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인터뷰] 구술생애사 작가 최현숙이 만난 노인들
<월간 채널예스> 2018년 11월호
사실 모든 사람들의 생애를 쭉 듣다보면 공감이 돼요. 선악도 없고, 옳고 그름도 없고, 그럴 수밖에 없었던 맥락과 처지가 있죠. 그래도 ‘아, 이 양반 정말 대단하다’라고 느꼈던 분은 첫 번째 책『천당허고 지옥이 그만큼 칭하가 날라나?』의 평양 할머니에요. (2018. 11. 08)
늙음도 ‘소문’으로 여기는 힘, 그깟 소문쯤 자력갱생으로 눌러버리는 힘, 최현숙이 들려주는 인생들에는 이 거룩한 내력들이 담겨 있다. 펄펄 살아 있는 말을 하고 있다.
『천당허고 지옥이 그만큼 칭하가 날라나?』 에서는 여성 노인들의 생애를, 『할배의 탄생』 에서는 남성 노인들을 인터뷰하고 기록하셨습니다. 노인들의 삶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2008년 쯤이던가, 진보정치운동이 분열되면서 진보정당을 통한 사회 개혁에 회의가 들었어요. 그러다 어디서 내 밥벌이를 하며 소신을 실천하며 살 수 있을까를 고민했죠. 당시 우리 사회는 소위 ‘돌봄 노동의 사회화’가 진행되고 있었는데, 말하자면 그동안 여성들이 집 안에서 딸이나 며느리, 아내의 이름으로 해 왔던 온갖 돌봄 노동들 아이 돌봄, 노인 돌봄, 장애인 돌봄 이런 것들이요. 이런 걸 국가가 좀 맡아서 하겠다는 변화가 시작되면서 요양보호사, 장애인활동보조, 산모신생아도우미, 간병인같은 사회 서비스 노동이 늘어났는데, 그걸 하는 여성들이 내 또래 베이비부머 세대의 여성들이었어요. 뭐 가장 싸구려 노동이죠. 여성들조차도 노동이라는 의식 없이 해오던 것들이라 돈을 준다니까 하는 거였는데, 이 여성들과 뭔가를 같이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요양보호사,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따고 현장에서 일하기 시작했어요.
그럼 거기서 이야기를 듣게 되신 건가요?
그렇죠. 일을 하면서 웬만큼 친해지고 신뢰관계가 생기니까 노인들이 주절주절 살아온 이야기를 하시는 거예요. 누구도 들으려고 하지 않았고, 다들 귀찮아하던 이야기들이요. 근데 그 얘기가 나한텐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됐어요. ‘아, 내가 저 이야기를 남겨야 한다’라는 생각이 들었죠. 아마 내가 살아온 진보정치나 여성주의적 관점이겠죠. 우리 사회에서 계속 배제된 사람들, 사회의 소수자들의 목소리니까.
인터뷰한 노인들은 대부분 돈 있고 배운 사람들이 아니라 가난하고 못 배운 노인들이었어요.
우리 사회는 대체로 가난이나 늙음도 그렇고 못 배운것들에 대해서 기껏해야 ‘동정’하잖아요. 안됐다, 불쌍하다, 그래서 뭔가를 좀 줘야된다는 시혜. 또 거기서 더 나아가면 스스로 게을러서 그렇다는 낙인. 뭐 이런 해석들인데, 저는 어떤 경로로 가난하게 되었느냐도 굉장히 중요하게 봐요. 또 가난이나 고통을 견뎌낸 사람은 그 안에 힘이 있다고 생각해요. 겪지 않은 사람은 도저히 만들어낼 수 없는 힘이 그들 내부에 있다라고 생각해서 그걸 보려고 했어요. 근데 그 힘 안에는 해학도 있고 낙천도 있고, 사회에 대한 시선 같은 것들이 굉장히 복잡하게 섞여 있어요. 누가 무엇을 보느냐에 따라, 내가 그 양반의 고난에 대해 어떤 말로 질문을 하느냐에 따라 내놓는 패들이 달라져요. 어떤 질문에는 자기 안에 뒤섞여있는 해석 중에서 굉장히 긍정적인 해석, 힘찬 해석, 정말 해학적인 해석을 꺼내기도 하고, 불쌍하게만 보는 물음에는 거기에 맞는 것들을 꺼내죠. 하지만 저는 어르신 속에 있는 고난을 견딘 힘, 그걸 존중하고 그런 걸 통해서 뭘 배우고 싶다라는 의미로 다가갔어요.
