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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오브 라만차>의 새로운 알돈자, 뮤지컬배우 최수진
파격적인 변신부터 성공한 모습을 보여준 최수진 배우
현실의 저는 그쪽에 가깝죠. 그런데 대표적인 이미지가 있기보다는 다양한 캐릭터를 담아낼 수 있는 스케치북 같은 배우가 되고 싶었어요. (2018. 05. 09)
관객 입장에서 공연의 가장 큰 매력 가운데 하나는 시즌 때마다 다른 배우들이 만든 무대를 볼 수 있다는 것이죠. 그 인물을 처음 연기하는 배우가 있는가 하면 이미 참여했던 배우더라도 시간이 흐르고, 또 다른 배우들과 합을 맞추며 예전과는 다른 무대를 기대하게 합니다. 그래서 올해 다시 공연되는 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 역시 이미 경험이 있는 홍광호, 윤공주 씨는 물론 처음으로 이 작품과 인연을 맺은 오만석, 최수진 씨가 어떤 조화를 이룰까 궁금했는데요. 특히 캐스팅 발표 때부터 조금은 의외라고 생각했던 최수진 씨는 어렵기로 소문난 알돈자 캐릭터를 잘 담아내 많은 관객들을 놀라게 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와는 확실히 결이 다른 인물인데 어려움은 없는지, 공연 전 최수진 씨를 직접 만나 이런저런 얘기를 들어봤습니다.
“아는 피디님은 ‘너 되게 용기 있다!’고 하셨고, 신춘수 대표님도 당부 말씀을 하셨어요. 깊이 있는 역할이니까 더 집중하라고. 왜 그렇게 말씀하셨는지 알겠고 확실히 부담되는 역할이지만, 정말 하고 싶었기 때문에 힘들지는 않아요. 10년 전에 공연을 보고 그때부터 노래를 연습했거든요.”
<맨 오브 라만차> 는 시즌마다 챙겨보는 관객들이 많고, 역대 알돈자들도 쟁쟁해서 부담이 컸을 텐데요. 특히 캐릭터 자체가 쉽지 않아서 무대 밖에서도 힘들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저는 막이 내리면 역할에서 잘 빠져나오는 편이에요. 물론 공연 시간에는 힘들지만, 끝나고 나면 개운한 느낌이 있고요. 잘해야 한다는 부담이 있고, 기존 작품들과 결이 달라서 마음가짐, 준비가 더 많이 필요하긴 하지만, 맡고 싶었던 인물이라서 꿈꾸는 것처럼 행복해요.”
음색이나 창법은 바꾼 거죠? 기존 작품에서와는 많이 다릅니다.
“네, 초반에는 소리를 내리는 연습을 많이 했어요. 힘들 줄 알았는데, 제가 가지고 있는 저음이 있다고 하시더라고요. 뮤지컬은 목소리로도 다양한 연기를 할 수 있어야 하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어쩌면 해피엔딩>의 클레어가 하이 톤이라면 <올슉업>의 로레인 하트는 아기 같은 면도 있거든요. 그래서 이번 작품에서도 많이 배우고 있어요.”
알돈자는 어떤 인물인가요?
“여죄수로 시작하잖아요. 여죄수와 알돈자 둘이 많이 닮아 있다고 생각해요. 둘 다 밑바닥 인생을 살고 있는데, 돈키호테가 아무에게나 둘시네아라고 부르지는 않았을 것 같아요. 그 속에 분명히 레이디로서의 면모가 있을 테고, 자기도 모르는 뜨거운 무언가를 가지고 있지 않을까. 외모나 말투, 행동은 사랑스럽지 않지만 정말 사랑스러운 여성이요.”
지금까지 맡은 인물과는 이미지가 많이 다른데, 사실 알돈자가 매우 자연스러워서 깜짝 놀랐습니다(웃음). 지금 얘기하는 모습을 보면 기존 인물들이 더 맞는 것 같은데요.
