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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다영, 연애의 생몰에 대한 관찰기

『밤의 징조와 연인들』 우다영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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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에서 개인적으로 애정을 가지고 있는 등장인물은 단편적인 모습과 목소리만으로 남아있는 부수적인 인물들이에요. (2018. 11. 30)

우다영 사진.JPG

 

 

2014년 『세계의 문학』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한 우다영의 첫 번째 소설집 『밤의 징조와 연인들』 이 출간되었다.  『밤의 징조와 연인들』 은 우리가 살아가며 겪는 모든 일들이 돌연히 벌어지는 사고에 가깝다고 말하는 소설집이다. 우연의 신비로 이루어진 세계에서 그날의 온도처럼 아주 미세하게 달라지는 ‘징조’를 포착하는 작가의 살갗은 예민하고, 눈은 날카롭다. 소설을 쓰는 일과 소설집에 실린 수록작들에 대해 궁금했던 것들을 작가에게 물어보았다.


첫 소설집을 출간한 것을 축하드립니다. 처음 소설을 발표한 해로부터 4년이 흘렀는데요. 소설집을 낸 소감과 함께, 그 시간 동안 소설가로 살면서 변한 것과 변하지 않은 것을 각각 꼽아 주시겠어요?

 

사실 어제까지는 소설집을 낸 소감에 대해 아직 실감이 안 나서요, 정말 책이 나왔는지 모르겠어요, 하고 솔직하게 대답했는데 오늘 아침 눈을 떴을 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가만 보자, 내가 이 작고 도톰하고 만지면 서늘하면서도 보라색인  『밤의 징조와 연인들』 을 진짜로 모르던 때가 있었던가? 이 책이 이전에는 없었다고? 정말 웃기지만 저는 이런 착각을 자주해요. 짧은 순간 그런 기분을 느끼고, 그런 착각에 대해 이것이 정말 착각일까 진지하게 검증해 봐요. 저뿐만 아니라 우리는 모두 어느 정도 자신을 둘러싼 상황을 외면하면서 그것이 서서히 변하도록 내버려 두다가 어느 날 갑자기 이전에서 이후로 ‘깜빡’ 세계가 바뀌었다고 인식하는 것 같아요. 그런 후에 그 사이에 일어난 일들을 상상하는 거예요. 인과를 만드는 일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은 쪽이 어쩐지 더 진실인 것 같다고 느끼면서요. 소설가가 된 후에 내가 이런 방식으로 무언가를 보고 생각하는구나 알게 되었어요. 제 자신에게 좀 더 관심이 생기고 친해진 것이 가장 큰 변화인 것 같아요. 소설가가 되지 않았다면 생일이나 새해에 가끔 안부나 묻는 사이였을 텐데 말이에요. 소설가가 되기 전에도 후에도 좋아하는 색은 보라색입니다.


소설을 쓰는 방식이 궁금합니다. 우다영 작가의 소설은 대체로 무엇에서부터 시작하나요? 평소 작가님에게 ‘소설적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것들은 무엇인지, 주로 어떤 것을 관찰하시는지, 소설을 쓸 때의 습관이나 과정에 대해서 듣고 싶어요.

 

소설을 쓰기 시작하는 건 의외로 엉뚱한 이유이거나 소설 내용과 전혀 상관없는 감흥 때문일 때가 많아요. 이를테면 이전에 쓰던 소설에 붙였다가 썩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서 빼놓은 제목으로 그런 제목이 어울리는 소설은 어떤 내용일까 상상하며 쓴다든가, 어떤 장면이 거기 있었으면 좋겠는데 왜 그런 장면이 필요할까 생각해 보는 식으로요. 「크림」 같은 경우는 우유와 달걀을 쳐서 크림을 만드는 장면을 바라보는 ‘나’가 중요했어요. 어쩐지 벅차고 조금은 서글픈 기분으로 그 장면을 바라보는데, 실은 제가 그때 크림이 몹시 먹고 싶었거든요. 슬프게도 몇 년 전부터 우유 알레르기가 생겨서 유제품을 못 먹어요. 이런 사소한 일상의 욕망이 소설의 계기가 되었다는 걸 남몰래 기억해 두는 편이에요. 그런데 정작 그렇게 우연에 기대 쓴 소설 속에는 저도 모르게 제가 관찰하고 관심을 기울였던 어떤 이야기들이 들어있어요. 저는 소설을 쓰고 나서야 제가 그 당시에 무엇을 골몰하고 어떤 이야기에 빠져있었는지 알게 돼요. 이런 식으로 제 자신과 조금 더 친해지죠. 한 가지, 최근에 와서 느낀 변화가 있어요. 예전에는 소설을 머릿속에 떠올릴 때 ‘그곳’을 상상했어요. 여기가 아닌 거기에 어떤 공간을 떠올리고 그곳에 사는 사람들을 상상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요새는 ‘그 사람’에 대해 많이 생각해요. 그 사람으로부터 시작해서 그가 거닐고 살아가는 세계의 풍경을 떠올려 봐요.


