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연재종료 > 신예희의 독립생활자
독립생활자, 새롭게 시도하는 일에 대하여
재밌자고 하는 건데 어때
나는 최고가 되고 싶은 것이 아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언제까지나 즐겁기를 바란다. 그래서 내게서 다시 멀어지지 않기를 바란다. (2018. 08. 20)
‘창작’이란 단어는 굉장히 거창하게 들린다. 아휴 저는 그런 거 못해요, 라고 손사래 치며 수줍게 호호 웃어야 할 것만 같다. 대단한 발견, 대단한 예술, 뭐 그런 성취를 이룬 사람들이나 쓸 수 있는 표현 같다. 그러니 자신에게 ‘창작자’라는 말을 허락하는 것은 엄두도 나지 않는다.
그런데 창작이란 존재하지 않던 걸 뿅 하고 만들어내는 게 아니라 기존의 것을 비틀고 바꾸는 것에 더 가깝다. 냉장고를 들여다보며 새로운 재료 조합을 고안하는 것도 그중 하나다. 나는 음식에 기름을 넣어야 할 땐 카놀라유와 올리브유, 버터를 내키는 대로 번갈아 넣는다. 때론 에라 모르겠다며 마요네즈나 땅콩버터를 한술 푹 떠서 집어넣기도 하는데, 이게 의외로 꽤 맛있을 때가 있다(물론 아닐 때도 있습니다). 설탕 대신 딸기잼이나 사과잼을 넣어보기도 한다. 재미있다. 비빔면에 오이 채 썬 것 대신 샐러리를 올려보기도 하고, 멸치볶음이 어정쩡하게 남았길래 그걸 넣고 파스타를 후다닥 볶기도 한다. 낙지젓과 사과를 넣고 샌드위치를 만들기도 한다. 의외로 괜찮을 때도 있고, 헛웃음 나게 꽝일 때도 있다. 최초의 치즈 라면을 시도한 사람, 참치김밥에 깻잎을 넣은 사람은 모두 위대한 창작자이며 위인이시다. 존경합니다.
하지만 누가 억지로 등을 떠밀며 새로운 시도를 하라면 갑자기 하기 싫어진다. 나오려던 괴이한 아이디어가 다시 쑥 들어간다. 요런 즐거움은, 의무로 가득한 빡빡한 일상에서 나오기보단 딱히 할 일 없이 뒹굴거리던 어느 날 갑자기 튀어나오는 경우가 많다. 하도 놀다 보니 지루해서, 자다 자다 지쳐서 뭐라도 해볼 때 튀어나온다. 휴식과 여유, 여백은 그래서 중요하다. 우리는 모두 가능성을 품고 있는 창작자들이다.
외출을 앞두고 진지하게 뭘 입을지 고민한다. 이 티셔츠와 저 바지, 사 놓고 쳐다만 보던 화려한 무늬의 양말을 드디어 개시한다. 과한가 싶은데 신어보니 또 괜찮다. 손톱에 매니큐어를 칠하고 스티커를 붙인다. 한때는 열 손가락에 당연히 한 가지 색을 칠해야 한다고 믿었지만 그런 규칙 따위 잊은 지 오래다. 하긴, 그 시절엔 위아래 세트로 된 투피스 정장만 제대로 된 옷이라고 생각했지. 원피스에 운동화를 신는 것은 꿈도 꾸지 못했고. 지금은 다양한 시도를 한다. 모든 것이 창작이며 재창조다. 요렇게 나 즐거우려고, 내 기분 좋아지려고, 내 입에 맛있는 것 넣어주려고 시도하는 것들은 하나같이 재미있다. 생계를 위해 의무적으로 하는 일보다 몇 만 배 재미있다. 쇼핑만 해도 그렇다. 생리대 일 년 치, 쌀 한 가마니 살 때는 무표정이지만 로드샵 화장품 매장에서 천 원짜리 매니큐어를 살 땐 세상 진지해진다.
때론 제대로 풀리지 않는 날도 있다. 뭐, 그럴 때도 있죠. 고르고 고른 매니큐어를 막상 발라보니 영 아닐 때도 있지만, 그렇다고 엉엉 울며 손톱을 뽑을 생각은 없다. 그게 뭐 대수라고. 새롭게 시도한 요리가 완전히 꽝일 수도 있지만, 식칼을 두 동강 내고 앞치마를 활활 불태울 생각도 없다. 그게 뭐 대수라고. 우리는 그 정도로 기죽지 않는다. 다른 분야의 창작도 다르지 않다. 그냥 하는 것이다. 그거 별로야라는 태클이 들어올 때도 있지만, 그게 뭐 대수라고. 재밌자고 하는 건데 어때.
때론 요 즐거움을 잊는다. 뭔가를 요리조리 궁리해서 곰질곰질 만드는 게 얼마나 즐거운지 잊는다. 사는 게 바빠서 그렇다. 시간은 한정되어 있고 체력도 집중력도 대단치 않으니 당장 돈 되는 것, 스펙 되는 것, 티 나는 것 위주로 해야 해서 그렇다. 진심으로 재미있어서, 끓어올라서 하던 것을 그사이 하나둘 잊고 잃는다.