가장 공감되었던 이야기를 들려준 분은 누구였나요?
사실 모든 사람들의 생애를 쭉 듣다보면 공감이 돼요. 선악도 없고, 옳고 그름도 없고, 그럴 수밖에 없었던 맥락과 처지가 있죠. 그래도 ‘아, 이 양반 정말 대단하다’라고 느꼈던 분은 첫 번째 책『천당허고 지옥이 그만큼 칭하가 날라나?』 의 평양 할머니에요. 그분은 십대 후반에 화신 백화점이 너무 궁금해서 남쪽에 내려왔다가 전쟁을 겪은 분이에요. 북쪽에서는 초등학교도 나오시고 야학도 다니고, 당시는 평양이 남쪽보다 훨씬 산업이 발달했는데 신발공장, 담배공장도 다니면서 돈도 벌고, 굉장히 파이팅 한 성격이죠. 호기심도 너무 많고요. 아무튼 남쪽에서 남자를 만났는데 아편쟁이였대요. 전쟁에 피난 갔다 와보니까 쥐약 먹고 죽었고. 아들이 하나 있어서 ‘양색시’들 옷장사도 하고 댄스학원에서 일하다가 2차도 나가고 미군 성매매도 하고 그랬는데, 이분 특징이 근본적으로 자신의 삶에 대한 낙인이 없어요. 유일한 외아들이 목사가 됐는데, 아들네 교회에서 새벽기도에 어머니를 불러놓고 통성기도를 하면서 “우리 어머니에게 회계의 영을 내려주소서. 뭐 뭐 한거랑, 자식 뗀거랑 이런 걸 회개해주십시오”이런대요. 그러면 이 양반은 “야, 그게 뭐 회개할 일이냐, 니네 하나님은 그런 하나님일지 몰라도 내 하나님은 내 속을 안다. 내가 너 공부시켜서 목사 만들려고 그걸 했고, 내가 그 새끼를 낳아야했냐. 그때 그 흑인 혼혈아들 어떻게 되는지 뻔히 보이는데 내가 그때 그 새끼를 낳아서 그 복잡하고 힘든 인생을 만들어야 됐냐”이러신대요. 저는 이 할머니의 그런 낙인 없음과 호기심 이런 것들이 나와 굉장히 닮아서 공감이 갔어요.
반대의 경우도 있었나요?
제일 안타까웠던 분이 『할배의 탄생』 에 나오는 이영식 할아버지에요. 이 양반은 어떤 면에서 평양 할머니랑은 반대인 것이모든 게 낙인이고 자괴이고 부끄러움이고 심지어 죄에요. 가난하게 산 거, 학교를 제대로 안다닌 거, 키가 작은 거, 성적으로 약한 거, 평생 노가다만 한 거, 이걸 다 부끄러움이고 죄라고 생각해요. 우리 사회가 규정한 남성성, 온갖 정상 이데올로기와는 다른 비정상을 자기 안에 내면화한 것이죠. 실은 성격도 조용조용하시고 굉장히 친절하고 겸손하신 분인 것이, 내가 안부전화를 했는데 못받으시면 다른 분들은 다시 전화를 안하는데, 이 분은 꼭 다시 전화를 해서 “고맙다, 잘 있다, 별 일 없다” 그러세요. 제가 “도대체 선생님이 가난하고 키 작고 이게 누구한테 죄냐”라고 하면 이 분은 “최선생이나 그렇게 이야기한다, 그건 교과서에나 나오는 말이다. 나가서 아무나 붙잡고 물어봐라. 누가 나를 쓸모있는 사람으로 보냐”라고하시죠.
