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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흥길 “독자들 눈치 볼 것 없이 쏟아부은 작품”

장편소설 『문신』 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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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문학 형태가 공존하는 것이 그 나라와 그 사회의 문화적 다양성과 풍요성을 가리킵니다. (2018. 12.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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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걸 다 쏟아부은 작품


12월 11일 광화문에서  『장마』  , 『완장』  ,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 등을 쓴 윤흥길의 장편소설  『문신』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세상 모든 것에 냉소를 품는 최부용, 기독 신앙으로 마음을 다스리며 집안을 돌보는 최순금, 사회주의국가 건설을 꿈꾸는 최명배의 아들 최귀용 등 최씨 성을 가진 가족 안에서 일어나는 욕망과 갈등을 통해 시대의 일면을 그려낸  『문신』 은 집필부터 출간까지 무려 20년이 소요된 대형 장편소설이다.


원래  『문신』 은 총 다섯 권으로 2018년까지 완간할 예정이었으나, 건강 문제로 집필을 중단하면서 3권이 먼저 나왔다. 윤흥길은 작품 집필에 시간이 오래 걸린 이유로 “첫째로는 작가의 역량 문제”를 꼽으며 겸손해했다. 편집부에서 대하소설과 장편소설 사이에서 고민할 때 장편소설로 한 이유도 대하소설이라기에는 자신의 능력이 부족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이 소설을 쓰면서 제가 작가로서는 천부적인 재능을 못 타고 났다는 걸 많이 느끼고 있습니다. 남들은 열 권, 스무 권짜리 소설을 쓰는데 다섯 권짜리 소설을 가지고도 이렇게 힘들고 고생하는 걸 보면 제 능력이 대하소설 쓰는 데는 부족하다는 걸 스스로 느꼈어요.”


윤흥길은 이어 “이 작품은 역주행 소설”같다고 밝혔다. 세계가 모두 연결된 시대, 새로운 서비스와 기술에 들뜨는 시대에서도 윤흥길은 다시 한국인의 정체성 문제로 돌아갔다. 낡은 주제와 지난 시절로 느껴지지만, 우리가 거쳐온 과거를 한 번쯤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요즘 우리 소설이 경박단소해요. 가벼운 이야기, 얕고 짧고 작은 이야기 쪽으로 장편도 많이 바뀌었어요. 어느 해 여름에 거리에 나가니 모두가 검은색 옷 일색으로 입은 걸 봤어요. 우리 문학이 어느 한 곳을 향해 모두가 일제히 달려나가는 건 패션에서 일종의 모노 컬러와 같은 현상이라고 생각해요. 문학을 왜소화시키고 궁핍화시키는 현상이죠. 다양한 문학 형태가 공존하는 것이 그 나라와 그 사회의 문화적 다양성과 풍요성을 가리킵니다.”


처음 작품을 시작한 동기는  『토지』 를 쓴 고 박경리 작가로부터 시작됐다. “아파트에 살지 말고 전원주택에서 땅 밟고 흙 만지면서 살아라. 큰 작품을 쓰라. 선생 하기를 그만두라”라고 늘 당부하던 박경리 작가의 말에 늘 부채감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박경리) 선생님이 저보고 큰 작품을 쓰라고 하는 게 대하소설을 쓰라는 뜻으로 받아들였었어요. 한때는 3부작으로 해서 일제 말기 조선의 이야기, 북해도 사할린의 탄광 강제 노동 이야기, 해방공간에서 625까지 대하소설을 구상하고 취재도 했었지만, 결국에는 능력의 문제이자 먹고사는 문제로 의욕도 떨어지고 계획도 많이 축소됐죠. 나중에야 박경리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큰 작품이 반드시 분량이나 길이를 말씀하시는 게 아니라는 걸 알았어요. 인간과 사회에 관한 중요한 주제를 붙잡으면서 치열하게 보는 작품을 말씀하셨다는 걸 깨닫고 안심하고 이 책을 쓰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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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신』 에는 “독자들 눈치볼 것 없이 쌓아온 문학적 역량을 다 쏟아붓겠다는 심정으로 최대한 힘을 들”인 문장이 가득하다. 문장과 어휘선택, 수사법에 공을 많이 들인 까닭이다. 전라도의 판소리 정서와 율조를 빌려 독자들이 시골 토박이 정서를 느낄 수 있도록 했고, 토씨를 과감히 생략하고 과장법과 반어법, 비유법을 많이 활용했다.


… 동생 입에서 튀어나온 천만뜻밖의 실토가 그럭저럭 마구리 단속해놓은 부용의 기침 주머니를 확 풀어헤치는 구실을 했다. 물머리 허옇게 세운 채 뭍 기스락 물어뜯을 기세로 달려오는 성난 파도 같았다. 가슴을 마구 할퀴고 후비는 통증 동반한 채 맹수처럼 엄습하는 기침의 파도를 타넘기 위해 부용은 땅바닥에 양손 짚고 머리통 양어깨 사이에 파묻으며 곱사등이 자세를 취했다. 심하게 들썩이는 형의 등덜미를 귀용이 가만가만 다독거리기 시작했다.
- 문신 1, 232쪽


“지금까지 50년 동안 작가 생활 하면서 국어사전하고 시간을 보내는 취미가 있었어요. 자투리 시간만 나면 국어사전을 무작위로 펼쳐서 표제어 중에서 몇 개 눈에 들어오는 단어를 익혀서 재산으로 만드는 작업을 수십 년 동안 한 거죠. 그러면서 시정거리의 떠도는 낱말들을 문장의 가독성과 상관없이 그냥 제 고집대로 가진 모든 걸 다 쏟아부으려고 노력했습니다. 작품을 읽으신 분들이 작품에 대해 미흡감을 느꼈다면 그건 대하소설과 긴 장편이 가진 한계 때문이 아니라 작가 윤흥길 개인의 미흡한 점과 한계라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제목인 ‘문신’은 전쟁에 나가 죽을 경우 시신으로라도 고향에 돌아와 선영에 묻히기 위해 몸에 문신을 새겼던 부병자자(赴兵刺字) 풍습에서 왔다.


