와서 이 시를 읽겠다. 올 한 해 제가 느낀 감정이 이랬던 것 같다. 털어버리는 느낌으로 읽으려고 한다. 우리는 모두 자신에 대해 불만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런 마음을 좀 덜어버리길 바라는 마음이다.”라고 말하며 자신의 시 「나」 를 낭독했다.

 

차마 웃지 못할 이야기처럼
웃다가 그만 우스꽝스러워지는 표정처럼
웃기는 세상에 제일 가는 코미디언처럼
혼자인데
화장실인데
내 앞에서도 노력하지 않으면 웃을 수 없었다
-오은, 「나」일부

 

낭독을 마치고, 올해 힘든 일이 많았다는 오은 시인이 “스스로가 미운 적이 많아서 웃음이 안 났다. 내년에는 조금 나를 사랑하고, 많이 웃기로 마음먹었다.”는 다짐을 나누자, 김현 시인 역시 “요즘 왠지 모르게 웃는 연습을 해보게 된다. 힘들 때나 그냥 기분이 평정할 때 한 번 왈칵 웃고 나면 괜히 후련해진다. 그냥 미소만 지어보기라도 하는 것이 우는 것과 같은 효과가 있다고 믿게 되었다.”고 말하며 함께 웃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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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내 유머를 잃지 않는


세 번째 순서는 두 시인이   『고맙습니다』   본문을 낭독하는 시간이었다. 오은 시인은 자신의 헌시 「고마워하겠습니다」를 쓰게 한 ‘나의 주기율표’의 한 구절을 낭독했다. 시인은 올해의 책으로 꼽게 된 책 두 권, 강창래 작가의  『오늘은 좀 매울지도 몰라』 와 철학자 김진영의  『아침의 피아노』 를 소개하며 “둘 다 죽음에 관한 글들이다. 죽음은 가까이 다가갈 때에야 돌아보는 것 같다. 평소에는 오늘 하루를 살기도 버겁고, 내일을 그리기도 바빠서 과거를 돌이키기 힘들다. 그러나 마지막이 다가올수록 과거를 돌이켜보는 것 같다. 이 두 권에 책에서 다 그런 태도를 느꼈는데 올리버색스의 글에서도 같은 느낌을 받았다. 무엇보다 올리버색스의 글은 끝내 유머를 잃지 않는다. 삶을 무작정 찬미하는 게 아니라 자신이 좋아하는 사물에 기대 과거를 떠올리고 삶을 투영한다는 점이 놀랍다. 이런 글은 어쩌면 올리버색스의 글에서만 만나볼 수 있지 않을까.”라며 올리버색스를 다시 한 번 추억했다.


김현 시인이 낭독한 글은 ‘나의 생애’와 ‘안식일’의 한 구절이었다. 최근 죽음에 대해 생각해보게 됐다는 김현 시인은 친구의 죽음을 고백하며 “친구가 떠나고 나니 살면서 내가 무얼 했는지를 나에게 애정을 갖고 있는 사람, 내가 애정을 갖고 있는 사람에게 많이 보여주는 것이 정말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제 새해 다짐이 ‘맛있는 거 먹고 좋은 데 가는 걸 많이 남기자’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죽음과 삶에 대한 이야기를 깊이 나눈 두 시인은 이어 독자들에게 마이크를 넘겼다. 책 『고맙습니다』 를 사랑하고, 올리버색스를 사랑하고, 두 시인을 사랑하는 독자들이 차분히  『고맙습니다』  를 낭독하면서 깊어가는 겨울을 위로했다. 2018년, 각자가 생각하는 올해의 단어와 버리고 싶은 단어를 꼽았고, 삶의 기운을 그리고 죽음의 의미를 충분히 곱씹는 자리가 계속해서 이어졌다.
 


 

 

고맙습니다올리버 색스 저/김명남 역 | 알마
누구나 결국엔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죽음에 대해 놀랍도록 차분하게 이야기한다. 문장에서, 문장과 문장 사이의 여백에서 느껴지는 올리버 색스의 목소리와 숨결은 담담하고 부드러우며 나지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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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신연선

읽고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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