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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산 “식물에게서 배운 밝은 쪽으로 나가는 법"

인간과 식물이 공존하는 일상 에세이 『식물을 기르기엔 난 너무 게을러』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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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운 사람들이 읽었으면 좋겠어요. 사람들은 외로울수록 사람 만나기가 싫어지는 것 같아요. 외로울수록 더 조용해지길 원하고, 그런 생활에서 식물이 주는 위안이 있어요. (2018. 08.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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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이종산의 연애소설 『코끼리는 안녕』 에는 동물원이 나온다. 『게으른 삶』 에서는 ‘참치’와 ‘너구리’가 주인공인데다 수족관이 중요한 배경이었다. 장난처럼 다음 작품은 식물원을 배경으로 ‘정원 3부작’을 써야겠다는 말이 씨가 되어 첫 에세이집이 나왔다. “나는 뭔가를 돌보는 일에 소질이 없다”라는 고백으로 시작하는 『식물을 기르기엔 난 너무 게을러』 는 맨 처음 무언가를 길렀던 기억, 다른 존재와 우정을 시작하는 방법에서 나아가 ‘식물교’를 세상에 전하고 인간성이 무엇인지 고민한다.


우리는 모두 무언가를 기르고 생기 있게 만들고 싶다. 자주 터전을 옮기는 계약직 생활과 자기 자신을 기르기도 벅찬 시대에서도 누군가와 삶을 공유하고 싶다. 배추에 딸려 온 개구리거나, 보일러실에 사는 이웃 고양이, 용기를 내서 산 하나의 화초가 될 수도 있다. 동적인 것에서 정적인 것으로, 제 전부를 내어주는 일에서 일부를 내어주는 이 동거 방식은 외로운 사람들을 위로하는 효과적인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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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분 하나라도 삶을 공유하는 것들


출판사에서 먼저 에세이집 출판을 제안하셨다고요.

 

편집자님이 『코끼리는 안녕』 을 읽으셨었대요. 출판사에서 식물을 주제로 에세이를 기획하다가 ‘공원 3부작’을 써야겠다는 제 SNS를 보고 생각하는 방향과 맞아서 연락했다고 하더라고요. 일이 들어와서 일단 좋았고요. (웃음) 에세이 청탁이라서 새로웠어요. 항상 에세이 청탁이 들어온 적이 없었는데 한 편도 아니고 에세이집을 해보자고 하셨어요.


처음 기획 의도는 무엇이었나요?


우리가 함께 살아갈 것들이 필요한데 현실적으로 동물과 살아가기는 어려운 사람들이 있잖아요. 저도 그렇고요. 동물까지는 용기가 나지 않지만 화분 하나라도 삶을 공유하는 것들을 가지고 싶은 마음이었던 것 같아요. 기획 단계에서 편집자님과 이야기를 나눌수록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였구나 싶었죠.


처음 쓰는 에세이라 막힐 때도 있었을 것 같아요.


에세이집 자체를 처음 해서 기쁜 것도 있었지만, 제가 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도 있었어요. 정해진 호흡이 필요하겠다 싶어서 일주일에 한 번씩 편집자님께 글을 보내겠다고 했어요. 원하는 톤이 무엇인지 서로 맞출 시간이 필요했고, 잘하고 있나 계속 확인을 받고 싶었어요. 그렇게 차근차근 쓰다 보니 괜찮았어요.


계절마다 무엇을 했는지 나와요. 식물이 자라나는 계절과도 비슷했어요.


식물이 계절에 너무 많이 영향을 받더라고요. 이렇게 이야기하면 되게 당연한데 그걸 매일 눈으로 보니까 너무 신기한 거예요. 식물을 이야기하다 보니 계절 이야기를 하게 되고, 쓰다 보니 기간이 길어져 올해 초봄까지 써서 사계절이 들어갔어요.


『커스터머』 도 그렇고, 이제까지 작품에서 이종 간의 관심이 많이 드러난다는 생각을 했어요. 이 책도 ‘무심하고 게으르고 예민하며 이기적인 한 인간이 낯선 언어를 쓰는 종족에게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일어난 일’(10쪽)이라고 하셨어요.


그러고 보니 첫 번째 소설도 드라큘라와 연애하는 이야기였고, 두 번째는 참치와 너구리의 연애였네요. 의식하지는 않았는데 에세이를 쓰다 보니 더 저 자신과 가까운 이야기를 하게 되고, 제가 다른 존재끼리 만나는 것에 관심이 많다는 의식을 처음으로 했던 것 같아요.


다 쓰고 나서야 무엇을 썼는지 알아차리는 편이세요?


그런 것 같아요. 적어도 중반은 넘어가야 알아요. 에세이도, 소설도 그렇고요. 소설은 막연하게 얼개를 짜는데 그게 변해요. 제가 서사가 강한 작가가 아니다 보니까 얼개는 중요하지 않더라고요.