나는 핸드폰 카메라에 감사한다. 사진을 좋아하고, 더 잘 찍고 싶어 욕심내면서 장비가 다양해지고 커지고 무거워졌다. 내가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게 아니라 크고 무거운 카메라가 나를 질질 끌고 다니는 것 같아 사진 한번 찍으러 나가기가 점점 힘들어졌다. 그리고 어느새 아예 사진을 찍지 않게 되었다. 지금은 가진 걸 대부분 처분하고, 핸드폰 카메라만 사용한다. 덕분에 한없이 홀가분해졌다. 완벽한 카메라는 아니지만 뭐, 어떤 카메라는 완벽한가. 나는 예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사진을 다시 사랑하게 되었다. 난생처음 동영상을 찍기 시작해 아예 유튜브 채널까지 개설했다. 쩔쩔매던 영상 편집 프로그램도 이젠 꽤 능숙하게 다룬다(으쓱).
본격적으로 사진을 찍은 지도 어느새 25년이 넘었다. 사진을 잘 찍어서, 혹은 이 일이 돈이 되어서 그렇게 오랫동안 하는 게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 다른 사람과 경쟁할 필요 없이 내 재미를 위해 사진을 찍어서다. 경쟁했다면 아마 오래전에 지쳤을 것이다. 돈과도 상관없다. 물론 프리랜서로 다양한 분야의 일을 하다 보면 내가 찍은 사진으로 소득을 얻는 경우도 생긴다. 이것은 우연한 기쁨, 부수적 수입이다. 보통은, 다른 일로 열심히 돈을 벌어 사진 찍으면서 놀겠다는 자세다. 스트레스나 부담 같은 것이 비집고 들어올 틈이 없다. 앞으로도 지금처럼 느슨하고 헐렁하게 사진과 영상을 찍고 싶다.
우리는 너무 심하게 경쟁하고, 그게 몸에 배어버려 아예 인식조차 못 한다. 취미로 즐기는 것마저 악착같이, 참으로 열심히 한다. 사진이 좋아서 모인 사람들끼리 사진 장비로 경쟁하고, 음악이 좋아서 모였는데 스피커와 앰프를 뽐낸다. 내 등산복만 유행에 뒤떨어진 것 같아 신상품을 사기 전엔 등산 모임에 나갈 엄두가 나지 않는다. 최고가 되지 않으면, 최소한 상위권 무리에 속하지 않으면 패배자가 된 것 같다.
나는 취미로 하던 땅고를 몇 년 전에 그만두었는데, 셀프 안식년을 선언하고 해외 여러 나라에서 체류하기로 마음먹으면서 오랜만에 땅고 슈즈를 꺼내어 가방에 챙겼다. 무척 설렜지만, 한편으론 좀 망설여졌다. 그만둔 지 벌써 몇 년이나 지났는데, 자세도 스텝도 모두 잊어버렸는데 괜찮을까? 괜히 춤추러 갔다가 쪽팔리기만 한 거 아닐까? 땅고 동호회에서 알게 된 친구에게 그렇게 이야기하니 푸하하, 하고 웃는다.
“걱정 마. 한국 사람은 세상 어디 가도 제일 춤 잘 춰. 일단 하면 다 생각날 거야. 알잖아. 한국 사람, 뭐 하나 배워도 목숨 걸고 악착같이 배우는 거.”
아이고, 맞다 맞아. 나도 그랬다. 즐거워지자고 행복해지자고 시작한 땅고인데도 무슨 성적표라도 받는 기분으로 이를 악물고 배웠다. 그래서 어느새 진이 빠져 그만둔 거였지. 우리는 뭘 하든 공부처럼 일처럼 한다. 너무 바쁘다. 빈틈이 없다. 취미에서도 가성비를 찾고, 여행에서도 가성비를 찾는다. 잘하지 못할 거면 아예 그만둬버린다. 이미 검증된 코스, 맛집이 아니면 가지 않는다.
수년 만에 땅고 슈즈를 챙기며 생각한다. 나는 최고가 되고 싶은 것이 아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언제까지나 즐겁기를 바란다. 그래서 내게서 다시 멀어지지 않기를 바란다. 잘 풀리는 날이나 그렇지 않은 날에도 지치지 않고 계속 무언가를 창작할 수 있게.
홍익대학교 산업디자인학과를 졸업한 후 현재까지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사진을 찍는 프리랜서의 길을 걷고 있다. 재미난 일, 궁금한 일만 골라서 하다가 문득 고개를 들어보니 30대 후반의 나이가 되어버렸다는 그녀는 자유로운 여행을 즐기는 탓에 혼자서 시각과 후각의 기쁨을 찾아 주구장창 배낭여행만 하는 중이다. 큼직한 카메라와 편한 신발, 그리고 무엇보다 튼튼한 위장 하나 믿고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다 보니 어느새 40회에 가까운 외국여행을 했다. 여전히 구순기에서 벗어나지 못해 처음 보는 음식, 궁금한 음식은 일단 입에 넣고 보는 습성을 지녔다. ISO 9000 인증급의 방향치로서 동병상련자들을 모아 월방연(월드 방향치 연합회)을 설립하는 것이 소박한 꿈.
저서로는 『까칠한 여우들이 찾아낸 맛집 54』(조선일보 생활미디어), 『결혼 전에 하지 않으면 정말 억울한 서른여섯 가지』(이가서), 『2만원으로 와인 즐기기』(조선일보 생활미디어), 『배고프면 화나는 그녀, 여행을 떠나다』(시그마북스), 『여행자의 밥』(이덴슬리벨) 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