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과 친구들에게 받는 위로- 뮤지컬<폴>
외롭고 두려운 당신, 이들의 말에 귀 기울여라.
당신은 18살 폴보다 더 멋지게 자신을 위로할 수 있는가? (2018. 10. 04)
두려울 때는 눈을 감고 행복한 것을 상상해, 폴처럼
관객들의 훌쩍이는 소리가 무대를 채운다. 위로하는 이들과 위로 받는 이들이 무대와 객석에 서로를 보듬는다. 해리성 인격장애를 소재로 한 뮤지컬 <폴> 은 아동학대 피해자인 주인공 폴이 만들어낸 인격들과 고립되어있던 자아가 서로 갈등하며 성장하는 이야기를 담았다.
뮤지컬 <폴> 은 지난 2016년 ‘아르코-한예종 뮤지컬 창작 아카데미’에서 개발되어 2017년 7월 최종 쇼케이스 발표를 마치며 가능성을 인정받은 작품이다. 이후 쇼케이스를 통해 만난 창작진들이 뜻을 모아 자체제작 과정을 거치며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클라우드펀딩 매칭 지원사업에 선정, 텀블벅을 통해 목표금액을 149% 초과달성하고 458명의 후원자를 모으며 또 한번 화제를 모았다.
주인공은 폴이다. 어린 시절 아동학대로 인해 인격이 해리된 폴은 18살이 되던 해 자신을 학대하던 엄마를 공격하고 가출한다. 무작정 길을 나선 주인공은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던 중 우연히 산속에 버려진 폐가를 발견하고 또 다른 인격인 루시, 기욤, 니콜라이와 1년간 자유롭고 행복한 시절을 보낸다. 그러던 어느 날, 폴의 집에 낯선 방문객 왓슨이 등장한다. 폴과 인격들은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방문객을 위협해 집을 지키려고하지만 발랄한 아줌마 왓슨은 겁을 먹기는커녕 폴에게 말을 건내며 마음의 거리를 좁혀간다. 폴은 왓슨을 보호하려 하고, 인격들은 왓슨으로부터 집을 지키기 위해 위협을 거듭하면서 폴과 인격들의 갈등이 깊어져 간다.
해리성인격장애는 연극뿐만 아니라 영화, 문학작품에서도 언제나 흥미로운 소재다. 영화로써는 처음으로 해리성인격장애를 다룬 히치콕 감독의 <싸이코>에서는 마지막까지 원래의 자아인 주인공에 초점을 맞추고 영화의 끝에 해리된 인격을 드러내 반전을 줬다. 이렇듯 대게 작품에서는 돌발적인 행동으로 원래의 자아를 곤경에 처하게 하거나 인격들 간에 서로를 인지하지 못한다. 해리된 다른 인격을 알더라도 서로를 적대시하며 원래의 자아를 억누르고 몸을 차지하려는 악역처럼 묘사된다. 뮤지컬 <폴> 이 같은 소재의 다른 작품들과 차별성을 갖는 지점이다.
뮤지컬 <폴> 에서는 단순히 서로의 존재를 알고 있는 정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친구라고 부르며 홀로 남은 폴을 사랑해주는 유일한 존재들이다. 인격을 표현하는 방식 또한 배우 한 명이 다른 여러 인격을 연기하는 것이 아닌 외모가 천차만별인 배우가 각기 다른 인격을 연기하며 각 인격에 중요성을 부여한다. 관객들은 그들이 서로를 지키기 위해서 고군분투하고 갈등하는 모습을 보며 하나하나의 인격에 애정과 연민을 느끼게 된다.
극에 등장하는 유일한 정상인(?) 왓슨보다도 관객들은 폴과 인격들에게 훨씬 강하게 동화된다. 외로운 폴이 자신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낼 수 밖에 없었던 인격들은 어쩌면 위로가 필요한 현대인들이 꿈꾸는 친구들일지도 모른다. 극의 막바지에 인격들은 몸을 떠나면서 홀로 남을 인생에 대해 따뜻한 조언을 남긴다. 폴, 루시, 기욤, 니콜라이 모두가 객석을 바라보며 따뜻한 작별인사를 전한다. 그들이 전하는 위로와 조언은 폴이 아닌 연극들 보는 관객들 위한 것이다. ‘이제 우리도 행복할 수 있겠지?’ 쉽게 대답할 수 없었던 그들의 물음에 극장을 나서는 관객들은 힘껏 ‘그렇다’고 대답할 힘을 얻어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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