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연재종료 > 이병률, 어떻게 혼자일 수 있겠니
바람이 통하는 상태에 나를 놓아두라
자신을 지키는 삶
내 삶이 한 가지 단어로 규정되지 않기를 바란다. 내가 따르는 삶 또한 나에게 한 가지 색깔을 강요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2018. 08. 01)
이기주 작가의 신작 『한때 소중했던 것들』 을 편집하면서 잠시 책상의 모든 진행을 멈추었다. 원고 속에 등장하는 영화 <파이란>에 대한 작가의 이야기를 읽다가 오래전 기억이 되살아나서였다. 아주 오래전 최민식 배우를 만나 술 한잔을 기울일 일이 있었다. 그 당시 최민식 배우는 <파이란>의 촬영을 끝내고 개봉을 기다리는 중이었는데 극 속에서 몇 달을 살았던 배역으로부터 도무지 헤어나오질 못한다며 연거푸 술잔을 비우고 있었다.
“많은 역할을 해봤지만 정말이지 너무 너무 아프네요.”
그전에도 (물론 그후로도) 그는 수많은 배역 속에서 거의 모든 역할을 열심히 살았고 또 지켜왔을 것이지만 동시에 아, 어쩌면 배우는 이런 삶을 사는 인간적인 위치의 사람일 수 있겠구나 싶어 마음이 성큼 가까워졌던 기억. 그의 그런 입장을 헤아리는 동안. 그리고 내 머리가 축축하게 무거워지는 사이. 그가 눈물을 흘렸다. 그것도 몸을 구부려 꽤 많은 양의 눈물을 쏟았다. 배우에게서 한 사람의 꺼풀이 벗겨진 상태를 목격할 때 우리는 그에게 빠지지 않을 수 없다.
눈물을 흘리지 않는 삶에 나는 반대한다. 우리가 눈물을 흘리면서 살아갈 수만 있다면, 그것이 눈물을 흘리지 않으려고 애쓰면서 사는 삶 보다 훨씬 더 쉽다는 것도 알게 된다. 영화 촬영이 끝나고도 훌훌 털어낼 수 없는 상황에 놓인 그에게, 그래서 일상으로 돌아오기조차 힘겨운 스스로를 어떻게든 껴안고 살고 있다는 사실에 경의가 일었다. 그래, 굳이 헤치고 나올 필요 없는 고통도 있다. 그는 정작 모르고 있었겠지만 그 모습은 단단히, 자신의 삶을 지켜내는 자체가 아니고 무엇일까.
그녀를 안 지 얼마나 됐을 때였을까. L은 독자로 만난 사이였다.
“이병률이 글을 쓰는 것은 뭐 때문일까요?”
나는 얼른 대답할 거리를 찾지 못했다.
“글을 쓰는데 그래도 사람들이 그 글을 읽어주는 건요?”
역시 더 어려운 대답이었다. 다시 L이 말했다.
“그건 자기를 지키고 있어서예요. 자기를 어디로든 보내지 않고 묵묵히, 굳건히 자기를 지키고 있어서예요. 그걸 신이 저 위에서 내려다보고 있는 거구요.”
그래서 내가 물었다.
“자기를 지키는 일은 어려운 일인가요?”
쉬운 물음 같기도 했으며 물음 같지도 같았지만 나는 어쨌든 물었다. 어쩌면 내가 쓰는 글을 절대 좋아하지 않기에 나는 물었는지도.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일 아닌가요. 어떤 것에 의해 우리는 자신을 잃어요. 하늘이 정해준 적당한 범위가 있는데 그걸 자꾸 벗어나려고 하고…… 우린 어쩌면 자신을 망치는 일이 더 쉬울지도 몰라요.”
내가 숙연해진 것은 그 말이 당연한 말이어서가 아니라. CT 촬영을 해서라도 내가 정영 그렇게 살고 있는지를 알고 싶어서였다.
하지만 알고 있다. 나를 지키는 삶을 살 수 있을 때 내 머리 위에 늘 나를 지켜주는 새 한 마리가 앉아 있을 거라는 걸. 하지만 아직, 내 머리 위에 새는 없다.
