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창훈 “이 소설은 나의 총화이자 결론”
『네가 이 별을 떠날 때』 그때 어린 왕자가 울었다
우리는 어디서 왔지? 우리는 어디로 가지? 이런 가장 기본적인 의문 같은 것들이 있었죠. 특히 사람들은 사라지니까요. 죽어버리면 말이에요. 그 빈 데를 어린 왕자가 찾아온 거예요. (2018. 12. 13)
어린 나이에 일찍 가장이 되어 많은 날을 바다 위에서 보낸 주인공은 아내의 죽음에 이르러서야 배에서 내려오기로 한다. 그가 간 곳은 고향 섬. 낚시로 소일하며, 고독한 생활을 이어가던 주인공에게 어느 날 한 소년이 다가온다. 낚싯대가 무엇인지, 물고기가 무엇인지, 바다가 무엇인지 묻던 소년은 급기야 물고기를 그려달라고 말한다. “얼이 빠진 상태로” 소년을 바라보던 주인공은 이제 그 소년이 누구인지 깨닫는다. “심장이 얼마나 빨리 뛰던지 쇼크가 올 것만 같았다.” 그의 눈 앞에 서 있는 이 소년은 다름 아닌 어린 왕자였던 것이다.
한창훈 작가의 장편소설 『네가 이 별을 떠날 때』 는 평생을 바다에서 외롭게 살아온 한 사람이 생텍쥐페리의 그 어린 왕자를 다시 만나 그의 시선으로 삶을 통찰하게 되는 이야기다. 한창훈 작가는 여느 때와 달리 이번 책이 나오기를 기다렸을 정도로 이 작품에 애착이 크다고 말했다. 3년 전, 이 이야기가 작가에게 왔을 때부터 작가는 이것을 쓰고 싶어서 작가가 됐다고 생각할 정도였다고. 이 소설이 자신의 총화이자 총력이자 결론이라고 단호히 말하는 한창훈 작가. 무엇보다 작가는 “우리는 싸움을 하지 않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말을 하고 싶어요. 그리고 지구에는 바다가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겠죠.”라고 당부한다. 바다와 일상과 지구와 인간의 삶이 작가에게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작가가 그 소중한 것들을 얼마나 우리들에게 전하고 싶었는지, 이 한 마디에 모두 이해가 됐다.
“우리가 어린왕자의 개념을 잃어버리면 진짜 심각해져요. 정말 순수한 아이의 마음 중 가장 좋은 것만 정제해놓은 존재 같잖아요. 그런 존재가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해요. 그리고 그 존재를 만든 생텍스는 전쟁 때문에 죽었다는 것을 기억하면 좋겠어요.”
우리는 어디로 가지?
작가님은 마감을 꼭 지키신다고 들었어요. 이번 소설은 문학동네 네이버 카페에 연재했던 작품인데요. 이번에도 마감을 어기지 않으셨나요?
마감 어긴 적은 없어요. 특히 이 원고는 거의 다 써둔 상태에서 연재를 시작했어요. 보통은 절반 정도 써놓고 연재를 하잖아요. 그러면서 내일 것 오늘 쓰고(웃음) 하는데요. 올해 3월부터 한국작가회의 일을 시작해서요. 그걸 시작하면 쓸 수 없으니까 마구, 최선을 다해서 1차로 써놓고 연재를 시작했죠.
온라인 연재를 할 때는 독자 반응도 바로 확인할 수 있잖아요. 기억나는 댓글도 있었는지 궁금해요.
제가 착각한 것들을 잡아주신 것도 있고, 그랬죠. 가령 이런 부분인데요. 바다가 육지보다 늦게 식고, 늦게 데워지잖아요. 그걸 제가 무심코 착각했어요. 바다가 더 빨리 식는다고 쓴 거죠. 그 내용을 말하는 댓글을 보고 ‘맞아, 내가 왜 이렇게 썼지?’했어요. 착각들을 잘 잡을 수 있었어요.
제일 먼저 ‘작가의 말’을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의문이 있었고, 무작정 바닷가를 걸었고, 어느 날 문득 ‘그 무엇’이 왔다, 그게 이 소설이다, 라고 하셨는데요.
