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의 갈망이 대단한 소설
『문맹』 , 『터치』
모국어인 헝가리어를 잃고 새 언어를 배워야 하는 상황을 ‘문맹’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죠. (2018. 08. 06)
문맹
아고타 크리스토프 저/백수린 역 | 한겨레출판
이 책은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 의 저자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책입니다. 이 책에는 자전적 이야기라는 부제가 붙어 있습니다. 그 말 그대로 저자의 어린시절부터 한국에서는 한 권으로 묶여 나왔던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 3부작 중에 첫 번째라고 말할 수 있는 비밀노트를 쓰기 전까지인 20대 중반까지의 삶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 책을 읽다보면 1935년 헝가리에서 태어난 아고타 크리스토프가 어린시절부터 이야기 하기, 글쓰기의 대한 갈망이 얼마나 대단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자체가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 의 문체와도 닮아 있어 흥미롭습니다. 단문에도 힘이 가득 담긴 그런 문체 말이죠. 이 책 『문맹』 은 책을 번역한 백수린 씨가 뒤에서 적었듯이 저 역시도 아고타 크리스토프가 헝가리에서 오스트리아로 몰래 국경을 넘었을 때의 이야기가 굉장히 인상 깊었습니다. 이것이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 에 흥미롭게 묘사된 장면의 밑그림이라는 생각까지 들었는데요. 그때 아고타 크리스토프는 스무살이었고 태어난지 네 달 밖에 되지않은 아이와 함께 국경을 넘었다고 하는데요. 그때 가방 두 개를 들고 있었다는 것이죠. 그 중 하나는 아기용품이, 다른 하나에는 사전들이 들어 있었다고 합니다. 이것만 봐도 당시 그녀의 상황이 어땠는지를 보여주는 에피소드가 아닐까 싶습니다. 이 책의 제목이 『문맹』 으로 잡혀 있는 것은 모국어인 헝가리어를 잃고 새 언어를 배워야 하는 상황을 '문맹'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죠. 실제로 이 책의 마지막은 이렇게 끝납니다. "프랑스어로 쓰는 것 그것은 나에게 강제된 일이다. 이것은 하나의 도전이다. 한 문맹의 도전."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 을 인상 깊게 보신 분들이라면 좋아할 그런 책이 아닐까 싶습니다.
터치
데이비드 J. 린든 저/김한영 역 | 교보문고
이 책의 저자 데이비드 린든은 뇌세포와 기억에 관한 연구의 세계적 권위자라고 합니다. 저자가 쓴 이 책은 우리가 감정이나 성격이나 동작을 표현할 때, 촉각과 관련 지어서 표현하는 것이 유독많다는 것을 지적하면서 시작합니다. 이런 표현들은 영어, 중국어를 비롯한 다양한 언어에서 찾아볼 수 있다고 합니다. 최소한 몇 년 동안은 다른 사람의 손길이 필요한 것이 아동기의 인간이죠. 그런 인간이 발달하는 과정에서 접촉은 빛이나 소리보다도 중요하다는 것인데요. 사랑이 담긴 손길을 충분히 받지 못하면 그 후에 삶에서 그 여파는 실로 엄청나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통증을 느끼지 못하는 이들은 10대를 넘기지 못하고 사망을 한다고 하는데요. 이유는 통증을 못느끼기 때문에 끊임없이 자신에게 상처를 입힌다는 것이죠. 수백만 년의 진화를 통해서 형성된 인간의 촉각은 놀라울 정도로 섬세하다고 하죠. 한 예로 우리 피부에는 두 가지 기능을 하는 수용기가 있어서 민트를 먹으면 시원하게, 칠리 페퍼를 먹으면 뜨겁고 맵게 느낀다고 합니다. 또 부드러운 애무를 좋아하는 것은 피부에 전용신경 섬유가 있기 때문이라고 하죠. 뇌에는 정서적인 촉각을 담당하는 기관이 있는데 그것이 없으면 오르가즘은 재채기처럼 경련만 느끼게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런 정서적 촉각을 담당하는 뇌의 중추들은 감각, 기대감을 충돌하는 신경의 교차로 같아서 사는 동안의 이력, 문화, 맥락으로 부터 커다란 영향을 받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물리적으로는 유사한 촉각이라 하더라도 상황에 따라서 긍정적 혹은 부정적 감정이 되기도 하죠. 다시 말해 촉각은 단순하지 않고 총체적으로 뒤섞인 복잡한 감각이라는 것입니다. 이 책은 촉각과 관련한 다양하고 흥미로운 질문을 던지고 그것에 관한 답변을 끌어내기도 하는데요. 그 과정에서 촉각 분야의 연구자인 프랜시스 맥그론의 흥미로운 질문이 다뤄지기도 합니다. 그 질문은 바로 "왜 만성 통증은 존재하는데 만성 쾌락은 존재하지 않을까"와 같은 질문이라고 하죠. 그 외에도 다양한 이야기가 담겨 있는 흥미로운 책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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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어찌 하다보니 ‘신문사 기자’ 생활을 십 수년간 했고, 또 어찌어찌 하다보니 ‘영화평론가’로 불리게 됐다. 영화를 너무나 좋아했지만 한 번도 꿈꾸진 않았던 ‘영화 전문가’가 됐고, 글쓰기에 대한 절망의 끝에서 ‘글쟁이’가 됐다. 꿈이 없었다기보다는 꿈을 지탱할 만한 의지가 없었다. 그리고 이제, 삶에서 꿈이 그렇게 중요한가라고 되물으며 변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