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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 기고] 예술가들이 기록한 날씨, 날씨가 만들어낸 예술 이야기

『예술가들이 사랑한 날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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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분명히 ‘날씨의 인문학’을 생각해보았을 수많은 (천)문학자들한테 엄청난 영감을 줄 게 틀림없다. (2018. 12.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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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nalacultura


 

강렬한 추위는 형태를 무너뜨린다

 

“하늘을 날다 공중에서 얼어붙은 새들이 돌처럼 땅에 떨어졌다. 노르위치의 한 젊은 시골 여성은 평소대로 옹골차고 팔팔한 모습으로 길을 건너기 시작했는데, 목격자들에 따르면 그녀가 분명 가루로 변해 먼지처럼 지붕 너머로 휘리릭 날아갔다고 한다.” (279쪽)

 

버지니아 울프의  『올랜도』 의 한 장면이다. 강렬한 추위는 형태를 무너뜨린다. 새들은 운동성을 잃고 사물로 전락한다. 옹골차고 팔팔한 여성은 바람과 함께 날아간다. 물고기들은 투명한 얼음에 붙들려 있다. “삶은 일시 정지 상태에 있고, 온 나라는 (중략) 죽음과 반쯤 죽은 가사 상태 사이를 (중략) 오가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현실이 환상의 습격을 받는 데 주목해야 한다. 윤곽선이 무너진 현실 위에서 모든 것이 가능해진다. 죽음은 사랑을 불러들이는 강력한 힘이다. “뜨거운 열정”은 차가운 대지와 얼어붙은 강물을 배경으로 “분출”할 때 가장 강렬하다.
 
과연 올랜도는 러시아에서 온 공주 샤샤와 갑자기 격렬한 사랑에 빠진다. 두 사람은 얼어붙은 강 위에 함께 누운 채 사랑을 나누고, “얼음이 자신들의 뜨거운 사랑의 열기에 녹지 않는 것을 경이”롭게 생각한다. ‘얼음 위의 불’, 이것이 올랜도와 샤샤의 사랑이다. 인류가 기억할 만한 불후의 사랑 중 하나.


“얼음을 녹이는 첫 번째 빗방울이 갑자기 올랜도의 얼굴에 세차게 떨어진다.” 이것이 이 사랑의 종말이다. 따스한 봄에는 존속할 수 없는 열정도 있다.

 


영감의 원천이 될 날씨의 인문학

 

알렉산드라 해리스의  『예술가들이 사랑한 날씨』 (펄북스, 2018)는 예술가들이 기록한 날씨에 대한 이야기이자, 날씨가 만들어낸 예술에 대한 이야기이다.

 

1683년 템스 강이 추위로 얼어붙었을 때 일어난 일을 배경으로 흥미로운 에피소드들을 소개하다가 등장하는  『올랜도』 . 버지니아 울프는 이 400살짜리 인간을 350년 전으로 돌려보내면서, 얼어붙은 템스 강에서 사랑을 나누게 한다. 상상력이란 역사의 특징을 정확히 포착하는 눈이 없을 때 얼마나 형편없는 것인가. 또한 얼어붙은 템스 강 위에서 사랑을 나누게 하지 않는다면 문학이란 아무것도 아니지 않을까. 그러나 울프는 이 둘 모두를 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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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어붙은 템스강 | 아브라함 혼디우스(1677)  

 

 

어쨌든, 이 책은 분명히 ‘날씨의 인문학’을 생각해보았을 수많은 (천)문학자들한테 엄청난 영감을 줄 게 틀림없다. 치밀한 자료 조사에 바탕을 둔 채 ‘날씨’와 ‘예술’의 장기적 상호작용을 기록하는 저자의 매끄러운 글 솜씨는 700쪽이 넘는 기나긴 독서를 즐겁게 만든다. 이 책의 출간을 계기로 한국에도 관련한 연구가 축적될 것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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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 장은수(편집문화실험실 대표, 출판평론가)

    민음사에서 편집자로 일을 시작해 민음사 대표를 지냈다. 현재 편집문화실험실 대표, 한국문학번역원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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