첫 번째 작품이자 표제작인 「밤의 징조와 연인들」은 긴 호흡으로 섬세하게 남긴 연애의 생몰에 대한 관찰기입니다. 아무래도 소설 속 남자 주인공 ‘석이’에 대한 독자의 반응을 지켜보는 일이 재밌을 듯한데요. ‘찌질한 남자’로 대번에 요약할 수 있는 인물이지만 석이가 지닌 불안이 나에게는 없다고 단정할 수는 없는 것 같습니다. 이런 인물은 어떻게 만들어 내게 되었나요? 소설집에서 작가님이 개인적으로 애정을 지닌 등장인물이 있다면 누구인가요?

 

‘석이’라는 인물에 대해 분노하는 분들을 많이 만났는데 사실 속으로 놀랐어요. 저는 석이를 미워하거나 비난하는 마음 없이 그냥 ‘나’가 사랑하는 사람이 그런 사람이라는 것을 슬프게 여기며 썼거든요. 더 정확히 말하자면 석이가 그런 사람이던 때에, 또 ‘나’가 그런 사람이던 때에 그런 관계가 되어 버린 것을요. 다른 시기에 다른 루트를 지나왔다면 다른 모양의 관계가 되었을 텐데 사람이 겪는 순간은 결국 하나잖아요. 그런 가능성들을 펼쳐 보고 접어 보고 아득함을 느끼는 시간들이 이별의 과정이라고 그 소설을 쓸 때 생각했던 것 같아요. 석이라는 인물은 제가 생각했을 때 실제의 저와 정반대인 성격이에요. 저는 낙천적인 편이고, 실은 그것에 대해 잘 생각해 보지 않기 때문에 낙천적일 수 있는데, 그 당시에 그런 제 성격이 ‘무심함’에 가까우며 어쩌면 무감각한 시선과 무신경한 태도로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지 않았을까 생각해 보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저와 정반대편에 서있는 사람을 이해해 보고 싶었어요. 물론 소설 속에서도 현실에서도 그런 시도는 늘 완벽하게 성공하지 못하고 결국 실패하지만요. 그래도 이전보다 다정하게 그 사람을 기억하게 되는 것 같아요. 소설 속에서 개인적으로 애정을 가지고 있는 등장인물은 단편적인 모습과 목소리만으로 남아있는 부수적인 인물들이에요. 그 사람들에 대해 혼자서 생각하는 시간이 있고, 그래서 그 인물들은 이 소설과 저 소설의 우주에서 전혀 다른 인물이 되어 다른 인생을 살아가기도 해요. 물론 저만 알고 있지만요.


수록작 「노크」에는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구멍 같은 거야. 나한테 작은 구멍이 있는데 여기 내가 빠질 수도 있고 내 곁의 다른 사람이 빠질 수도 있어. 구멍에 빠지는 일은 정말 무서운 일이지만 운이 좋다면 빠지지 않을 수도 있지. 그러니까 구멍 같은 건 모르고 지내는 게 좋아.”(134쪽) 또, 비슷하고도 다른 구절도 있지요. “생각해 봤는데 그 여자 덤프트럭을 만난 것 같아. (……) 그렇게 크고 무서운 건 피해 볼 도리가 없어.”(159쪽) 피하는 게 좋지만 실은 도저히 피할 도리가 없는 ‘구멍’ 혹은 ‘덤프트럭’ 같은 요소는 우다영 작가의 소설 도처에 도사리고 있는데요. 삶에 이런 요소들이 있다고 소설에서 거듭 강조하게 되는 이유가 있나요?

 

조금 다른 이야기를 먼저 해 볼게요. 제가 대학교 1학년 때 처음 썼던 아주 엉망인 시 제목이 ‘여백’이었어요. 세상의 모든 물질을 구성하는 원자는 핵과 그 핵을 도는 전자로 이루어져있는데 핵과 전자 사이에는 원자 전체 부피의 99% 이상을 차지하는 빈 공간이 있다는 것, 그러므로 나도 이 세상도 실은 대체로 비어 있다는 무소유적인 깨달음이 그 엉망인 시의 핵심이었어요. 이런 창피한 이야기를 왜 하냐면, 세상을 여백으로 가득한 비어 있는 공간으로 인식하는지, 아니면 여백으로 가득 찬 공간으로 인식하는지가 이 질문의 대답이 될 것 같아서요. 세상에 일어나는 무수한 사건들은 보기에 따라 행운과 불운 어디쯤에 가까울 텐데 그것들이 갑자기 어디서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늘 무수한 가능성의 구멍으로 우리 앞에 펼쳐져 있다고 생각해요. 일어나지 않고 사라진 과거도, 예정되어 다가오는 미래도, 진실과 꽤 대등하고 공평하게 대하는 편이죠. 두렵고 무서운 일들, 돌연해 보이는 사건들이 실은 일상과 밀접하고 평평하게 맞닿아 있는 삶의 일부라고 생각하면 그것들의 징조에 대해 제가 할 이야기가 있다고 느꼈던 것 같아요.


