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드류 로이드 웨버, 브로드웨이 혁신의 씨앗을 심다
제72회 토니 어워즈 평생공로상 수상 ‘남작’ 앤드류 로이드 웨버의 음악
'가장 성공한 상업 작곡가'라는 영예의 바탕에 도발적인 메시지와 폭넓은 장르 포용의 파격이 있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2018. 09. 07)
현재 브로드웨이 뮤지컬 씬은 제2의 전성기다. 지난 시즌 브로드웨이 뮤지컬 씬은 33개의 작품으로 17억 달러(1조 7천억 원)의 역대 최고 수익을 기록했다. 화려한 무대와 스타 라인업, 새로운 스토리텔링 3박자는 비싼 티켓 가격에도 불구하고 매 해 여름마다 전 세계의 뮤지컬 마니아들을 뉴욕으로 불러 모으는 새 시대의 히트 공식이다. 규모로 보나 형식으로 보나 지금의 브로드웨이는 가장 거대하고 가장 파격적인 무대가 올라오는 곳이다.
그러나 지금으로부터 50여 년 전에도 혁신은 존재했다. 그 파격은 도발적인 재해석과 다양한 장르, '메가 뮤지컬' 스타일을 확립하며 현대 브로드웨이의 흥행 공식을 미리 정립한 천재 작곡가의 손에서 탄생했다. 제 72회 토니 어워즈 평생 공로상을 수상한 작곡가, 56세의 '남작' 앤드류 로이드 웨버다.
많은 이들이 앤드류 로이드 웨버 하면 <오페라의 유령>, <캣츠>와 같은 메가 히트작을 처음 떠올지만, 또 한 명의 전설 팀 라이스(Tim Rice)와 함께했던 그의 초기 작품들은 당대 시각에선 이단이었다. 예수와 그 제자들을 록 스타와 팬덤으로 치환했던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 아르헨티나의 영부인 에바 페론을 냉소적으로 바라본 <에비타>는 젊은 앤드류 로이드 웨버의 혁신으로 가득한 1970년대 뮤지컬계 최고의 문제작이다.
클래식 기반의 기존 관행 대신 과감한 록 사운드로 무장한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는 종교계엔 그야말로 불경이었다. 제자들로 둘러싸인 슈퍼스타 지저스와 그를 경계하는 유다, 그리고 내가 왜 죽어야 하냐며 아버지 신에게 절규하는 'Gesethmane'는 감히 상상할 수 없었던 충격이었다. 록 뮤지컬, 록 오페라를 설계한 음반은 많았으나 록의 문법을 전면에 내세운 뮤지컬은 처음이었다.
브로드웨이 입성 소식에 종교계는 즉각 반발했고 그 여파는 뮤지컬 계를 넘어 대중문화 전반에 논란을 불러왔다. 뮤지컬 속 '지저스'는 죄 있는 자들을 위해 스스로를 희생한 성서 속 인물이 아닌, 1960년대 말 히피 무브먼트와 함께 피어난 록의 황금기 시절의 비틀스, 롤링 스톤즈처럼 수많은 추종자들 속 가혹한 운명에 고뇌하는 슈퍼스타였다. 대중문화와 시대적 흐름을 정확히 짚고 있던 앤드류 로이드 웨버의 너른 시각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해석이다.
이와 같은 종교에의 도전은 2011년 초연하여 지금까지 인기 뮤지컬로 자리매김한 <북 오브 몰몬>을 낳았다. 미국 솔트레이크 시티의 독특한 종파 몰몬교 선교사가 아프리카 우간다로 보내져 고초를 겪는 이 이야기에서 종교는 희화화되고, 해학적으로 묘사되며 거침없는 욕설까지 퍼부어진다. 그러나 이 이야기의 핵심 주제는 인간에게 종교가 왜 필요하며, 종교가 어떤 식으로 삶에 도움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한 탐구다. 입체적인 해석으로 오히려 거부감 없이 현대의 종교 의미를 묻는 것이다.
차기작 <에비타>는 한발 더 과감한 발을 디뎠다. 아르헨티나의 국모, 민족의 태양으로 칭송받던 에바 페론을 관찰자 '체(che)'(체 게바라를 의도했다.)를 통해 꼬집는다. 밑바닥부터 출발해 대통령의 퍼스트레이디까지 입지전적인 위치에 오른 그의 삶을 다채로우면서도 웅장하게, 다양하게 담아낸 <에비타>는 앤드류 로이드 웨버와 팀 라이스 콤비가 본인들의 최고 작품으로 인정하는 작품이다.
앤드류 로이드 웨버는 정통 클래식 뮤지컬 넘버와 록은 물론 라틴 아메리카의 탱고와 룸바, 팝 등 다양한 장르를 녹여냈다. 대사 없이 노래로만 이어지는 극은 길이 역사에 남을 'Don't cry for me Argentina'와 함께 록 넘버 'A New Argentina', 박수 리듬과 함께 이어지는 콩가의 'Buenos Aires'를 각인시켰다. 뮤지컬뿐 아니라 1996년 영화로도 개봉된 <에비타>에선 '팝의 여왕' 마돈나가 새로운 에바 페론의 탄생을 알린 바 있다.
진중한 역사극과 다양한 장르는 현재 브로드웨이의 최고 히트작 <해밀턴>의 모체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이자 초대 재무 장관이었던 알렉산더 해밀턴의 일생을 그린 이 작품은 놀랍게도 최초의 힙합 뮤지컬이다. 푸에르토리코 출신 작곡가 린 마누엘 미란다(Lin Manuel Miranda)는 18세기 독립 전쟁을 시작하던 미국을 '자유와 독립을 위해 함께 뭉친 이민자들의 국가'로 상정하여, 유색 인종 배우들을 대거 기용하고 최고의 인기 장르인 힙합을 적극 도입하여 '신세대의 역사극'을 설계했다. 작품 그 자체로도 훌륭한 <해밀턴>은 빌보드로부터 '켄드릭 라마의 <To Pimp A Butterfly>보다 대단한 힙합 앨범'이라는 극찬을 수여받았다.
이후 앤드류 로이드 웨버는 거대한 규모의 <오페라의 유령>과 <캣츠>를 통해 최고의 스타 작곡가 자리에 오르며 현대의 화려한 무대 장치와 다양한 볼거리의 초석을 닦았다. 그러면서도 1985년의 록 뮤지컬 <스타라이트 익스프레스>를 작곡하고 최근에는 영화 원작의 <스쿨 오브 록>을 맡는 등 록에 대한 애정을 견지하고 있다. '가장 성공한 상업 작곡가'라는 영예의 바탕에 도발적인 메시지와 폭넓은 장르 포용의 파격이 있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제 72회 토니 어워즈에서 평생 공로상을 수상한 70세의 거장은 눈물을 글썽이며 '뮤지컬은 나의 작은 꿈을 현실로 만들어줬다'는 헌사를 바쳤다. 뮤지컬 씬에 과감한 시선과 대중음악의 넓이를 더한 앤드류 로이드 웨버. 그의 '스타라이트'를 따라 브로드웨이는 역사상 가장 역동적인 전성기를 질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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