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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남은 자의 슬픔
영화 <공동정범>
영화관을 나오는 발바닥이 묵직하게 끌렸다. 살아남은 공동정범은 슬픔을 딛고 할 일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공동정범>은 잊지 않을 영화가 되었다. 잊지 못하겠다. (2018. 02. 22)
영화 <공동정범> 포스터
후배가 물었다. “<공동정범> 보셨어요?” “아직 못 봤어. 그 용산 참사 이야기, 김일란 감독이 몸 아프면서까지 만들었다지.” 아직 못 본 내가 쉽게 답하자, 후배는 진지한 얼굴로 다시 말했다. “그냥 참사 이야기 아니에요. 인간은 어떻게 진실을 규명하고 도달할 수 있는가 하는 얘기예요.” 후배 말에 곧 달려가 <공동정범> 을 보았다. 나 자신에게 너무도 많은 질문을 하게 만든 영화, 잊힐까봐 며칠 사이 또 보고 나서 겨우 이 글을 쓴다.
큰 감옥-망루 4층으로-남은 자들-공동정범-사망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습니까,라는 소제목이 붙은 5개 장이 다큐 <공동정범> 의 구성이다. 끝을 예측할 수 없는 심리 스릴러처럼, 사실 편집이 핵심인 다큐에 익숙한 나를 특별히 긴장시켰다.
2009년 1월 20일 새벽. 용산 철거를 반대하며 남일당 망루에서 농성하던 사람들. 경찰의 진압 과정에서 농성자 5인과 경찰특공대 1인이 죽고, 5인이 뛰어내려 살아남은 사건. 조금씩 잊혀가고 있는 용산 참사 9년이 지나 <공동정범> 이 직면하게 만드는 사실과 진실. 참사 정황을 다루었던 다큐 <두 개의 문> 이 나온 것이 2012년, 후속작이라고 할 수 있는 <공동정범> 은 사건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다룬다.
검찰은 망루 화재 원인을 화염병으로 단정하고, 망루에 남아 있던 모든 철거민을 ‘공동정범’으로 기소했다. 그들은 각각 4년형 집행을 마치고 2013년 출소한다. 카메라가 응시하는 ‘공동정범’ 5인은 세상이라는 ‘큰 감옥’ 속에서 아픔을 견디는 담담한 표정과 낮은 목소리로 ‘인간’에 대해 묻는다. 가해자와 피해자라는 선명한 이분법이 아니라 우리 안에 뒤섞인 두 모습을 본다.
영화 <공동정범>의 한 장면
<공동정범> 의 주인공은 다섯 명이다. 김창수(성남 단대동 철거민, 전기배선공. 아내의 암 투병으로 출소 후 일상을 버겁게 산다), 김주환(신계동 철거민, 철골 등을 다루어 망루를 지었던 사람. 출소 후 식물을 기르며 정서를 다듬지만 정신적 상흔에 힘겨워한다), 천주석(서울 상도4동 철거민. 살아남아 연대하지 못하는 현실을 안타까워한다), 지석준(서울 순화동 철거민, 몸이 망가져 일을 할 수도 없고 종교적 귀의로 삶을 달랜다), 그리고 이충연(용산 4구역 철거민대책위원장. 용산 참사에서 아버지와 동지들을 잃고 혼자 살았다는 죄책감에 짓눌려 있다). 연대했던 철거 농성자 4인과 용산 참사의 주동자 1인은 다큐 카메라의 고백을 통해 2009년 현장으로 타임루프를 겪는다.
망루 농성 책임자였던 이충연은 용산 참사 규명을 위해 여기저기 뛰어다니고, 연대감으로 용산 농성에 적극 참여했던 타 지역의 ‘공동정범’ 4인은 출소 후 버림받은 느낌으로 푸석거리는 삶을 견디고 있다. 만나지 못했던 그들끼리 오해가 생기고 원망이 쌓이는 그 과정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용산은 용산 싸움이 아니다, 연대한 사람이 더 많이 다쳤고 죽었다”고, 그래서 연대했던 ‘공동정범’은 용산 참사 규명에서 멀어진 자신의 삶이 한없이 초라하고 두렵다. 진상 규명을 위해 용산과 연대하려던 이들은 용산 농성자들이 피한다는 생각에 불신도 쌓여간다. 용산의 이충연 위원장은 진상 규명 방향이 설정되면 함께하자는 것은 동의하지만 ‘모여 한풀이’하는 것은 반대라고 분명히 밝힌다.
용산 참사에서 살아남아 각각의 지옥을 겪고 있는 공동정범. 외부의 시선으로는 그들은 하나지만 내부에서는 갈라져 있다.
“같이 올라갔으면 같이 내려왔어야 했는데, 이렇게 되어 힘들다”는 연대 농성자 공동정범의 고백과 “이를 악물고 살아야겠다. 울지는 않겠다”는 용산 농성 주동자 공동정범의 다짐 사이에, 그 간극에 카메라는 파고들었다. 집요하고도 정교한 카메라워크였다.
진상 규명의 의미를 제대로 공유할 수 있을까. 2016년 1월 31일 ‘용산참사진상규명위원회’ 두 번째 좌담회에서 그들은 비로소 꺼내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나누며 ‘연대’와 ‘이해’의 경지로 한 발짝 나아간다. 경찰 채증영상, 사진, 경찰무전 등을 재분석 후 새롭게 확인한 사실들과 농성장의 기억을 비교하며, 처음의 연대 의식을 되살린 것이다.
여전히 철거민 5인과 경찰 1인의 사망 원인과 망루 화재 원인은 미궁에 빠졌다. 참사 현장에서 추모제를 열면서 그들은 살아남았다는 미안함을 공유했다. 흩어지지 않고 모여서, 이렇게 살아남은 뜻이 무엇일까 되새기면서.
영화관을 나오는 발바닥이 묵직하게 끌렸다. 살아남은 공동정범은 슬픔을 딛고 할 일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공동정범> 은 잊지 않을 영화가 되었다. 잊지 못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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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태그: 공동정범, 용산 참사, 두 개의 문, 농성자
<마음산책> 대표. 출판 편집자로 살 수밖에 없다고, 그런 운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일주일에 두세 번 영화관에서 마음을 세탁한다. 사소한 일에 감탄사 연발하여 ‘감동천하’란 별명을 얻었다. 몇 차례 예외를 빼고는 홀로 극장을 찾는다. 책 만들고 읽고 어루만지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