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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의 단아하지만 강한 엠마, 배우 이정화
다양하게 활동을 하는 이정화 배우
이제는 저한테 관심을 갖고 또는 뮤지컬을 좋아하고 준비하는 분들이 제 SNS를 보시니까 얘기를 많이 해드리고 싶어요. (2018. 12. 19)
지난 11월 개막한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가 연일 공연장을 뜨겁게 달구고 있습니다. 1886년에 발표된 소설이 원작이고, 2004년 국내 초연돼 10번이 넘는 시즌을 이어왔건만, 여전히 ‘피켓팅’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화제인 걸 보면 대단하다는 생각도 드는데요. 이번 시즌은 ‘역대급 캐스팅’이라는 수식어가 붙을 정도로 이미 <지킬 앤 하이드> 무대에서 그 역량을 입증했던 베테랑 배우들이 대거 참여해 큰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배우가 눈에 띄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지킬 앤 하이드> 무대에는 처음 선다는, 하지만 엠마와는 참 잘 어울리는 배우 이정화 씨말입니다. 공연이 시작되기 전 분장실에서 그녀를 직접 만나봤습니다.
“연출님을 비롯해 많은 스태프, 배우 분들이 오래 해왔던 공연이라 다들 안정감이 있더라고요. 저는 첫 공연 때 많이 긴장했어요.”
작품 자체도 고전이고, 거의 해마다 무대에 오르는데도 이렇게 많은 관객들이 찾는 걸 보면 신기합니다.
“저도 궁금해요. 무대에서도 객석이 보이거든요. 빈 구석 하나 없이 매일 천2백 석이 가득 찰 수 있다는 게 감사하죠. 저는 중학생이던 2004년에 이 작품을 봤는데, 처음 보면 무척 자극적일 것 같아요. ‘Confrontation’ 장면에 놀라고. 지금은 정신분열을 다룬 작품이 많지만, <지킬 앤 하이드>가 자아분열을 다룬 첫 작품이잖아요. 그런데 공연을 한 번 보는 관객만으로는 매일 공연장을 가득 메울 수는 없을 테고, 봤던 분들이 또 보는 건데 그건 자극적인 걸 뛰어넘어 이 작품이 생각하게 하는 부분이 분명히 있기 때문일 거예요.”
저도 10여 년 전 배우가 순식간에 두 인물을 연기하는 모습을 보고 뮤지컬에 재미를 느끼게 됐던 기억이 나는데, 여배우들도 무대 뒤에서는 시도해 보죠(웃음)?
“진지하게는 안 해봤는데, 대비가 남자처럼 강하지는 않더라고요(웃음). 인간의 이중성을 보여준다는 것 외에도 한 사람이 무대 위에서 소리나 몸짓을 계속 바꿀 수 있다는 게 대단하죠.”
이번 <지킬 앤 하이드>는 역대급 캐스팅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엠마로서 세 지킬은 어떤가요?
“사실 무대 위의 조승우 오빠는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요. 어떤 공연을 하든 표를 구하기가 힘들어서(웃음). 그런데 왜 ‘조승우 지킬’이라고 하는지 알겠더라고요. 엠마가 그 얘기를 할 수밖에 없게 상황을 만들어주셔서, 관객들과 마찬가지로 함께 공연하는 배우로서도 쾌감이 있어요. (박)은태 오빠는 전작인 <닥터 지바고>에서 부부였잖아요. 다른 작품에서도 여러 번 만나서인지 따로 신경 쓰지 않아도 무척 편한 무언가가 있더라고요. (홍)광호 오빠는 에너지가 엄청나요. 색깔도 분명하고, 소리적인 에너지도 넘치고. 막 달려오는 기분이랄까. 그러면서도 압축된 귀여움이 있어요. 세 분이 정말 다른데, 또 한 사람이 두 가지 캐릭터를 보여주니까 더 재밌죠. 이 캐스팅 덕분에 지인들도 표를 구하기 힘들어서 제 공연을 못 보고 있어요(웃음).”
지킬과 하이드가 있다면 다른 인물이긴 하지만 엠마와 루시가 있잖아요. 딱 보기에도 엠마와 어울립니다만, <머더 발라드>나 <고래고래>의 이정화 씨도 기억하고 있거든요(웃음).
“와, 그 작품을 보셨어요? 그전까지는 계속 약혼녀였어요(웃음). 두 작품을 통해 저에게도 다른 에너지가 있다는 걸 알게 됐죠. 사실 이번에도 루시에 도전해보고 싶었는데, <닥터 지바고>에서 토냐를 했잖아요. 토냐와 엠마가 같은 결이고, 오디컴퍼니에서 저를 엠마로 콜하셔서 굳이 뒤집을 필요는 없을 것 같더라고요. 실제 성격도 엠마 결이긴 해요. 목소리, 거기에 따르는 호흡에서 나오는 이미지, 전반적인 느낌도 그렇고요.”
그런데 단아한 이미지 안에도 강인함은 있을 것 같습니다. 엠마도 마찬가지고요.
