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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채 교수, 내가 ‘죽음학’ 강의를 시작한 이유

『우리는 왜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 없는가』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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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에 대한 공포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죠. 그런데 우리가 공포를 느끼는 것은 그 대상에 대해 잘 모를 때입니다. (2018. 10.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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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은 인간의 영원한 숙제일지도 모른다. 다만 우리가 그 숙제를 미루고 외면한다면, 그 숙제를 풀 수 있는 기회를 영원히 잃어버리는 게 아닐까. 잘 사는 일만큼 잘 죽는 일(웰다잉)이 새롭게 조명 받는 지금, 죽음학 분야의 대중화를 위해 힘써오다 최근 그 여정을 정리한 책, 『우리는 왜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 없는가』 를 출간한 정현채 교수를 만났다. 

 

‘죽음학 전도사’로 이름난 정현채 서울대 의대 교수는 암 투병으로 ‘죽음관’이 더 명료해졌다고 말한다.  정현채 교수(소화기학)는 위염이나 위궤양 등을 유발하는 헬리코박터 파일로리 연구의 권위자로, 대한소화기학회 이사장, 대한헬리코박터및상부위장관 연구학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정 교수는 2007년부터 대중을 상대로 ‘죽음학’ 강의를 시작했다. 부모를 여읜 중학생과 친구들을 앉혀 놓고 강의를 한 적도 있고, 대학 최고위과정의 60~70대 수강생까지 다양한 계층을 상대로 480여 회의 강의를 소화해 ‘죽음학 전도사’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또한 한국죽음학회 이사로서 ‘한국인의 웰다잉 가이드라인’ 제정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10여 년 이상 ‘죽음학 전도사’로서 활발한 연구와 강의를 해오셨는데요, 이번 단행본을 출간하게 되신 계기가 있을까요?

 

죽음을 다룬 책들은 많지만, 죽음을 존재의 소멸로만 보는 시각이 대부분입니다. 삶과 죽음에 관한 이해의 지평을 넓히는 데 필수적인 것이, 죽어 있는 상태에서 겪는 근사체험이나 삶의 종말 체험과 같은 영적인 현상들인데요. 사람들이 이를 제대로 알지 못한 채 비과학적인 것으로 치부하는 현상을 오랫동안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이 든 게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15년 전의 필자 역시, 인간의 정체성은 눈에 보이는 육신이 전부이고 뇌가 의식이며 영혼 따위는 존재하지 않고 죽으면 모든 게 끝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다가 죽음에 대한 연구를 하면서 이러한 생각이 크게 잘못됐다는 것을 알게 됐고, 이후로 죽음과 삶을 대하는 자세가 크게 바뀌었습니다.


병원에서 고통스럽게 연명치료를 하다 삶을 마감하는 최근 죽음의 모습을 두고 ‘객사’라고 표현하신 것이 인상 깊었습니다. 의료진 또한 환자의 죽음을 “의료의 패배나 실패”로 보고 있다고 하셨는데요,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게 된 것일까요?


죽음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각의 변화와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수십 년 전만 하더라도 할아버지, 할머니의 죽음을 손자와 손녀가 다 지켜보고, 세상을 떠나는 가족의 마지막 삶을 가족 구성원이 옆에서 보살피는 등, 죽음이 일상사에 포함되어 있었지요. 그런데 요즘은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집이 아닌 큰 병원의 중환자실에서 가족과 격리된 채 외롭게 삶의 마지막 시간을 보내고 또 혼자서 죽음을 맞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것은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유물론이 우세해지고 생명연장 의료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죽음을 터부시하는 사회적 시각이 그대로 반영된 것이지요. 의료진도 죽음을 삶을 마무리하고 정리하는 중요한 한 단계로 보지 않고, 의료의 패배나 실패로 보는 경향이 짙어졌어요. 환자와 가족 모두에게 고통만을 주게 되는 무의미한 연명치료에 환자 가족이나 의료진이 매달리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죠.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우리는 대부분 죽음에 대한 공포를 안고 살아갑니다. 이와 같은 공포는 본능적인 것이지만, 죽음을 제대로 직면할 수 없게 만들기도 하죠. 어떻게 죽음 공포를 극복할 수 있을까요?


죽음에 대한 공포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죠. 그런데 우리가 공포를 느끼는 것은 그 대상에 대해 잘 모를 때입니다. 중세시대에는 천둥이나 번개를 하늘이나 신의 노여움이라 생각하고 엄청난 공포를 느꼈을 테지만, 자연현상의 하나라는 것을 아는 현대인들은 낙뢰로 인한 피해에 주의는 하지만 별로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무엇인가로부터 도망가려고 할수록 험악한 공룡이 자기 뒤에서 입을 벌리고 있는 것 같은 두려움을 느끼지만, 큰맘 먹고 뒤돌아보면 ‘깨갱’ 하고 꼬리 내린 작은 강아지를 마주 보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죽음에 대해 외면하거나 회피하지 말고 직면하면서, 이에 대한 지식을 쌓아나가고 또 사람들과 자주 대화를 나누며 지내는 것이 죽음에 대한 공포를 극복하는 해결책이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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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서는 ‘근사체험’과 관련된 내용이 자주 등장하는데, 여전히 이에 대해 비과학적이라고 주장하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반론을 하신다면?