「얼굴 없는 딸들」의 폭력적이고 거칠지만 벗어날 수 없이 묶인 10대 시절의 친구 관계, 그리고 「셋」의 서로의 비밀을 알고도 눈감아 주며 이어져 온 30대의 친구 관계가 한 삶이 연장되는 것처럼 보여 흥미로웠습니다. 친구 사이에서 생기는, 우정을 지속시키는, 혹은 그 사이를 끝장내는 ‘비밀’에 대해서도 관심 있게 지켜봐 온 것 같았어요. 우정이 혼합물이라면, 그 구성과 비율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예상으로는 비밀이 30% 정도는 차지할 것 같은데요.(^^) 

 

오, 저도 그 두 소설 속 인물들을 연결지어 보길 좋아해요. 「얼굴 없는 딸들」의 어린 여자애들은 서로에게 은밀한 비밀들을 털어놓는 방식으로 유대감을 확인하고 반대로 아무것도 말해 주지 않는 경진이에게 알 수 없는 적의를 느끼잖아요. 그런데 「셋」에서 훌쩍 어른이 된 친구들은 서로의 비밀을 간직하고 그 간격과 공간을 유지하는 방식으로 그들의 우정을 지켜내요. 저는 그 변화가 재미있어서 그 인물들에 대해 자주 생각했던 것 같아요. 정말 이상한 일이지만 누군가와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말하면 말할수록 비밀은 증식하잖아요. 그 사람의 어떤 점을 알게 되면 그 부분을 제외한 모르는 나머지가 생기죠.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면 그것은 어떤 경우에도 온전한 진실일 수 없기 때문에 더더욱 방대한 여백이 생겨요. 우정은 용기와 상상력, 직감, 허기, 식성, 회피, 소망, 환상, 타이밍, 게으름, 텔레파시 같은 무수하고 사소한 것들이 혼합되고 분리되기를 반복하는 유기체인데, 그 모든 것들이 마치 원자처럼 일부의 드러난 핵심과 방대한 미지의 영역으로 이루어져 있어요. 물론 그 여백을 모조리 차지하고 있는 건 비밀이고요.


첫 소설집을 내기 전에도 이별을 테마로 한 소설집  『서로의 나라에서』 와 청소년 테마 소설집 『다행히 졸업』 에 공저로 참여하셨죠. 그러면 자연스럽게 첫 책을 내기 전 단편소설로 독자를 만날 기회가 있었을 텐데요. 독자와 만나는 순간을 어떻게 기억하시나요? 기억에 남는 독자의 리뷰나 피드백이 있다면 들려주세요.

 

『서로의 나라에서』 에 실린 「밤의 징조와 연인들」을 이별 직후에 읽었다는 독자분과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어요. 소설 속 연인과 유사한 연애를 한 것도 아니고 전혀 다른 경우의 이별을 겪었는데도 소설을 읽는 내내 그들이 자신과 같다고 느꼈다고 말씀해 주셨어요. 그들의 이야기를 따라가면서 마음속에 자신의 것인지 그들의 것인지 알 수 없는 슬픔이 차올랐는데 그것이 이상하게도 위로가 되었다는 말씀에 잔잔한 감동을 받았어요. 너무 좋아서 그분과 손을 맞잡고 왜일까요, 왜 그냥 우리가 같은 마음이구나 느끼는 일이 위로가 될까요, 하며 함께 신기해했던 기억이 나요. 이제 울지 말라는 달램보다, 더 이상 슬프지 않을 거라는 응원보다 강력하고 효과적인 것이 소설 속에 있다고 믿어요.


소설을 쓰는 사람으로서 영향을 받은 작가가 있으신가요? 그것과 별개로 그저 좋아하는 마음으로 독자 여러분께 추천하고 싶은 작가나 책이 있다면 소개해 주세요.

 

위로의 이야기가 나왔으니 줌파 라히리의  『저지대』 와 리베카 솔닛의  『멀고도 가까운』 을 추천하고 싶어요. 독서를 하고 소설 속 인물을 만나는 경험, 다른 사람의 마음을 상상하고 그 사람이 되어 보는 경험이 왜 중요한지 그것이 어떤 형태로 우리에게 작용하는지 놀라면서 감탄하면서 깨닫게 돼요.


 

 

밤의 징조와 연인들우다영 저 | 민음사
다채로운 삶의 진실들에 가 닿기 위해 기꺼이 어둡고 깊은 구덩이로 들어간다. 그리고 빛나는 소설을 건져 올린다. 우연이라는 우리의 존재 조건을 덤덤히 받아들인 독특한 표정을 하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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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출판사 제공

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

밤의 징조와 연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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