“그런 편인 것 같아요. 엠마 역시 루시와 어떤 밸런스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커튼콜에 세 명이 나오는 이유, 지킬과 하이드로 분리됐을 때 만나는 여자들의 관계, 그 균형이 없다면 마지막에 지킬이 엠마를 죽이지 않고 엠마의 말에 하이드에서 지킬로 돌아오는 힘이 없을 것 같거든요. 하이드나 루시는 캐릭터적으로 주는 힘이 센데, 엠마는 연약함, 평온함 속에서도 이에 지지 않는 힘이 있어야 하는 거죠.”
<지킬 앤 하이드>에서는 엠마와 루시의 대비도 빼놓을 수 없는데요.
특히 루시를 맡은 윤공주 씨와는 인연이 깊다고 합니다.
인터뷰 중에 때마침 윤공주 씨도 만날 수 있었는데요. 직접 확인해 보시죠!
관객들 입장에서는 극 중 엠마의 모습이 좀 답답하게 생각될 수도 있는데요.
“현대를 살아가는 여성으로서 엠마가 지킬만 바라보는 모습이 답답하실 수 있는데, 바빠서 신경도 못 쓰는 지킬이지만 엠마의 서사를 생각하면 자기가, 또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이 겪고 있는 일에 대해 시간을 갖고 상대의 마음으로 바라보는 현명한 사람 같아요. 지킬이 자신을 버리지 말라고 할 때 엠마가 ‘기다릴게요’라고 하면 여성 관객들이 ‘왜 기다리느냐고!’ 하시거든요(웃음). 이 남자한테 이 여자가 있어야 하는 이유, 그런데 이 여자에게도 이 남자가 있어야 하는 이유가 있거든요. 이 사람과 끝나서 다른 사람을 만날 수 있다면 괜찮아요. 그런데 엠마에게는 지킬이 모든 것이라서, 이 사람과의 끝을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모든 상황을 받아들일 수 있는 것 같아요. 어떻게든 지켜야 하니까 그렇게 선택한 거죠.”
대극장 공연은 고전이 많고, 그래서 여배우들의 캐릭터가 한정적인 면이 있습니다. 그 부분에 대한 갈증은 없나요?
“새로 나온 작품들은 달라졌지만 아직까지는 그런 면이 있죠. 그 목마름이 얼마나 심한지 모르다가 <붉은 정원>을 만나면서 쏟아져 나오는데 정말 시원하더라고요. <붉은 정원>이 꼭 다시 올라왔으면 좋겠고, <레드북>도 해보고 싶어요. 여성이 주체가 돼서 서사를 잘 풀어낸 작품들이요.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고전을 좋아해요. 고전만이 갖는 여백과 여운이 있으니까요.”
그러고 보면 대극장, 소극장, 뮤지컬에서 연극까지 오가며 다양하게 활동하시네요.
“노래가 좋아서 뮤지컬을 하게 됐지만 연기를 잘하고 싶더라고요. 그래서 소극장, 또 연극을 하고 싶었어요. 노래를 내려놓고도 연기적으로 설득할 수 있을까 궁금했는데, 대학로에서는 저를 뮤지컬배우로만 생각하셔서 전혀 관심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열심히 소문을 내고 다녔죠(웃음). 1년에 대극장, 소극장 작품, 연극까지 하면 정말 완벽한 조합일 것 같아요.”
분장실 들어올 때부터 봤는데, 테이블에 책이 여러 권 있네요?
“책 읽는 걸 좋아해요. 공연 있는 날도 3시간 정도, 없을 때는 하루 종일 도서관에 있거든요. 지금은 필서도 해요. 아이를 낳아서 좀 쉬게 되면 책도 쓰고, 북콘서트도 하고 싶어요. 예전에는 좋은 책을 주위에 나누는 것만으로도 좋았는데, 이제는 저한테 관심을 갖고 또는 뮤지컬을 좋아하고 준비하는 분들이 제 SNS를 보시니까 얘기를 많이 해드리고 싶어요.”
<지킬 앤 하이드>가 내년 5월까지 이어집니다. 마지막으로 각오 한 말씀 들을까요?
“한 공연을 이렇게 길게 한 적은 처음이에요. 퇴근길에 팬 분들이 목 관리 잘하라고 말씀해 주시더라고요. 마지막 결혼식 장면에서 엠마가 지킬이 하이드가 되는 모습을 받아들이는 걸 보고 감동했다는 분들이 계세요. 그거면 저는 엠마로서 성공한 것 같아요. 소비되는 것이 아니라 엠마가 선택한 일이라는 걸 끝까지 잘 전하고 싶어요.”
문득 생각났는데, 엠마는 그 후 어떻게 살았을까요?
“글쎄요, 분명히 성장했을 것 같아요. 저는 원래 작품하면서 그 캐릭터로서 생각도 많이 하고 글도 써보는데, 이번 시즌이 끝날 즈음에는 엠마의 다음 모습도 알게 될 것 같아요(웃음).”
관련태그: 이정화 배우,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 엠마, 고래고래
"공연 보느라 영화 볼 시간이 없다.."는 공연 칼럼니스트, 문화전문기자. 저서로는 <지금 당신의 무대는 어디입니까?>,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공연을 보러 떠나는 유럽> ,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축제를 즐기러 떠나는 유럽>,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예술이 좋아 떠나는 유럽> 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