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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흔 “내가 고전을 공부하는 이유”

『공부의 말들』 설흔 작가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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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란 공간이 충분히 넓을 때나 가능한 단어입니다. 저의 책장은 고도성장기의 서울과 같습니다. 나가는 책은 없고 들어오는 책만 있습니다. (2018. 01.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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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흔 선생은 고전을 공부하는 소설가다. 소설은 소설인데, 우리 고전을 탐구하고 역사 속 인물의 삶에 상상력을 보태어 생동하는 소설을 쓴다. 그래서 우리 역사를 이야기로 재미나게 읽을 수 있고, 지금 우리가 고전을 읽는 의미가 어디에 있는지 생각하게 된다. 그런 저자가 박지원, 정약용, 이덕무, 이이, 이황 등 조선시대 공부벌레들의 문장을 뽑아 자신의 공부하는 삶을 반추하는 논픽션 『공부의 말들』을 썼다. 작가의 삶을 들여다볼 수 있는 책이자 배우고 익히는 사람의 마음가짐이란 어떠해야 하는지 생각해 볼 수 있도록 이끄는 책이다. 때론 삐딱하게 의심하고, 때론 엉뚱한 호기심을 품고, 때론 독자에게 예상치 못한 질문을 던지는 설흔 선생을 만나 보았다.

 

『공부의 말들』 에는 조선시대 공부벌레들의 문장이 담겨 있습니다. 여러 인물이 등장하는데, 그중 박지원에 대한 선생님의 애정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지루한 회사 생활을 하던 중 박지원의 글을 읽고 눈이 번쩍 뜨여 그 뒤로 우리 고전에 관한 책을 읽고 탐구하기 시작했다 하셨고요. 선생님에게 박지원은 어떤 존재인가요?

 

우리나라에서 학교에 다닌 사람 치고 박지원의 글을 접하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겁니다. 박지원의 글을 읽고 감탄한 사람도 없을 테고요. 저 또한 그랬습니다. 교과서에 실린 박지원의 글은 여타 고전 작가의 글처럼 어렵고 지루했습니다. 억지로 읽어야만 하는 숙제 같은 글에 지나지 않았지요. 학교를 졸업하고 회사 생활도 한참 했을 무렵 박지원의 글을 해설한 책을 발견했습니다. 한번 읽어 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읽었습니다. 어렵더군요. 그런데 흥미로웠습니다. 제게 다가오는 책은 항상 이런 식입니다. 잘 모르겠는데 왠지 끌립니다. 박지원은 저를 우리 고전의 세계로 안내한 스승 같은 이라 할 수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고전 공부를 파고들게 된 계기와 선생님만의 공부법을 알려 주세요.


박지원의 글을 해설한 책을 읽은 후로 우리 고전 산문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태학사에서 나온 고전 산문집이 무지한 제게 큰 도움을 주었지요. 박제가의 『궁핍한 날의 벗』, 심노숭의 『눈물이란 무엇인가』 라는 책이 제일 먼저 떠오르는군요. 공부법이 따로 있지는 않습니다. 그저 읽고 또 읽었을 뿐입니다. 저는 글을 쓰는 사람이기에 산문과 더불어 그 산문을 쓴 작가의 삶에도 큰 관심을 가졌습니다. 가난하고 뜻이 높았으며 눈물도 많았던 그들의 삶을 다룬 글을 쓰고 싶다는 꿈이 있었기에 더 많은 글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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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안에서 제일 넓은 방을 가득 채운 책장 이야기도 흥미로웠습니다. 고전은 물론 소설도 꽤 많이 꽂혀 있을 선생님의 책장이 무척 궁금합니다. 어떤 기준을 가지고 책을 정리하시나요? 선생님만의 책 정리법이 있다면 알려 주세요.


정리란 공간이 충분히 넓을 때나 가능한 단어입니다. 저의 책장은 고도성장기의 서울과 같습니다. 나가는 책은 없고 들어오는 책만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우리 고전, 역사, 문학, 인문으로 분류하나 지키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요즈음에는 최대한 도서관을 이용하려고 마음먹고 있습니다만 새로 들어오는 책의 숫자에는 별 영향을 못 미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가끔 책장을 살펴봅니다. 어떤 책이 있는지 기억하고 있어야겠다는 마음에서 나오는 행동입니다. 집에 있는 책을 다시 사는 실수를 최대한 줄이기 위해서죠(이상하게도 한번 끌린 책엔 계속해서 끌리게 되지요).
 