두분의차이가 뭘까요?
저는 그것이 원가족 안에서의 상처에서 기인했다고 생각해요. 이영식 할아버지는 어렸을 적에 생모가 한약인 줄 알고 양잿물을 잘못 마셔서 돌아가셨거든요. 이 분에겐 엄마가 숨을 거두는 장면이 가장 강렬한 어린 시절의 기억, 유일한 기억이었어요. 또 나중에 아버지가 재혼을 하셨는데 자식이 엄청 많았어요. 숫자로도 못 셌는데 그 때 계모한테 눈치 볼까 등등 여러 가지 고려 속에서 형과 이 분을 큰집으로 보냈대요. 딸만 있고 또 훨씬 잘 살았던 큰 집에 큰 아들을 양자로 보내면서 작은 아들도 딸려 보낸거죠. 당시 아버지 입장에서는 그런 생각을 했을 수도 있는데, 그 기억이 이 분에겐 아버지가 자기를 버렸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그래서 그런 자기 삶의 해석에 관해 많은 얘기를 했는데, 인터뷰가 다 끝나고 나서 이 양반이 너무 울더라고요. 나를 버린 아버지, 늘폭력적이었던 형에 대해 다른 생각도 하게 되고.
얘기를 하다 보니까 객관화가 되는 거군요.
그죠, 계속 나랑 해석의 갈등을 겪고 토론을 하면서 내 앞에서는 아니라고, 최선생이나 그러지 누가 그렇게 보냐고 했지만 집에 가서 생각해보니 재해석이 됐던 거죠. 책 나오고 나서 책 갖다 드리려고 갔을 때는 이제 조카도 만나고, 치매 걸려서 알아보지도 못하지만 누나도 만나고 그러시더라고요.
김영옥 작가의 노년의 미를 찾아나선 인터뷰집 <노년은 아름다워>에선 되려 인터뷰어가 아닌 인터뷰이가 되셨는데요. 선생님의 노년은 어떤 모습이길 바라시나요?
나는 딱 요만큼만 살면 돼요. 원룸이어야 돼요. 집이 넓으면 청소를 누가 해요? 청소하기 싫으니까. 그냥 내가 하고 싶은 일에 집중하면서 사는 게 가장 좋은데, 그 일이 순전히 개인적인 욕망이 아니라 사회적인 공공성도 가진 일이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그렇게 이 일을 계속 하다가 못하게 되는 어느 시점에는 스스로 자유 죽음을 선택할 생각을 하고 있는데, 그래서 삶이 갈수록 단출해지는 것 같아요. 젊어서라면 사회운동이니 뭐니, 애 키우고 가정 살림하면서 균형을 잡기가 굉장히 힘들어서 항상 칼날 위에서 바들바들 떠는 기분이었지만, 매번 균형을 못 잡고 이쪽으로 떨어지든가, 저쪽으로 떨어지든가 해서 이쪽 저쪽 모두에서 욕을 먹었지만, 지금은 이제 그런 것들에서 벗어나서 좀 편하게 된 것 같고, 몸이 점점 낡아지면서 효율성이 떨어지니까 무엇을 포기하고, 무엇을 선택할지, 무엇에 집중할지가 명확해졌어요.
나이가 들어서 제일 좋고 제일 싫은 건 어떤 건가요?
