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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은 늑대인간

20대 중반까지 청소년이라고 묶어 생각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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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기의 시작을 사춘기라고 했지요? 그럼 끝은 어딘가요? 그건 교육을 마치고, 직업을 갖고, 혼자 살아갈 능력을 갖추고, 배우자를 만나 부모가 되는 것으로 봅니다. 이렇게 본다면 청소년기는 옛날보다 빨리 시작될뿐더러 더 늦게까지 지속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2018. 06.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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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스플래쉬

 

 

청소년은 누구인가요? 구체적으로 몇 살부터 몇 살까지인가요? 우리는 어린이, 청소년, 성인, 노인 같은 말을 일상적으로 씁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하나같이 애매한 말이에요. 어린이는 몇 살까지인가요? 언제부터 성인인가요? 옛날에는 60살이 되면 오래 살았다고 잔치를 했지만, 이제는 70세가 되어도 ‘노인’이란 말을 듣기 싫어합니다. 이렇듯 우리가 삶의 단계를 구분하기 위해 쓰는 말은 시대에 따라, 지역에 따라, 환경에 따라 달라집니다.

 

‘청소년’이란 말도 마찬가지입니다. ‘세계 모든 사람이 가능한 최고의 건강수준에 도달하는 것’을 목표로 설립된 세계보건기구(World Health Organization, WHO)에서는 청소년을 10-19세로 정의합니다. UN에서는 15-24세라고 정의하지요. 이런 정의는 한 나라 안에서도 다를 수 있습니다. 멀리 볼 필요도 없어요. 우리나라의 「청소년기본법」에서는 청소년을 9세에서 24세까지로 정의합니다. 하지만, 청소년보호법, 민법, 소년법상 청소년은 19세 미만인 사람을 가리킵니다. 아동복지법은 18세 미만, 근로기준법에서는 15-18세 미만, 형법에서는 14세 미만입니다. 혼란스럽지요?

 

청소년의 정의가 이렇게 다양한 것은 목표로 삼는 바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세계보건기구는 건강을 목표로 하다 보니 생물학적인 요소, 즉 몸을 중시했습니다. ‘사춘기’에 초점을 맞춘 거지요. UN에서는 정책에 필요한 통계를 내기 위해 사회적인 요소를 중시했습니다. 의무교육이 끝나는 시점부터 직업을 얻어 독립하는 시점까지를 청소년으로 본 거죠. ‘부모에게 반쯤 의존하는 입장’에 있는 사람들은 비교적 비슷한 경향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 겁니다. 그렇다면 청소년의학에서는 어떻게 정의할까요? 보통 만 나이로 9세부터 24세까지를 청소년으로 봅니다. 「청소년기본법」에 맞춘 게 아니라 건강이란 측면에서 그렇게 보는 것이 타당하기 때문입니다.

 

중고생들은 즉시 반발할 겁니다. ‘엥? 9살이면 초딩인데? 내가 그 올챙이들과 같다고? 그건 싫은데?’’ 이렇게 외치는 소리가 귀에 들리는 듯합니다. 하지만 한번 생각해 봅시다. 청소년기의 가장 큰 특징은 변화입니다. 여기서 변화란 두 가지입니다. 신체가 변하고, 사회 역할이 변합니다. 물론 사람은 일생 동안 변하지요. 하지만 존재하지 않던 사람이 태어나는 ‘출생’을 빼고는 청소년기만큼 많이 변하는 시기는 없습니다. 신체적으로는 말할 것도 없고, 정신적으로도 성숙해지지요. 그래서 청소년기가 끝나면 어엿한 어른으로서 자기 몫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갑자기 변하는 건 항상 아주 힘든 일입니다. 늑대인간 영화를 본 적이 있나요?(뱀파이어 영화도 괜찮아요.) 멀쩡한 사람이 보름달만 보면 늑대로 변하잖아요. 그때 그냥 뿅!하고 변하던가요? 아니지요. 고개를 숙이고, 몸을 웅크린 채 몹시 떨다가 목을 움켜 잡고, 가슴을 쥐어뜯고, 옷을 찢고 난리를 치잖아요. 청소년이 딱 그런 형편에 처한 겁니다. 솜털이 보송보송한 채 눈을 반짝이며 크리스마스 선물을 기다리던 아이가 온몸에 털이 돋아나거나 가슴이 나오고, 차를 몰고 회사로 출근하고, 술을 마시고, 월급을 받고, 자기 집을 얻어 살고, 사랑을 하고, 자식을 얻는다는 건 늑대인간으로 변하는 것만큼이나 큰 변화 아닌가요? 그 과정이 쉬울 리 없지요.