“내우외환이 겹치는 이 나라 역사에서 고향을 떠나 전쟁터에 끌려가거나 위험한 지역으로 가는 남자들이 집을 떠나기 전에 가족들이 알아볼 수 있는 문신을 몸에다 새기는 풍습이 있었다고 합니다. 제가 기억하기로는 6.25때 입영 날짜를 받아놓은 동네 젊은이들이 입영 며칠 전에 한바탕 놀고 나서 가족들이 보는 자리에서 문신을 새기는 걸 봤습니다. 어린 눈에 그 청년들이 왜 문신을 새기나 의아했었는데, 의미가 없어지고 형식이 살아남은 부병자자 풍습이 6.25때까지 이어져 내려왔다는 걸 느꼈습니다. 우리 민족이 가진 치열한 귀소본능을 상징하는 풍습이었던 거죠.”


작품에는 ‘밟아도 아리랑’이 또 하나의 중요한 모티프가 되었다. 일제 말기 강제 징용 당시 아리랑 곡조에 맞춰 ‘밟아도 밟아도 / 죽지만 말아라 / 또다시 꽃피는 / 봄이 오리라’는 노래를 불렀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노역에 시달리는 상황 속에서도 죽지 않고 반드시 고향에 돌아가겠다는 표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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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력이 재능을 상쇄한다


이번 소설을 통해 사회에 던지고 싶은 메시지는 무엇입니까?


우리의 문화가 우리가 있는 곳에서 너무 멀리 떠나 서양 문물 쪽으로 기울어져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우리 것을 훼손하거나 잃고 있죠. 예를 들어 TV 자막을 보면 작가로서 우려하는 면이 매우 많아요. 어원을 알 수 없는 말과 외래어도 너무 많이 사용하고요. 그래서 문학에서는 우리 말의 아름다움과 특징을 강조하고 지켜나가려고 노력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의도적으로 현대의 조류나 취향에 맞지 않고 역행하는 문장을 시도하기도 했고요. 우리 걸 되찾을 수는 없지만 잊어버리지는 말자는 게 제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라고 생각합니다.


민족 정체성 문제를 들여다보기 위한 배경을 일제 말기로 하신 까닭이 있을까요?


우리 민족의 정체성이 여러 가지로 갈라지는 최대 위기가 일제 말기라고 생각했습니다. 창씨 개명으로 조상 전래의 성씨를 바꾸거나, 일본 민족과 한민족이 같은 조상에서 나왔다는 논리를 강제로 주입하고 식민화에 따르지 않을 경우 백성들에게 불이익을 줬죠. 조선말을 쓰는 사람들은 벌칙 딱지를 주고, 기차역에서는 일본말로 표를 구매하지 않는 사람에게 기차표를 팔지 않는 시기였기 때문에 민족 정체성이 말살될 정도로 위기를 겪었습니다.


특히 심혈을 기울여 묘사한 인물은 누구인가요?


악덕 지주인 최명배에게 애착이 있어서 공을 들여 형성화했어요. 아주 못되고 욕심 많은 인물인데, 이 인물이 판소리 흥부가에서 놀부 같은 인물이에요. 놀부가 사실 인간의 본성을 가장 잘 표현한 인물이거든요. 주인공이 아니고 짧게 등장하는 인물들에게도 공을 많이 들였어요. 개인이 가진 성격이나 언어적 특성을 살려서 각자 힘을 주고자 했습니다.


등단 50년을 맞아 후배작가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을까요?


50년이라면 사실 긴 세월이에요. 그동안 작가 생활을 하면서 어려운 고비도 여러 번 넘기고 고생도 많이 하면서 아직도 현역으로 남아서 활동할 수 있다는 건 하나님이 저에게 주신 선물이라고 생각합니다. 처음 신인 작가 시절에는 제가 천재인 줄 알았어요. 서울에 올라오니 진짜 천재들이 많아서 기가 죽더라고요. 언젠가 뇌 CT 촬영을 했어요. 보통 창작하는 사람들은 전두엽이 크게 나오는 편인데, 제 전두엽이 보통 사람하고 사이즈가 같다는 거예요. 결국 제가 천재가 아니고 범재라는 걸 현대 의학이 판정을 내린 거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천재가 아니라는 판정을 받은 뒤로 모자라는 천재성을 보완하려고 창작에만 집중했어요. 하나님이 제게 종일이라도 의자에 앉아서 버틸 수 있는 지구력, 뚝심, 체력과 무거운 엉덩이를 주셔서 감사하고 있어요. 모자란 재능을 한탄할 게 아니라 모자라는 부분을 얼마든지 노력으로 벌충하고 상쇄할 수 있다는 걸 후배들이 기억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문신 윤흥길 저 | 문학동네
한 가족과 그들을 둘러싼 이들의 엇갈린 신념과 욕망, 그리고 갈등을 통해 시대의 일면을 생생히 그려냈고, 압도적인 세계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헤쳐나가는 이들의 투쟁을 담아낸 대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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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정의정

uijungchung@ye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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