“현실의 저는 그쪽에 가깝죠. 그런데 대표적인 이미지가 있기보다는 다양한 캐릭터를 담아낼 수 있는 스케치북 같은 배우가 되고 싶었어요. 그동안 여성스러운 캐릭터를 많이 연기했는데, 그 안에서도 성격은 많이 달랐고요. 물론 알돈자는 보이는 것부터 달라서 앞으로 어떤 센 역할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웃음). 저와 달라서 더 하고 싶었던 면도 있어요. <지킬 앤 하이드>를 예로 들면 대부분 엠마를 얘기하실 텐데, 저에게는 루시가 더 매력적이거든요.”
루시로 콜이 올 것 같아요(웃음). 이번 작품을 통해 이미지가 크게 확장될 텐데, 그럼 지금까지 맡은 인물 중에 최수진 씨와 가장 비슷한 캐릭터는 누구인가요?
“<뉴시즈>의 캐서린이요. 저도 밝고 긍정적이고, 어둡고 안 좋은 일은 빨리 잊는 편이거든요. 그래서 연기하면서도 편했고, 잘 맞는다는 얘기도 많이 들었어요. 극 중에서 캐서린은 아버지가 반대하는 일을 하는데, 저도 아빠가 뮤지컬 하는 걸 안 좋아하셔서 1년은 몰래 했어요. 하고자 하는 일은 굽히지 않는 편이에요. 물론 지금은 아빠가 누구보다 응원해 주세요(웃음).”
그러고 보니 소녀시대 수영 씨가 동생이잖아요. 노래 잘하는 유전자가 있나 봅니다(웃음). 가수를 꿈꾸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고요.
“엄마가 성악을 전공하셨어요. 저도 가수를 꿈꿨는데, 동생이 먼저 데뷔하는 바람에 저는 장녀라서 지레 안 되겠다 싶어 포기했죠. 그래서 대학도 중문과를 갔지만, 쉽게 포기가 안 되더라고요. 연기에도 관심을 갖게 되면서 자연스레 노래와 연기를 함께 할 수 있는 뮤지컬에 도전하게 됐는데, 가수를 꿈꿨을 때보다 더 큰 강렬함이 있었어요.”
무대라는 이름은 같지만 각자의 노선이 확실하네요?
“동생이 뮤지컬은 자신도 없고, 언니 밥그릇은 빼앗지 않겠다고 하더라고요(웃음). 요즘은 동생도 연기를 하니까 모니터를 아주 자세하게 해줘요. 이번에도 초반에 봤는데, 한 번 더 보겠대요.”
사실 두 분이 자매라는데 얘기를 하지 않고 지나가기도 섭섭하고, 인터뷰 때마다 이런 질문을 받으면 불편하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이제 질문을 받으면 기사가 어떤 방향으로 나갈지 예상이 돼요(웃음). 어쨌든 제 동생인건 사실이고, 좋게 생각하면 동생을 통해 제 이름이 다시 한 번 각인되는 거죠. 만약 동생이 저를 끌어줬다면 힘들었을 텐데, 뮤지컬은 혼자 개척했기 때문에 힘들지는 않아요.”
최수진 씨에게 수영 씨는 어떤 인물인가요(웃음)?
“두 가지 면이 있어요. 하나는 소녀시대 수영, 또 다른 하나는 이제 서른 살을 앞둔 아이. 동생이지만 저보다 먼저 사회생활을 시작했고 그래서 더 많이 성숙한 면이 있어요. 엄마가 항상 ‘너는 집에 와서는 소녀시대 수영이 아닌 우리 막내딸이다’라고 얘기하셨지만, 가족들도 의식하지 못한 채 수영이를 다르게 생각할 때가 있었나 봐요. 동생도 그게 부담이었고요. 그런데 요즘은 소녀시대가 각자 활동을 하면서 저희도 좀 더 수영이 자체로 보게 된 것 같아요.”
이번 작품에서는 오만석, 홍광호 씨와 호흡을 맞추고 있는데, 두 돈키호테는 많이 다른가요?