정보를 제대로 접한 적이 없고 충분히 이해하지 못해서 그런 거라고 봅니다. 저 역시 근사체험에 대해 본격적인 탐구를 하기 전까지는 마찬가지였으니까요. 그런데 근사체험에 관한 논문이나 단행본 한 권이라도 제대로 읽어 본다면 그 현상의 진실성을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을 것입니다. 소수이긴 하지만 근사체험에 관한 연구를 이끌고 있는 외국의 의사들 역시 유물론과 실증주의에 입각한 과학교육으로 무장한 사람들이거든요. 저는 이를 못 믿겠다는 사람들을 애써 설득하려고 하지 않아요. 왜냐하면 죽을 때 다 알게 될 것이니까요. 다만, 죽음에 임박해서야 알게 되는 것보다 살아 있을 때 알게 되면, 사는 동안 삶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며 살아가게 되겠죠.


최근 안락사에 관한 세계적인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주체적인 죽음이라는 입장에서 안락사에 대한 의견을 말씀해주세요.


책의 ‘안락사’ 편에서도 밝혔듯이, 안락사에 대한 생각들은 다 다를 수 있습니다. 다만, 찬성이든 반대든 자신의 입장을 정할 수 있으려면, 우리 사회 안에서 공론화 과정을 거치며 그에 대해 제대로 알아야 가능한 일이지요. 오래전부터 적극적 안락사를 시행하고 있는 네덜란드를 참고하는 것도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네덜란드는 이에 관한 법안이 1999년 국회를 통과될 때까지 30여 년에 걸친 논쟁과 법제화 요구 속에서 대중적인 공론화가 이루어졌고, 또 이를 법으로 통제, 관리함으로써 안락사가 남용되지 않도록 제도화시켰습니다.


주체적인 죽음이라는 입장에서 보면 자살 또한 해당될 수 있을 텐데요. 이를테면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고 보는 입장도 있지요. 자살 문제에 대해 비판적으로 판단하시는 이유가 있다면?


자살하면 지금 겪는 고통이 끝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런 입장을 갖게 된다고 봅니다. 죽음은 소멸도 끝도 아니기 때문에, 자살하더라도 고통은 끝나는 게 아닙니다. 육체가 있어야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 있는데, 육체가 없어지면 자살을 하게 만든 그 문제를 해결할 도구가 없어진 아주 곤란한 상황에 봉착하게 됩니다. 이번 생에서 해결하지 못한 문제는 다음 생으로 고스란히 넘겨져, 그 문제를 극복할 때까지 자신의 과제로 계속 끌어안고 살아가게 됩니다. 각자에게 주어진 현재의 어려움을 해결하려고 애쓰는 과정을 통해 우리는 성장하게 되는데, 만일 자살을 한다면 다음 생에서 처음부터 새로 시작해야만 하는 거죠.


우리 사회에는 이른바 ‘100세 장수’라는 환상이 만연하죠. 이제는 죽음에 대한 올바른 투자와 준비가 필요한 시점이 아닐까 생각하는데요. 웰다잉을 위한, 죽음 준비를 효과적으로 할 수 있는 방법을 독자들에게 알려주세요.


죽음이 끝이라고 생각하면 두려움과 수명에 대한 집착으로 인해 단 하루라도 더 살려고 발버둥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 책에서 일관되게 얘기하는 것처럼 죽음이 소멸이 아니라 ‘옮겨감’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면, 맹목적으로 수명을 연장하려고 하기보다는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길이를 받아들이고 깔끔하게 마무리하려고 노력하게 될 것입니다. 삶의 유한함과 죽음의 예측 불허성을 일찍 자각한다면, 살아 있는 하루하루, 순간순간을 더 충실하고 밀도 있게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살다가 떠나는 것이 바로 존엄한 죽음이겠지요. ‘지혜로운 사람에게는 삶 전체가 죽음에 대한 준비다’라고 한 키케로의 말을 다시 한번 소개해드립니다.

 


 

 

우리는 왜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 없는가정현채 저 | 비아북
죽음으로써 끝나는 게 아니라는 걸 안다면 자살하는 이들이 크게 줄 것이며, 말기 암 환자 등 죽음을 앞둔 이들도 존재가 소멸한다는 생각에서 오는 불안과 공포를 해소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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