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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은 닫혔지만 새벽이 열렸다

아이가 있어서 무언가를 포기했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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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잠든 새벽을 쌓아 어딘가로 조금씩 나아가는 기분이 상쾌하다. (2018. 07.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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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밥을 시작한 지 1년 정도 되었다. 아이가 돌을 지날 무렵부터 점심을 혼자 먹었다. 여의도의 점심엔 온갖 빌딩에서 사람들이 우르르 쏟아져서 식당이란 식당마다 좌르르 늘어선다. 나는 그 대열에 끼지 않고 일하던 그대로 앉아 책을 본다. 날이 좋으면 공원으로 간다. 사람들이 카페로 다 넘어갔을 즈음 식당에 간다. 자리도 많고 일하시는 분들도 여유가 있다. 국물은 넉넉하고 반찬 인심도 후하다. 붐비는 시간에 2인이나 4인 테이블을 혼자 차지해서 눈총 받을 필요 없다. 불과 40-50분이지만 내 시간을 가지고, 밥도 쫓기듯 먹지 않으니 좋다.

 

퇴근하고 집에 오면 아무리 빨라도 저녁 7시다. 씻고, 밥 먹고, 설거지 하고, 빨래 널거나 쓰레기라도 좀 내놓으면 금방 9시다. 아이와 블록놀이 하고 책 읽어주면 잘 시간이다. 이를 닦아주고 기저귀를 간 뒤 토끼 이불을 깔아준다. 불 끄고 나란히 누워 도란도란 얘기 나누고 아이가 아내와 내 사이를 몇 차례 뒹굴면 잠이 내린다. 나는 늘 아이를 재우고 난 후에 읽을 책을 정해놓지만 실행된 적은 거의 없다. 아이가 잠들기 전에 내가 먼저 곯아떨어진다.

 

아이가 9시 전에 잠들던 돌 무렵까지, 밤은 아내와 나란히 누워 대화하는 시간이었다. 서로의 눈에 비친 서로에 대해 오래도록 이야기했다. 아이가 고구마 미음을 얼마나 좋아했는지, 똥은 몇 번을 싸고 색깔은 어땠는지 그리고 세상의 떠들썩한 화제에 대해 우리는 어떤 판단을 내려야 할 지 이야기했다.

 

각자 책 속으로 빠지기도 했다. 한 사람의 하품이 잦아질 때까지 책을 읽다 불을 껐다. 며칠 뒤엔 머리맡의 책을 서로 바꿔서 읽었다. 어느 날은 한참 남은 여행 계획을 세우기도 했다. 맛집이나 예쁜 까페를 찾거나 바다 건너 말 안 통하는 도시의 길을 익혔다. 그 도시에 내려앉은 밤과 밤이 걷힌 새벽의 이미지는 때로 꿈이 되었다. 내가 원하는 삶이 매일 밤 나를 찾아왔다. 우리의 밤이 우리를 회복시키고 길러냈다. 하지만 이제, 밤을 차지한 것은 다른 종류의 행복이다.

 

혼밥을 시작한 건 이런 연유에서다. 세 식구가 나란히 누워 속삭이는 친밀감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특별하지만, 먼저 자리잡고 있던 행복과 공존하기엔 시간이 부족했다. 일상을 조정해 밤을 대신할 시간을 만들어야 했다. 회사에선 혼밥을 시작했고, 아내와는 서로 개인시간을 만들어 주었다. 한 사람이 아이를 재우면 한 사람이 카페로 나갔다. 주말에도 조금씩 각자의 시간을 가졌다. 책을 읽거나 세상의 이슈에 대해 생각하거나 우리의 일상을 일기로 남긴다. 밀린 이야기를 하고 싶을 때면 부모님께 도움을 청해 둘만의 시간을 갖기도 한다. 우리는 긴밀히 협력하며 일상을 조정해갔다.

 

덕분에 아이가 있어서 무언가를 포기했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우리의 만족도는 높고, 아이와의 애착도 잘 형성된 것 같다. 아이와 있는 시간 그리고 우리 각자의 시간을 밀도 높게 보내다 보니 집안일에 구멍이 좀 나기는 한다. 한 번씩 몰아서 메울 정도의 구멍이니 별 문제는 아니다.

 

먼 미래를 위해 오늘의 근면을 실천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아이를 기르는 동안에도 나 자신을 보듬고 기르는 일에 소홀하고 싶진 않다. 짧은 시간들이라도 최대한 이어 붙여 바지런하게 활용하고 싶다.

 

현역 시내버스 기사인 허혁은 『나는 그냥 버스기사입니다』 를 하루 18시간 운전하며 썼다. 시간이 없어 “부리나케 써놓고 생활 속에서 퇴고했”다 한다. 일상의 노동에 대한 관찰이 세심하고, 타인을 배려하는 자세가 단단하며, 유머 섞인 글맛이 좋았다. ‘부리나케’ 보내는 시간을 쌓아서 나도 앞으로 나아가고 싶다.

 

다행히 요즘은 새벽에 깨는 루틴이 정착되었다. 6시쯤 집을 나서 회사 앞 카페에 자리를 잡는다. 출근 지문을 찍기까지 2시간 가까이 책을 읽을 수 있다. 아이가 잠든 새벽을 쌓아 어딘가로 조금씩 나아가는 기분이 상쾌하다. 아빠는 너로 인해 자랐지만 스스로의 힘으로도 자랐다고 언젠가 말해줄 수 있길 소망한다. 밤은 닫혔지만, 새벽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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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김성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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