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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렬한 추위는 형태를 무너뜨린다
“하늘을 날다 공중에서 얼어붙은 새들이 돌처럼 땅에 떨어졌다. 노르위치의 한 젊은 시골 여성은 평소대로 옹골차고 팔팔한 모습으로 길을 건너기 시작했는데, 목격자들에 따르면 그녀가 분명 가루로 변해 먼지처럼 지붕 너머로 휘리릭 날아갔다고 한다.” (279쪽)
버지니아 울프의 『올랜도』 의 한 장면이다. 강렬한 추위는 형태를 무너뜨린다. 새들은 운동성을 잃고 사물로 전락한다. 옹골차고 팔팔한 여성은 바람과 함께 날아간다. 물고기들은 투명한 얼음에 붙들려 있다. “삶은 일시 정지 상태에 있고, 온 나라는 (중략) 죽음과 반쯤 죽은 가사 상태 사이를 (중략) 오가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현실이 환상의 습격을 받는 데 주목해야 한다. 윤곽선이 무너진 현실 위에서 모든 것이 가능해진다. 죽음은 사랑을 불러들이는 강력한 힘이다. “뜨거운 열정”은 차가운 대지와 얼어붙은 강물을 배경으로 “분출”할 때 가장 강렬하다.
과연 올랜도는 러시아에서 온 공주 샤샤와 갑자기 격렬한 사랑에 빠진다. 두 사람은 얼어붙은 강 위에 함께 누운 채 사랑을 나누고, “얼음이 자신들의 뜨거운 사랑의 열기에 녹지 않는 것을 경이”롭게 생각한다. ‘얼음 위의 불’, 이것이 올랜도와 샤샤의 사랑이다. 인류가 기억할 만한 불후의 사랑 중 하나.
“얼음을 녹이는 첫 번째 빗방울이 갑자기 올랜도의 얼굴에 세차게 떨어진다.” 이것이 이 사랑의 종말이다. 따스한 봄에는 존속할 수 없는 열정도 있다.
영감의 원천이 될 날씨의 인문학
알렉산드라 해리스의 『예술가들이 사랑한 날씨』 (펄북스, 2018)는 예술가들이 기록한 날씨에 대한 이야기이자, 날씨가 만들어낸 예술에 대한 이야기이다.
1683년 템스 강이 추위로 얼어붙었을 때 일어난 일을 배경으로 흥미로운 에피소드들을 소개하다가 등장하는 『올랜도』 . 버지니아 울프는 이 400살짜리 인간을 350년 전으로 돌려보내면서, 얼어붙은 템스 강에서 사랑을 나누게 한다. 상상력이란 역사의 특징을 정확히 포착하는 눈이 없을 때 얼마나 형편없는 것인가. 또한 얼어붙은 템스 강 위에서 사랑을 나누게 하지 않는다면 문학이란 아무것도 아니지 않을까. 그러나 울프는 이 둘 모두를 해냈다.
얼어붙은 템스강 | 아브라함 혼디우스(1677)
어쨌든, 이 책은 분명히 ‘날씨의 인문학’을 생각해보았을 수많은 (천)문학자들한테 엄청난 영감을 줄 게 틀림없다. 치밀한 자료 조사에 바탕을 둔 채 ‘날씨’와 ‘예술’의 장기적 상호작용을 기록하는 저자의 매끄러운 글 솜씨는 700쪽이 넘는 기나긴 독서를 즐겁게 만든다. 이 책의 출간을 계기로 한국에도 관련한 연구가 축적될 것을 기대한다.

장은수(편집문화실험실 대표, 출판평론가)
민음사에서 편집자로 일을 시작해 민음사 대표를 지냈다. 현재 편집문화실험실 대표, 한국문학번역원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출판사 제공
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