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사과 “성공한 밀레니얼 세대는 주커버그와 김정은뿐”
『N.E.W.』 작가 김사과 인터뷰
아무리 황폐하고 절망적인 세계라도 그것이 묘사가 가능하다면 최악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정말로 끔찍하고 절망적인 경험을 겪은 인간은 많은 경우 그 경험자체를 부정하거나, 잊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래서 진정한 치유는 그 끔찍한 일들에 대해서 말을 하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2018. 09. 13)
ⓒ남궁선
“우리가 일찍이 본 적이 없는 소설”(문학평론가 김영찬)을 쓰는 작가 김사과의 미연재 신작 소설 『N. E. W.』 는 여기의 오늘과 다음 세대가 맞이할 ‘멋진 신세계’를 그린다. 대기업 오손그룹의 후계자인 정지용은 학벌과 미모와 집안이라는 삼박자를 갖춘 최영주와 결혼한다. 신혼집은 서울 근교 L시에 오손그룹이 세운, 999대의 CCTV와 첨단 시스템으로 완벽하게 통제되는 스마트아파트 ‘메종드레브’다. 그곳은 다양한 계층을 섞어 완벽한 통제 속에서 고도의 균형을 달성한 인간을 키워내려는 정대철 회장의 사적 욕망이 투영된 실험장이다. 메종드레브의 2백 평짜리 펜트하우스에 사는 정지용은 5평 원룸에 사는 인터넷 BJ 이하나를 로비에서 우연히 맞닥뜨리고, 정지용은 매사 반응이 즉각적인 이하나에게 강한 흥미를 보인다. 외도를 알아챈 최영주의 불만은 점차 커져가고, 급기야 최영주는 정지용을 감시하기 시작한다.
“모든 게 망가졌는데 왜 아무것도 무너져 내리지 않”는지 끈질기게 물었던 지난 장편소설에서부터 김사과의 변화가 두드러진다. “이 세계는 끝난 것이 아니라 ‘더 나쁜 쪽으로’ 나아갈 여지가 남아 있다”며 내비쳤던 어떻게든 살아가야 하는 ‘남은 자들의 세계’는 『N. E. W.』 에 이르러 본격적으로 형상화된다.
미국에 계시다고 들었습니다. 근황을 알려주신다면요.
최근에 첼시에서 이스트 빌리지로 이사했어요. 동네 분위기가 많이 달라서 적응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미국에서 3년 가량 지냈는데 그 동안 장편소설 NEW 와 작년에 출간된 더 나쁜 쪽으로, 그리고 아직 출판되지 않은 헨리 제임스에 대한 에세이집을 썼습니다. 다음달인 10월에 장편소설 미나의 영어판이 출간될 예정인데요, 관련해서 미국 내 7개 도시에서 낭독회를 열게 되어서 그에 대비하여 옷을 사고 체력을 비축하고 있습니다.
5년 만의 장편이 나왔습니다. 어디에서 소재를 얻었는지 궁금합니다.
몇 해 전에 발자크의 『잃어버린 환상』 을 읽고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소설에는 야망 넘치는 젊은이 둘이 등장하는데요, 하나는 시인이고 하나는 출판업에 뛰어듭니다. 물론 둘 모두 결국에는 각기 다른 방식으로 야망이 좌절되고 맙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두 사람이 성공에 취한 모습이나, 야망이 꺾이는 모습이 너무나도 생생하게 그려져서 깊이 몰입해서 읽었어요. 한편 시인 지망생인 젊은이를 둘러싼 화려하지만 냉혹한 파리 사교계의 모습을 읽는 것이 몹시 흥미진진했습니다. 그래서 저도 한번 돈과 상류층, 야망과 배신이 뒤섞인 글래머러스한 이야기를, 한국을 배경으로 써보고 싶었습니다.
『N.E.W.』 는 1991년 크리스마스 이브, 정지용의 탄생으로 시작합니다. 주인공이 밀레니얼 세대의 모습을 표상했다고 생각했는데, 작가님이 생각하는 밀레니얼 세대의 초상은 어떤 모습인가요?