(웃음)이 이야기는 제가 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은데요.
소설 후반부에 “누구나 한 번쯤은 어쩔 수 없이 어딘가에 가게 돼”(236쪽)라고 한 부분이 있어요. 혹시 ‘그 무엇’에 대한 힌트가 이 문장에 있지 않을까 했어요.
네, 비중 있는 문장이 몇 개 있는데요. 이 문장도 그 중 하나죠. 우리가 ‘이동’이라고 하면 보통 물리적인 이동만 생각하잖아요. 하지만 생각해보면 태어나서 한 번도 이동이 아닌 적이 없어요. 성장해가면서 우리는 당연히 경험을 하는데요. 그것을 알기 전과 알고 난 후, 나의 좌표는 다르죠. 이를 테면 첫사랑을 만나기 전과 후가 정말 다르고요. 시간이 지난 다음에 또 내 마음의 위치, 좌표는 달라요. 상황, 감정들이 끊임없이 이동을 해요. 또 다 짐작 못했던 것들이고요. 어느 장소로 간다는 것, 누구를 만난다는 것 자체가 우리 짐작대로 된 적이 한 번도 없잖아요. 그러니까 그것이 우리 사는 모습이자 의미도 된다고 생각했어요. 또 그렇게 성장하고요. 주인공만 해도 자기 짐작대로 된 것이 하나도 없죠. ‘어린왕자’도 그렇고요.(웃음) 그래서 어린왕자의 입으로 그 말을 한 거예요. 그렇구나, 우리는 끊임없이 낯선 곳으로 불안한 이동을 하는구나, 하고요.
물리적인 이동뿐 아니라 심리적인 이동까지도 말씀을 하셨는데요. 그렇다면 우리가 어디로부터 와서 어디로 가는가에 대한 의문들이 많이 있으셨던 건가요?
물리적인 이동을 자꾸 생각하다보니까 감정이나 심리, 마음의 이동까지 생각이 이어진 건데요. 물리적인 이동도 같아요. 정말 어떻게 거역할 수도 없고, 짐작할 수도 없죠. 짐작도 못한 채로 주인공과 어린왕자가 만났잖아요. 어린왕자는 워낙 먼 거리에서 왔고요. 또 죽음이 내포하고 있는 거리가 얼마나 되는지는 모르지만 최소한 별과 별 사이의 거리 이상은 되지 않겠어요?
오랫동안 인류 공통의 질문, 우리는 어디서 왔지? 우리는 어디로 가지? 이런 가장 기본적인 의문 같은 것들이 있었죠. 특히 사람들은 사라지니까요. 죽어버리면 말이에요. 그 빈 데를 어린왕자가 찾아온 건데요. 결국은 제가 그동안 고민한 것들이 그런 것들이겠죠.
원래는 뒤에 여쭤보고 싶었는데요. ‘수평선’이라는 은유가 오래 남았거든요. 이것이 처음에는 삶에서 우리가 결코 가닿을 수 없는 지향점처럼 보였는데 주인공의 아내가 죽는 장면에서는 죽음과도 연결이 됐어요. 이에 대한 작가님 생각이 듣고 싶어요.
말 그대로 비유니까요. 몇 가지 의미가 있겠죠. 어쨌든 수평선은 정확히 존재하는 점이 아니잖아요. 그냥 눈에 보이는, 가상의 것이고요. 대충 알겠는데 저기가 어디인지를 모르고, 갈 수가 없어요. 이와 가장 비슷한 게 죽음이죠. 우리는 죽음에 익숙해요. 끊임없이 사람들이 죽어나잖아요. 가까운 사람들, 모르는 사람들. 죽음 자체는 익숙한데 그들이 어디 갈까, 생각이 들어요. 주인공의 경우 아내가 죽었을 때 당연히 수평선을 떠올렸을 거예요. 자신이 늘 수평선을 바라보던 사람이니까요. 모니터에서, 육안으로 수평선이 보인 거고, 자기가 볼 때는 아내가 그리로 갔을 것 같았겠죠. 내가 닿지 못한 곳으로 가버렸다, 그런 의미였어요.