 

이렇게 신체적인 변화가 일어나는 시기가 그 유명한 사춘기입니다. 생물학적으로 사춘기란 성적(性的)으로 성숙해져 후손을 만들 준비를 하는 시기입니다. 그런데 환경이 좋아지고, 영양 상태가 향상되면서 아이들이 점점 일찍 성숙해집니다. 사춘기가 시작되는 시기가 점점 빨라지는 거죠. 여자라면 보통 9-11세, 남자는 이보다 늦어서 10-13세 정도에 사춘기가 시작됩니다. 사춘기가 시작되면 그 전과 전혀 다른 일들이 펼쳐집니다. 일단 호르몬의 급격한 변화에 따라 몸에 많은 변화가 일어납니다. 2차 성징이라고 하지요. 여자는 가슴이 나오고, 피하지방이 늘어나면서 피부가 부드러워지고, 골반이 넓어집니다. 남자는 근육이 발달하고, 목소리가 낮아지고, 털이 돋아나지요. (늑대 맞네, 맞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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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스플래쉬

 

 

더 중요한 것은 뇌의 변화입니다. 생애 초반에 급격히 자란 이후 몇 년간 비교적 느리게 성숙하던 뇌에서 대대적인 공사가 벌어집니다. 뇌세포끼리 새로운 연결이 늘어나고, 별로 쓰지 않는 경로는 과감히 가지치기에 들어갑니다. 사실상 뇌는 사춘기 내내 혁명과 전쟁에 휩싸여 있다고 생각해도 좋습니다. 감정과 정서는 모두 뇌에서 생기는 일입니다. 그러니 사춘기 청소년이 불안과 우울에 사로잡히고, 감정이 급격히 변하는 건 당연한 일이지요. 뇌가 불안정한 상태이기 때문에 정신질환이 생기기도 쉽습니다. 한편 신체적 능력이 발달하고, 정신적 영역이 넓어지고, 이전에 비해 자율성을 갖게 되면서 자신의 한계를 자꾸 시험해보고 싶어집니다. 하지만 상황을 종합적으로 판단하고, 충동을 조절하는 능력은 한참 뒤에 성숙합니다. 그래서 충동적인 성향이 늘어납니다. 사고를 당하거나, 일탈 행동을 저지르거나, 나쁜 습관이 들기 쉬운 거죠. 이 모든 일의 시작은 9-10세 정도입니다. 그러니 9세부터 청소년으로 생각하는 건 말이 되는 거지요.

 

‘음… 뭐, 좋아요, 9-10세부터 사춘기가 시작된다는 건 인정한다 칩시다. 그래도 18세, 심지어 20세가 넘은 사람을 청소년이라고 하는 건 좀 너무한 것 아닌가요? 군대도 갔다 왔는데…’ 그렇죠. 그런 생각이 드는 것도 당연합니다. 그래서 청소년과 구분해서 ‘젊은 성인’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건 ‘청소년기’를 어떻게 볼 것이냐에 달려있습니다. 누가 깃발을 들고 서 있다가 ‘자, 여기부터 청소년기고, 여기부터 성인이다’라고 말해주지는 않잖아요. 청소년기의 시작을 사춘기라고 했지요? 그럼 끝은 어딘가요? 그건 교육을 마치고, 직업을 갖고, 혼자 살아갈 능력을 갖추고, 배우자를 만나 부모가 되는 것으로 봅니다. 이렇게 본다면 청소년기는 옛날보다 빨리 시작될뿐더러 더 늦게까지 지속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초기 인류는 사춘기가 시작되면 평균 2년 후에 자식을 낳았다고 합니다. 청소년기가 2년에 불과했던 거죠. 불과 몇 십 년 전만 해도 고등학교, 심지어 중학교만 나와 직업을 잡고, 어느 정도 안정되면 결혼해서 가족을 이루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지금은 어떤가요? 대학은 물론, 대학원에 가는 사람도 많죠. 직업을 갖고 가족을 꾸리는 연령도 갈수록 늦어집니다. 그러다 보니 청소년기에 겪는 건강문제가 연장되는 양상을 보입니다. 사고, 위험한 성관계, 술 담배나 게임 중독, 컴퓨터와 휴대폰 과용으로 인한 근골격계 질환의 증가 같은 것들입니다.

 

그런데 20대 중반까지 청소년이라고 묶어 생각하는 데는 또 한가지 매우 중요한 생물학적 이유가 있습니다. 옛날에는 15-16세가 되면 뇌발달이 끝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최근 연구에 따르면 사람의 뇌는 24-25세까지도 발달이 끝나지 않고 계속 변합니다. 다른 사람의 행동과 태도를 보고 자신을 거기에 맞추는 능력, 동료를 받아들이고 포용하는 능력, 행동의 결과를 생각해보고 충동을 조절하는 능력 등이 그때가 되어야 비로소 완성됩니다. 그러니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에 다니고, 심지어 결혼을 했다고 해도 20대 중반까지는 자신이 아직 변하는 과정에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자존심 상할 필요는 없어요. 누구나 마찬가지니까요. 자신을 정확히 아는 건 언제나, 어디서나, 누구에게든 도움이 됩니다. 자신을 정확히 알고 받아들이는 것이 곧 훌륭한 인간이 된다는 거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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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강병철(소아청소년과 전문의, 꿈꿀자유 서울의학서적 대표)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같은 대학에서 소아과 전문의가 되었다. 2005년 영국 왕립소아과학회의 ‘베이직 스페셜리스트Basic Specialist’ 자격을 취득했다. 현재 캐나다 밴쿠버에 거주하며 번역가이자 출판인으로 살고 있다. 도서출판 꿈꿀자유 서울의학서적의 대표이기도 하다. 옮긴 책으로 《원전, 죽음의 유혹》《살인단백질 이야기》《사랑하는 사람이 정신질환을 앓고 있을 때》《존스 홉킨스도 위험한 병원이었다》《제약회사들은 어떻게 우리 주머니를 털었나?》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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