(2차 대전) 전후 호황기의 끝에 아슬아슬하게 올라탄 세대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 세대의 특징이 인구수로서는 압도적인데 반해 굉장히 무력합니다. 대체로 엄청난 강도의 무의미한 내부경쟁으로 허송세월하고 있는 듯 합니다. 한편 호황기를 관통한 베이비부머 세대를 부모를 둔 데다가 본인도 최근까지 호황기의 세상을 맛 보았기 때문에, 앞으로 세상이 점점 더 나빠진다고 해도 그에 대한 현실적인 인식이 굉장히 힘들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상과 현실과의 괴리 때문에 살면서 굉장히 많은 좌절을 겪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고요. 제가 가끔 농담으로 하는 말이 있는데, 현실에서 성공한 밀레니얼 세대는 단 두 명, 페이스북의 마크 저커버그와 북한의 김정은뿐이라고요. 두 경우 모두 사악하고 악명이 높으며, 자신들만의 괴상한 판타지 월드의 왕 같다는 공통점이 있지요. 따라서 비슷한 세대인 정지용 또한 성공적이려면 굉장한 망상가인 동시에 엄청나게 사악한 일을 저지를 수 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0 이하의 날들』 에서 ‘이 시대 가장 적합한 인간의 모습은 상품으로 빽빽하게 채워질 준비가 된, 깨끗하고 텅 빈 진열대 같은’ 것(216쪽)이라고 표현한 문장이 있습니다. 『N.E.W.』 에서도 끊임없이 상품과 이미지를 소비하는 모습이 묘사되는데, 이제 인간은 소비하는 상품으로만 구별된다는 뜻일까요? 작가님이 생각하는 2018년의 인간은 어떤 모습인가요?
최근 맨하탄 다운타운을 걸어다니면 드는 생각이 일종의 뱀파이어 군중들 속에 들어 있다는 느낌입니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돈과 노력을 기울였을까 싶도록 시크한 젊은이들로 가득차 있는데요, 그 사람들 하나하나를 세세히 관찰해보면, 그 세련된 표정 너머가 어찌나 공허해 보이는지, 어찌나 타인들의 시선을 갈구하는지, 피를 찾아 헤매는 흡혈귀들 같습니다. 끊임없는 소비와 그것의 과시로만 이루어진 라이프스타일이 극단화되면 이런 느낌인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김사과 소설은 ‘폭력’ ‘충격’ ‘파괴’ 등으로 수식될 때가 많습니다. 황폐화된 세계 안에서 어떤 희망도 찾아볼 수 없을 때, 그럼에도 그 세계를 그리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아무리 황폐하고 절망적인 세계라도 그것이 묘사가 가능하다면 최악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정말로 끔찍하고 절망적인 경험을 겪은 인간은 많은 경우 그 경험자체를 부정하거나, 잊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래서 진정한 치유는 그 끔찍한 일들에 대해서 말을 하는 것으로 시작되는 것입니다. 저는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여러 고통들이 완벽한 절망으로 이루어진 침묵 속에서 부정되거나 잊혀지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세계 속에서 소설이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오히려 모두가 멀리하고 혐오하는 감정들이 픽션의 형식으로 승화됐을 때 놀라운 아름다움이 만들어질 수도 있는 것 같아요.
독자들이 김사과의 소설을 힘들어한다는 리뷰가 많습니다. 많이 읽히고 싶다는 마음과, 쓰고 싶은 대로 쓰고 싶다는 마음이 상충한 적은 없었나요? 이제까지 소설을 쓰면서 이야기하고 싶은 주제가 바뀌었는지도 궁금합니다.
언제나 쓰고 싶은 대로 초고를 쓰고, 많이 읽히고 싶다는 마음으로 그 글을 고칩니다. 그 결과로 제 소설이 완전히 안 팔리지는 않고 또 어느 정도의 관심도 얻게 되는 것 같습니다. 만약 제가 정말로 쓰고 싶은대로 쓴다면 한 권도 안 팔리지 않을까요? 아니, 오히려 지금보다 많이 팔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갑자기 드네요.
소설을 쓰면서 주제가 바뀐다기 보다는, 하나의 정말로 말하고 싶은 주제를 찾아가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결국 한 명의 작가가 쓰고자 하는 이야기는 한 가지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그것을 찾아가는 과정에 제가 있다는 생각이 들고, 그 과정이 개인적으로 재미있습니다. 앞으로도 조금씩 더 제가 진짜로 쓰고 싶어하는 이야기에 다가가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N. E. W.김사과 저 | 문학과지성사
비교적 친절한 문장으로 씌어진 비관의 소설이 아닐까. 악몽을 꾸었다. 꿈에서 깨었다. 그런데 여전히 여긴 악몽 속이다. 별수 없이 이 안개 속을 걸어가야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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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파괴!” “날것의 문장들!” “지독한 폭력!” “낯선 충격!”…… 한때 김사과의 소설을 수식하던 느낌표 가득한 말들은 가끔 그의 소설보다 더 격렬했다. 하지만 더는 이미 망한 세상에 대고 파괴를 말할 필요가 없다. 감정의 분출에서 냉철함으로, 김사과의 변화가 두드러진 건 “모든 게 망가졌는데 왜 아무것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