단출해지는 게 가장 좋아요. 경계에서 아슬아슬하지 않아도 되니까. 싫은 점은? 글쎄요. 나는 뭐 늙음이든 죽음이든 그냥 시간의 문제라고 생각을 해서, 싫은 건 없어요. 아니 뭐 나만 늙고 나만 죽는 게 아니라 다 죽는데 뭐가 억울해요. 또 저는 사람들이 부정적으로 보는 고통이든 통증이든 가난이든 모든 것들에 대해서 구경하는 마음, 관찰하는 마음이 있어요. 허리 통증 때문에 굉장히 아파서 정말 글을 쓸 수도, 아무것도 할 수 없으면 핸드폰 녹음기를 눌러놓고 내 허리 통증에 대해서 떠들어요. 하하하. 신음소리도 내면서. 고통에 빠져봤자 계속 아프기만 하니까, 그냥 저 쪽에다가 놓는 거죠. 물론 아주 심할 땐 말려들었다가도 말려드는 순간도 내가 기록하고 있다고 생각을 하면, ‘그래, 고통, 니가 이렇구나’뭐 이렇게 그러면 달라져요. 고통에 대해서 거리두기를 하는 거죠. 그게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을 해요. 고통을 이기는 방법은, 고통에 지지 않는 방법은 고통에 대해서 거리두기를 하고 관찰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선생님 말씀처럼 누구나 나이가 들어가고 노년이 되어가는 데, “너무 두려워만 하지 말고 이렇게 대비해봐라”하는 얘기를 해주신다면요?
나이 듦과 죽음도 마찬가지고, 소문이에요 소문. 신자유주의가 만들어낸, 절대로 믿을게 안 돼요. 하하하. 뭐 신자유주의까지 모른다 하더라도, 유한한 존재인 인간, 생명은 당연히 그 어떤 망가짐, 뭐 이런 것에 대해서 두려움을 갖죠. 당연한건데, 그 자체가 소문이라는 거죠. 그냥 시간이 되면 차츰차츰 늙어가요. 살다가 어느 날 무릎이 안 좋고, 또 어느 날 허리가 안좋고, 이렇게 되다가 누워있을 수밖에 없는 그런 상황이 되는 거에요. 저는 모든 나이는 살아볼 만 하다고 생각해요. 그 나이를 어떻게 대하느냐가 문제지. 모든 존재도 살아볼 만 한 거예요. 남과 다른 거지. 그 안에서 자기 살 이유나, 자기의 어떤 생각을 만들어 내느냐 못 만들어 내느냐가 중요한데, 이놈의 이데올로기 때문에, 자꾸 안 좋은 거라는 규정을 하죠. 남들 시선, 사회의 규정 이런소문 말고, 정말 내가 내 것으로 볼 수 있는 어떤 것을 찾아내느냐 못찾아내느냐의 문제 같아요. “너도 나이 들면 다 똑같아져”우리 이런 소리 맨날 듣잖아요. 근데 절대로 아니더라고요. 그냥 고수하면 돼요. ‘나는 여기서 내 것을 찾겠다’라고 고수하고 나가면 절대로 소문에 안 속아요. 소문에 속으면 정말 뒷덜미가 잡혀서, 뭐 오지도 않는 귀신한테 뒷덜미를 잡혀가지고 우물에 빠져 죽는다고, 그냥 두려워서 그냥 허겁지겁 하게 돼버려요.
마지막으로 곧 새 책이 곧 출간된다고 들었는데, 어떤 책인가요?
구술 생애사 책은 아니고 에세이에요. 제목은 ‘삶을 똑바로 마주보고.’ 영화 <디 아워스>에 나오는 문구에요. 그간 써온 글과 신문 컬럼에 연재한 글을 모아 엮은 책인데, 그 안에 사회를 바라보는 저의 시선들, 나이 듦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들, 대부분 노인 복지 현장에서 만난 노인들 이야기가 담겨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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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랜스 에디터. 결혼과 함께 귀농 했다가 다시 서울로 상경해 빡세게 적응 중이다. 지은 책으로 <서른, 우리가 앉았던 의자들>, <시골은 좀 다를 것 같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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