“네, 많이 달라요. 세르반테스가 감옥에 와서 죄수들을 설득하는 극 중 극이잖아요. 만석 오빠의 세르반테스는 우리만큼 결핍이 있고 불완전한데 나중에 재판을 받으러 계단을 오를 때는 성장한 느낌이 든다고 할까요? 우리와 함께 완성하고, 오빠도 성장한 느낌이에요. 반면 광호 오빠 같은 경우는 과거에 하셨던 작품이라 애초에 단단하고 확고한 면이 있었는데, 우리로 인해 좀 녹은 느낌이랄까요? 두 분의 색깔이 많이 달라서 좋고, 이렇게 좋은 배우들과 연기하게 돼서 감사하고 영광이죠.”
최수진 씨도 오만석, 홍광호 씨와는 처음 공연하는 거라서 환상이 있었고, 지금은 넘치는 인간미에 매료됐다고 하는데요. 무슨 얘기인지 영상을 통해 직접 화인해 보시죠!
알돈자는 마지막에 왜 돈키호테를 찾아갔을까요?
“그 부분이 많이 생략돼 있는데, 저는 자세한 설명이 필요 없다고 생각해요. 바로 전 장면까지 돈키호테를 많이 원망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몸에 난 상처와 함께 마음의 상처도 진정이 되면서 그 달콤함을 다시 느끼고 싶었을 것 같아요. 많이 생각하는 여자는 아니라서 본능적으로 찾아가지 않았을까. 가사에도 있듯이 ‘그 영광을 다시 내게 보여 달라’고. 그런데 결국은 돈키호테의 입이 아닌 자기 입으로 둘시네아라고 하잖아요. 클라이맥스 자체가 아닐까. 엔딩 이후의 삶에 분명히 변화가 있었을 거예요.”
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 는 ‘꿈’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되는 작품인데, 최수진 씨에게 이룰 수 없다고 생각할 만큼 큰, 하지만 항상 팔을 뻗고 있는 꿈은 어떤 건가요?
“이미 하나는 이뤄진 것 같아요. 감히 알돈자를 하다니! 그리고 또 하나는 결혼이요. 행복한 가정이 꿈인데, 결혼이라는 게 아직 구체적으로 와닿지는 않아요.”
배우로서는 어떤 모습을 꿈꾸나요?
“예전부터 또 보고 싶은 배우가 되고 싶었어요. 처음 뮤지컬을 보기 시작할 무렵 윤공주 언니 공연을 보고 무척 인상적이었거든요. <맨 오브 라만차> 가 어떤 작품인지도 모르고, ‘윤공주’ 이름만 보고 예매했을 정도로. 저도 누군가에게 그런 배우가 되고 싶었어요. 그리고 요즘은 무대 위에서 캐릭터 자체로 보이고 싶다는 생각도 해요. 최수진이라서 공연을 보러 왔더라도 다른 모습으로 있어야 하잖아요. 또 관객들에게 좋은 에너지를 주는 배우가 되고 싶고요.”
인터뷰를 하면서는 이런 그녀가 어떻게 알돈자를 할까 또다시 의문이 들었습니다. 달라도 너무 다른 이미지거든요. 공연도 많이 보러 다니고, 하고 싶은 작품도 많다는 최수진 씨. 앞으로 하고 싶은 캐릭터를 물었더니 <키다리 아저씨>의 제루샤, <고스트>의 몰리, <위키드>의 글린다, <지킬 앤 하이드>의 루시 등이 쏟아집니다. 최수진 씨가 얼마나 다양한 변신을 꿈꾸는지 짐작할 수 있는데요. 일단 <맨 오브 라만차> 의 알돈자로 파격적인 변신에 성공한 모습부터 확인해 보시면 어떨까요. 앞으로의 변화가 훨씬 궁금하고 기대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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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보느라 영화 볼 시간이 없다.."는 공연 칼럼니스트, 문화전문기자. 저서로는 <지금 당신의 무대는 어디입니까?>,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공연을 보러 떠나는 유럽> ,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축제를 즐기러 떠나는 유럽>,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예술이 좋아 떠나는 유럽> 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