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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든 말든 떡은 제때

우는 애한테 떡 준다는 속담은 없애야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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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째서 늘 예의 바른 사람이 피해를 입어야 하지?” “야야, 또 건너뛴다. 지금 그건 다른 얘기지?” (2018. 08.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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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한 대학에서 작업 이야기를 하다가 오랜 시간을 들이지 않는 방식의 효용을 실례와 함께 언급했다. 질문이 나왔다.

 

“지금처럼 짧은 시간 안에 작업을 마칠 수 있게 되기까지 오랜 수련 기간을 거치셨겠지요?”


질문에 답하면서 나는 그 말이 사실이기 때문에 화가 난다고 고백해야 했다.

 

취미 삼아 하는 일이 아니라면 보통의 디자이너는 여러 프로젝트를 동시에 진행한다. 나는 굉장히 고된 직장생활을 겪었는데(이에 관한 얘기는 여기 저기에 꽤 자주 흘렸으니 생략) 그때 단련된 덕분에 웬만한 일에는 크게 부담을 느끼지 않는다. ‘지옥 훈련’이 일을 제대로 익히는 유일한 방법은 아니라고 믿고 싶지만 ‘인고의 시간’ 없이 작업의 질을 올리는 길이 무엇인지 모른다. 괄목할 성과를 낸 운동선수나 예술가들 모두 영광의 날이 오기까지 얼마나 고된 훈련을 거쳤는지 한 목소리로 말하지 않던가. 사람들은 뒤틀린 발레리나의 발에 눈물을 흘리고 지문이 사라진 장인의 손가락을 응원한다. 물론 나도 그들의 노력이 마땅한 결실을 맺었으면 좋겠다. 그렇지만 커리어를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오직 일에만 집중하라고 조언해도 될까?

 

회사에서 팀장으로 일하던 때, 팀원에게 밤샘 작업을 강요해야 하는 일이 자주 생겼다. 고민하던 내게 한 선배가 말했다.

 

“야, 왜 사람들이 다 야근을 싫어할 거라고 생각해?”


“예?”


“니가 싫다고 해서 다른 사람도 싫어할까? 난 야근 좋아해. 밤에 얼마나 집중이 잘 되는데. 다음날 아침, 싹 달라진 작업물을 보면 쾌감이 막 솟아. 또 밤 새고 싶어서 아침부터 근질거려. 그런 기분 아냐?”

 

충격이었다. 작업이 좋은 디자이너들은 모두 자신의 일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것처럼 보였다. 말로는 ‘지겨워 죽겠다’ 하면서도 그다지 싫어하지 않는 표정이었다. 기분이 개운하지 않았다. 좋은 작업을 향한 개인의 노력을 회사에서는 무한정 쓸 수 있는 무료 에너지로 이용하는 것처럼 보였고, 지향점이 다른 여러 의도가 서로 맞물려 악순환이 되풀이되는 것 같았다.

 

“학교 다닐 때 과제를 무지막지하게 내주는 선생님이 있었어요. 그 수업 전날은 실기실이 늘 만원이었죠. 너무 힘들어서 울기도 하고 다른 과목을 다 포기하고 심지어 과로로 입원한 애도 있었어요. 다들 독기가 장난 아니었어요. 그런데 그 과목 덕분에 작업이 좋아진 것 같아요. 그렇게 해야 실력이 느는구나, 깨달았죠. 그 수업만 기억에 남아요.”

 

 

64p_이기준의 두루뭉술_002.jpg

                                       언스플래쉬

 

 

어떤 디자이너가 한 말이다. 느슨한 마음으로 ‘과제’나 하던 학생들에게 ‘작업’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해야 하는지 눈을 뜨게 했고, 입원할 정도로 밀어붙였고, 다른 과목을 포기하게 했고, 학생들을 성장하게 한 그 수업엔 빛과 그림자가 공존할 터.