일정한 곡선을 그리던 심전도와 산소 포화도, 맥박 모두 반듯하게 퍼져버린 것이다. 나는 거기서 눈을 떼지 못했다. 횡으로 누운 반듯한 일직선. 그것은 죽음이었고 동시에 또하나의 수평선이었다.
“17시 12분. 사망하셨습니다.”
의사는 사망 선고를 내렸다. 일직선은 그대로 있었다. 그동안 봐왔던 것과는 전혀 다른 수평선. 아내는 그곳으로 가버린 듯했다. 안녕 난 이곳으로 가, 하는 것만 같았다. 우리 수평선에서 만나, 이러는 것만 같았다.(133쪽)
이것을 쓰고 싶어서
주인공은 항해사입니다. 작가님께서도 항해 경험이 있으신데요. 직접 항해를 하면서 겪은 경험들이 많이 녹아 있겠죠?
항해가 이동이잖아요. 화물선은 끊임없이 항해를 해야 해요. 제일 무기력한 배는 항구에 묶여 있는 배거든요. 이건 다른 사람 말인데요. 파도가 치더라도 배는 바다에 있어야 한다, 고 말을 해요. 계속 선착장에 묶인 배처럼 무기력한 배가 어디 있겠어요. 파도치는 바다에 나가 이동해야 하는 거죠. 제게는 우선 항해 자체가 익숙했어요. 특히 저는 항해하는 사람들의 인생을 몇 번 쓰기도 했지만, 쓰고 싶었어요. 해양이라는 데가 사실 낯선 데예요. 관련한 문학이라고 하면 대부분 ‘해양’이 아니라 ‘해안’이거든요. 바닷가만 갔다가 다시 돌아오죠. 그 바닷가, 경계를 넘어서서 더 멀리 가버리는 사람들이 어릴 때부터 늘 제 마음에는 있었어요. 제 주변은 대부분 그랬으니까요. 섬사람들은 배 타는 게 유일한 돈벌이였죠. 그런 인생들을 가까이서 많이 봐왔기 때문에 저도 어렸을 때 당연하게 ‘나는 어떤 배를 타게 될까?’ 이랬어요.(웃음) 으레 그랬던 거죠.
당연히 배를 탄다고 생각했다고요?
시각이 그쪽에 가 있는 건 사실이었어요. 섬사람이라 해서 다 배 탈 거라고 생각한 건 아니었거든요. 제 친구들만 봐도 그렇고요. 그런데 저는 그랬어요.
이 작품은 어떻게 시작된 거예요? 그렇다면 그동안 이 이야기들을 계속 품고 계셨던 건가요?
결론적으로 말하자면요. 이것을 쓰고 싶어서 작가가 됐다고 말해도 지금은 제 고개가 끄덕거려져요. 그래왔다, 는 것에 여러 가지가 들어 있는데요. 어쨌든 제가 노는 방식이 조금 다르죠. 틈만 나면 바다 나가고, 주로 바다나 섬이 배경인 것만 거의 써왔고요. 심지어 동네 작가들을 데리고 화물선으로 지구 반대편에 가고, 이런 걸 했었거든요. 우선 물리적으로 너무 답답한 곳에 잡혀 있으니까요. 그러면서 계속 아쉬웠어요. 내 삶의 총화가 있을 텐데, 그게 어떤 작품일 텐데, 최소한 그것을 쓰고 싶은데, 했고요. 사실 굉장히 오랫동안 생각했어요. 3-4년 됐을까요? 그때는 단순히 이 소재라고 말하기가 무엇해서 ‘그것’이라고 표현을 했는데요. 서서히 ‘내가 써야 할 것은 이 이야기구나’ 생각하게 된 거죠. 저의 어떤 총화이자 총력이자 결론이라고 해도 될 것 같아요. 그런 책입니다.
그 이야기 안에 처음부터 ‘어린왕자’도 포함되어 있었어요?