에세이와 소설을 쓰면서 다른 점이 있었다면요.


이것도 당연한 건데, 제가 이야기를 지어낼 필요가 없다는 게 제일 달랐어요. 에세이라고 해서 사실 그대로를 받아 적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소설은 제가 처음부터 끝까지 다 정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었어요. 에세이를 쓰면서 줄거리나 등장인물의 운명을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는 게 저에게 자유로운 마음을 주었어요.

 

 

환한 쪽으로


식물교 신자라고 자신을 소개하셨어요. 책에 따르면 ‘사람과 식물이 같은 곳에서 왔다는 것을 느끼고, 언젠가 식물과 소통할 수 있을 거라고 믿는 것’(66쪽)이라고요.


친구가 그걸 읽고 ‘빵상 아줌마’ 같다고 하더라고요. (웃음) 저도 사이비 종교처럼 받아들여지면 어쩌나 걱정했어요.


식물과 소통한다는 건 뭘까요?


거창한 게 아닌 것 같아요. 식물을 돌보고 있으면 그 식물이랑 친숙해지잖아요. 식물이 잘 자라고 있나 보면서 말로 하진 않아도 속으로 최근 있었던 일을 생각하는 거죠. 어떤 일은 힘들었고, 어떤 일은 기뻤다고 생각하면서 소통한다고 느끼는 것 같아요. 쌍방 소통인지는 모르겠지만 소통한다는 느낌을 받는 거죠.


식물을 기르면서 달라지는 생활이 담겼어요. 식물을 키우고 밖으로 나가고, 사람을 만나기 싫어하다가도 식물교나 전파하고 오겠다는 긍정적인 경험을 하기도 하고요.


의도치는 않았는데 일종의 재활이 됐던 것 같아요. 사실 심각하게 종교로 여기진 않거든요. 고립감이 심하던 시기에 식물을 기르게 됐는데, 식물이 계속 제 손을 타고 변화하는 걸 보고, 매일 햇볕이라도 쬐어주려고 내놓다 보니 저도 밝은 곳으로 나가야겠다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하게 되더라고요.


요즘 시대가 반려식물을 만들어내는 것 같기도 해요. 혼자 사는 삶에서 동물을 들이기는 힘드니까요.


나 하나 챙기기 버겁잖아요. 웹툰  『혼자를 기르는 법』 을 좋아하는데,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혼자 살면서 자기 삶을 챙기는 걸 버거워하는 게 저만 그런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고요.


자기 자신이 너무 게으르거나 잘 못 기를 것 같다는 죄책감 때문이겠죠? 저도 같은 이유로 동물을 못 기르겠어요. 집에 있는 시간이 거의 없고, 잘 돌볼 자신이 없고요.


혼자 있는 게 신경 쓰이죠. 그리고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 같은 프로그램을 보면서 교육을 받아서 반려동물에 대한 문화가 성숙해진 것 같아요. 한 번 더 생각하고 반려를 결정해야겠다는 마음이 생기고, 그래서 더 조심스러워지는 게 저는 오히려 긍정적이에요. 


 

그런데도 왜 사람들은 기르는 걸 좋아하는 걸까요?


저도 정답을 내린 건 하나도 없어요. 그저 외로워서겠구나 짐작하고 있어요. 그리고 돌보는 즐거움이 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사람 간의 관계가 아니더라도, 신경을 쓰면 피드백이 오고 반응이 있는 즐거움이 있더라고요. 그 즐거움을 느끼면 제 외로움이 사라지는 것 같아요.


뭔가 먹고 커지는 것도 즐거워요. 새잎이 나는 걸 보면 즐겁잖아요.


뭔가 생기고 뭔가 자라는 게, 변하는 게 너무 신기해요. 사실 제가 돌보지 않는 것들은 변해도 잘 모르고 쑥 자라더라도 그저 무심하게 지나치잖아요. 하지만 신경 써서 돌본 식물은 조금만 달라져도 신기하고 좋고 놀라워요.


푸른 색을 보는 안정감도 있어요. 멍하니 앉아서 식물을 보는 거죠.


약간 아직 사람들 몸에 그런 게 있는 게 아닐까요. 자연으로 가는 길 같은 거요. 또 약간 사이비로 가는데(웃음), 본능적으로 푸른색과 자연으로 회귀하는 느낌이랄까요?


‘러브’는 잘 자라고 있나요?


잘 자라고 있는데, 겨울에 잎이 한 번 다 떨어졌어요. 겨울 동파 영향이 있는 것 같아요. 잘하면 꽃도 피웠을 텐데 거기까지는 못 가더라고요. 지금도 아직 반성 중이에요. 안 죽어서 다행이지만, 사람이 원래 그러다보니 어떻게 하겠어요. 내년에는 더 나아지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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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위안


식물에서 인간을 투영할 때가 많았어요. 사람들이 거주할 곳을 찾지 못해서 옮겨다녀야 하는 상황을 분갈이하면서 떠올리거나요. 인간이 떠나야 하는 기준을 ‘마음’이라고 하셨는데, 어떤 마음일까요?


