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에피톤 프로젝트, 잘 만들어진 감성 자극 음반

에피톤 프로젝트 <마음속의 단어들>

  • 페이스북
  • 트위터
  • 복사

꽉 차지 않은 가볍고 따뜻한 악기 사이의 빈틈과 여유가 말 그대로 치유를 선사한다. (2018. 10. 24)

1.jpg

 

 

성장한다는 건 나아가는 것일까. 이 음반은 내딛기보다 제자리에서 발을 구른다. 어느덧 데뷔 12년 차, 4번째 정규 음반을 손에 들었음에도 그의 감성과 작법은 기존 에피톤 프로젝트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4년의 기다림 끝에 등장한 신보는 정체가 아닌 명백한 성장이다. 자신의 이야기를 꾹꾹 눌러 담은 채 제3의 시선에 대한 빗장을 풀고 이어낸 선율과 따뜻한 악기의 울림은 진보가 비단 새로움에서 출발하는 것만이 아님을 보여준다.

 

11개 트랙으로 이뤄진 앨범은 가지런하다. 사운드를 많이 섞지 않았고 따뜻한 악기로 따스한 온기를 전한다. 일렉트로닉을 질료로 했던 대표곡 「눈을 뜨면」, 새소리 물소리 등 자연의 소리와 더불어 경쾌한 통기타 울림을 선보였던 「선인장」, 스페셜 음반인 <긴 여행의 시작>을 메운 타악기, 현악기의 사용에서, 아주 가깝게는 자신의 음악 메타포를 털어내려 했던 이전 정규 3집 <각자의 밤>과 비교해 <마음속의 단어들>은 정직하고 담백하다.

 

한 글자 한 단어를 꼭꼭 삼켜 부르는 창법은 이 같은 구성에 진정성을 더한다. 잘 부르는 보컬이 아닐지라도 갖은 기교 대신 섬세하게 매 음을 짚어나가는 조율은 에피톤 프로젝트의 감성에 일정 집단이 열광하는 이유다. 물론 따지고 보면 여성 뮤지션 한희정과 함께해 좋은 성과를 이뤘던 「그대는 어디에」와 같은 곡에서도 그의 노래는 화려하지 않았다. 하지만 조금만 집중해서 들어보자. 이전의 히트곡에서 그의 보컬이 힘을 풀었다면 이번 수록곡에서 그의 목소리는 힘을 채운다. 그만큼 내면의 이야기를 온전히 전달하려 했다는 증거가 아닐까.

 

비슷한 분위기와 어쩐지 겹치는 멜로디 탓에 저마다 호오의 차이는 있겠지만 잘 만들어진 감성 자극 음반이다. 피아노를 통해 사랑했던 추억을 건드리는 「첫사랑」 「푸르른 날엔」. 역시 같은 주제지만 신시사이저 변주를 통해 몰입도를 높인 「소나기「를 비롯하여 경쾌한 멜로디 사이 위로를 전하는 「어른」 밴드 셋으로 음반 내 가장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마음을 널다」와 오랫동안 자신을 기다려준 팬들에게 선물한 「연착」까지. 음반의 수록곡은 어느 것 하나 허약한 이야기나 선율 혹은 감정을 전하지 않는다.

 

특별하고 새로울 건 없으나 에너지가 차면 다시 돌아오는 그의 복귀가 반갑다. 이물감 없이 소화되는 노래와 귀 기울이게 되는 정직한 보컬 실력 앞에서 자기 복제란 단어의 날카로움은 무뎌진다. 꽉 차지 않은 가볍고 따뜻한 악기 사이의 빈틈과 여유가 말 그대로 치유를 선사한다. 음악에 기대고 싶은 날 편하게 꺼내 들으면 좋을, 꺼내 듣고 싶은 음반이다.

 


 

배너_책읽아웃-띠배너.jpg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셨다면 아래 SNS 버튼을 눌러 추천해주세요.

독자 리뷰

(0개)

  • 독자 의견 이벤트

채널예스 독자 리뷰 혜택 안내

닫기

부분 인원 혜택 (YES포인트)
댓글왕 1 30,000원
우수 댓글상 11 10,000원
노력상 12 5,000원
 등록
더보기

글 | 이즘

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

오늘의 책

수많은 사랑의 사건들에 관하여

청춘이란 단어와 가장 가까운 시인 이병률의 일곱번째 시집. 이번 신작은 ‘생의 암호’를 풀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 사랑에 관한 단상이다. 언어화되기 전, 시제조차 결정할 수 없는 사랑의 사건을 감각적으로 풀어냈다. 아름답고 처연한 봄, 시인의 고백에 기대어 소란한 나의 마음을 살펴보시기를.

청춘의 거울, 정영욱의 단단한 위로

70만 독자의 마음을 해석해준 에세이스트 정영욱의 신작. 관계와 자존감에 대한 불안을 짚어내며 자신을 믿고 나아가는 것이 결국 현명한 선택임을 일깨운다. 청춘앓이를 겪고 있는 모든 이에게, 결국 해내면 그만이라는 마음을 전하는 작가의 문장들을 마주해보자.

내 마음을 좀먹는 질투를 날려 버려!

어린이가 지닌 마음의 힘을 믿는 유설화 작가의 <장갑 초등학교> 시리즈 신작! 장갑 초등학교에 새로 전학 온 발가락 양말! 야구 장갑은 운동을 좋아하는 발가락 양말에게 호감을 느끼지만, 호감은 곧 질투로 바뀌게 된다. 과연 야구 장갑은 질투심을 떨쳐 버리고, 발가락 양말과 친구가 될 수 있을까?

위기는 최고의 기회다!

『내일의 부』, 『부의 체인저』로 남다른 통찰과 새로운 투자 매뉴얼을 전한 조던 김장섭의 신간이다. 상승과 하락이 반복되며 찾아오는 위기와 기회를 중심으로 저자만의 새로운 투자 해법을 담았다. 위기를 극복하고 기회 삼아 부의 길로 들어서는 조던식 매뉴얼을 만나보자.


문화지원프로젝트
PYCHYESWEB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