그동안 역사 속 인물, 특히 조선시대 인물이 등장하는 소설을 써 오셨습니다. 조선은 임금이 다스리는 나라이자 신분제 사회였죠. 조선시대에서 추구했던 공부가 지금 시대와 맞닿는 점은 무엇이고, 충돌하는 점은 무엇일까요? 선생님에게 조선시대는 어떤 의미인지, 어떻게 바라보고 계시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능력이 있음에도 세상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분투하는 삶을 산 인물을 좋아합니다. 좋아한다기보다는 마음이 간다고 해야겠네요. 박지원에게 여러 편의 글을 보냈지만 버림받은(?) 역관 이언진, 정조에게 찍혀 쓸쓸히 삶을 마감한 이옥, 신분을 위조해 과거에 급제하고 벼슬을 지내다가 죽임을 당한 엄택주 같은 이들. 이런 이들은 지금 우리 주변에도 있을 테지요. 가끔은 제 자신이 이언진, 이옥, 엄택주가 아닌가 생각해 보기도 합니다.


조금 과격하게 말하자면 신분 제도가 엄격했던 조선과 지금 우리가 사는 사회가 별로 다를 바 없다고 느낍니다. 그래서 저는 지나간 조선의 역사가 아니라 지금 우리 사회의 역사를 다룬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대학에서 심리학을 전공하셨죠. 심리학 전공이 고전 공부에 도움이 되었나요?


먼저 대학에서 심리학을 전공했다고 심리학에 대해 잘 아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말씀드리고 싶네요. 저는 졸업할 수 있을 만큼만 공부했지만 심리학이 저에게 큰 도움을 준 건 분명합니다. 저는 늘 사람의 마음에 관심을 가져왔고, 심리학은 무엇보다 사람의 마음을 다루기 때문이지요. 어쩌면 그랬기에 심리학을 택했고 글 쓰는 일을 택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심리학은 저에게 인간의 마음을 먼저 떠올리게 했고, 여러 공부에 큰 도움을 주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네, 그러니까 학문적인 도움은 아닌 셈이지요.
 
책을 자주 접하지 않는 이가 처음 고전을 읽는다면 어떤 책을 추천하고 싶으신가요?


제 얄팍한 마음에 제일 먼저 떠오르는 책은 『멋지기 때문에 놀러왔지』 이지만 그건 너무 속 보이는 일이겠지요. 고전을 처음 접하는 분에게는 강명관 선생의 『책벌레들 조선을 만들다』 를 추천하고 싶습니다. 글이 시원시원해서 쉽게 읽을 수 있습니다. 박지원에 대해 알고 싶다면 박희병 선생의 『연암을 읽는다』 를 추천합니다. 읽으면 읽을수록 글맛이 우러나는 신기한 책입니다. 조선시대를 살았던 선비의 내면이 궁금하다면 『일기를 쓰다』 를 꼭 읽기 바랍니다. 유만주라는 놀라운 인물을 만날 수 있습니다.
 
앞으로는 어떤 고전을 읽고 이야기하실지 궁금합니다. 혹시 고전 외에 새롭게 공부하고 싶은 분야가 있으신가요?


이름 없이 사라진 이들의 삶을 기록하는 것이 제 꿈입니다. 한 사람이 세상에 왔다 사라지는 건 사소한 일이 아닙니다. 꼭 무슨 대단한 일을 해야만 의미가 있는 건 아니니까요. 분투하며 이 세상을 살았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의미있는 삶 아닐까요. 새롭게 공부하고 싶은 분야, 지금은 잘 모르겠습니다. 계속해서 책을 읽다가 새로운 길이 보이면 그 길로 들어서겠지요.

 


 

 

공부의 말들설흔 저 | 유유
평생 공부를 지향하는 사람이 공부란 무엇이며, 배우고 익히는 사람의 마음가짐이란 어떠해야 하는지를 생각해 볼 수 있도록 이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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