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연재종료 > 김교석의 산다는 게 다 그런 거지
집에 먼지떨이가 있어야 하는 이유
행위 자체가 의미를 갖는다
나는 최소한 일주일에 한 번씩 총채를 활용해 먼지 청소를 한다. 스탠드 갓, 거울, 책장, 접시 수납장은 물론이고, 책장과 찬넬 선반에 올려둔 플레이모빌과 레고에 쌓인 생활 먼지를 털어내는데 유용하게 쓰고 있다. (2018. 06.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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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채로 청소를 한다는 말의 행간에는 세 가지 의미가 담겨 있다. 첫째, 먼지가 쌓일 틈 없이 자주 청소를 한다는 거고 둘째, 나만 편하면 된다는 이기적인 태도 대신 탄소배출을 최소화하는 환경 보호를 실천한다는 점 셋째, 집 안 물건들에 애정이 있다는 뜻이다.
먼저, 먼지떨이는 기본적으로 먼지가 많이 쌓인 환경에서는 비합리적인 청소 도구이자 방식이다. 타조털이나 양모나, 극세사나 나일론이나 모두 정전기 방식을 사용한다고 마케팅을 하지만 품을 수 있는 먼지의 양은 솔직히 한정적이다. 주된 역할은 물건에서 먼지를 탈락시키는 것인데, 그 많은 먼지를 바닥이나 공기 중으로 날린다는 건 결국 일을 한 번 더 해야 한다는 뜻이다. 불합리한 청소 방식, 점차 도태되고 있는 청소 도구처럼 느껴질 수 있다. 그런데 만약, 먼지가 쌓일 틈 없이 자주 털어낸다면?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진다. 짧은 시간 큰 힘을 들이지 않고 청소를 할 수 있고, 물건의 표면 보호, 구석구석 낀 먼지를 털어내는 데 있어 여전히 매우 유용한 청소 도구다.
청소는 환경을 깨끗하게 만드는 거다. 그런데 필요 이상의 에너지를 써가며 내 눈앞만 깨끗이 하겠다는 발상은 잠시 생각해볼 여지가 있다. 최근 1인 가구의 증가와 함께 청소 인구가 늘어나면서 청소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부쩍 늘었다. 연예인의 일상을 전시하는 관찰형 예능도 이런 풍조에 분명 한몫을 했다. 그러자 눈치 빠른 비즈니스맨들은 예전 주부들에겐 그저 집안일이거나 가장 일상적인 살림 행위를 쇼핑의 영역으로 바꿨다. 청소 도구는 이제 필수 혼수가 된 시대다. 인터넷에는 온갖 바이럴 광고가 넘쳐나고 맘카페 게시판을 보다보면 로봇청소기, 다이슨, 물걸레청소기 3종 세트는 무조건 있어야 할 것만 같다. 마치 슈팅게임을 할 때 총을 고르듯이 도구를 고르게 되고, 익숙해지면 업그레이드를 하고 싶게 부추긴다.
문제는 편리함 너머에 도사린 불편한 진실이다. 내 몸을 움직여 간단히 쓸고 닦아도 될 일에도 필요 이상의 에너지를 사용하길 권장하고 습관을 유도한다. 나뭇가지 하나 다듬고자 하는데 미네소타 럼버잭의 전기톱을 권하는 그런 형국이다. 그런데 총채는 탄소 배출이 아예 없고, 빗질처럼 힘이 들지 않으면서, 효율적이다. 완벽한 아날로그이자 올드스쿨이다보니 요즘 유행하는 취향인 슬로우 라이프에 걸맞다.
문명의 이기가 발전하면서 관련 마케팅은 청소라는 행위가 갖는 지위와 가치를 애써 외면하는 식으로 전개되고 있다. 그러나 청소의 가치는 단지 ‘클린업’에만 있는 게 아니다. 우리가 살면서 집 안 곳곳에 놓인 물건들과 눈 맞춤할 기회가 얼마나 있을까? 주목적은 분명 깨끗이 하기 위함이지만 바쁜 일상 속에서 관심 갖기 어려운 집 안 구석구석과의 눈 맞춤이란 중요한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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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히 쓸고 닦는 게 아니라 자신의 일상을 둘러보고 정비하고 누리는 시간이다. 그런 점에서 알아서 청소를 해놓는 콘셉트의 로봇 청소기 예찬론자들과는 여전히 좁혀질 수 없는 가치관의 차이가 존재한다.
이와 같은 이유로 나는 최소한 일주일에 한 번씩 총채를 활용해 먼지 청소를 한다. 스탠드 갓, 거울, 책장, 접시 수납장은 물론이고, 책장과 찬넬 선반에 올려둔 플레이모빌과 레고에 쌓인 생활 먼지를 털어내는데 유용하게 쓰고 있다. 일주일에 한번 이상 꾸준히 먼지를 털어주면 집 안에서 눌러 붙거나 손가락에 먼지가 묻어나는 불쾌한 상황을 맞이할 일이 없다. 시간이 많이 들거나 땀이 흐를 만한 일도 아니다. 마음 같아서는 매일매일 대청소를 하고 싶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을 때, 그러니까 청소를 너무 하고 싶은데 시간상 이웃에 방해되지 않는 선에서 해야 할 때, 먼지 청소를 적극 추천한다. 바닥 청소와 하나의 묶음으로 프로그램을 짜면 청소를 시작하기 부담스러울 수도 있는데, 이렇게 분리해놓으면 보다 가벼운 마음으로 언제든 청소를 했다는 성취감을 누릴 수 있다.
먼지떨이, 즉 총채는 소재부터 제조사까지 매우 다양하다. 가격, 내구성, 퍼포먼스를 모두 고려해봐야겠지만 가능한 한번 살 때 저렴한 중국산 혹은 국산 제품보다는 인정받은 독일 레데커나 스웨덴의 스마트 사의 제품을 사길 권한다. 그 이유는 풍성함이나 깃털 자체의 질이 차이도 나고, 무엇보다 타조털이나 염소털 총채의 경우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사용 횟수에 따라 다르겠지만 레데커의 경우 2년에서 3년 정도) 털이 숭텅숭텅 빠지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청소를 하는 게 더 청소거리를 만드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극세사나 나일론처럼 인공합성 물질로 만든 알록달록한 총채는 이런 문제에서 보다 자유롭긴 하지만 신당을 하거나 디스코 문화에 대한 별다른 추억이 없다면 쓰지 않는 편이 어떨까 하는 의견을 조심스레 전한다.
만약 총채를 갖추기로 마음먹었다면 핸들 사이즈가 기본 30센티미터 이상 되는 기본형 하나와 플레이모빌 정도의 작은 소품들을 구석구석 청소하기에 적당한 10센티미터 내외의 작은 사이즈 총채를 하나 더 함께 갖추길 권한다. 레데커의 제품 중에 ‘스킨 릴렉서’를 추천하는데, 피부 마사지나 신생아의 피부 자극용으로 개발된 모델로 타조털 중 가장 부드러운 가슴털로 만들어 가볍고 부들부들하다. 참고로 극세사 총채보다 타조털 핸드메이드 총채의 퍼포먼스가 결코 뛰어나진 않다. 다만 고풍스런 맛에 쓴다. 앞서 말했듯 청소는 단순히 해야 할 집안일이 아니라 그 행위 자체가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결국 일상 공간을 가꿔나기기 위함이니 청소하는 순간과 도구의 품격도 당연히 중요하다.
푸른숲 출판사의 벤치워머. 어쩌다가 『아무튼, 계속』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