내가 어딘가 소속되어 있는데 잘 안 맞는 곳에 오래 있으면 자꾸 뒤틀리고, 뭔가 이 안에서 안온하지 않고 자꾸 삐져나가고 갑갑하고 자신이 아닌 것 같다는 기분이 들잖아요. 그런 마음인 것 같아요.

 

막상 옮기면 또 이곳이 아닌가 싶은 마음도 들고요.


또 직장 이야기만은 아닌 것 같아요. 사람을 만날 때도 그럴 수 있고, 어느 종류든 소속되어 있는 무리라면 다 연결할 만한 이야기예요. 처음에도 그저 분갈이 이야기를 쓰고 있었는데 갑자기 제 인생 이야기를 쓰게 되더라고요. 특히 그 에피소드에서 제 인생 이야기가 많이 들어간 것 같아요.


불안함도 에세이를 쓰면서 녹아들어갔어요. 작가라는 삶이 고정적인 돈벌이를 갖기 쉽지 않잖아요. 요새는 어떠세요?


환경이나 마음이 아주 많이 달라진 건 없어요. 그저 이 에세이를 끝내면서 조금 변한 건 있어요. 끝을 맺으면서 뭔가 나의 한 시기가 끝났다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속해 있지 않은 삶에서는 불안감을 보듬으면서 살아야 하잖아요.


해결책은 못 찾은 것 같고, 20대 중반의 조바심은 많이 줄어들었어요. 판매량을 떠나서 제가 만족할 만한 책을 계속 내 왔고, 많진 않지만 청탁이 이어지고 있고, 매일 힘든 날도 있지만 옛날에 생각했던 미래의 상보다는 잘됐고 즐겁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작가들이 일부러 일상의 루틴을 만들기도 하잖아요. 거기서 힘을 얻는 것 같아요. 종일 집에 있으면 조바심이 커질 텐데 일부러라도 스케줄을 짜서 내가 매일 같은 루틴을 살아가다 보면 안정감이 생겨요.


확실히 20대의 불안함과 40대의 불안함은 다르죠.


그래서 40대를 동경하고 있어요. 생각보다 나이를 빨리 먹는다는 걸 알아서 이제는 빨리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없고, 그저 40대의 삶이 기다려져요.


겨울은 끝났지만 폭염이 왔죠. (웃음) 계속 쉬워질 것 같진 않아요. 이 힘듦을 어떻게 헤쳐나갈까 하는 고민은 그대로 남아 있어요.


맞아요. 그런데 예전보다 겨울을 덜 두려워하게 된 것 같긴 해요. 겨울이라고 해서 꼭 얼어 죽는 게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된 거죠. 이건 지나가는 거고, 내 안에 이걸 견뎌내고 다음으로 넘어갈 힘이 있다는 걸 식물 에세이를 쓰면서 알게 됐어요.


사람들은 모두 생존에 강한 편이 아니에요. 혼자 상처받고요. 오히려 쉽게 죽지 않는 식물일수록 사람들이 돌보지 않는다는 말도 해주셨는데요.


처음에는 제 고독을 쓰다가 점점 뒤로 갈수록 관계에 관한 이야기가 되더라고요. 집중하다 보니 사람 간 마음에 대해 생각하고, 그래서 식물과 마음이 연결됐던 것 같아요.


꽃을 사와서 화관을 만들고 퀴어문화축제에 간 이야기도 나와요.


1부가 기르기 이야기고 2부가 식물에 관한 이야기잖아요. 여름에 가장 인상깊었던 일이 퀴어문화축제에 갔던 날이었어요. 식물을 꽃시장에서 엄청나게 사와서 밤새 화관을 만들었던 경험이 너무 좋아서 쓸 수밖에 없었어요.


이 책을 어떤 분이 읽어줬으면 좋겠나요?


일단 식물을 좋아하는 사람? 그리고 외로운 사람들이 읽었으면 좋겠어요. 사람들은 외로울수록 사람 만나기가 싫어지는 것 같아요. 외로울수록 더 조용해지길 원하고, 그런 생활에서 식물이 주는 위안이 있어요.


 

 

식물을 기르기엔 난 너무 게을러이종산 저 | 아토포스
혼자 있으면 기어이 외로움을 느끼고야 마는 자신을, 그래서 동물이든 식물이든 다른 생명을 자꾸만 곁에 두고자 하는 마음을 털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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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정의정

uijungchung@yes24.com

식물을 기르기엔 난 너무 게을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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