내가 식물을 기르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식물을 좋아해서겠지만 더 큰 이유가 있다면 그것이 어려워서다. (좋아하는데 어렵다는 말, 어려운데도 좋아한다는 말은 우리를 바짝 정신 들게 한다.)
어떻게 혼자일 수 있겠는가. 어떻게 혼자 산다는 이유로 아무것도 돌보지 않을 수 있겠는가. 식물은 나에게 아무런 말도 건네지 않겠지만 식물에게 내가 말을 걸면 되니까. 내가 말을 걸지 않으면 그들은 한번 태어난 세상에서 영원히 죽는다는 걸 알고 있기에. 위험을 마다하지 않는 내 세계에 식물을 들여놓듯 나에게 늘 적당한 위험 요소를 선물하면서 ‘나’를 살고 싶다.
세상 모든 생명은 죽을 때까지 최선을 다해 목숨을 부지할 것이다. 그러면서 죽을 때 어떤 식으로든 소리를 남길 것이다. 그것이 찍 소리이든, 장기 밖으로 뿜어내는 뿡 하는 소리일지라도. 내가 들을 수만 있다면 세상과의 이별 앞에서 내 몸에서 새어나오는 그 소리가 어떤 소리일지 듣고만 싶다. 허튼소리이거나 누군가로 향한 맺힌 소리이거나, 내가 갖지 못한 것들을 뒤돌아보며 애처로이 앓는 소리나 내지는 않겠지.
언젠가부터 나는 내 호를 ‘부채’로 정했다. 아무도 나를 그렇게 불러줄 이는 없겠으나 나에게 끊임없이 부채질하면서 살고 싶은 이유. 대단하거나 장한 일을 벌이지는 않을지라도 그것이 소소한 동력일 것이므로. 그리고 나에게 어떻게 살아야하는지를 묻거나,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하는 이가 나타나 손을 내민다면 불씨 하나 건네며 부채질을 해주면서 살기로 정했음이다. 내가 나에게 부채질을 하지 않고 어떻게 혼자일 수 있겠는가. 내가 남에게 그것조차 하지 않고 살기로 한다면 나 사는 자리에 어떻게 빛이 비치겠나.
이쯤에서 ‘자신을 지키는 삶’을 사는 데 필요한 오만 가지도 넘는 질료 가운데 몇 가지를 예로 들어보기로 :
1. 어떤 식으로의 안간힘
2. 쉬운 길이 아닌 어려운 행로를 택하기
3. 자신을 허위로 포장하지 않는 것
4. 남들이 만들어놓은 상황에 휘둘리거나 함몰되지 않기
5. 눈치 보지 않되 눈치 있기
6. 희미하게 시작된 삶을 분명하게 하기
7. 상처에 잠식당하지 말고 배지로 만들어 당당히 모자에 달기 ……
더 열거하지 않아도 이쯤에서 결론은 난다. 그것은 무척이나, 꽤 어렵다는 것.
(아…… 이 글을 쓰는 기간 중에 만난 친구는 나더러 당장 정자은행에 가보란다. 건강하고 젊을 때 얼른 그것을 보관해두란다. 아, 이것은 무슨 생식과 생성의 관점에서 스스로를 보존하라는 지시인가. 네이버에 물으니 채취비용이 20만원이란다. 보관료는 따로. 그런데 왜 액체를……)
나는 행복을 바라지 않는다. 그 말은, 참, 사람을 그 말의 노예로 만든다. 대신 내 안에서 핵분열하는 행복의 세포만 믿기로 한다. 그러니 굳이 행복을 위해 애써 하게 되는 일련의 피로한 행위들도 다 그만두자고 주문을 건다.
그러니 나는 내 삶이 한 가지 단어로 규정되지 않기를 바란다. 내가 따르는 삶 또한 나에게 한 가지 색깔을 강요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그래서 바람이 통하는 상태에 나를 놓아두려 한다. 당신도 그러하길 바란다.
1967년 충북 제천에서 태어났다.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를 졸업하고, 1995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시 「좋은 사람들」,「그날엔」이 당선되어 등단했다. 저서로는 시집 『당신은 어딘가로 가려 한다』, 『바람의 사생활』,『찬란』 등과 여행산문집 『끌림』(2005) 등이 있으며 현재 '시힘' 동인으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