이 이야기에서 어린왕자를 빼면 진짜 극히 사소한 사람의 이야기가 되죠. 돈을 벌기 위해 배를 타고, 가정이 필요해서 결혼 하고, 아내가 죽어서 쓸쓸히 바닷가에 혼자 수평선만 쳐다보고 있는 사람. 힘이 좀 없어보였어요. 그러다 생각했죠. 우리 세대에게는 최고의 판타지가 『어린왕자』 였거든요. 우주 너머를 생각해볼 수 있었고요. 그 책 때문에 별마다 의미를 두게 되고, 그 영역 너머를 상상했어요. 생텍쥐페리는 정말 뛰어난 사람이잖아요. 전 세계 어린이들이 별을 쳐다보게 만들어준 사람이고, 정말 아름다운 사람인데요. 그런 사람이 왜 죽었나요? 전쟁 때문이잖아요. 생텍쥐페리가 전쟁 때문에 총 맞아 죽었다는 사실을 환기시키고 싶었어요. 어린왕자가 지구에 와서 처음에는 생텍스를 만나고, 그 다음 생텍스의 죽음을 만났다는 이야기를 그래서 담은 거예요.
전쟁에 관한 이야기도 후반부에 중요하게 다루고 있죠.
생텍스가 전쟁 때문에 죽었다는 사실을 무심코 넘기고 살듯 전쟁은 지금도 쉬지 않고 하고 있는데 인식하지 못하죠. 하루도 안 쉬고 전쟁하고 있는데 말이에요. 어린왕자 같은 지구 바깥의 존재가 본다면 지구를 어떻게 정의내릴 것인가, 생각했어요. 특징이야 여러 가지 있겠지만 무엇보다 늘 싸우는 종족, 서로 죽이는 종족이라고 정의 내려도 우리는 할 말이 없고요. 공식적으로는(웃음) 지구 밖에서 온 유일한 생명체라고 보고, 그의 눈에 보이는 인간을 말한 거예요. 어린왕자가 가상의 존재라고 하면 너무 슬프잖아요. 존재로 친다면 산타클로스보다 더 커야죠.(웃음)
고민도 있으셨을 것 같거든요. 어린왕자를 작품에 데리고 오면서 제일 고심하셨던 것은 뭔가요?
진짜 고민을 많이 했어요. 말이 되게 써야 하니까요. 주인공의 개인사와 어린왕자의 이야기, 전체 얼개가 이야기 안에 자연스럽게 녹아 같이 흘러가게 만드는 게 중요하니까요. 어려웠죠. 어린왕자가 너무 큰 존재기도 하고요.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잖아요. 그가 상징하고 있는 것들이 이미 정해진 상태에서, 그 미세한 상황에서 애도 많이 쓰고 그랬어요. 그동안 쓴 장편 중에 가장 노력과 시간이 많이 들었어요. 매순간, 모든 장면이 다 어려웠어요. 작가가 이런 이야기를 다 하면 재미없는데 말이에요.(웃음)
주인공과 어린왕자가 이별하는 장면이 좋았어요. 이 작품 속 어린왕자를 ‘두 번째 어린왕자’라고 한다면 첫 번째 어린왕자의 이별보다 안심되는, 성숙한 느낌이었거든요. 서로를 이해하고, 제대로 인사하고 이별하잖아요. 그게 좋더라고요.
비극적으로 헤어지지 않는 것이 목표였어요. 생각해보면 가장 보편적인 이별은 그런 이별이잖아요. 서로 잘 지내라 인사하고 헤어지는 것 말이에요.
사실 주인공은 그런 이별을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어요. 아버지를 비롯해 가족 모두와도 이별 인사를 제대로 하지 못했고요. 심지어 딸과는 만남도 제대로 못했죠. 출생 때도 곁에 없었으니까요. 그런 주인공이 최초로, 어쩌면 최후로 제대로 인사할 수 있는 존재가 다름 아닌 어린왕자라는 사실이 의미가 있을 거예요.
덧붙일 말이 없어요.(웃음)
어제 일이 그대로 되풀이 되는 것, 일상(日常)
『한창훈의 나는 왜 쓰는가』 에서 새벽 기상에 일어나 바람의 방향과 세기를 가늠하고, 담배 피우면서 그냥 있다가 원고 쓰는 하루 일과를 적으셨었죠. 요즘은 어떠세요?
