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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이언티 없는 자이언티 앨범
자이언티 『ZZZ』
단순하기 그지없는 악기와 화성 활용으로 점철된 최근 알앤비 뮤지션들의 작품에 비하면 『ZZZ』 의 사운드 운용은 훌륭하다. (2018. 10. 24)
자이언티의 관심은 이미지의 소리 재현이었다. 데뷔작 <Red Light>에서 자신을 한 편의 영화 감독으로 소개한 후, 그의 독특한 음색과 간결한 사운드 구성은 스쳐가는 일상 속 순간을 오래도록 기억에 새길 독특한 미장센으로 기능해왔다. 택시 드라이버, 아저씨, 행복으로 그려낸 밤의 「양화대교」와 초콜릿, 아침 사과, 혼자만의 공간 속 달콤했던 「꺼내 먹어요」처럼 타자를 관찰하던 시선은 지난해 <OO>에서 카메라 렌즈를 본인에게 돌리며 자전적 이야기를 풀어내기도 했다.
<ZZZ>는 이 두 시선을 고르게 담아내는 편이다. 타이틀 트랙부터 「My luv」 「잠꼬대」와 「눈」이 전자의 경우라면 「말라깽이」와 「아무도 모르는 이야기」는 후자다. 오랜 파트너 재즈 피아니스트 윤석철의 세련된 코드 워킹과 피제이의 매끈한 프로듀싱이 더해진 네오 소울 사운드도 출중하다. 그런데 정작 앨범은 자이언티의 결과물 중 가장 덜 매력적이다. 핵심이 되어야 할 스토리텔링과 이미지 묘사가 세밀하지 않은 데다 기성의 문법을 답습하는 탓이다.
「멋지게 인사하는 법」은 그런 안이한 시각이 진부함으로 귀결되는 경우다. 2018년의 ‘그녀를 만나는 곳 100m 전’을 꿈꿨지만 심리 묘사는 얕고 멜로디는 실종됐다. 5시간 800 테이크를 거쳤다는데 자이언티와 슬기의 보컬은 관성적인 상황 나레이션에 그쳐 재미가 없다. 미셸 공드리를 오마주한 뮤직비디오 속 서로에게 수줍게 인사하는 썸남 썸녀의 모습만 어렴풋이 남을 뿐, 페이스북 피드를 내리다 3분 정도 잠시 머물고 갈 정도에 만족하는 곡이다.
앨범 소개 문장대로 ‘최신 유행 스타일’의 아이돌은 가사 속 「Freaking R&B」를 표방하는 딘, 크러쉬 등 범람하는 스타일의 반복이다. 나른한 「My luv」는 건조한 후렴과 평면적인 심리 묘사로 얇은 동요만을 일으킨다. 말라깽이 캐릭터는 익히 대중이 인식하고 있는 자이언티와 크게 벗어나지 않으며 반전이 될 수 있는 이센스의 랩 역시 ‘첫 앨범에 빠이빠이’ 하지 못한다.
정적인 분위기 속 ‘새꺄’ ‘등신’ 등 무의미한 비속어 사용은 몰입을 떨어트린다. 특히 펑키(Funky)한 베이스 리듬의 ‘어허’가 준수한 프리퀄 역할을 맡은 「잠꼬대」에서 제대로 심상을 방해한다. 「아무도 모르는 이야기」의 섬세한 스트링 세션과 딱딱한 보컬의 부조화도 의문이다.
단순하기 그지없는 악기와 화성 활용으로 점철된 최근 알앤비 뮤지션들의 작품에 비하면 <ZZZ>의 사운드 운용은 훌륭하다. 훌륭한 세션과 프로듀서들의 조화, 꼼꼼한 손길은 작품 구석구석 스며들어 어렵지 않게 웰메이드 칭호를 확보한다. 정작, 이 앨범에 자이언티는 없다. 그만이 할 수 있던 이야기, 그만이 볼 수 있던 시선은 없고 범작의 익숙한 뼈대만 남아있다. 근사한 안경테에 도수 없는 안경알을 끼운 셈이다.
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