 

인정하기 싫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것들이 있다. 선택과 그 결과가 의도와 역전되는 일이 커피 마시고 밥 먹는 일처럼 예사롭다. 인간사회의 복잡한 면면이 빚어내는 애달픈 상황이 닿을 수 없는 곳에 무지개처럼 드리워 있다.

 

작업실에 가자 미팅을 마치고 온 노바가 햄릿이라도 된 양 고뇌에 찬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왜, 폰트를 DIN으로 바꿔 달래?”


평소 노바가 좋아하는 농담인 데도 입꼬리만 예의상 살짝 올릴 뿐이었다.

 

“작업비가 비싸다며 사색이 되더라고. 생각에 잠기더니, 작업비를 깎을 순 없다고, 그대로 하재.”


“잘된 일인데 왜?”


“어째서 늘 예의 바른 사람이 피해를 입어야 하지?”


“야야, 또 건너뛴다. 지금 그건 다른 얘기지?”

 

노바와 나는 지난 10여 년 동안 일인 스튜디오를 각자 운영해왔다. 주변에서는 문 닫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이라는 자조 섞인 응원을 하곤 하지만 우리 입장에선 매우 억울했다. 열심히 일했고 그만큼 작업이 성장했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작업비는 오르지 않았다. 오히려 전보다 덜 받는 일이 흔했다. 반면 임대료나 장비 등 스튜디오 운영비는 전보다 훨씬 늘었다.

 

“클라이언트 역시 작업비를 깎아야 하는 이유가 숱하겠지.”

 

저울이 있었으면 좋겠다. 저울의 접시에 각자의 입장을 올린 다음 기우는 방향에 따라 두 말 없이 대응해 수평을 맞출 수 있으면 얼마나 유용할까.

 

얼마전부터 노바가 작업비를 올리는 이유를 설명하는 문서를 견적서 앞에 붙여 보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기에 물었다.

 

“클라이언트 반응은 어때?”


“대부분, 사정은 이해하지만 회사 방침이 어쩌고저쩌고 하면서 결국 깎지.”


“그럼 너는? 깎아줘? 아니면 일을 내쳐?”


“적당히 넘어갈 수 있는 정도면 깎고 심하면 내치지. 그런데 바로 이 지점이 문제야. 깎아달라고 하는 사람은 깎은 작업비로 작업물을 얻고, 안 깎는 사람은 결과적으로 비용을 더 지불하잖아. 내 입장을 존중해주는 사람이 결국 손해를 보는 셈이지. 그뿐이 아니야. 마치 자기네 일만 중요하다는 듯이 계속 쪼아대는 클라이언트도 마찬가지. 방금 피드백 보냈다면서 확인할 시간도 주지 않고 무작정 언제 받을 수 있냐고 묻는가 하면 입으로만 죄송하다고 하면서 말도 안되는 일정을 밀어붙이고. 정말 죄송하게 여기는 사람들은 그런 요구를 하지 않거든.”

 

우는 애한테 떡 준다는 속담은 없애야 옳다. 울든 말든 줄 때 주고 말 때 말아야 울음으로 떡을 얻으려는 마음이 싹 트지 않을 텐데.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긴다는 속담 역시 퇴출감. 목소리 큰 사람한테는 벌금이나 부과할 일이다. 속담이 현실을 반영한다면, 반대 뜻으로 뒤집은 속담을 유포해서 현실을 바꿀 수도 있지 않을까?

 

갑자기 이사를 하게 됐다. 지금 쓰는 작업실을 소개해준 공인중개사가 마음에 들어 다시 찾았다. 이번에도 원하는 조건을 잘 헤아려 여러 집을 소개했지만 한두 가지 치명적인 약점이 있어 선뜻 정하지 못했다. 그러다 그냥 한번 들러본 공인중개사사무소에서 꽤 괜찮은 집을 소개했다.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되놈이 번다더니, 내가 그 상황을 연출하게 될 줄 몰랐다. 처신하기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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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이기준(그래픽 디자이너)

에세이 『저, 죄송한데요』를 썼다. 북 디자이너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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