서울에 오면 그렇게 못 살아요.(웃음) 그런데 정말 중요해요. 1970년대라면 ‘오늘 하루도 열심히 살았다’가 의미가 있겠지만요. 지금은 별 의미가 없죠. 일상은 아주 단조로운 건데요. 사람들이 어떻게 지내느냐 계속 물어오니까 그걸 쓴 거고요. 저는 정말 단순하게 하루를 보내요. 아침에 일어나서 오늘은 무슨 바람이 부는가, 보고 오늘은 바다에 못 나가겠구나, 또는 오후에 바람이 바뀌는데 오후에는 뭘 낚으러 가볼까, 하죠. 담배 계속 피우면서 그런 생각을 하는 거예요. 어쨌든 원고 작업을 좀 하고, 오후에는 동네 산책 하고, 이게 다인데요. 살아보면 하루가 이래요. 이게 무슨 의미가 있지, 하고 사람들이 질문하겠죠. 뭔가 더 열심히 해야 한다고, 뭔가를 더 찾아내야 한다고 생각하니까요. 하지만 가장 잘 사는 방법은 평범한 삶을 노련하게 사는 것이에요. 노자에 있는 말이에요.
평범한 삶을 노련하게 사는 것.
기본은 이거죠. 결국 인생은 평범한 거라는 것. 그 평범 안에서 노련하게, 인생에 이것 이상이 없는 것 같아요. 또 노련이라면 바람 방향을 읽을 줄 아는 것, 어설프게 바다로 나가지 않는 것, 이런 거겠죠. 그렇다면 이 지루함까지 포함한 일상이 바로 평화인 거죠. 평화란 말은 사실 잘못된 거예요. ‘전쟁과 평화’가 아니라 ‘전쟁과 일상’이 맞겠죠. 평화는 좀 애매한 표현이고요.
『행복이라는 말이 없는 나라』 출간 당시 하셨던 북토크 행사에서 “평화를 가장 중요한 가치로 바라보고 있다. 평화의 개념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일상이라고 생각한다.”는 말씀을 하셨잖아요. 그 말씀 많이 공감했었어요.
저 10대 때는 사람들이 툭하면 “전쟁이나 나 버려라”라는 말을 많이 했어요. 어차피 생활도 안 좋고, 이러니까요. 스무 살 때인가, 이웅평이라는 사람이 미그기를 몰고 귀순한 사건이 있었거든요. 난리가 났었죠. TV에서 속보가 뜨고요. 지금도 생생해요. 정말 어수선했어요. “이것은 훈련이 아니고 실제 상황입니다”라고 계속 방송이 나오는데요. 사람들이 “와!”하면서 만세를 부르는 거예요. 전쟁 났다고, 잘 됐다고 말이에요. 제가 고2 때 5.18을 겪었는데요. 평화라고 부를 그 일상들, 한 사람에게서 그것을 빼앗는 데 요만한 총알 하나면 되더라고요. 저 총알 하나로 다 무화되어버려요. 영원히 풀리지 않을 아픔들을 다 갖게 되고요. 전쟁이 이런 거구나, 사람이 사람을 총으로 쏴서 죽인다는 것이 이런 거구나, 깨달았어요. 생텍쥐페리를 죽게 한 게 전쟁이었다는 것을, 그때 어린왕자가 울었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었죠.
“화물선은 아무 일이 없는 게 목표야. 아무 일 없이 제시간에 제 항구에 도착하는 것. 단지 그것뿐이지. 그래서 우리는 아무 일 없는 것을 목표로 일들을 해. 조금 우습지? 전쟁도 그럴 거야. 우리의 목표는 싸워서 이기는 게 아니라 전쟁 같은 게 아예 안 일어나도록 하는 거겠지. 생각해보니 정말 그렇다. 아무 일 없는 게 가장 좋은 목표야.”(249-250쪽)
어제 일이 그대로 되풀이 되는 것, 그게 일상(日常)이잖아요. 그래서 날 일(日) 자를 쓰는 거죠. 가장 진부한 것, 그것이 최고예요. 화물선도 봐요. 아무 일 없는 게 최고고요. 집에서 누가 사고 안 치는 게 최고예요.(웃음) 일상을 지키려는 노력이 사실은 평화를 지키려는 노력과 같아요.
한편으로는 어떤 희망도, 절망도 없는 담담한 태도란 생각도 들어요. 이 작품에서도 주인공이 “희망이라는 말은 아무런 힘이 없어. 그런데도 우리 지구인은 그 말을 너무 많이 써.”(239쪽)라고 하잖아요.
맞아요, 짜증나요.(웃음) ‘희망’만 붙이면 다 해결된다고 생각해요. 제일 문제가 아이들한테 준비해서 무엇을 해야 한다고 하는 거잖아요. 준비를 열심히 해야 대학 간다, 준비를 열심히 해야 취직한다, 준비를 열심히 해야 진급이 잘 된다. 언제까지 해야 하는지 말이에요.
작가로서의 모든 것을 다 넣은 느낌
산문도 많이 쓰시잖아요. 소설을 쓸 때와는 어떻게 다른가요?
쓰기는 솔직히 산문이 편해요. 내 방식대로 쓰면 되니까요. 소설은 합의가 되어 있는 서사여야 하니까 더 힘들죠. 특히 사회적인 문제나 이런 것들은 소설보다 산문이 좀 더 유리하다고 봐요. 소설의 능력이 지금 한국 사회에는 워낙 많이 죽어버렸어요. 제 생각에 지금은 좋은 칼럼들이 사람들을 함양시키는 게 아닌가, 싶어요.
소설 장르에 대한 걱정이 있으시군요.
소설을 무슨 힘으로 쓸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하죠. 지금 작가들도 뭔가 정말 대안들을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싶은데요. 원고를 쓰고, 책을 내고, 사람들이 읽고, 무언가가 공유되고, 했던 게 지금까지의 일이었잖아요. 그런데 지금은 이 시스템 자체가 많이 허물어졌어요. 다만 이런 얘기를 제가 하는 게 별로 의미가 없을 것 같아요.
그래도 계속 소설을 쓰실 거죠?
지금은 별로 생각이 없어요. 미래에 대해 함부로 장담하면 안 되는 건데요. 하여간 이 책을 쓰려고 소설을 시작했다, 그런 생각이 지금도 들고요. 딱히 쓰고 싶은 게 떠오르지도 않아서요. 잘 모르겠어요. 조용히 섬에 가서 남은 기간 살 수 있게 이 책이 밥값 정도만 해주면 좋겠네요.(웃음)
그렇다면 이제 어떤 글을 쓰겠다고 생각하고 계세요?
아무것도 없어요. 글을 쓰겠다는 생각이 안 들어요. 지금 쓰고 있는 것도 없고요. 계획이 없어요. 작가로서의 모든 것을 마치 이 책 안에 다 넣어버린 그런 기분이에요. 이전까지는 책이 나와도 아무런 느낌이 없었어요. 첫 책이 나올 때도 그랬어요. 동료들 얘기 들어보면 밤을 새서 쓰고, 그러다 단편 하나 끝나면 엄청난 희열을 느끼고 한다는데요. 저는 밤을 새지도 않을뿐더러 마감 끝나고, 원고 넘기면 ‘다 끝났다’정도 느낌이었어요. 그것도 하루 만에 사라지고요. 매사 너무 덤덤했어요. 모든 책이 다 그랬죠. 그런데 이 책은 좀 달랐어요. 책이 나오기를 제가 기다리고 있더라고요. 어쨌든 우리는 싸움을 하지 않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말을 하고 싶어요. 그리고 지구에는 바다가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겠죠.
네가 이 별을 떠날 때한창훈 저 | 문학동네
인간의 야무진 생명력보다는 소중한 존재의 죽음과 그후 남겨진 이들의 삶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역설적으로 아름답게 빛나는 생의 순간들을 펼쳐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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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평생 짙푸른 망망대해를 동경하고 바다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굴곡진 인생사를 사랑해온 작가 한창훈의 신작 장편소설 『네가 이 별을 떠날 때』가 출간되었다. 인간에 대한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닷사람들이 뿜어내는 생생한 활기를 소설화하여 ‘한국의 헤밍웨이’로 불리기도 하는 작가의 이번 소설은, 전작들과는 분위기가 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